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Then 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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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의도하는 본질을 깨닫지 못한다면, 책읽기는 의미가 없다. 인간은왜병에걸리는가를 저술한 Randolph M. Nesse 교수는 이기적유전자의 개념을 가르칠 때, 책의 제목만을 보고, 혹은 제목에 불만을 가지고 편견으로 가득찬 책읽기를 마친 학생들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술회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남성의 바람기를 설명할 때, 생식세포에 들이는 비용의 불균형을 이용한다. 그러나 그들이 남성의 바람기를 정당화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책을 잘못 읽은 것이다. 책의 한구절만을 따와서 (저자가 책의 후반부를 구구절절이 남성의 바람기를 정당화시키고자 함이 아니라고 할애했음에도) 책 내용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올바른 책읽기의 자세가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마음속에 다른 인종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인종차별을 정당화시키는가? 오히려 그 반대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인종차별에 반대한다. 붉은여왕에서 MattRidley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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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나는 사회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가 마치 《종의 기원 The Origin of Species》이 출간된 1859년이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것처럼 나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일은 아주 의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인간의 문화가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와 발명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인간 심리의 산물이 아니고, 인간 심리가 바로 사회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럴 듯하게 들리고,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을 믿는 이들에게는 아주 멋진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인류에게는 자신을 무한히 창조하고 개조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지만, 우리는 이 자유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 우리는 일을 처리할 때 늘 하던대로 한다. 만약 인류가 좀더 모험심이 많았다면, 사랑도 없고, 야망도 없고, 성욕도 없고, 결혼도 없고, 예술도 없고, 문법도, 음악도, 미소도 없는 사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상상할 수도 없는 수없이 많은 새로운 것들이 탄생했을 것이다. 어쩌면 남자보다 여자들끼리 서로 살인을 하는 사회, 노인이 20대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회, 사람들이 친구와 낯선 사람을 서로 차별하지 않는 사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을 수도 있다.“사람의 본성은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처럼, 인종 박해는 인간의 본성 속에 존재하므로 인종 박해를 금지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종차별을 법으로 금하는 것은 정말 효력이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에서 더 흥미를 끄는 점들 가운데 하나는 인간은 자신이 행한 행동의 결과를 계산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000년 동안이나 인종차별 금지법을 엄격히 시행한 후일지라도, 어느 날 갑자기 인종차별은 과거에만 있던 편견이므로 인종차별 금지법을 폐지하며, 인종차별 문제는 해소되었다고 선언할 수는 없음을 나는 말하고자 한다. |}}

인간의 본성 중 상당한 부분이 유전적인 요인에 의한다고 생각하는 저자조차도,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고자 한다.

ReadThenWhat? 은 비판적 책읽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본령을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의 내부에는, 적어도 저자의 의도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한 이해가 빠진 책읽기와 비판은 자연주의적오류 를 벗어날 수 없다.

책의 양에 끌려서, 많은 책을 읽고 싶다는 욕심으로 건성의 책읽기를 한다면,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조차 넘어설 수 없다.

알면 사랑한다 라고 외친 최재천 교수는 어설프게 앎을 경계했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제대로 알면 제대로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어설프게 알면, 어설프게 사랑한다는 의미가 된다. --김우재


ReadThenWhat을 하지 못하더라도 충분한 실마리가 될 수는 있지 않은가? 마치 어린아이의 동화처럼 말이다. 어른이 되어서 또다른 존재 가치를 느끼겠지만, 그렇다고 어린아이때의 동화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 최종욱

동화책의 내용처럼 (예를 들어 놀부가 아닌 흥부처럼) 살기 위해선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김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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