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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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측면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을 정리한다.

어원적 측면


죽음은 삶의 반대 개념이다. '돌아가신다'는 표현이 명확하게 자연으로의 회귀를 내포하고 있음은 쉽게 알 수 있으나, 죽음은 그 어원을 쉽게 알 수 없다. 다만 삶의 어원이 '사르다'(불사르다)로 이야기되는 것으로 추정하여 사르고 남은 재가 죽(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잘 사는 사람은 잘 죽는다.

의학적 측면

의학적으로 죽음은 심장의 멈춤이다. 그러나 심장이 멈추어도 심장에 자극을 줌으로서 다시 활동하는 경우가 있으니, 일정시간이상(얼마동안인지는 정설이 없다. 관례적으로 3일이 지나면 시신에 방부제를 넣는다. 관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심장의 활동이 멈춘 결과로 혈액내에 산소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세포가 썩는 과정이 진행될 때 죽음으로 본다. 뇌사,식물인간과 같은 경우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법적인 측면

의사의 사망확인서와 함께 동사무소에 죽었다고 신고하는 순간 그 사람은 죽은 것이다. 죽은 사람은 법적인 주체가 될 수 없다.
사회적으로 죽은 것이겠지요? 심장이 정지하는 순간 그 사람의 법적인 권리와 의무는 사라지게 되고 상속이 개시되니까요.

종교적인 측면

모든 종교가 사후세계를 인정한다. 다만 유교는 알 필요없다고 이야기함으로서 종교인지 아닌지의 논란을 준다.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함에 종교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예외도 있습니다. 위카(Wicca)의 경우 부활을 인정하는 분파부터, 영혼이라는 것이 뇌의 신호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죽고 뇌 활동이 정지되면 그걸로 끝이며 사후세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분파까지 다양합니다. -- CafeNoir

과학적인 측면

과학적으로 사후세계는 분석될 수 없다.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불가지한 사실에 대하여 논박을 하지 않는다. 종교를 가지든지 말든지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영역에 속한다.

사회적인 측면

죽지 않으면 지구는 폭발할 것이다. 오래 사는 행위의 결과로 노인 인구의 점유비가 높은 일본의 경우 이에 대하여 돈으로 때우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효사상에 기대고 있다.

철학적인 측면

철학적인 측면에서도 사후세계는 부정적이다. 다만, 죽음이 없으면 삶이 없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보람있는 삶과 죽음을 권장한다.

심리적 측면

인간은 그의 삶의 과정 과정에서 다양한 종류의 유사죽음을 경험한다고 한다. 예컨대, 새로운 생활 태도와 방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익숙해져온 낡은 생활방식과 결별,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낡은 생의 태도를 죽이는 것이 요구된다. 개체의 성장을 위해 변화는 필연적이며,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적어도 발전을 위한 심리적 차원의 죽음은 일상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심리적 죽음의 다섯단계: 건강(안정) --> 책망(죽을 병임을 인식) --> 1. 부정(충격): 이 단계에서 고독, 내적 혼란, 죄의식 및 의미상실과 같은 복잡한 심리적 상태를 경험한다 --> 2. 분노(격정) --> 3. 타협(현실을 서서히 받아들임) --> 4. 우울(타인과의 접촉의 증가. 자기이해 증가) --> 5. 수용(자기신뢰의 증가)

기억의 대량 상실로 인해 특정 시기의 나 자신이 죽어버린 느낌이 듭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아...이런 이야기도 기억이 나는군요.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했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얼마전에 결혼식을 올렸다는데 자신의 부인도 누구인지 기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당신의 아내라고 소리쳐도 누구냐고 물어보는 남편...휘유...

심리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죽음은 크게 고민거리가 아니다. 사춘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지인의 죽음 특히 가족의 죽음은 많은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즉 돌아버릴 수 있는 것이다.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 그의 육체를 보는 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다. 머리속에서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고 그 사람에게 잘못한 측면이 떠오르면 되돌이킬 수 없음이, 오해를 해소할 수 없음이 죄책감으로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잘했다고 하더라고 '죽기전에 잘할 것을'하는 후회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생물학적 측면

단세포 생물들이 협력하면서 죽음이 생겨났다. 단세포 생물은 죽지 않는다. 죽지 않으면 삶도 없다. See Apoptosis
단세포 생물은 외부적 충격이 아니면 영구불멸인가요? --이정호
우리는 매일 매일 죽는다. 피부뿐만이 아니라, 피도 바뀌고, 뼈도 죽어 새로운 뼈가 생긴다. 12년마다(흠...) 완전히 새로운(물리적 측면에서) 세포로 인체는 재구성된다.(생체시계에서)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모든 생물은 외부환경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장례문화

장례문화는 그 나라의 환경조건과 철학사상이 다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아래 티벳의 장례문화는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철학사상과 돌로 이루어져 매장과 화장이 불가능한 환경임을 쉽게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에스키모인들은 곰에게 시신을 준다.

티벳의 장례문화

{{| 티벳의 조장1
망자를 위한 불을 지핍니다.
그러면 시체를 진 유족들이 옵니다.
우선 시체를 덮고 있는 천을 찢습니다.
다음 쇠꼬챙이로 시체를 찍어 잘 갈아 놓은 칼로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냅니다.
그러곤 살을 발라 냅니다.
가슴살 팔 다리 손 발 등등의.
그렇게 살을 잘 발라(뼈에 남아 있는 살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던져 놓은 후 새를 막고 있던 사람들이 줄을 치우면 그 순간 인간의 몸은 독수리의 밥이 됩니다.
그렇게 발라 놓은 살들을 어느 정도 먹었다 싶으면 다시 독수리를 쫓아냅니다.
그러면 흩어져 있는 뼈 조각들을 모아 빻기 시작 합니다.
먼저 두개골을 반으로 잘라 안에 있는 뇌 등의 것들을 꺼내고.
아! 두개골은 유족들이 원하면 바가지 모양으로 잘라서(톱으로 자릅니다) 유족에게 줍니다.
-이 자른 두개골을 어떤 용도로 사용 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제가 알기로는 딱 바가지로 쓴다고 합니다.
그 라마의 말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조캉 템플을 돌때 두개골로 만든 북을 보았는데, 아마도 그런 저런 용도로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 가슴뼈며 팔 다리 뼈를 아주 큰 망치로 두들겨 가루로 만듭니다.
가루라기 보다 짬바가루(보리가루)를 썩어 뼈에 남아 있는 조금의 피며 살들을 함께 썩어 놓은 것 이겠지요.
그것들을 다시 새에게 던집니다.
새들이 먹는 걸 보면.
새의 우두머리 쯤 되는 놈이 가장 맛있다고 하는 내장을 먹습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맛있는 부위 쟁탈전을 벌입니다.
그러니 처음 던져진 살들을 배부르게 먹은 새들은 뼈가루 같은 건 쳐다 보지도 않습니다.
아마도 제일 힘이 없는 놈들이 뼈가루를 먹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조장이 끝나면 라마들은 그곳을 떠납니다.
유족들도 내려 가구요.
저는 끝나고도 주변에 남아 있었는데.
독수리가 실컷 먹고 떠난 그자리에 조무래기 새들이 달려 들고 있었습니다.
헌데 조장은 여러 종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본 곳은 오직 새에게만 먹이는 곳입니다.
주변에 울타리를 쳐 놓아 다른 짐승들이 들어 올 수 없게 해 놓았습니다.
카일라쉬 쪽은 어떤 인체의 해부를 일체 하지 않고 던져 놓는 다고 합니다.
그러면 새들이 와서 먹고 들개들이 와서 모조리 먹어 흔적도 남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

{{|티벳의 조장2
아침 8시.
어찌 그리 춥던지요.
덜덜 떨며 시간을 보냅니다.
죽은자를 위해 피워 놓은 불옆에 섭니다.
다른이들보다 일찍 간 덕에 라마들과 이야기하며 친해졌습니다.

독수리들 하늘을 빙빙 돌고 있습니다.
저멀리 독수리 무리들이 천장터를 지켜봅니다.
한두마리 가까이 다가서구요.
어느순간 천장터 주변 커다란 개만한 독수리로 가득해 집니다.
사람들 죽은자 이고 하나둘 모여 듭니다.
처음 행여 그 사람들에게 누가 되는 행동을 하게 되면 어쩌나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면 어쩌나 했구요.

저와 웃으며 이야기하던 라마들.
옷갈아 입고 칼을 갈아 됩니다.
그러며 죽은자 마지막 남은 천조각 찢어내구요.
처음에 그 모습을 보고 아 얼어붙은 사람이구나 했습니다.
한사람은 그래도 오래되지 않았는지 마악 눈을 감은 사람 같았습니다.
나머지 두사람은 심하게 부패 되어 있었구요.
그러나 라마들 칼질에 사람이 고깃 덩어리로 변합니다.
영락 없는 고깃 덩어리 입니다.
칼질 하는 라마들 모습을 보며 푸줏간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수리들 눈 번득이며 지켜 봅니다.
언제 왔는지 저멀리 외국인들 가까이 다가서지 않고 멀리서 지켜봅니다.
어느새 고깃 덩어리 널려 있구요.
독수리 막아서 있던 사람 비켜서니.
독수리들 정말 무섭게 달려 됩니다.
그 모습을 보며 독수리들 고깃 덩어리에 달려드는 모습보며.
인간들 모습과 다를바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바둥바둥 살아가는 인간들과,
이런 저런 싸움하며 살아가는 인간들 모습 말입니다.
독수리들 가장 맛있는 곳 찾아 서로 부리로 상처내며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고깃 덩어리로 변해 새의 먹이가 되는 모습을요.
그렇게 죽은자들 하늘로 올라 가나 봅니다.
독수리들 정말 치열하게 먹어 됩니다.

라마들 연신 농당입니다.
너 그러고 있으면 독수리가 달려들어 너도 쪼아 먹을 것이야 합니다.
그말에 하하 거리며 웃습니다.
그렇게 웃음이 나온다는 것이 참 편했구요.
우리네 죽음과는 사뭇 다릅니다.
아프던 머리가 어느 순간 사라졌습니다.
마음이 편안해 져서 인 듯 합니다.
얼마만의 시간이 흐르니 라마들 다시 독수리를 쫓아 냅니다.
그러고 남아 있는 뼈 모아 커다란 망치로 빻습니다.
보리 가루 섞어 가며 열심입니다.
그러며 뼈 조각 하나 들어 내게 내밀며 너 가질래 합니다.
그 모습이 참 좋습니다.
푸줏간 아저씨 라마들.
정말 열심히 빻습니다.
힘들어 하지 않습니다.
싱글싱글 이따금 땀 훔치며 열심입니다.
농담 또한 마찬가지 이구요.
한 라마가 머리를 가르며 영혼이 빠져 나간 자리라며 알려 줍니다.
2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너무 열심인 라마들 덕에 입고 있는 옷 몇군데 핏조각이며 살점들이 엉겨 붙습니다.
아마도 다른 때였으면 비명을 질렀거나 그랬을 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의외로 담담해집니다.
그저 스윽 하고 닦아 냅니다.
죽음이 친숙해져서 그런건지.
라마들 모습에 편안해진 마음 때문인지.

그렇게 한참을 빻아대던 라마들 물러나니 독수리들 다시 달려 듭니다.
이리 저리 치고 받고 서로 난리입니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 하나둘 떠나고 라마들도 떠나고.
함께 간 이들과 천장터 주변을 돌며 한참을 서성였습니다.
어느 잔디위에 앉아 아직 남아 있는 독수리를 바라 보았구요.
무엇보다 그때 파아란 하늘 아래 앉아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따뜻한 해쬐며 앉아 있는 내가 좋았지요.
마음이 그리 편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며 파란 하늘 아래 난 길을 걸었습니다.
곰빠로 돌아와 타고 온 차를 타고 라사로 돌아 왔습니다. |}}
죽음에는 여러가지 측면이 있다. 그것들 중의 하나를 우리와는 상이한 문화권의 장례 풍습 속에서도 볼 수 있다. 티벳의 조장풍습-천장이라고 한다-은 우리로서는 이질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내가 경험한 것 보다 후배가 쓴 글이 더 생생하고 최근 것이어서 인용해 둔다.. Nomad

노스모크에서의 죽음

IpToBlock 이나 필명차단... 무엇보다도 낮아지는 페이지온도. 그러나 WikiIsAnEternalNow . 위키위키에서 영원한 죽음은 없다. --musiki

기타

(잡담 기질이 농후함) 개인적으로, 죽음은 가장 멋진 판결이 아닐까 한다. 어차피 인간이 하는 판결이 아니니 당연히 판사 따위의 판결보다 멋지리라 생각된다만. 이 땅위에 각각 다르게, 남자로 여자로 부자로 거지로 천재로 바보로 태어난 불공평을 가장 근본적이고 확실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리라. 죽음은 흔히들 영원한 잠이라 일컫는다. 죽음. 영원히 쉰다는 것은 즐거울 것이다. 어린시절 생각했던 천국, 지옥 따위가 없다면. 천국과 지옥에서 또다른 불공평을 낳지 않고 영원한 잠을 허용해준다면. -- 아름다운아이디

진실 하나,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다 죽지 않은 사람들이다.

지리산의 어떤 새는 주민들 사이에서 '저승새'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이유인즉, 이놈의 새가 울면 녀석이 어디있는지를 도통 모르겠더랍니다. 가까이에 있는지 멀리 있는지..

죽기 때문에 살맛이 난다.--Roman
그렇죠, 죽음은 삶의 원동력이라는 말을 오늘 들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영생을 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요?--dropmealine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도 다른데, 영생까지 하게 되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져 버릴 것 같습니다. --인클루드

자신의 죽음을 누가 가벼이 여길 수 있겠는가?
죽음앞에 선 단독자!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죽음을 버려두고 삶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자는 갑자기 죽음이 닥칠 때 저승길은 어떻게 가려는고?
사랑도 명예도 자식도 은행에 예금도 버려두고 아까워서 어쩌지? ....산우행


한 민간인이 라크에서 집단에 의해 죽음으로 인해 전세계의 뉴스가 되고 있습니다. 그 집단이 원했던건 철회.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응은 파병 철회 할 수 없다는 강경 대응. 꼭 그렇게 해야 되는지 무수한 의문이 남습니다. --아무개

see also 퓨쳐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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