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의한계와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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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help에 관한 강연을 하나 들었는데 그 선생님이 강조하신 방법들 중의 하나가 High Tech Vs High Touch였다.

다른 사람들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으로 컴퓨터/인터넷과 같은 기계에 많이 의존하기보다 실생활에서 직접적인 인간의 touch를 느끼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향기, 다른 사람의 존재를 느끼는 것이 인간에게 정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지적이었다. 컴퓨터화면으로만 의사소통하다보면 그 의사소통이 충분하지않아 자기 딴에는 많은 의사소통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지로는 공허감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실제 인간들을 만나고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움직임을 캐치하고 만질 수 있다면 많이 만지고(^^;) 이런 풍부한 교류가 인간 감성을 촉촉하게 하고 우울증에도 빠지지않게 하고 생기있게 한다는 것이다.

실지로 메시지전달 과정에서,

  • "말(또는 텍스트)"가 전달하는 것은 총 메시지의 7 % 에 불과하고,
  • 목소리의 톤이 전달하는 것은 23 %,
  • 몸짓/얼굴표정이 전달하는 것은 70 % 라고 한다.
    (또는 목소리톤이 38 %, 얼굴표정이 55 % 라고 세분화하기도 하고..)

이렇듯 목소리나 몸짓/손짓/얼굴표정의 복합에 실린 "감정"이라는 것이 총 메시지의 93 % 라는 엄청난 양을 전달한다는 것은, 글이나 말 뿐만 아닌, 비언어적, 비텍스트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

이것에서 우산이 얻은 결론은 다음의 두 가지 차원:

  1. 관계적/소통적 차원: 기계를 통한 말과 텍스트로만 의사소통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비언어적 단서(cue)들의 중요성.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하게 느낀 것은,
  2. 개인적 차원: 한 인간이 생존하는데에(잘 사는 것은 차치하고 정상적으로 생존하는 것만을 위해서도) 실제 인간들(real people)과의 "접촉(touch) 필요량"이 분명히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같다는 점.

사람을 직접 만나서 그 몸의 움직임, 손발의 움직임, 얼굴의 변화, 공기를 타고 전해오는 목소리의 떨림, 웃음소리... 이 모든 것을 눈으로, 귀로, 피부로 직접 "만지는(touch)" 것은 효율적인 의사소통이나 인간관계를 위한 상호적 차원에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스스로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의 풍부한 정서 계발과 안정을 얻는 데에도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아, 후각적으로 체취를 느끼는 것까지도 중요하겠지, 특히 연인사이에서는..^^;)


맞습니다. 문자라고 하는 것은 한 사람을 담아내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면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문자를 통해서 설명되는 자신은 때로는 실제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것이죠.--Roman

문자는 결국 인간 대 인간의 의사소통에는 자의한계를 가지게 되죠. 곡해의 여지도 있고.. 결국 문자만으로는 완전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겁니다. 만약 문자 만으로 의사소통이 완벽하다면 번개니 오프니 이런 것이 생기지 않았겟죠. 하지만 문자는 그 나름대로 자의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이퍼텍스트 역시 자의가능성을 확장시킨 또 다른 문자라고 봅니다. 문자는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소중한 겁니다. 문자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문자 속에서 살고 있죠. :) --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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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라는 소설의 줄거리를 들어 본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행동은 타인의 냄새에 의해서도 상당히 영향을 받죠. 또한가지 사람의 눈썹이 감정표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자의한계FaceToFace 에서 포착할 수 있는 미묘한 감정들이 전달되지 않는 다는 점이겠지요. 하지만 논리적인 토론이나 감정의 표현이 필요없는 인간을배제한논리를 펼치는 장소에서는 문자의 단점에서오는장점을 볼 수 있습니다. --김우재

'향수'란 소설에 보면 타인의 냄새에 의해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고 하잖아요. 실제로 어느 외국의 과학연구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연구소의 연구원들든 평소에 서로 대화도 거의 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어느날 인간피부샘플이 공기에 장시간 노출된 적이 있었는데 그 피부샘플에서 분비된 호르몬(르몬이라고 하더군요)덕분에 그날따라 연구원들간에 농담도 오가고 서로 즐거운 이야기도 하는 등 화목한 하루를 보냈다고 합니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본 이야기에요. --

언어적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 한계를 적절히 이용하는 법도 알아야겠습니다. 연인 사이의 장시간 전화통화에 대한 일례를 들면, 통화를 하는 송, 수신자 모두 자신의 발화가 상대방에게 연인이라는 절대위치에서 들릴 것이라는 기대를 약간은 접고 긴장하고 대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분쟁의 시작지점이 바로 연인이라는 인간관계를 무의식중에나마 믿고 있다는 부분에서입니다.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상황에서의 곡해의 소지를 다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화의 내용을 마치 제3자가 듣는 것처럼 자기검열을 통하는 것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 의한 검열이 세상의 어떤 검열보다 무섭기 때문입니다.

중학생 때, 고등학생 때, 좋아하는 여학생의 얼굴만 봐도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콱 막혀서 아무 말도 안 나오던 그 시절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적어 내려간 편지 한 장은 저에게, 또 그 여학생에게...지금은 결혼해서 어느 남자의 아내가 되었지만...백 마디 말보다 훨씬 값진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문자의 가능성과 관련 있을까요? :) --Croo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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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든 지식을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표현할 수 없는 지식이 많이 있다. 그러나 표현할 수 없는 지식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우리가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지식만 평가한다면 분리된 뇌의 오른손만 사용하여 평가하는 것과 같다.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직관적 통찰이 무시될 수 있다. 우리가 무식하다거나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 다른 종류의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능력이 사회에 아주 유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신경과학자인 노만 게쉬빈트 박사는 이러한 딜레마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여러가지 종류의 특별한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나는 악기를 연주할 줄도, 음을 맞출 줄도 모른다. 현재 우리는 글을 잘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살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있다. 이러한 장애아들이 우리보다 훨씬 그림을 잘 그리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대우를 더 잘 받는 사회에 살고 있다면 이러한 장애아들은 우리보다 더 잘 살 수가 있을 것이다. 사회의 가치가 변함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뇌 적응아들이 생겨날 수 있다. (see also 질병의실체)
--<언어와 뇌>, 노만 게쉬빈트, <<미국과학회지>> 226(4):7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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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뇌의 세계: 재미있는 소우주 여행> pp. 133~134 R.오른스타인/ R.F. 톰슨 지음, 서유헌 옮김, 민음사, 1995 에서 발췌했습니다.흐름

그런데 표정과 억양이 가진 의미는, 상대방에 의해 오역되기 쉽다. 은눈의시체는 같은 사람이라도 오프라인으로 만남을 가진 후에는 더 멀어졌다고 느끼고, 온라인으로 만남을 가진 후에는 더 가깝게 느낀다. 아마도 문자외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미숙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대게의 사람들은 그 들의 뜻을 오역한다. 표정과 억양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에 미숙한 은눈의시체는 이런 글을 읽으면 부담감을 느낀다. ^^;;

문자의 한계를 절감하던 나였는데 최근엔 문자의 가능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휴대폰과 메신저--특히 휴대폰으로 대표되는 요즘의 문화를 살펴볼 때 이 문자라는 것의 오묘한 효력 or 마력에 대해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요새는 휴대폰이 없으면 연애도 못한다는 말이 상당히 일리가 있어보인다. (하긴 연애만이랴, 한국사회에서 휴대폰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_-)

혹자가 요즘 여자를 꼬실려면(이런 표현을 좋아하지않지만..-_-;)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관해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용건이 있건없건 하루에도 몇번씩 문자메시지를 날려라!" 예컨대 "잘 들어갔니?" (한 줄); "밥 먹었어?" (한 줄); "잘 자~" (한 줄) 등등등...-_- 이런 식으로 별일 아닌 것도 수시로 자상하게 챙겨주고 '일상'을 함께하며 계속 문자를 보내면(or 받으면) 그것이 전혀 없을 때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를 뿐만 아니라 괜히 할 말도 딱히 없는데 전화 걸어서 어색하게 버벅거리는 것보다 아무리 전화에는 목소리라는 비언어적 요소가 첨가되어있다고해도 나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자의 힘에서 나오는 효력인지, 단지 시도 때도 없이 계속해서 늘상 '연결'되어있다는 기술적 속성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아직 분명히 갈라 말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후자로 인해 전자의 효력이 이전보다 더 강해진 것은 사실인 것같다. connected되어있다는 느낌이 문자에 실어주는 (조금은 색다른) 정서적 효과는 무시무시하다고나..^^

더구나 이전에는 문자는 이성과 논리에 중점을 두고 감정이 배제(혹은 결여)된 약점이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온라인커뮤니케이션에서도 그걸 보완하려는 수단으로 이모티콘이니 통신체 등이 자연적으로 발생하게 되었는데, 휴대폰 문자메시지에서는 (이모티콘이나 통신체의 사용은 같은 양이라고 동일한 조건을 가정하고 비교해봤을 때) 문자 자체가 전달할 수 있는 감정의 양이 기존의 디지털의사소통양식에 비해 좀더 많아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either way, 이것 역시, 동시적으로 connected된 느낌이 발굴해낸 문자의 또다른 힘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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