노스모크페이지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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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모크페이지저자에 대한 가설


노스모크의 모든 페이지들은 모두의 소유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결국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닌 것이다. 위키위키의 정신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노스모크의 모든 페이지는 - 심지어 자신의 이름으로 된 페이지조차 - 자신의 소유가 아니다. 이 현상을 노스모크페이지저자의죽음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 참고로: 위키위키정신이라는 것은 사실 새로운 것도 아니고, 처음도 아닙니다. 위키가 하이퍼텍스트의 하나로 뜨니까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게 되어서 그렇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내가 90년대 중반에 위키위키 저자 커닝엄에게, 자기가 개발한 하이퍼텍스트를 좀 쓰자고 하니까, 거절하더군요. 이미, 많은 하이퍼텍스트의 개념으로 프로그램도 있었고(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감), 그때, 그사람은 그것으로 어떻게 돈을 벌까 생각중이었는데, 결국 GNU나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이 원했던 자유로운 소스의 사용을 원했던 경향을 따르게 된것같습니다.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박종화


노스모크페이지저자에 대한 의견


fin: '작가의 죽음'은 인문과학에 존재하는 개념입니다. 구조주의에서는 작가의 실존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필사자들일 뿐이고, 필사가 끝나면 다시 자신이 필사한 작품의 독자, 혹은 비평가로 돌아가죠. 텍스트는 읽혀지면서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고, 위키위키는 그것을 웹페이퍼 위에 보다 다이나믹하게 구현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거기에 매료됩니다.) 문제제기가 만약 바로 그 작가의죽음에 대한 의도였다면, 그다지 신선하게 느껴지지는 않는군요.

  • 노스모크저자의죽음 이라는 제목이 미리 구조주의의 어떤 개념을 겨냥하고 쓰여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가의 죽음에 대해서 롤랑 바르뜨가 쓴 "The Death of the Author (1997) "란 에세이에서는 작가를 권위적인 창조자, 작품을 피조물로 보는 기존의 시선에 대해 반대하고 작가란 사회적 맥락에서 구성된 존재로서 오히려 필사자, 복사자란 개념이 더 옳다고 주장합니다. 즉, 기존의 문학비평에서 심각하게 고민해 왔던 작가가 모든 작품의 키를 쥐고 있다는 식의 해석은 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 필사자는 작품의 소유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텍스트는 그것을 활용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작가는 독자와 구분되지 않게되고, 권위는 사라집니다. 그래서 작가의 죽음이라는 다소 선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제목을 에세이가 달고 있는 것이지요. 구조주의에서 이러한 개념은 진지하게 논의되고 회자되었습니다. 바르뜨는 이후의 저작 S/Z 에서 넬슨의 하이퍼 텍스트 개념과 비슷한 ideal text 라는 것을 제시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George P. Landow 가 다룹니다. [http]The Definition of Hypertext and Its History as a Concept
  • 저는 위키위키의 사용법이 이 개념들과 무척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바르뜨의 ideal text가 그대로 재현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구요. 그런데 누군가가 천연덕 스럽게 저자의 죽음, 이라고 하면서 글을 올려 놓으셨길래, 미리 페이지를 만들지 못한 질투심의 발로로 오래 전에 선정적으로 쓰인 제목에 대한 고풍스러운 기벽 운운하는 어리숙한 문장을 쳐 놓은 것이지요.
  • 그러나 이것은 이론상의 개념일 뿐, 확고한 형태로 정립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는 매번 주인이 사라진 글들을 온라인상에서 만나곤 하지요. 위키의 글쓰기는 그런 주인없는 글들이 모여서 진화해 가는 곳이 아닌가요?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naya

  • 저자가 누구라는 것과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 저자가 누구라는 것과 소유자가 누구라는 것은 당연히 다른 문제입니다. 그럼 일치하는 점이 무엇인가. '황무지는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공동의 자산이다'라고 말하는 사고방식이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황무지가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공동의 자산인 이유는 그 글이 생길 수 있었던 것은 엘리엇이라는 한 언어표현의 천재에게 그 글을 쓸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줄 수 있었던 이 모든 인류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동시에 그 글이 수많은 사람에게 읽힘으로써 그 생명력을 얻었다. 따라서 그 글은 결코 작가만의 것이아니다라는 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그런 논리에서 이말을 했기때문에 일치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직접적으로 그 논리를 이용해서 다시 표현하면, 노스모크에 어떤 페이지가 생긴 것은 단지 그 사람만의 매우 기이한 발상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노스모크를 통해서 생겨났으며, (설령 모두에게 비난받는 페이지라 할지라도 그 페이지가 생겨난 것은 노스모크를 바라보는 어떤 한 노스모키안이 그 페이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때문일 것이므로 그 역시 노스모크의 영향을 받은 페이지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그 페이지는 그 글을 처음 쓴 사람 뿐만 아니라 그 글을 손댈 권리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암묵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므로, 그 페이지의 저자는 모든 노스모키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이유로 어느 누구도 그 페이지를 자신이 혼자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그렇지만 그것은 저자의 죽음이 아니라 공동저자 개념이 더 가까울 것 같다. 수사법적인 차원에서 그렇게 쓴 것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저자의 책임과 권리 문제는 워낙에 민감한 사안이라....

오티움: "노스모크페이지저자문제"를 처음 언급했을 때는 부정적인 문제상황을 의도한 것이었다.

naya: 노스모크의 페이지는 노스모키안의 페이지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것에 소유의 개념을 넣게되면 또다시 혼란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흔히 소유라고 하면 자칫 폐쇄적이 되버릴 수도 있고, 변화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안티에 대한 거센 반발이 바로 그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노스모크의 개방성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습니다. 즉, 이 문제는 위키위키자체의 문제가 됩니다. 위키위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게으름이나 보수성에 부딪혔을 때, 위키위키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개성을 위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각성하고 있는 것은 위키위키의 개성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자: 하나의 페이지 안에 여러 사람이 각자의 견해가 들어간 글을 썼으면 그 여러 사람이 공동저자인 것이 상식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쉽죠잉?
소유: '누구의 소유도 아닌'지를 알아 보는 방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아주 아주 중요한 페이지 하나를 골라서 싹 지워봐요. 그 때 그 페이지가 살려진다면 적어도 누구의 소유도 아닌은 모면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 행위가 '모두의 소유'임을 증명하지는 못합니다만. 더 쉽죠잉?

써 놓고 다시 읽어 보니 역시 쉽지 않네요. 함정에 빠졌습니다. 그런 게 아닌가 봐요. 누가 내 집에 불을 질러서 재만 남았다고 해도 난 가만히 있을 수 있지요. 아마도 돈이 없으니까 재건축을 못할 겁니다. 비록 없어졌지만 그 불탄집은 제 집이지요. 또한 마음씨 좋은 어떤 분이 자기 돈 들여서 집을 똑 같이 지어 주었어요. 새 집이 지어졌고 새 집도 제 집이지만, 불탄집도 제 집이네요. 또한 WikiGardening을 내 세워 보려고 해도 풀리지 않네요. 남의 물건에 묻은 먼지를 내가 닦아 줄 수도 있는 것이고... (앗, 챙피, 아냐, 뭔가 이상해)

음 다시 한 번 더. X 페이지는, 홍길동이 썼고 또한 홍길동의 소유라고 칩시다. 그런데 어느날 홍길동이 X페이지를 싹 지워 버렸어요. 그런데 맑은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는 좋은 페이지라며 다시 살렸습니다. 다시 살린 페이지를 X' 페이지라고 구분해 둡니다.

이 행위를 우리는 이렇게 볼 수 있을까요? <X' 페이지의, '이야기'>의 저자는 여전히 홍길동입니다. 그런데 <X' 페이지, 그 자체>는 어떨까요? 페이지 자체는 저작권을 논할 대상이 아닙니다. 책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요.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물리적인 그 페이지는, 처음에는 홍길동이 인쇄했지만 그것은 이미 지워졌고, 맑은이가 다시 인쇄한 것입니다. 책으로 말하자면 제본을 한 것이지요. 책을 제본해도 저자는 안 바뀝니다.

자, 이제 소유문제로 넘어갑니다. 소유문제 또한 책과 다르지 않습니다. 책은, 저자가 쓰고, 출판사가 찍고, 구매자가 소유합니다. 페이지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돈 벌 생각이 아니라 오직 여럿이 함께 볼 그 뜻 하나만으로 홍길동의 X페이지를 제본해서 X'페이지로 다시 비치했는데, 그런 맑은이를 보고 홍길동은 오랫동안 이렇다 할 아무런 대응이 없습니다. 애초에 노스모크의 페이지는 공동으로 작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이 페이지 그 자체에 소유권을 명기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애초에 노스모크의 페이지는 소유된 적도 없고 양도의 대상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출발을 X페이지가 홍길동의 소유라고 가정하고 출발했으니 그에 맞추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갑니다. 페이지의 이야기는 하나지만, 출판한 책은 여러 권입니다. 홍길동이 소유했던 X페이지는 출판한 10권 중 한 권입니다. 홍길동이 가진 1권은 홍길동의 소유이고, 임꺽정이 가진 1권은 임꺽정의 소유인 것입니다. 맑은이가 가진 이 1권은 맑은이의 소유가 된 셈입니다.

맑은이를 노스모키안으로 바꾸면, 맑은이가 가졌던 X' 페이지는 이제 우리 모두의 소유가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그 X'페이지가 지워졌을 때 누군가 나서서 이 페이지를 살려낸다면, 이건 분명 '''누구의 소유도 아닌"' 상황을 충분히 벗어나고도 남지 않겠는지요.

맞나요? 이것도 아닌가요? 어렵네요. 아무튼, 제본한 그 페이지가 모두의 소유가 된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페이지 내용의 저자는 여전히 홍길동입니다. 페이지는 공동 저작이지만 페이지의 이야기 각각의 저작권이 각 개인에게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저작권을 가졌다고 하여 공동으로 저작한 페이지의 맥이 와르르 끊어지도록 마구 지워 버린다면 그 행위는 개인의 저작권을 지키려다 공동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격이 됩니다. 따라서 노스모크의 페이지는 정말로 함부로 할 수 없는 아주 민감한 대상입니다.

아무렇게나 대할 수 없는 그 무엇은 결코 주인이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며, 다듬어지고 있는 그 무엇은 결코 주인 없는 황무지에 비유될 수는 없습니다.

--맑은 2011.2.2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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