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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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어떤 것이 있을까. 거북선, 상승불패, 모함, 성웅. 그 중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학익진' 이라는 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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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은 모르겠으되 동양에서 전투용 함선에 대량의 화포를 싣고 근대적인 함대전을 벌인 것은 임진왜란이 최초로 여겨진다.(화약을 이용한 최초의 해전은 최무선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것은 해전이 아니라 해적 소탕쯤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더군다나 이순신의 함대는 화약의 대량제조를 자체적으로 실현하여 조일전쟁(임진왜란)중 탄약의 부족을 그다지 겪지 않았다. 게다가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이게도 현대의 장약과 같은 개념도 채용했다. 전투 이전에 미리 천지현황의 포 종류에 따라, 혹은 예상되는 비거리에 따라 따로 화약을 재어 종이에 싸 놓았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투 중에 화약의 양을 재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것은 이순신이 구상한 학익진이라는 전술을 구현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선조의 선왕인 중종 대에 완성을 본 판옥선 역시도 이순신의 전술에 큰 기여를 했다. 이전까지 조선에서 사용했던 맹선류의 작은 선박들의 경우, 속력은 뛰어났지만 탑승인원이 적어 왜구를 쫓을 시 오히려 다수의 왜인들에게 공격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이에 조선 조정에서는 새로운 설계 개념의 선박 건조를 지시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판옥선이다. 일단 이 배는 서양 배의 기본 골격인 용골이 없다. 넓직한 판을 대어 바닥을 만들고 여기서부터 올라가는 것이 선체의 건조 방식이다. 또한 왜구들의 배에 비해 그 높이가 매우 높다. 더하여 꼭대기에는 이 배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집 혹은 정자처럼 생긴 구조물(판옥)을 얹었다. 그 밖에도 노꾼과 전투원의 활동공간을 분리하였다는 점, 전투시 동선을 개선했다는 점, 백병전을 벌일 필요가 없는 구조 등이 주된 특징이었다. 그러나 가장 주목하여 볼 것은 그 기동성이다. 전반적으로 왜선에 대해 속력은 느렸지만 모터라 부를 수 있는 노가 많았고, 선체 구조상 바닥이 V자형인 왜선에 대해 바닥이 U자형인 판옥선은 선회력이 매우 뛰어났다. 이것 역시 이순신이 원하는 전술을 펴는 데 매우 유리한 점이었다.

조일전쟁의 모든 시기에 걸쳐, 조선 해군과 일본 해군의 병력차는 상존했다. 첫 해전인 옥포 해전 당시 조선해군의 전력은 판옥선 24척 포함 협선 15척, 포작선(어선) 46척 등 대소선 80여척이었으며, 이 규모는 칠천량 해전 직전. 400여척까지 늘어나기도 했지만, 주력선인 판옥선의 경우, 대체적으로 100여척 이내로 전쟁 종결까지 유지되었다. 반면에 일본해군은 그 대부분이 판옥선에 육박하는 대형 선박이었던 데다가 전쟁이 진행될 때마다 전선이 대체적으로 늘어나는 경향을 보여 노량해전 당시 500여척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이루었다.

이러한 일본 해군에 대해 조선 해군은 전략적으로 수세적인 입장이 될 수 밖에 없었으며 이순신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한때 부산포해전과 같은 적극적인 공세를 펼 때도 있었지만, 대개 관할구역인 전라도 해역에 머물러 적의 틈새를 엿보았다.

화력과 기동력의 우위, 반면에 병력의 열세. 이것은 25전 25승. 상승불패의 제독 이순신이 학익진을 선택했던 요인들이다.

세계 유수의 해군사관학교에서 가르치는 4대 해전. 살라미스, 레판토, 트라팔가, 한산도. 그 중 한산도 해전은 이런 진형이 유감없이 발휘된 한판이었다. 1592년 7월 8일. 이순신은 포구 안쪽에 웅크려 해전에 응하지 않는 일본해군을 대여섯척의 쾌속선으로 꾀어내어 한산도 앞바다 넓은 해역으로 불러내는 데 성공한다. 일본 해군의 퇴로는 섬에 숨어 대기하던 일군의 조선해군에 막히었으며 정면에는 이미 학익진으로 불리는 반포위진형이 그들을 둘러 싸고 있었다. 전국 시대 이래로 일본 해군의 전투는 주로 적함에 접근하여 적군과 칼을 맞대며 싸우는 단병접전의 형태였다. 이것은 전쟁 내내 적함과 떨어져 포격전으로 일관했던 이순신의 전술과는 상극이었다. 판옥선 양쪽에 각각 10여개씩 달린 천.지.현.황. 등의 화포는 중앙에 몰려 있던 적함에 끊임없이 포탄을 퍼부어 적 병력의 축차 소모를 강요했다. 이 당시 화포가 명중률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결점이 있긴 했지만, 압정이 빽빽하게 깔린 방바닥에서는 어디에 공을 던져도 압정 한둘쯤 박히게 마련이다. 적을 중심으로 몰아넣은 반포위진형의 경우, 오히려 공격 범위가 좁아져 한 표적을 여러 척의 화포가 동시에 노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간혹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돌격에 나서는 적선은 화력 전면에 노출되어 하릴없이 격침될 뿐. 이 쪽에서는 그 위치를 고수하며 한쪽 측면에 있는 십여개의 포를 다 쏜 후에는 빙그르르 선회하여 그 동안 장전해 두었던 다른 편 화포에서 계속 포탄을 퍼부어댄다. 그 중에는 작렬탄(포환 자체가 폭발하는 포탄)인 비격진천뢰도 있다. 적선에도 화포가 있긴 하지만 서로 뭉쳐 있어 공격 전면이 작을 뿐더러 포의 절대수도 적다. 일본전선의 구조상 포를 많이 싣고 공격에 임하면 복원력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 화포에는 미리 재어놓는 장약 따위도 없어 포의 장전 시간도 길다. 포위된 전선 중 가운데 병력은 하릴 없이 시간만 보낼 뿐이다. 잠시 후 조선해군의 포격을 받아 외부 전선이 침몰하고 이들 역시 포격에 노출되어 차례차례 참몰한다.

일본 해군 70여척 중 66척 완파. 이 싸움으로 일본 해군은 한동안 전멸하였다. 이후 일본 해군은 판옥선보다 큰 여러 함선을 건조하기도 하고 칠천량 해전 당시 노획한 조선 화포를 배에 실어보기도 하지만 화포 운용 기술만큼은 조선군을 따라오지 못한다.

조일 전쟁 종결 수백년 후.
러시아 함대를 무찌른 일본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는 승전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자신을 넬슨에 비유하는 좌중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전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싸운 나를 영국 넬슨 제독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 지는 모르나, 정적들의 모함 속에서 싸워 승리를 거둔 이순신 제독과는 비교가 안 된다."
조일전쟁 이후 이순신은 일본 제독들에게 두려움을 넘어 숭앙의 존재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 일본의 작가 다나카 요시키가 1980년대 출간한 소설 '은하영웅전설'의 주인공 양웬리에게서.. 일점 집중식 포화같은 사소한 공통점 외에 체제에게 모함당하지만 결국 그 체제를 위해 몸을 던지고, 불패, 기적이라 불리웠던 영웅 이순신을 연상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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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스모크에서 이렇게 길게 글을 써 본 것도 처음인 거 같은데... 다른 사람 글을 지우려니 좀 그렇네요. 뒷 글은 누가 정리해주시면 안될까요. ^^; --Astro
- '이순신 장군'이라는 표현을 이순신 제독이라는 어휘로 고쳤습니다. 가치관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해전의 영웅인 이 충무공을 육군식 표현인 장군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육군 장군이었던 박정희의 영향이라는 설도 있지요.) 이순신에 대한 많은 외국어 번역물에서는 General Yi(Lee)가 아닌 Admiral Yi(Lee)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Astro님께서 불쾌하게 여기신다면 원상복구 하겠습니다.

학익진이 이미 일점집중사를 위한 진형 아닌가요?--Sequoia

학익진이 일점집중사를 위한 진형인가요? 개인적으로 학익진은 다수가 다수를 상대할때, 우리쪽 화포의 발사의 우세를 위한 진형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니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ChangAya
워크래프트3나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을 하다보면 확실히 그 효과를 알수있습니다. 이미 무수히 많은 전략 시뮬레이션에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병력/화력이 약간 부족 하더라도 진형만 좋게 잡으면 그 열세를 충분히 극복 할수가 있습니다. 진형이 않좋으면 뒤쪽에 병력이 놀고있게 되서 실제 교전에 참석하는 병력이 많이 부족하게 되더군요. --마족

이순신 제독의 전투에서 사용한 학익진은 배10-20척이 동원된 그런 성격이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100-200척이 동원된 진이라는 것에서 집중사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만합니다. 배틀크루져 100대끼리의 싸움이라면 화력의 집중이 도움이 될 듯 하지만, 발키리 100대끼리지의 싸움에서 화력의 집중이 그렇게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선시대의 배들이라면 10방 이내의 화포에 침몰이 되었을 건데요.
전 학익진이 공격을 위한 진영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학익진은 수비를 위한 전술일 겁니다. 중앙 돌파형(송곳형)으로 맞추어서 돌진하는 적을 최소한의 피해로 막기 위한 전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조선시대의 전함은 요즘의 전함처럼 포가 회전하는 형식이 아니라 아마도 전방에 2-4기, 측면에 10기 정도의 화포가 갖추어져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번 화포를 발사후에 재장전 시간도 꽤 길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구요. 학익진은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을 측면으로 상대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학익진이 공격용으로 쓰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구요. 정면으로 돌진하는 적을 측면으로 막게 되면 학익진같은 모양이 만들어집니다. 정면으로 쏘는 2포가 측면의 10포를 능가하지 못할 것이구요. (물론 맞는 부위가 더 넓긴 하지만요). 그리고 측면으로 지켜서 있다면 제자리 회전이 용의했을 겁니다. 측면의 10포를 발포하고 바로 측면으로 회전 반대방향으로 10포를 발사하는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왜군의 2포에 우리쪽은 20포를 노리는 것이고, 10배의 화력이라면 비록 군선이 적었다 하더라도 대규모의 병력을 쉽게 격파할 수 있었을 겁니다. 고등학교때 전술학을 나중에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리한 생각이었습니다. --ChangAya

학익진은 수비를 위한 진형도 공격을 위한 진형도 아닙니다. 실제로 조일전쟁때 조선군은 전략적으로는 수비군이있지만, 학익진으로 가장 빛나는 승리를 이룬 한산도 해전은 방어에 성공한 전투가 아니라 공격에 성공한 전투입니다. 한산도 해전 이전에 이미 조선군은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군이 일본군을 공격한것은 조국을 지킨다는 전략적 목적을 가지고 공격이라는 전술을 택한겁니다. 공격이냐 방어냐 하는 것은 진형으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공격이냐 방어냐하는 것은 양군이 각각 처한 상황에서 결정되는 것 뿐이지요. 수비군이 공세적인 입장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해전은 아니지만 알렉산드로스와 한니발의 포위섬멸전술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들의 전술도 육군사관학교에서 가르칠 만큼 고전적인 전술입니다. 중앙군이 버티거나 열세인척 물러나는 동안 경무장 보병과 기병이 적의 배후를 돌아 포위하는 방식입니다. 양군의 전술적 사고방식의 차이점(더하기 빼기식 사고방식과 정보·작전·속임수를 활용하는 사고방식)이 있었지만 대부분 전투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학살로 끝났습니다. 해전과 차이점은 있지만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모든 지점에서 싸우고 있는 적군보다는 싸우고 있는 아군이 많도록 한다는 기본적인 개념은 학익진이나 포위섬멸전술이나 같다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공격을 위한 전술임과 동시에 방어를 위한 전술이기도 하지요.

이순신 제독은 수비군이었고, 알렉산드로스와 한니발은 침략군이었습니다. 한니발은 스키피오의 공격으로부터 조국 카르타고를 방어할때도 같은 전술로 싸웁니다. 공격이든 방어든 적을 제압하거나 무력화시킨다는 목적은 같습니다. 적을 제압하거나 무력화시킬려는 목적이 없다면 그것은 전투가 아니고 퇴각입니다. -- wizzet


학익진을 응용하여 공격에 사용한 것이 바로 사진(長蛇陳). 장사진은 뱀처럼 길게 진을 이룬 채 적진을 향해 돌격하다가 일순 뱀대가리를 적진과 평행한 방향으로 돌리면서 이동학익진을 형성하거나, 혹은 적의 취약부분에만 집중적으로 공격적 포격을 하고 빠질 수 있게 한다.

학익진은 단순히 생각하면 방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대방이 이미 간파한 상태라면 무슨 쓸모가 있겠으며 무슨 방어를 할 수 있겠는가. 이순신은 수십년간 전략과 전술을 연구하면서 적이 빼도박도 못하게 한 방향으로 장사진을 이룬 채 움직이게 만드는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 조류와 바람과 지형, 그리고 천기(天氣)와 각종 발명무기와 아군의 전략적 위치를 적절히 활용하여 왜군이 어쩔 수 없이 사지(死地)로 뱃머리를 돌리게 하는 적극적인 공격을 펼친 것이다. 그리고 일본군이 향한 곳에는 어김없이 이순신의 학익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발키리는 그 타격 무기가 산탄(散彈)형태이기 때문에 얼핏 학익진의 일점사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산탄타격이라도 집중하면 그 타격치가 가중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다른 유닛과의 조합+컨트롤을 동원하여 최대한 적이 뱀대가리의 정점을 아군의 집중 포화속에 드리밀도록 유도하면 학익진의 실리를 충분히 취할 수 있다.

학익진으로 적과 정면대결을 펼친다면, 또 거기에 더해 일점사(一點射) 대상을 아군부대 전체가 미리 약속한 바가 있다면, 아군의 피해규모도 크지만 반드시 승리한다. 하지만, 왜군과의 병력차가 극한인 상황이었던 이순신이 이런 방식의 전투를 택할리는 만무하다. 이순신는 순순이 방어만 했던 경우가 거의 없다. 방어를 해야하는 입장일 때에는 반드시 공격해 오는 적을 섬멸하리라는 다짐으로 히든카드를 항시 준비하고는 적을 맞았다. 적이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때면 바로 그때가 이순신이 적을 공격+유인하는 때였다. (그야말로 백전이면 백승이고 매번 신기묘산을 펼쳤다. 전쟁을 위해 하늘이 내린 장군이 아니었을까?)

4대해전 vs. 3대해전

요새 떠도는 말중에 한산대첩이 세계 4대 해전의 하나로 전세계 사관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다는 소문인데... 근거없는것으로 판명났습니다. 한국 사관학교에서나 4대 해전으로 배우고 실제로는 세계 3대 해전입니다. 만약 실제로 한중일 제외한 사관학교에서 4대해전으로 가르치는 곳이 있다면 ShowMeTheSource Plz --musiki

전세계 사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소문은 돈 적이 없고, 여러나라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는 말은 있더군요. 제겐 세계3대 해전이라는 게 더 생소합니다. 어디서 쓰는지요? 또, 근거없는 것으로 판명은 어디서 났는지 먼저 ShowMeTheSource 해주시는게 순서가 아닐까 합니다. --모나드

그런 의미보다는 사관학교에서 세계 4대해전에 한산대첩이 포함되는 것으로 가르치는 국가가 한 중 일 외 세계 어느나라던간에 한 국가라도 있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세계 4대해전이건 3대해전이건 그에 관련한 얘기가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수두룩합니다마는. 실제로 어느나라에서 한산대첩을 포함해서 가르치는지는 전혀 근거자료가 없어서 하는 소리입니다. --musiki
그렇다면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났습니다'라는 musiki 님의 말씀은 '논증'이나 어떤 자료가 아니라 '내가 알아봤는데 없더라'가 되는 것이겠군요? --홍차중독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 되는군요. :) 그리고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알아봐달라 했는데 찾아내는데 성공한 사람도 아직 못봤구요. 결정적으로 밑의 litconan님께서 링크걸어놓은 글과 그 트랙백들만 보더라도 잠정적으로 없는것으로 결론내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ShowMeTheSource Plz...라는 말은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증거도 없이 떠들지 마'라고 들릴 가능성이 높은 WikiTag 라는 세벌님의 지적처럼 이렇게 알아들으신 분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만약 아시는 분 계시다면 완곡하게 자료를 요청하고 있는 문구인겁니다. --musiki
ShowMeTheSource 에 대해서 저한테 말씀하시는것인지요? 그 정도 이해할 센스는 있는데 -,.- --홍차중독
musiki님은 아랫 링크글을 어떻게 해석하셨길래 잠정적으로 없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는데 몰두한 나머지 지나치게 왜곡된 글을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런 의미로 쓴 것이 아니더라도 읽는이는 오해하기 쉽습니다. 시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나드
"잠정적으로 없다"는게 아니라, 소스가 있더라도 내가 직접 접근할 수 없다 혹은 "4대해전"이라는 명칭이 그다지 널리 인정된 것은 아니다 정도 아닐까 합니다. --무신
링크를 보니 '영국과 독일, 미국,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가르친다'라고 나와있네요. 솔직히 저 역시 왜 잠정적으로 없는 것이란 결론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게 사실인가를 진짜로 확인하고 싶다면 누가 알아봐주길 기다리는 대신, 각국 사관학교 홈페이지 들어가서 해전사 담당 교수에게 직접 문의해보는 방법이 있겠지요. --ChatMate
우선 ShowMeTheSource 에 대해서는 모나드님께서 "근거 대보라고? 댁부터 대보는게 예의 아닌가?" 라고 하시길래 제시한 말입니다. 영국, 독일, 미국 등에서 세계 4대해전이라 가르치지만 한산도 대첩을 포함해서 4대해전이라 가르친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말장난을 잘 캐치하셔야 합니다. 한산도 대첩이 포함된 세계 4대 해전 을 가르친다는 얘기가 결코 아닙니다. 걍 3대냐 4대냐 한다는 거죠. 오히려 우리가 한국의 이름을 높이고 싶은 욕심에서 편향확증의 오류에 빠지고 있지 않은가 잘 체크해야만 할 겁니다. --musiki
님께서 사용한 ShowMeTheSource 라는 문구를 똑같이 사용했을 뿐인데, 님이 쓰면 완곡한 문구고 제가 쓰면 신랄한어조가 되는군요. 참 편리한 해석이네요. 말장난은 그만두고, 결국 musiki님은 아무런 근거없이 4대 해전을 비판하신게 되죠. 사관학교에 문의할 의지도 없으시고, 아래 링크 기사에서 말한 내용의 핵심도 잘 모르시는것 같습니다. 비판을 하는건 좋은 습관이지만 객관적이지 못한 비판은 모든걸 삐뚤어지게 생각하는 요즘의 인터넷 악플러들과 다를게 없습니다. --모나드
우선 세계3대 해전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 하셨는데 이건 밑의 링크된 글에도 나오는데 그건 또 안보셨나보군요. 밑의 글의 어조는 "4대해전에 충분히 포함될 가치가 있지만 하필 한국이라서 포함되지 못한" 한산도 대첩의 슬픔에 관한 얘기입니다. 한산도 대첩이 각국에서 가르치는 세계 4대해전에 포함된다는 어떠한 근거도 아래 글에는 없습니다. "유언비어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아니라 "유언비어건 아니건 상관없다"라는 주장인겁니다. 얼렁뚱땅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한국인의 객관이 아니라 세계인의 객관의 관점에서 봐주셔야 할겁니다. 그리고 밑의 글 뿐만 아니라 밑의 글에 달린 리플들에도 주목했다면 모나드님의 이상과 같은 감정적인 대처는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리플들을 읽지 않으신것은 역시 편향확증의 오류에 인함이죠. 첫번째 트랙백만 봐도 그 누구도 이상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는 글이 나옵니다. 한국어로 써있는 글 외에 세계 4대해전에 한산도 대첩이 포함된다는 외국어 근거를 찾은 사람이 그 누구도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잠재적으로 없는 얘기라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요. 남을 단순 악플러 수준 취급하기 앞서 자료를 제시해야 하지 않습니까. 자료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ShowMeTheSource 해줘야지 자료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없는 Source를 제시해달라는 건 좀 억지가 아닐까요. 그래서 모나드님의 ShowMeTheSource 는 신랄하게 해석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신랄하게 들릴 수 밖에 없는겁니다. 억지니까요. Source가 없다고 확신하는데 어디서 무슨수로 없는 Source를 제시하라는 말씀입니까. 이순신 장군이 세계최고의 해군제독으로써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고 한산도 대첩이 세계 4대해전에 들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건 아니지만 우리끼리 신나서 우리끼리 있지도 않은 얘기나 떠벌리고 있으면 과연 그것이 이순신 장군의 명성을 드높여주는 행위일까요? 물론 한 건이라도 엄밀한 Source가 제공된다면 musiki의 모든 의혹은 말끔히 풀리게 됩니다. 그래서 저도 완곡하게 ShowMeTheSource 를 부탁드린겁니다. 제 의심이 풀리도록요. musiki는 한국인이 아니라서 이 말이 거짓말이길 원하고 있을까요? 그건 아니라는겁니다. 저도 이것이 사실이길 바라는 마음은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단지 편향확증에 빠지지 않기 위해 딴지를 거는겁니다. --musiki
musiki님의 글을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게, 본인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은 상당히 과장하여 받아들이시고 반대되는것은 무시되거나 왜곡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글은 문자 그대로 해석되는것이 아니라 musiki님이 해석하고 싶은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그 첫번째 예로, 세계4대해전에 대한 자료가 있다라고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음에도 musiki님은 혼자서 '아 얘네들은 4대해전 자료가 있다고 주장하는구나'라고 맘대로 결론을 내리셨지요. 두번째 예로, 링크 글의 본문과 리플을 동일한 가치선상에 놓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깡그리 무시하고, 리플만 보신 것 같습니다. 리플은 지금 당장 저도 달아놓을 수 있답니다. 님이 이야기하는 편향확증이란게 뭘 말하고자 하시는지는 알겠지만, 적절한 객관성과 증거를 갖추지 못하면, 소심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분위기 파악 못하는 아웃사이더가 되어버리지요. 회의주의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것입니다. --모나드
어조가 굉장히 신랄한데요. musiki 혼자 모나드님의 곱게 말하는 분위기를 파악 못하는 아웃사이더라서 혼자 그렇게 느끼는 건가요? :) musiki는 자료가 없다 말했을 뿐인데 모나드님 혼자서 '아 musiki는 우리들이 4대해전 자료가 있다고 주장한다고 느끼는구나' 라고 맘대로 결론을 내리셨군요. :) 링크 글의 본문과 리플은 격이 다른가요? 트랙백과 리플은 어때요? 트랙백을 따라가보시면 또하나의 웹 로그가 있고 그 밑에 있는 리플들만 해도 아래글의 리플들 못지않은 내용들이 있는데요. 함장이라는 사람도 소스를 제공하지는 못했고 그 밑에 트랙백에 따라가보면 모두가 찾지 못했다는 리플들만 줄줄이 펼쳐져있습니다. 결국 이하의 글들에서 알수 있는 것은 자료를 가진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라는 점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제껴버리시고 "한마디로 가르칩니다." 라는 문장만 보고 결론을 내린다면 이것이 얼마나 편향되고 본인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은 상당히 과장하여 받아들이고 반대되는것은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시각이라는 것을 아시겠나요? 저는 편향된 여러분이나 아래글이나 심지어 저의 개인적 기준들도 다 배제하고 한가지만으로 결정을 내릴겁니다. 바로 "외국어 자료의 유무" 그뿐입니다. 해외에서 4대해전을 인정한다면 그러한 외국인이 쓴 외국어 자료가 필경 있어야만 합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자료들은 자료의 의미가 없습니다. 자료가 있으면 보여주세요. 제가 아는 한 자료가 없으므로 잠정적으로 없는걸로 치겠습니다. 오직 그뿐입니다. 이러한 저의 해석이 편향된 해석인가요? 왜 느닷없이 분위기 타서 사람 왕따만드는 취미를 가지려고 하십니까. :) 저는 사실여하를 찾기 위해 토론하는 것이지. 여러분에게 분위기 맞춰주기 위해 토론하지 않습니다. --musiki
musiki님 글의 자료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ShowMeTheSource 해줘야지 이 문구때문에 그런 소릴 한 것입니다. 본인은 부인하시지만, musiki님은 무의식중에 결론을 그렇게 내리고 계신겁니다. 또, 제 글은 사실 독설을 퍼붓기 위함이 아닌데, 그렇게 느끼시네요. 문자 그대로 해석해주시기 바랍니다.
musiki님은 간단한 상식을 잊고 계신데, 변하기 쉬운 현상은 그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으며 굳이 찾을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직접 조사한 자료를 1차자료, 간접적으로 타인이 찾은 자료를 2차 혹은 3차 자료라고 한다고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musiki님은 2차, 3차 자료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현재 세계 몇개국 어느나라에서 4대해전을 가르치느냐는 조사결과가 이순신 장군을 조사하는 한국사람 이외에 누가 필요로 할 것 같습니까? 또한 매년 바뀔 수 있는 조사결과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을까요? 따라서 이같은 논쟁에서는 직접 조사,문의해보거나 결론을 내리면 되는 겁니다. 밑의 링크글의 진실여부가 의심스러우면 그 함장이라는 사람에게 조사 방법등을 직접 물어보면 되는 것이구요. 아니면 직접 메일로 사관학교에 문의하는 것이죠. 저는 musiki님이 왜 굳이 2,3차 자료를 원하시는지 묻고 있는 겁니다. --모나드
간단합니다. 그 누구도 1차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1차자료 자체가 없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유언비어를 굳이 메일로 물어볼 필요까지도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musiki
모르시네요. 타인의 1차 자료는 musiki님에겐 2차 자료입니다. 자료의 차수가 높아질 수록 진실여부의 증명이 어렵기 때문에 1차자료가 중요한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료를 제시해도 musiki님 같은 분이 그 자료를 믿지 않는다고 억지를 쓰면 그만이죠. 바로 아래의 링크 경우처럼.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1차자료를 구하시라는 조언을 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유언비어라고 이미 결론을 내리셨다니 유감이군요. --모나드

궁금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번째는 musiki 씨가 불가지론자였던가요? 그렇다, 아니다, 모른다 의 세가지 결론 중, 지금 이 문제에 관해선 '모른다에 해당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두번째는, musiki 씨는 첫번째 트랙백만 봐도 그 누구도 이상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는 글이 나옵니다. 라고 하셨지요. 아마도 musiki 씨 말씀은, 링크 내용을 잘 읽어 보면 세계 3대, 혹은 4대 해전을 배우는 나라가 있다는 말은 있어도 거기에 한산대첩을 포함시켜서 가르치고 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적혀있지 않다는 그런 얘기로 보입니다. 제가 이해한게 맞나요? 만일 그런거라면 첫번째 트랙백을 보실 것이 아니라 함장이라는 분 한테 한 번 직접 물어보시지 그러세요. '이거 말장난 아니냐?' 하고요.

deuxign 씨가 쓴 첫번째 트랙백은 05/04/26 22:18에 포스팅 되었고, 아래의 링크 내용이 함장의 바다에 포스팅 된 시각은 05/05/04 08:46 입니다. 말하자면 함장의 바다에 올라온 글이 반론이 되는 셈이죠. 그 deuxign 씨의 포스트 마지막 댓글에는 그 블로그 주인장의 함장님의 글을 읽어보시면 제가 제시한 의문에 대해 납득이 될만한 대답이 됩니다.란 말이 나와 있으며, deuxign 씨는 함장의 바다에도 함장님께서 이리 속시원히 답해 주시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번 토론에서 musiki 씨의 글을 몇 문장 발췌해 보면 근거없는것으로 판명났습니다. 알아봐달라 했는데 찾아내는데 성공한 사람도 아직 못봤구요. 잠정적으로 없는것으로 결론내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자료가 있으면 보여주세요. 제가 아는 한 자료가 없으므로 잠정적으로 없는걸로 치겠습니다. 주로 이런 식이더군요. 발췌에 의한 왜곡이 있을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자료가 없는 것' 아니고 '자료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잖습니까. 직접 알아보기 귀찮으셨면서 혼자 다른 사람 몫까지 결론 내려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궁금증은 이것입니다. musiki 씨가 첫머리에 과감하게 한국 사관학교에서나 4대 해전으로 배우고 실제로는 세계 3대 해전입니다.라고 하셨는데, 실제로는 세계 3대 해전입니다라는 부분에 대해 musiki 씨 표현 실제로 그렇게 가르치는 국가가 있다면 ShowMeTheSource Plz 를 빌려 여쭙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국 사관학교에서 4대 해전으로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서도 역시 ShowMeTheSource Pl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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