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감의 사회학 (Sociology of Sympathy)
세계화와 정보화로 인한 거대한 변화의 의미를 세계관의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담아내는 새로운 사회학 이론의 틀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세계화와 정보화가 왜 오히려 사회 내부의 위기와 혼란을 발생시키고 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는 '세계관과 질서 원리의 변화에 대한 부적응'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저자는 세계관을 '유한은 무한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신비적 세계관과 '유한은 무한을 붙잡을 수 없다'고 보는 합리적 세계관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사회학과 한국 사회가 여전히 전통적인 신비적 세계관에 집착하여 합리적 세계관으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사회학과 한국 사회가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한에 대한 인간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유한 세계에 대한 공정한 관찰을 중시하는 합리적 세계관으로 변화를 수행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학 전통에 큰 공헌을 한 마르크스, 뒤르켐, 베버, 파슨스의 사상을 면밀하게 검토 분석하고, 이들 사상의 문제점을 짚어내고 있다.
이 책이 제시하는 '동감의 사회학'은 공리주의처럼 행위자가 자의적으로 목적 선택을 하도록 방임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위태롭게 하지도 않으며, 실증주의처럼 행위자가 행위를 외적인 조건에 대한 반응으로 봄으로써 행위자의 주관적인 요소를 무시하지도 않고, 파슨스처럼 인간을 특수한 문화 속에 가두어 놓지도 않는다.
저자는 동감의 사회학이야말로 사회 질서의 근거와 개별 행위자의 주관적 요소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윤원근은 사회 질서의 문제를 인간 본성의 자연스런 동감에 근거하여 해결하려고 한 애덤 스미스의 동감 이론을 사회학 담론 안으로 끌어들여 동감의사회학을 제시하였다. 사회학 자체가 발동하기 전에 내세운 애덤 스미스의 동감이론이 오히려 현대의 사회학보다 사회학의 형태를 조화롭게 띄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 하다. 저자는 철학의 두가지 사조를 신비적세계관과 합리적세계관의 두가지 맥락으로 보고 있다. 신비적 세계관은 무한을 따라잡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의 연장선이며 musiki가 흔히 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의 놀라운 통찰과 천재성에 입각한 근본 지식에의 접근이다. 반면에 합리적 세계관은 인간은 무한을 따라잡을 수 없으며, 경험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것에 한해서만 Describe하는 방식의 지식들이다.저자는 지금까지의 사회학과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신비적 세계관의 통찰에 지나친 집착을 보여왔으며 합리적 세계관으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사회학과 한국 사회가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한에 대한 인간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유한 세계에 대한 공정한 관찰을 중시하는 합리적 세계관으로 변화를 수행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학 전통에 큰 공헌을 한 마르크스, 뒤르켐, 베버, 파슨스의 사상을 면밀하게 검토 분석하고, 이들 사상의 문제점을 짚어내고,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스미스는 균형의 원리를 올바른 사회 질서 형태로 제시하면서, 이의 근거를 모든 인간의 자연스런 동감이라는 경험 사실에서 찾았다. 저자가 제시하는 동감의 사회학은 공리주의처럼 행위자가 자의적으로 목적 선택을 하도록 방임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위태롭게 하지도 않으며, 실증주의처럼 행위자의 행위를 외적인 조건에 대한 반응으로 봄으로써 행위자의 주관적인 요소를 무시하지도 않으며, 또 독일 관념론을 계승한 파슨스처럼 인간을 특수한 문화 속에 가두어놓지도 않는다. 동감의 사회학은 사회 질서의 근거와 개별 행위자의 주관적 요소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동감의사회학이야말로 사회 질서의 근거와 개별 행위자의 주관적 요소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동감은 유연하나 끊어지지 않는다. WeLikeDifferentThings 에 대한 공감하에 유연성을 갖추며, WeHaveSomethingInCommon에 대한 공감 하에 규제를 갖추게 된다.
musiki가 만들어본 각각의 개념을 연상하게 하는 단어들의 나열
{{|
불가지론자는 인간의 지식은 자연계에 한정되기 때문에 마음은 초자연적인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불가지론은 유신론자도 혹은 무신론자도 될 수 있다. 유신론적인 불가지론은 신앙주의자(fideist)라고 불리며 그들은 오직 신앙에 의해서 신을 믿는사람들이다. 무신론적 불가지론은 종종 유신론자들에 의해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은 터무니 없는 것이며, 이러한 표현은 의미없는 것이다. 불가지론적인 무신론자는 단순히 신을 믿어야할 좋은 이유를 찾지 못한 것뿐이다. from http://user.chollian.net/~jeank/skeptic/agnosticism.html
|}}
불가지론자는 인간의 지식은 자연계에 한정되기 때문에 마음은 초자연적인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불가지론은 유신론자도 혹은 무신론자도 될 수 있다. 유신론적인 불가지론은 신앙주의자(fideist)라고 불리며 그들은 오직 신앙에 의해서 신을 믿는사람들이다. 무신론적 불가지론은 종종 유신론자들에 의해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은 터무니 없는 것이며, 이러한 표현은 의미없는 것이다. 불가지론적인 무신론자는 단순히 신을 믿어야할 좋은 이유를 찾지 못한 것뿐이다. from http://user.chollian.net/~jeank/skeptic/agnosticism.html
|}}
musiki는 위키위키가 동감의사회학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musiki는 어떤 의미에서는 TheBrights는 이러한 합리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집결체라고 판단한다.
일단, Roman부터가 아닙니다.
신비적 세계관이라는 범주에 합리주의가 존재해서 많은 분들이 오해하실 듯 합니다. 위에서의 합리주의 혹은 합리론은 경험론과 대비되는 인식론의 한갈래를 말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임마누엘 칸트나 플라톤의 형이상학등이 그에 해당합니다.
또한 신비적 세계관은 신비주의와도 다릅니다. 신비주의는 일반적으로 감춰진 진리나 지혜를 영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비주의라는 말에는 이미 이성이나 합리성등의 개념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월명상등이 신비주의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신비적 세계관이란 위에서 말한 그대로 "무한을 따라잡으려는 노력"을 말하는 것이며, 영적 개념이 결부된 "신비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신비적 세계관과 합리적 세계관 모두는 이성을 중시하는 태도 내에서 나뉘는 것입니다. 사회학에서 영적 개념을 다루지는 않으니까요.
용어가 참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좋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의하지 않으면
중세까지는 합리적인 세계관에 의해 천동설이 철저히 지켜졌다. 그리고 신비적인 세계관에 따라 지동설과 평평한 지구 모형, 수정된 천동설 등 다른 여러가지 모델이 제안되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망원경으로 인하여 신비적인 세계관 중에 하나인 소크라테스의 지동설이 합리적인 세계관으로 증명되었다. 재미있게도, 이를 거부한 사람들은 -신비적인 세계관을 대표하는- 기독교의 -합리적인 세계관에 따르는- 세속적인 사람들이었다.
세속적인 교회와 같은 어설픈 만남이나, 지동설과 천동설의 싸움만으로는 부족하다. 소크라테스와 갈릴레오의 만남처럼, 신비적 세계관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합리적인 세계관의 철저한 논증이 만나, 서로를 인정하고 수용하여 새로이 발전해 나갈 때에 패러다임의 혁명이 가능하다.
--발안자 최종욱 2004/01/08
See al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