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의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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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을 가르치시는 한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다. 소녀들은 페미니즘을 불편해 한다고. 남녀관계에 대한 로맨틱한 환상으로 가득차있는 소녀들에게 페미니즘은 실감도 나지 않고, 도움도 되지 않는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여성으로서의힘을느끼기에 익숙한 여대생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여성으로서의 힘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것에 맛을 들이는 순간, 세상의 남자들을 오빠로 불러가며 말초적 편안함을 추구하기 시작하는 순간, 여성의 종속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잠시, 난도가 중국에 갔을 때의 경험.
때는 97년 7월, 중국대학의 졸업식이 있는 시즌이었고, 난도는 길림성에 있는 한 조그만 대학의 졸업식에 참석했드랬다. 따로 용역인력을 부릴 여유가 없던 그 대학에선 졸업식장 셋팅을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해내고 있었는데, 난도는 거기서 평생 못잊을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의자와 무거운 도구들을 같이 나르고있는 것이었다. 찬란하고 뜨거운 햇살 속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그 의자들을 나르고 있는 남자와 여자는 난도에게 엄청난 문화충격이었다. 나는 왜 이 장면을 놀라와하고 있나?

중국 학생들은 서로를 통쉐同學, 통쯔同志라고 부른다. 혹은 이름을 부른다. 그들에겐 그러한 남녀협업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반면 오빠 이거 너무 무거워, 오빠가 들어줄께가 일상화되어 있는 한국의 학생들에겐 놀랍고 불편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전 97년에 그런 장면에 놀랐다는 사실이 더 놀랍네요.. ^^;;; 대학을 여자대학으로 다닌 worry는 당연히 여자들이 하이힐 신고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플랭카드 달고 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히 봐 온 터라 ;; 전 남녀공학에서 여자들이 빼고 남자한테 시키고 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다음에 접한 대학/대학원에서는 여자들이고 남자이고 안 가리고 허리만 멀쩡하면 무조건 몇 kg 넘는 장비를 떠메고 다니는 것이 일반화였기 때문에, 제가 다닌 곳에서는 여자나 남자라 해서 육체노동에 예외가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worry가 희한한 곳만 다녔다,가 결론이 될 수도 있겠지만... - worry

남녀공학안에서도 남녀비율을 반반으로 뽑는 과를 다녔던 Felix도, 여학생들이 일없이 빼면서 남학생 시켜먹고 하는 것을 실제로 보기는 어려웠다. 한학기에 한번씩 있는 과제전때는 누구나 할 것없이 비상이 걸려서 자기과제 들고 나르고 옮기고 뚝딱거리는데, 누가 누구 챙겨주고 부탁할 겨를은 없어놔서, 여자건 남자건 남아도는 일손이 있으면 무작정 부려먹고 부려먹히는 시스템이었으니... 그래서 Felix를 비롯한 여동료들은 지금도 자기몸집보다도 큰 화판들을 번쩍번쩍 들어옮긴다든지 못박고 조립하고 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의자나르는 것 쯤은 일도 아니다. 책상이나 파티션도 번쩍 들어 잘도 옮기며 톱,드릴같은 중장비도 잘 다룬다. 단, 예외의 상황이 있긴 했는데...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구애하거나 자기마음을 드러내고 싶을 때는 나서서 무거운 걸 들어준다거나 일을 돕곤 했다.(앤 없으면 이럴때도 서럽더라...) 힘쓰는 일 많이 하는 조소과 같은 데서는 남학생이 여학생 돌 나르는 거 도와주다가 엮이곤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전한다.(Felix가 학창시절에 연애한번 제대로 못해본 건 찔찔매며 도움을 청해버릇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고민한 적도 많았다...) 그리고, 아무리 힘쌘 여자라도 신체구조와 근육강도상 무리인 일들이 있을 땐 남자들도 군말없이 나서서 도와주곤 했었다.

가사분담과 여성 공직사회진출이 거의 서구 선진국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부러웠다.

난도는 우리나라의 남녀평등 진전되려면 그 알량한 오빠 호칭 주고받음이 종식되고, 소녀들의페미니즘이 이 땅의 소녀들을 정신 번쩍나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너를 기다리는건 백마탄 왕자가 아니야. 직장에서의 조직적인 차별과 여성 가사 전담 문화, 그리고 네 몸을 훑고 있는 끈적끈적한 남자들의 시선이야.

세상의 남자들을 오빠로 불러가며 말초적 편안함을 추구하기 시작하는 것과, 세상의 남성들을 오빠로 불러가며 그들을 이용하는(!) 것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 종속당하고 종속당하지 않는 것은 행동에 의한 결과라기보다는 의식주체의 문제라고 생각되는데요. irenchel은 남성이지만, 오빠라고 불려본 적도 별로 없지만(정말 여성들은 남성들이 필요할 때에만 오빠라고 부르더군요. :) ), 남성들을 오빠라고 부르는 여성들이야말로 결국 강자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중국간의 외교가 사대주의였느냐 아니냐 정도의 이야기겠지만. :) 결국 가사건 사회진출이건 남녀 평등사회가 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전근대적인 오빠라는 칭호에 휘둘리는 남성들을 가능한 충분히 이용하는 것이 여성들에게 있어 더 이득이 될 정치적 행동 아닌가요? :) 물론 오빠라는 칭호 뒤에 오는 부작용(일정시간의 연애 이후부터 계급관계를 만들려는 남성의 시도) 따위야 적절히 봉쇄해 가면서 말입니다. --irenchel
'어리숙한척남자부려먹기' 라는 책이 있죠.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겠죠. :) --asiawide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더 이득을 보자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남녀간의 계급관계는 연애와 전혀 상관없이 적용되는 게 현실입니다. 오빠라는 칭호로 약한 척 이용해 먹는다는 얄랑한 차원의 행동은 남자들에게서 '여자들 손해보는 것도 없으면서 남녀평등이니 뭐니 난리야'하는 식의 반응밖에 얻어낼 수 없습니다.

여자들 손해보는 것도 없으면서 남녀평등이니 뭐니 난리야라는 것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요. 바꿔갈 것은 바꿔가고 없애갈 것은 없애가되,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용하기에 따라서 그 이득은 생각외로 클 수도 있습니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이용하면서 이대로 안착하자는 이야기로 잘못 이해하신 것 같군요. :) 혹은, 그 두 가지 사이에 충돌하는 무언가가 있습니까? --irenchel
이용할수 있는 것을 이용하면서 바꿔갈 것을 바꿔나간다...라는 것 자체가 이미 페미니즘이 말하는 남녀평등이라는것과 완전히 틀리지 않습니까? -휘랑

남성들을 오빠로 부름으로써 이득을 얻는 것이 남녀평등에 반하는 일 아닐까요. 오빠라는 호칭이 가져다주는 계급관계는 연애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남자를 오빠라고 부르는 일, 오빠라는 호칭에서 힘을 얻는다는 사실이 이미 그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얼마나 수직적인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swallow
남자 후배들도 여자 선배들을 '누나'라고 부릅니다. 그런 것으로 남성과 여성의 수직관계 따위에 적용하지 마세요 - 뱅기
저도 누나라고 부르던 선배님이 있었습니다. 동의한표 - nextbrain

미니즘을 전 극도로 혐오합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결국 남녀평등보다는 여성상위같기 때문이죠. -_- 미니즘이 나오전 남성우월시대라고 그들이 부르는 시대에도 어떻게든 평형은 이루어집니다. 음이든 양이든 결국 잘못된 구도로 평형이 이루어지고 남성이 세상밖에서 우월해지고 여성은 음성적으로 우월해지고...... 이런식의 평행관계는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가타부타 여성의 특권쪽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고 단지 남성이 우월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권리를 여성도 가져야 한다. 물론 맞는 말이죠. 하지만 극단적으로 위험한 일이 생기면 결국 남성이 하게 되어있습니다. 왜냐? 남자이기 때문에 힘이 세기 때문에... 하지만 페미니즘이 이런것도 나누자고 할까요? 이런말하면 여성들은 말합니다. 남자가 쪼잔하다. 네 쪼잔합니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건 여성의 특권입니다. 그걸 버리지 못하죠. 미니즘을 부르짓기 전에 자신들이 뭐가 우월한지 알고 같이 나누겠다면 전 찬성합니다. 시대가 바뀌니깐 그런식으로 다시 재구성하자면 찬성합니다. 하지만 현재 속칭 미니즘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반쪽짜리 완전 가짜 미니즘이라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사실 미니즘나오기전에는 남자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우월한지 몰랐으니깐요. 여성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정반합의 변증법적논리에서 미니즘이라면 저는 그것에 다시 입니다. 미니즘이라는 논리도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thistle
제가 여성이기는 하지만 남녀평등을 주장하기 위해 남녀불평등으로 치닫는 주장은 무리가 있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남녀불평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여성의 이권만 주장한다면, 사실 이러한 생각은 진지하게 평등의 의미를 고려하는 처사는 아니라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순점이나 시행착오의 오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thistle님이 냉혹하게 비난하는 구태의연한 페미니즘의 논리가 문제점을 많이 내포하기는 하나 과거 사회에서 여성이 진정 사회적 약자였음을 고려하셔 주시는 관용 또한 잊지 않아주시길 바랍니다. 남녀평등의 문제는 일방적으로 남성만 안고 있는 혹은 여성만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함께 풀어가야할 사회의 숙제라고 보여집니다. 이제 해법을 여성의 해방논리에서만도 남성의 불만분출에서만도 찾아질 순 없다고 보여집니다. 어쩌면 그러한 성숙도가 더해질때 우리는 굳이 남.녀.평.등이라는 어휘조차 떠올리지 않는 수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thistle님이 쓴 내용 중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님은 과거의 사회를 겉으로는 남성들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을지 모르나 속으로는 여성이 좌지우지하거나 참여하는 부분이 많았으므로 솔직히 놓고 봤을때 전체적으로 특별히 어느 쪽으로 기울었다고 할 수 없는 평형이 있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너무 남성적인 시각에서 남녀관계를 해석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님의 말씀에 설령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하더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기회자체가 보장되지 않거나 박탈되었던 부분이 원론적인 문제였음을 잊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by 열혈여아

남성과 여성이 태생적으로 가지는 차이점을 각자가 최대한 극복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또 사회 문화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남녀평등이 궁극적으로 나아갈 길이 아닌가 합니다. 남성과 여성이 육체적으로 또한 심리적으로 차이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고, 그로 인해 남성에게 적합한 일, 여성에게 적합한 일이 생겨난다면 불리한 쪽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줘서라도 두 성을 최대한 동등한 조건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남녀평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각 성의 특징을 오히려 강화하는 쪽으로 후천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죠. 과거에는 물론 더 했구요. 이처럼 후천적으로 강화되는 남녀간의 차이를 최대한 억제하고 그래도 안되는 부분은 제도적으로라도 뒷받침을 해 주는 것이 가야할 길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러한 것에는 사회적인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은 남성에게 적합한 일을 하고, 여성은 여성에게 적합한 일을 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이 아니냐는 사고방식이 등장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후천적으로 강화되고 또한 왜곡되기도 한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 이러한 사고방식의 첫번째 문제점이고, 또한 이러한 사고방식은 인간을 기능적으로만 파악하여 인권을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 두번째 문제점입니다. 그런 사고방식대로라면 장애인들을 위해 이루어지고 있는 투자들은 전부 쓸데 없는 낭비라는 결론이 나오니까요.

하루 아침에 이러한 사회로 탈바꿈한다면 좋겠지만 이것은 하나의 이상적인 목표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그 과정 상에서의 어느 정도의 타협이 불가피합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전부 투사가 될 수는 없으니 미래에 이루어질 선을 위해서 현재를 포기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인 목표와는 상관없이 남성과 여성의 권리의 산술적인 평균을 맞추어 주는 것도 필요하고, 가끔은 그 방법이 남녀평등의 이상에 배치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또한 남녀평등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곧장 가는 것 보다 돌아가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남녀평등 혹은 페미니즘에 대한 혼란이 생기고 논점이 흐려지는 경우를 꽤 많이 봤습니다. 가장 흔한 예가 여자도 군대에 가라는 주장인데 이것은 이상적인 남녀평등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여성이 군복무에 부적합하다면 제도적인 보완을 통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군복무의 의무를 지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부분은 제쳐두고 그 부분에서 부터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것은 가뜩이나 기울어져 있는 산술적인 평균의 추를 더욱 기울이는 일이 되기 때문에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올바른 목표를 추구하는 것과 현실의 삶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일이고 따라서 어느 정도의 타협이 필요한 일입니다. 소녀들의페미니즘도 이러한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길만 똑바로 보고 있다면 갈지자로 걷더라고 결국엔 목표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당장 입에 단 길을 선택하더라도 궁극적인 목표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리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선 남녀평등이라는 기치 아래에서 궁극적으로 이루어야할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그리로 갈지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하나 둘 씩 해결해 나가야죠. --남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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