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공대총기난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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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미국 지니아공대에서 한국인 조승희가 2자루의 권총으로 수십명을 살해한 사건. 미국 최악의 총기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

한마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미국은 왜 이런 일을 당하면서도 개인 총기휴대를 허용하는 건지 원..--
한번 이권이 형성되면 그걸 없애는건 어지간해선 힘든가봅니다. 우리나라의 사교육도 그 부작용이 심각하다지만 어찌 못하는 것 처럼요. 정말 안타깝네요. 가슴이 아파요. 한 정신병자때문에 꿈많은 학생들이 이유도 없이 죽었다는게. 이럴때는 정말 '신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일이 생길수 있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순되지만 모두들 천국에서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고요. --장모

여러분은 조승희님의 살아서의 고통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 사건은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 세울 일이 아니라 사회의 잘못이라는 관점에 비중을 두어 생각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잘못했을 때 이런 댓가를 치르게 된다는 교훈을 얻으면 안되겠습니까? 총맞아 죽어간 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조승희님의 생명도 고귀하게 여기길 바랍니다. 먼저 그의 '마음'을 죽인자는 댓가를 치르지도 않고, 나중 많은 '몸'들을 죽인 살인자만 나쁜놈 취급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모두를 위해 울고 그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더 깊이 생각해야겠지요. --맑은 2007.04.20(금)
저는 매스컴에 나오는 정보들만으로는 그가 그럴만한 고통을 받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변에서 그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닌 것 같던데... 한 얘기가 생각나는군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지나가던 어부가 손을 내밀었지만 그 사람은 3번이나 하나님이 구해주실거라며 그 손을 잡지 않았죠. 그는 죽고나서 하나님을 만나 왜 나를 구해주지 않았냐고 따지자 하나님 왈, 내가 3번이나 손을 내밀지 않았느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죽인건 그 자신이 아닐까요. --장모
적절한 비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daybreak
어디가 부적절한지 알려주세요. 사실 전 그의 부모님과 관련된 얘기들을 빼면 그가 그런 도움을 받아들이지 못한건지 아니면 없었던건지 모르겠어요. 또 그가 한 행동의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뭐가 그를 그렇게 가게한건지. 이런 일을 사회의 책임이라고 본다면 개인의 책임은 어떤건가요? --장모

(DeleteMe) 이 사건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잘못입니다. 이 문장은 앞글에서 제가 한 말인데요. 문장을 수정하였습니다. 수정문장은 쌍따옴표로 묶어 두었고요. 장모님께서 읽어보시고 수정문장에서 이상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래의 글도 전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맑은 2007.05.08(월)
음, 그럼 아래의 제 글은 지우겠습니다. 혹 살릴 필요가 있는 부분이 있다면 살려주세요. --장모

개인적 책임을 묻는다면 책임을 지는 방법은 죽은 목숨들을 되살려 놓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 외에는 개인적 책임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도 죽었으니 책임을 졌다라고는 결코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 많은 젊은이들, 아니 단 한 사람이었다할지라도 목숨을 동강 낸 것에는 그 누구도 합당한 책임을 질 방법이 없습니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죽은 목숨을 되살려 놓는 것이 그것일 겁니다. 결국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죽이지 말아야한다. 폭력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을 폭력을 행사하도록 몰아세우지 말아야 한다. 심리적 자극을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누군가 마음을 죽이는자가 있다면 목숨을 죽이는 자에 못지 않은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이런 것들이 '사회적 책임'일 겁니다.

그러니까, 그가 죽인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그 자신조차도 죽이지 말아야 했었지요. 그런데 그는 죽었습니다. 그 자신을 죽임으로써 일말의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왜 죽었느냐고 '물을 수가 없듯이' 죽은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죽었는지를 '알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의 현실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임을 헤아려 볼 따름이겠지요. 또래들과의 인터뷰, 친지들과의 인터뷰,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영상물 등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현실이 그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견딜만한 것이었다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현실은 맑은이가 받아들이는 현실이 아니라 조승희가 받아들이는 현실이니까요. 맑은이였다면 어쩌면 견뎌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석이 되어서 말입니다.

그런 헤아림 없이 간단히 그가 "왜 죽여야 했는지, 왜 죽어야 했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말해 버린다면 그 사건은 분명 미친 개의 짓으로 밖에 안보일 것입니다. 미친 개의 짓이라면 더 이상 무슨 대책이 있을 것이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냥 세상의 미친 개들을 모두 가두고 그들의 씨를 말리는 고민만 하면 되지 않겠는지요? 그런 일이야 깡패를 굴릴 일이지 머리를 굴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후의 사회 흐름을 보게 되면 그 일을 단순히 미친 개의 짓으로 여길 수만은 없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분명하게 대답하는 듯 합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미국 사회에서조차도 미국사회의 책임이라고 들고 나왔고, 한국 사회에서는 그 이후 왕따로 결과되는 집단 폭력을 처벌하는 법원의 판례가 나왔습니다.

니터건너편의당신은 '사회의 책임'을 거론하니 마치 조승희님의 '개인적 책임'은 묻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계시지나 않은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조승희님더러 잘했다고 하는 사람 없습니다. 심지어 조승희님의 이름 앞에 헌화했다던 이름 모를 그 분조차도 그가 잘했다고 꽃을 바친 건 아니겠지요. 귀한 목숨이지만, 귀한 살이를 누리지 못했던 그가, 죽은 뒤라도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말해도 저렇게 말해도 그 일은 명백한 잘못이고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대항폭력으로서의 폭력행위'가 이전에 덜하던 수준에 비하면 상당히 난무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맑은이는 이 말을, 폭력은 존재하는 그 순간 이유를 불문하고 또 다른 대항폭력을 낳을 것이므로, 무조건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지니아총기난사사건과 후속 사건들을 보자면 그 당사자들은 위의 말을 좀 다르게 해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의 폭력은 대항폭력이니 정당하다. 그러나 폭력의 속성이 사람을 죽인 것이니 나 역시 마땅히 죽어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그가 못 견뎌 한 것도, 그를 못 견디게 한 것도, 그에게 견딜 수 없는 삶을 제공한 것도 모두 사회입니다. 그러기에 사회적 책임이지요. 이 사회적 책임 문제는 '기다, 아니다'를 따질 속성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생각해 봅시다. 그런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면 누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죽은 사람은 아무일도 할 수 없으니, 숙제는 살아남은자들의 몫입니다. 이제 더 이상은 그가 그런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그가 그런 이유를 '죽어도 모르겠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런 일이 다시 일이나지 않길 바라는 자신의 마음에 충실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건 살아남은자들의 숙제에 매진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책임과 대책 마련이 그것입니다.

대책에 관한한 크게 일을 벌이는 재주는 없고 그저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이란 고작 이런 것들이죠. '토론'으로 한다면 실시간 상호 배움이 될 수도 있고, 일상에서라면 '오늘도 나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마음을 다친이가 없었을까를 되물어보며' 하루를 무사히 지냈는지 '일기'쓰기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고(일기는 언젠가 내가 그런 처지가 되어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때 엄청나게 중요한 자료가 될 수도 있고), 누가 받게 될지 모르지만 내 마음을 담아두는 '편지'도 써 볼까요? 받아볼 사람이 없다면 늙어진 내가 받아봐도 될 것 같고, 기타 등등.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창문을 이곳 저곳에 달아 놓자는 이야기가 되려나요? 음, 맑은창은 아무도 안 두드리겠지요? 아이고 서럽고 외로워라. 그렇다면 맑은이는 달이랑 별이랑 놀아야지. 햇님이랑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사소한 일에서조차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을 다치는 이가 없길 바라며. --맑은 2007.05.07(월) 2007.05.11(금)

앞으로는 이 같은 이야기들이 오갔으면 좋겠습니다. 장모님, 아직도 이야기의 진전이 힘드신지요? --맑은 2007.05.07(월)
힘듭니다. 저한테 맑은님의 글은 언제나 힘듭니다. 그래서 다시 보고 또 보고 생각하게 됩니다. --장모
고맙습니다. 덕분에 문장을 잘 고쳤습니다. 나중 보는 사람은 제 실수를 못보겠네요. 앞으로도 아낌없이 지적해 주십시오. "다시 보고 또 보고" 부끄럽지만 눈물나게 고마운 말쌈. 칭찬이 아니라 질책이겠지만 다시 봐 주는 그 마음, 둘도 없는 칭찬 아니겠는지요. (갸우뚱, 아닌가?) --맑은 2007.05.11(금)

저는 언제나 맑은님처럼 말하고 싶은 것을 잘 정리해서 쓸 수 있을까요? ㅎㅎ -- daybreak 2007-05-11 02:48:47
기운 내라고 하는 소리죠? 기운센 천하장사 세포로 만든 사람! (긁적긁적) 에너지 충전 만땅입니다. 그런데, 맑은이가 보기보다는 소심하거든요. 그래서 장모님의 지적을 제대로 읽어 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답니다. 그 지적을 알고 난 뒤 뛸듯이 '좋아라'했지요. (갸우뚱, 팔짝팔짝 뛰었던가?) --맑은 2007.05.11(금)

이 다음엔 '마음을 죽인자들'에 대한 성토가 있겠습니다. 마음을 죽인자들도 마음이 죽은자들일까? 그렇다면 그들의 마음은 또 누가 죽였단 말인가? 음... --맑은 2007.05.11(금)

의도했든 안했든 누군가의 마음을 죽인 사람은 원인이 무엇이 되었든, 타인한테서 공포를 느꼈고 그것으로 인해 일종의 방어이자 불안감 해소를 위하여 마음을 죽이게 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행위가 반복되면 될수록 죽인자의 마음은 더욱 황폐해지고 광기를 띄게 되어서 알아서 죽은 상태에 근접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 생각은 결국 타인의 마음을 죽이는 사람은 동시에 자신의 마음도 죽이고 있다는 것이죠. -- daybreak 2007-05-12 20: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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