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필기란 ¶
학습기법에서 필기하기는 중요하다. 이것은 배운 것을 그 자리에서 "이해하기"나 "암기하기"보다는 수준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천재들이나 가능한 것이다. 필기하기의 장점은 천재가 아니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이해한 것의 인지적 구조를 두뇌 외부에 저장해 두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는 단기 기억 장치에 5+-2개 이상을 담지 못한다. 클러스터링을 통해 덩어리로 묶는다고 해도, 3-7이라는 숫자는 우리 사고의 폭을 제한한다. 하지만 두뇌 외부에 일종의 버퍼를 둠으로 해서 우리는 매우 복잡한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두뇌의 보조 저장 장치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사고에 커다란 도움을 주기도 하고, 대상을 인식하는 양상을 결정하기도 한다. 복잡한 일을 해결하려고 할 때 종이에 정리하면서 풀게 되면 모든 일이 말끔해 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HowToSolveIt으로 유명한 수학자 Polya는 세계에서 날고 긴다고 하는 천재들의 사고 방법을 조사했다. 아인슈타인과도 직접 편지를 주고 받으며 그의 사고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대부분의 천재들이 기존 필기방식을 벗어나는 사고를 -- 특히 이미지 중심 -- 한다는 점이었다.
선형적인 필기만 하는 사람은 학습대상의 선형적 관계(일차원적인 직선 상에서 순서대로 나열하거나 단순 계층식 -- e.g. I,1),i) 등 번호를 이용) 밖에 인식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 사람에게 A를 물어보면 A 다음에 오는 내용을 기억할 수 있을 망정, 전체에서 A가 갖는 의미나 A와 연결된 다른 아이디어들을 떠올리지 못하기 쉽다. 그 사람의 필기가 자신 머리 속의 개념간 구조도를 그렇게 각인시켜 버리는 것이다.
다음은 필기하기에 있어서의 몇가지 도움이 될 만한 도움말이다.
2. 포기는 없다 ¶
필기를 가장 어렵게 하는 요소는 "완벽에 대한 강박"이다. 쓰다가 다 받아쓸 수 없으니까 결국 어딘가에서 포기하고 만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불완전한 것도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다. 최소한 필기하는 중간에는 포기하지 말라. 다 끝난 후에 내용이 전혀 도움이 안된다면 설사 그때 포기하더라도, 필기하는 중간에는 절대 포기해서는 안된다.
3. 무조건 적어라 ¶
내용을 이해하고 계층성을 파악해서 구조적으로 필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누구나 처음부터 이것이 가능한 것이 아니며, 많은 경우에는 타고나는 것 같다. 누군가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완벽하게 구조적으로 정리된 학습 과제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감동"과 "절망"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이게 안된다면, 무조건 죽어라 받아 적어라. 이해는 나중에 해도 된다. 일단 최대한 받아 적어라. 마음에는 아무런 갈등이 없다. 오직 손이 힘들 뿐. 이것에 익숙하면, 일종의 "禪"의 상태를 느낄 수도 있다. 내게 존재하는 것은 하얀 백지와 거기에 적혀 가고 있는 글들이다. '나' 란 없다. 글이 내게 들어와서는 아무런 변환과 처리도 없이 그냥 백지에 새겨지고 있을 뿐이다. 나중에 공부할 때 이렇게 적어 놓은 것들이 실제로 훨씬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무식하고 단순한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무식하고 단순하게 성공하는 방법이다.
4. 틀을 적어라 ¶
조금 더 높은 기법이다. 모든 걸 받아 적지는 않는다. 적는 것은 frame이다. 궁극적으로는 아무 내용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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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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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식으로만 기술할 수도 있다. 내용은 다 괄호로 비어 있다. 이것을 나중에 수업이 끝난 후 채워넣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2중의 학습 효과를 노릴 수도 있다. 진정 강조를 하고 싶은 곳은 밑줄긋고, 덧칠하고 그러지 말고 괄호로 비워 두라.
{{|
1.
1.1
2. 2.1
...2.1.1
2.1.2
2.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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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식으로만 기술할 수도 있다. 내용은 다 괄호로 비어 있다. 이것을 나중에 수업이 끝난 후 채워넣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2중의 학습 효과를 노릴 수도 있다. 진정 강조를 하고 싶은 곳은 밑줄긋고, 덧칠하고 그러지 말고 괄호로 비워 두라.
만약 이게 교사가 칠판에 판서하는 것을 고대로 받아적는 게 된다면 상당히 부정적인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5. 진짜 적어야 할 것은 따로 있을 수도 있다 ¶
내용, 정보만을 받아 적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흐름, 메타정보를 적어 놓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에 훨씬 유용하다. 특히 슬라이드 왔다 갔다 한 순서 같은 거, 책 앞뒤로 왔다 갔다 한 거, 이런 것들은 대부분 그냥 놓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정말 필요한 것이다. 나중에 혼자할때도 그것을 그대로 따라가고 싶다면, 이런 정보들을 최대한 기록하라. 정말 도움이 될 것이다.
7. 필기하기를 배워라 ¶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는 배우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 외국에서는 심지어 대학에서도, 성적이 좀 떨어지는 학생은 의무적으로 "배우는 법 배우기" 수업을 한학기 듣게 한다. 거기서는 단순히 효과적인 독서법(예컨대, 미국에서 초등학생들 때부터 가르치는 SQ3R method 등) 뿐만 아니라, 필기하기, 시간관리법, 대인관계 등을 모두 배운다.
효과적인 필기하기관련해서 학계에 많은 연구결과 발표가 있어왔다. 왜 우리는(학생,교사 할 것 없이)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가? 우리나라에 코넬 시스템(코넬 대학교에서 개발한 필기하기 시스템)을 알고,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필기하기 관련 기본 서적으로는 학습법 관련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하나인 Ron Fry의 How to Study 시리즈의 Take Notes를 참고하라. 이 외에도 "사고 도구로서의 종이와 펜"을 주제로한 서적이 많이 있다. 필기하기에 이렇게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 줄 알고 놀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