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환에대한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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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하지만...
한겨레21 2002. 10. 31.자

“술잔을 돌리거나 밥을 같이 먹으면 전염이 된다고?”

사회복지사 윤구현(29)씨는 간염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사이버 공간을 누빈다. 간사랑 동우회(www.iloveliver.org) 총무를 맡고 있는 그는 홈페이지를 통해 날마다 5~10건씩 들어오는 물음에 2년여째 답글을 올리며 간염에 관한 한 웬만한 전문가에 버금가는 지식을 갖추게 됐다.

“침이 혈관으로 들어갈 때만 전염이 되기 때문에, 한솥밥을 먹거나 술잔을 나눈다고 간염에 걸리지는 않습니다. 지난 80년대 초 정부가 간염 예방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며 전파된 잘못된 정보죠.”

윤씨가 복지관 개관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요즘도 동우회 활동에 열심인 것은 지난 99년 초 간염에 걸려 2년여 만에 완치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취업을 앞둔 시점에 발병을 해 고민이 많았다는 그는 “아직도 잘못 알려진 편견 때문에 상처받는 이들이 많다”고 말한다.

“요즘도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간염에 걸린 학생을 두고 ‘쟤랑 같이 밥 먹으면 전염된다’고 주의를 주는 경우가 있어요. 병력(病歷) 때문에 취업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고요.”

지난 10월20일 제3회 간의 날을 맞아 간염 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범위 확대를 요구하는 거리시위를 벌이기도 했다는 윤씨는,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작은 편견에 맞서 큰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윤씨는 “다가오는 대선기간에는 글리벡공공성확대공대위 등의 환자단체들과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환자들의 목소리를 대통령 후보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http]기사원문 -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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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병보다 편견이 무서워요" - B형 간염 환자·보균자 모임 간사랑동우회 이끄는 윤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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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에요. 윤구현님의 바로 위의 기사와 구체적 연관은 없는 얘기지만, 편견과 관련 있는 이야기라서 적어 봅니다.

요즘 아니 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보면 가던 길을 멈추고 꼭 돌아 다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오동나무에 걸린 것마냥 오도가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다가 상황종료되면 가던 길을 다시 가게 되죠. 좀 이상한 행동이죠? 단, 젊고 몸이 불편한 젊은이에 한해서 그런 요상한 행동을 취하게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나이 들고 몸이 불편한 어른을 봤을 때는 재빨리 달려가 [맑은] 손을 뻗어 드리지요.

맑은이가 어물쩡거리면서 발을 떼지 못한 채 하는 일이란, "손을 내어 주는 것이 도우는 걸까? 스스로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도우는 걸까?" 이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하고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유는 둘 중 어느 한 쪽은 분명 도우는 것이 아니라 편견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갈팡질팡 하다가 보면 늘, 상황은 이미 종료 되어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쯤하여, 그 사람은 저 더러 이런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저 사람은 왜 다른 사람 가는 길을 막고 서 있는 거야!" 라고.

맑은이의 이 두 가지 물음, 손을 내어 주는 것이 도우는 걸까? 스스로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도우는 걸까? 다른 노스모키안들은 이런 경우 어떻게 행동하는지요? 그리고 둘 중 하나가 편견이라면 편견에서벗어나기를 해야 할텐데, 과연 어느 쪽이 편견을 드러내는 행동이 될까요?

--맑은 2005.10.27.

긴 시간을 두어 생각해 본 결과 둘 중 하나가 편견일 것일지 모른다는 맑은이의 물음이 잘못된 물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겐 손을 내어 주고 도움이 필요치 않은 사람에겐 스스로 하게 내버려 두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각 경우의 상황 판단이 처음에는 쉽지가 않습니다. 적어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불편한 상황자체는 쉽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덜 불편한 사람들이 상대방이 원치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불편한 이들의 현장을 보고 눈감아 버리는 것, 그것이 바람직한 일이었더라면 사회보장이라는 제도도 시도되지 않았을 겁니다. 불편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환경과 인간 사이의 문제로서 어느정도는 객관적이라고 봅니다. 더하고 덜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도움을 두려워하며 주춤거릴 필요도 없고, 타인이 나에게 손을 내밀 때 굳이 혼자서 하겠다며 배타적으로 그 손길을 밀어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불편한 자신과 타인에 대한 편견일수도 있습니다.

불편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의 기회는 만날이고 매순간입니다. 잠깐의 도움이 자생력에 큰 흠집이되기보다는 집밖을 나설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을 수 있고 그 만큼 삶이 덜 우울할 수 있지 않은지요. 타인의 손길에 대해 장애우들이 이런 생각이 가능했으면 좋겠습니다.

도움의 손길을 먼 길에 잠시 쉬어가는 쉼터로 여기는 생각. 이 생각 서로의 행동을 명쾌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먼 길을 놓고 보니 불편하고 그렇지 않은 구분이 무의미해지는군요.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도움이 필요치 않는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환경에 대해 우리 모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장애인입니다. 따라서 모두가 도움을 줄 수 있고 또한 모두가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개입의 여지를 두지않고 경계하는 것은 자신의 머나먼 인생여정에서 잠시 숨돌릴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 우울하기 그지없으며 불가능하기까지한 현실로서 그 자체로 또하나의 편견일 수 있고, 스스로 하게 해야한다는 명분으로 불편해 보이는 상황을 외면하는 행위,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또 하나의 편견이라고 봅니다. 그 편견의 극단은 어느 순간 사회보장제도의 불필요성에 찬성표를 던지는 날을 오게 하는 것이겠지요.

극단을 얘기함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맑은이는 항상 회색인 곳의 극단을 사고해 봅니다. 그러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름의 답을 얻게 된답니다.

그러니, 이 글 속의 지나온 생각들에서 얻은 맑은이의 답은 무엇일까요. 이렇습니다. 불편에 대한 도움은 그 누구에게도 그저 순간의 도움일뿐이므로 별다른 생각을 두지말고 주저함없이 손을 뻗고, 다른 쪽에서는 경계함 없이 그저 고맙게 받아들이는 삶이, 억지스럽지 않으며 훨씬 자연스럽고 아름답지 않은가 하는 것과 편견에 대한 편견도 자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판단에 도움을 주는 상황은 요것이 딱입니다. 누군가 길을 가다가 넘어졌습니다. 그는 일어나기가 힘들어 보이고 날은 춥습니다. 그가 어떤 이유로 잘 일어나지 못하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다만, 빨리 일어나야하는데 일어나지 못하는 현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 따름입니다. 고민이 필요합니까.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는 명백합니다.

그 넘어진 이는 어린이일 수도 있고 할머니일 수도 있고 몸움직이 불편한 장애우일 수도 있고 심지어 술취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상황에 대해 필요한 행동이 달라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질환에 대한 편견을 논할 때는 상황이 그와는 다르다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진실이 그럴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2012년 새해에는 다르다고 단정했던 그 상황들에 대한 확신에 한 번쯤 의문을 제기해 보는 것도 뜻 깊은 일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 맑은 2012-01-27 1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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