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없는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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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SBS 8시 뉴스를 보다가 요즘 청소년들이나 젊은이들이 버릇이 없다는 통계조사를 보았다.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어른이 수저들고 나서 수저를 든다. 등등의 문항을 어른과 청소년의 연령층에게 각각 물어봐 나온 비율이 어른보다 낮았다. 청소년들이 어른들을 보니 그들에게 지적으로든 윤리적이로든 배울 것도 없고 힘도 없다고 여겨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사용자의 성과 연령을 탈색시키는 인터넷 문화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일까.

버릇없는젊은이는 항상 있어왔다. :)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이 사는 가족 ; 일반적으로 핵가족
부모와의 관계 : 요즘은 거의 수평에 가까운 사선
의식 : 평등의식과 개인주의 의식의 확산
문화 : 끼리끼리 어울리는 문화
환경 : 대부분 대도시적 환경
결론 : 저렇게 되도 이상할꺼 하나도 없다.
nonfiction의 생각

고대 이집트의 벽화던가 파피루스던가 도자기던가의 그림에서
세상 말세다. 요새 젊은이들은 도대체 버릇이 없다.

전 세대에게 새로운 세대는 늘 버릇이 없게 마련이다.--잡종

버릇없다는 말 자체가 경솔한 경우가 많다. 어른들은 단순히 어른 수염을 잡아당기는 아이보다는 바른 말을 꼭꼭 집어내서 '말대답'하는 아이를 질색한다. 아이가 하는 비판이 옳을수록 어른들은 얼굴이 시뻘개져서 '저런 버릇없는 놈. 어른을 이기려 들어?'라는 식의 말로 아이를 짓누르며 자신의 다친 자존심을 추스린다.
하지만 아이도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렇게 쉽게 비판할 수 있고 버릇없을수 있는 것은 자신이 아직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Ssarm

동의한표 '버릇없다'는 말은, 스스로의 권위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너무 흔히 남용되곤 합니다. 아니, '버릇없다'른 말 자체가 그런 권위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지요. 나이의계급사회페이지에서 보이는 여러 표현들 외에도, 우리 나라에서는 '존대법'이라는 언어적인 시스템 -문법적인 장치- 을 통해 인간을 나이에 따른 수직적인 상하관계로 묶고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형', '동생'등으로 느끼는 감정과 서구에서 '형제(brother)'라는 이름으로 느끼는 감정이 서로 같을리 없습니다. 우리가 '형이니까 양보해야 한다', '형한테 대든다'라는 식으로 생각할때, '내 형제, 피를 나눈 내 혈족이니까'라는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의 양보를 생각할테지요. 이 '버릇없다'라는 것 역시, 대등한 인간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수평적 인간관계의 시점에서라면 아마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행위', 혹은 '(상대를 배려하는 행위로써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 정도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문화적인 우열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지만, 비민주적인 가부장제 시스템을 존속시키는데는 이런 언어적인 측면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고의 틀은 언어의 범주를 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니까요.

권위적인 나이의계급사회를 타파하는 것은 평등한 인간관계를 위한 일입니다. 인종이나 나이, 성별, 빈부, 지식이 인간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그런 것들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해주지 못합니다. 사실, 권위를 포기하면 책임도 줄어듭니다. 가부장제의 타파가 여성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듯 말입니다. 가부장제가 무너지고 진정한 남녀평등이 오게 되면 남성들의 '가족을 부양해야 할 책임'과, 예의 '변강쇠 컴플렉스'에 해당하는 몫까지 그만큼 가벼워지게 되겠지요. '자신의 인생을 찾는 여성'들 만큼, '자신의 인생을 찾는 남성'들도 늘어날 것입니다.

문법에 높임법이 존재하지 않는 언어라 해서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표현 자체가 없을리 없습니다. 진정한 평등을 위해서는 각자를 둘러싼 껍질, 여러가지 수식을 배제한체, 서로를 그저 같은 인간으로, 대등한 개인으로 바라보는 진정한 개인주의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ChatMate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영어교재에서 본 얘긴데, 영어에선 시제를 통해 공손한 의미를 표현한다고 한다. "Would you mind ~" 같은 관용어법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던 것 같은데, would 외에 다른 용례는 모르겠지만, nohmad가 유추하기로 어떤 진술에 대해 단정하지 않음, 약한 종결의 뉘앙스를 주는 보편적인 공손어법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말의 공손어미 역시 이와 비슷한 기원을 갖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전교조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왜 그러고 싶으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보통 '버릇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평소 공경받을 만한 언행을 못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더군요. --nohmad
성초등학교장자살사건이 있었습니다. see also [http]한국학교경영총연합회, [http]전국교직원노동조합

좋은 글입니다. 적절한 지적이고요, 전교조, 교장들의 연합(이름이 뭔지 모르겠네요) 싸우기전에 자신들부터 돌아보길바랍니다. -- 뱅기
그런데 여기서 왜 갑자기 전교조 문제가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네요. --nohmad

딱히 연장자기 때문에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건, 수용할 순 있지만 수긍할 순 없다. 나이많은게자랑이냐고 한마디 해주고 싶은 작자들도 없지 않으니까. --kz
전 연장자이기 때문에 한 수 접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_-a -- bab2
수용합니다. --kz

버릇없다싸가지없다 라는 말이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싸가지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데는 이의를 달 분이 별로 없을거 같은데요.
상관없는 얘기겠지만, 개인적으로 연장자에게 라는 호칭을 쓰지않고 라는 호칭을 쓰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버릇 없는 아이구나 또는 정말 싸가지 없는 아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애나 어른이나..흣~ -- bab2
  • 동의한표! 요즘은 버릇없다는 것보다는 싸가지없다 라는 말이 더 정확한듯 합니다. 싸가지 없는 애들이 너무 많은것 같애요. ㅡㅡ;;; -- JJiNEY

    저는 어릴(젊을 ^^) 때 같은 사람 앞에서도 '저'와 '나'를 구분했습니다. 당신 앞에 있는 나는 '저'라고 불렀지만, 나 자신으로써의 '나'를 설명할 일이 있을 때는 그 앞에서라도 '나'라고 호칭했습니다. 물론 그런 일을 이해할 수 없는 어른 앞에서 그러진 않았지만, 통신에서는 어른들도 아이를 존중해 주었고, 저도 저보다 아이를 존중해서 서로 존대를 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뭐가 '저'고 뭐가 '나'일까요? -- hey

버릇없는젊은이를 탓하기 전에 른같지않은어른를 먼저 탓해야 하지 않을까요? 닭이 먼저나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한 얘기이긴 해도... 른같지않은어른버릇없는젊은이를 양산하는데 한 몫을 하는거 같습니다. 예를 들지 않아도 아시죠? --thi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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