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pto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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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ptosis: ProgrammedCellDeath. 세포자살. (멋지게 읽으려면 입을 크게 벌리고 에이-팝-타-시스 라고 해본다)

손가락이 생성될 때에는 주먹에서 손가락이 뻗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물갈퀴와 같은 손이 생기고 손가락 사이의 세포들이 죽는 과정이 일어난다. 즉 손가락이 생기기 위해서는 손가락 사이의 세포들이 죽어줘야한다. 이와 같이 세포의 물리적 충격에 의한 죽음(Necrosis)이 아닌, 개체의 이익을 위하여 일사불란하게 죽는 과정을 Apoptosis라 한다. 이는 고도로 조직화된 과정을 보여주며,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어 왔다. 세포는 각자 적절한 시기에 죽어줘야 개체 입장에서는 그 이후의 과정들이 편해진다. 단세포생물은 세포 하나가 개체를 일구기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서 세포의 죽음은 개체의 죽음이지만, 공생과 같은 진화의 메커니즘에 의해 출현하게 된 다세포생물에게 세포 하나하나의 죽음은 더이상 개체의 죽음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게 되었다. 갈잎이 지듯, 죽어야 할 때 죽어주는 것이 도리가 된다.

세포를 죽이기는 쉽다. 하루만 굶겨도 죽고, 온도를 조금만 높여도 죽게된다. 하지만 이러한 세포의 죽음은 대부분 Necrosis에 의한 죽음이다. Apoptosis와 Necrosis의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도시 가운데 서있는 노후된 빌딩을 예로 들어보자. 그 빌딩을 철거하고 새건물을 지으려면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이기둥 저 기둥에 폭약을 설치하고 타이밍을 잘 맞추어 단 한번에 폭파시켜야 한다. 이렇게 치밀한 계산에 의해 빌딩은 그자리에서 그대로 폭삭 주저앉고 주변 건물들은 약간의 먼지만을 뒤집어 쓰게 된다. 미국테러에관한단상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빌딩을 생각없이 폭파시킬 수도 있다. 이경우 빌딩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과, 주변의 많은 건물과 도로가 피해를 입었다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전자의 경우를 Apoptosis라고 한다면 후자의 과정을 Necrosis라고 할 수 있다. 면역반응에 의한 Apoptosis가 많이 연구되어 있다. 우리 몸속의 면역세포들이 죽어야 할 때를 놓치게 되면 Auto Immune Disease나 백혈병과 같은 무서운 질병에 걸릴 수 있다.

다세포생물의 모든 세포들은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 현재 생명과학계의 정설이다. 즉 Death switch가 항상 on 이며, 살아 있는 것이 오히려 Death switch를 off 시켜놓은 상태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ProgrammedCellDeath는 살아있을 때보다 죽는 과정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는 셈이다. Multiorganisms의 Cell Mass는 이처럼 투자가 심한 Apoptosis 외에도 Necrosis를 진화시켰으며, Macrophage 혹은 Natural Killer Cell과 같이 Cancer cell이나 Infected cell을 죽이는 Lymphocyte의 경우에는 주변의 세포들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Necrosis를 선택하게 된다. 바이러스의 초기 감염시에는 오히려 Necrosis가 경제적이다. 비록 바이러스들은 이 과정을 역이용하기도 하지만...

개미사회를 보자.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개미사회는 인간과는 다른 진화의 역사를 걸어왔다. 개미사회에에서 일개미 한마리한마리의 존재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일개미들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존재할 뿐이다. 개미공동체는 그 자체로 초유기체를 이루고 있으며 초유기체사회에서 개미한마리의 존재는 인간의 수조개의 세포중 하나와 같다.|}}

단세포생물에서 다세포생물의진화에서 세포간의 상호작용은 매우 중요하게 대두되었고, 이기적유전자의 승리를 위해서 하나의 세포가 가지는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즉 한 개체의 생존을 위해서 하나의 세포가 희생하는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유기체가 고도로 조직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이러한 경향이 잘 나타난다.

인간사회는 어떠한가? 이러한 희생시스템을 추구하던 이데올로기로 공산주의를 들 수 있다. 공산주의사회에서 한 개인의 재산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개미와는 다르게 개체의 완전성에 촛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파고들 틈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만일 인간사회가 개미사회와 같이 조직화되는 날이 온다면 당신은 인류를 위해 Apoptosis 할 수 있을 것인가. 인류의 종착지는 다양한 Meme의 Interaction을 통한 조직사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개개인의 완전성이 부각되는 개체사회가 될 것인가. 노스모크가 추구하는 집합적지성은 어떠한가..

김우재는 세포의 Apoptosis를 보면서 세포하나하나와 인간한명한명을 동일선상에 두고 생각해 본다. 인간사회는 고도로 조직화되고 마침내 초유기체가 되어 갈 것인가. 개인간의 Brain 을 연결시켜주는 System이 개발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 속에서 과연 한 개인의 희생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인간의 자아가 그렇게 자신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김우재는 인류를 위해 Apoptosis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잠시 노화와 암 그리고 Apoptosis의 관계를 살펴보자. Apoptosis가 너무 빨리, 많이 일어나는 것은 노화로 가는 지름길이고, 특히 뇌에서는 치매를 일으킨다. 반대로 Apoptosis가 안 일어나면 그것은 보통 암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Apoptosis를 유발하도록 하는 Tumor suppressor gene과 Apoptosis를 막는 Oncogene간의 작용이 현재 활발한 연구 테마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p53 이라는 유전자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p53는 cell cycle을 조절하는 유전자의 turn on-off에 중요한 transcription factor로서 cell-cycle이 조절되지 않으면 세포가 무한정 분열하게 되고 암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이 현상을 informal 하게 해석해 보자면, "내가 죽어 개체를 살리자" 유전자들과 "어쨌든 난 안 죽을래" 유전자들의 세력의 우열로 인해서 노화, 정상, 암의 스펙트럼이 결정되는 것이다. 최대한 자신의 gene을 퍼뜨린다는 "이기적유전자"의 공식 입장조차도, 이 치열한 세력 다툼 속에서는 현실이 아니라 이상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이기적인 유전자들의 작용 또한 dynamic하다. 그 과정에서 "자유의지"가 개입될 여지는 너무나도 많을 것이다. 이건 꼼짝도 안하고 땅에 붙어 있는 바위가 아니라, 보기엔 집채만하지만 애들이 밀어도 움직이는 흔들바위인 것이다.

그러나

Tumor supressor gene("죽을래" 유전자)들의 일반적인 기능은 Cell cycle regulation 이다. Oncogene("안 죽을래" 유전자)이라는 것은 평소에는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만 overexpression될경우 암으로 갈 잠재적 위험을 가진 유전자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oncogene의 경우 대부분 cell cycle의 신호 체계에 관계되는 단백질이다. 즉 tumor supressor가 Apoptosis를 유도한다기 보다는 tumor supressor가 고장날 경우 세포분열의 고장으로 인해 분열횟수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암세포의 경우도 Apoptosis는 잘 일어난다. 그래서 Apoptosis가 안 일어나는 것이 암이라는 것보다는 비정상적인 세포분열과 증식이 암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Tumor supressor gene의 경우 세포를 죽이는 기능이 있는 것이 아니고 평소에는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만 mutation이 일어나면 세포의 비정상적인 증식을 유발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Oncogene의 경우도 Apoptosis를 block한다기 보다는 고장이 날 경우 cell cycle을 disruption해서 세포의 비정상적인 증식을 유발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HeLaCell의 경우도 p53가 고장난 cell이지만 이 cell line을 가지고 Apoptosis를 연구한다.

당신의 몸속에서 하나의 세포가 당신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해 보라. 혹자는 이러한 감동으로 삶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희생하는 세포들은 사실 당신을 위해 죽는 것은 아니다. 무엇에건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두기 좋아하는 우리의 습관은 Apoptosis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일 수 있겠지만, 세포는 이기적유전자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
단세포생물인 아메바도 학습을 한다는 것을 관찰할수 있다. 아메바는 빛에 따라서 움직임이 달라지는데, 이것은 프로그램 된것인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인가. 생물의 신체를 하나의 국가 경영이라고 보면, 병사들이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듯 전체를 위해 어쩌면 의무적으로, Decision Maker의 결정에 의하여 목숨을 내어놓아야 할 상황이라는 것도 있을것이다. 청소부가 거리를 청소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 시스템에서 그가 맡은 역할을 다할뿐이다. 아침에 배달되는 우유역시, 우유배달부가 돈을 벌기위해서이지 익명의 '나'를 위해서는 아니다. 하지만, 고맙지 아니한가? 모든 것은 시스템 전체를 위해 프로그램되지만, 시스템 속에서 움직여 주는 것은 마음을 가진 개별적인 세포들이 아닌가? 과학적인 글을 비과학적으로 해석해서 송구스러울 따름이지만, 세포개체도 개별적인 '의지'라는게 존재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기적유전자의 의도가 아닌 우리만의 고유한 자유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위와 같은 질문, 즉 우리의 자유의지 조차도 유전자안에있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질 수 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과학적인 대답은 우리는 결국 이기적유전자의 의도대로 행동하게 된다 라고 할 수 있다. 우리유전자안에없다라는 일부 과학계의 움직임은 나치에 의한 진화론의 악용와 우생설에 의한 인종차별, 계급주의 등에 크게 데인 지식인들의 공포심에 불과하다. 그러나 리차드도킨스이기적유전자의 마지막 문장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자.

{{|
우리는 우리의 탄생에 관련된 이기적 유전자와 의식의 주입에 관련된 이기적 Meme을 좌절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심지어 자연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세계 역사상에도 여지껏 존재한 적이 없는 순수하고 사심없는 이타주의를 기르고 가꾸는 방법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를 창조한 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복제자의 폭정에 반기를 들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식하는 것 자체로 유전자의 음모를 뒤엎을 수 있느냐는 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과연 RichardDawkins의 말처럼 이기적유전자의 폭정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을런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감상

매우 재밌고 흥미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Apoptosis와 같은 류의 이론은 윗 글의 뒷부분에서 언급된 것 처럼 어떤 것을 강제하는 논리적 근거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겠죠. -- 무신

Q : Apoptosis(ProgrammedCellDeath)를 Programming한 Programmer는 누구인가요? --맑은
A1: 어디가서 묻지 마십시오. (세포)조직에 대한 비밀을 발설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PuzzletChung
Ref1: 이 문제를 답하는 순간, 끝이 나지 않는 논쟁이 시작됩니다. 그 논쟁이라는 것은 신이 존재하냐 존재하지 않냐라는 결론 없는 말싸움을 의미하게 되죠.(물론 진행과 관점을 새롭게 해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찾아보셔야 할듯 싶습니다. :( --NeoH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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