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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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번역이란, 최초 발신자가 상정하는 수신자들의 몸의 반응에 상응하는 (몸 공간에서의) 상대적 위상을 목적언어의 수신자들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어포던스가 충분한 언어자료를 만드는 작업이다. 이것을 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김창준

고유명사의 번역 문제

책 혹은 영화 제목을 영역한다고 치자.

1. "오달수의 겨울"
2. "강민의 겨울"

(물론 오달수나 강민은 모두 극 중 등장인물을 지칭하는 인명이다) 여기서 오달수와 강민을 "sense"가 결여된 오로지 reference의 역할만 하는 대명 사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언어철학의 문제가 결부된 복잡한 문제일 수 있다. 하 지만 단순히 일반인의 일반 상식 수준에서 보자) "오달수의 겨울"이라는 문구가 주는 느낌과 "강민의 ..."가 주는 느낌은 확연히, 엄연히 차이가 난다. 이름이주는느낌이 다른 것이다. 이걸 영어로 번역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에게 "오달수"라는 이름이 주는 어떤 총체적 느낌에 상응하는, 목적언어의 사람 이름은 무엇일까. 또 "강민"이라는 인명에 상응하는 그것은 또 무엇일까? (이런 것들을 그대로 Kang-Min이니, Dal-Soo니 식으로 음역을 해버리는 것은 대표적 졸역에 해당한다. 목적언어 사용자들이 과연 Dal-Soo라는 어절을 보고, 또 듣고 우리가 "달수"에서 느끼는 감정과 유사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그네들에겐 똑같이 의미없는 외국어일 뿐이다)

영국이나 미국, 호주 각 지역에 따라 분명히 이 제목은 바뀌어야 할 것이다.

또, "강풍호의 24시간"과 "이지민의 24시간" 역시 그 느낌이 다르다. 전자는 좀 급박하고 동적이며, 스릴러에 액션까지 가미될 것 같지만, 후자는 좀 지적인 스토리나 로맨스, 혹은 미스테리가 전개될 것 같다. 나만의 느낌인가?

이런 것들을 정말 "제대로" 번역해 내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를 "번역의 달인"이라 고 부르겠다. (아직 보진 못했다. 전문 번역가라는 A모씨도 이 수준은 못 되는 듯 하다)

정말 번역은 어렵다.


랑그와 빠롤

언어는 집단언어(랑그langue)와 개인언어(빠롤parole)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랑그/빠롤이라는 이 구분 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여기서 랑그는 언어규범, 혹은 집단이 사용하고 인정하는 언어 정도로 생각하고, 빠롤은 개인에 의한 랑가주 활동 전반을 말한다고 합시다.

개인이 쓰거나 이야기하는 행위, 즉 빠롤은 랑그를 자유롭게 변경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의미가 통하지 않는 것이죠. 그러나, 랑그라는 것은 사실 빠롤이 모여서 구성된 것으로, 서서히 빠롤의 변화를 받아들입니다. 즉, 랑그와 빠롤은 변증법적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과 번역이 무슨 연관이 있느냐구요?

모든 번역에 앞서서 한편의 글은 집단언어의 한계 속에 있 으면서 동시에 개인언어의 영향으로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어떤 사람이 19세기 영어로 쓴 글을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19세기 사람들이 어떤 언어를 썼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동시에, 그 저자의 개인언어만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령, "understand"라는 단어를 번역한다고 하면(물론 단어 하나만 떼어 놓고 번역한다는 발상은 극히 유치하지만 예를 위해) 그 글이 쓰여진 시대에 understand가 어떤 의미로 사용 되었는지 문헌학적인 조사를 해야 하며, 동시에 그 저자가 자신의 다른 글에서 understand를 몇 번이나 사용했고 각각의 경우 의미를 같게 사용했는지, 다르게 썼는지, 다르다면 어떤 범위내에서 다른지 등을 모두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컴퓨터라는 물건이 큰 도움이 됩니다. 저자의 텍스트 수십권에서 "understand"에 대한 콘코던스concordance를 구성하여, 몇 번이나 텍스트에 '출현'하고, 각각의 디노테이션denotation과 코노테이션connotation을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이해와 노력없이 감행되는 번역은 원문에 대한 폭력입니다. --김창준

음..그러니깐 서로 다른 말을 쓰는 무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 어느 한 무리안에 있는 사람이 쓴 글을, 다른 말을 쓰는 무리의 사람에게도 글쓴 지은이의 마음과 되도록이면 가깝게 느낄수 있도록 지은이가 쓰는 말에서 읽는 사람이 쓰는 말로 옮기는 일이군요...헐...이말이 더 어렵구먼..^_^; --nonfiction

원저자가 기대한 수신자만큼의 상식

번역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해당 언어만 이해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그 글의 원저자가 기대한 수신자만큼의 상식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영미권 물리학자를 대상으로 쓴 글이라면, 그 글의 번역에는 최소 영미권 물리학자만큼의 상식(과 동시에, 번역서의 독자층 한국 물리학자 --이 갖는 상식)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터무니없는 오역을 하기 쉽다. 그런데 "영미권 물리학자만큼의 상식"에는 영미권 교양인의 상식과 물리학자의 그것이 합집합으로 들어간다는 점이 어렵다. (하지만 이런 것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경우이고, 대부분은 잘 훈련된 번역가와 전문용어집 두 셋, 혹은 해당 언중 예컨대, 영어권 --의 상식과 번역 지식이 부족한 특정 분야 전문가면 현실적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번역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세분화된 전문 분야에 대한 번역가가 훨씬 더 많아질 것이라 예상한다.)

컴퓨터 서적에서 "Big M Methodology"라는 표현이 나왔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그냥 그대로 "빅 엠 메쏘돌로지/방법론"이라고 번역할까?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이 표현이 상식화되어 있지 않다는데 있다. 이 표현은 80년대 톰 디마르코가 자신의 저서 Peopleware에서 썼던 말이다. 그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Peopleware 정도의 이해는 상식으로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IT 역사가 짧은 이유로) 그런 개념조차 없다.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의 문제 이전에 과연 번역자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대부분은 "거대 방법론" 정도의 오역을 한다.

"change your hat"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무슨 뜻일까? hat에는 역할이라는 의미가 있다. 역할을 바꾼다 쯤으로 번역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글은 분명 에드워드 드 보노의 Six Thinking Hats를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에드워드 드 보노는 수평적사고(lateral thinking)로 유명한 사람인데, 그가 새로 만든 말인 "lateral thinking"은 일반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영미인에게 상식적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Thinking Hats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는 6가지 색깔의 모자를 준비해 놓고, 회의를 할 때 한번에 하나씩 다른 색의 모자를 쓰라고 한다. 각각의 색깔에는 고유의 사고 모드가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검정색 모자를 썼을 때는 비판적 의견만 내고, 흰 모자를 썼을 때는 긍정적 의견만 내는 식이다. 따라서 그 "change your hat"은 좀 다르게(필요에 따라 에드워드 드 보노를 언급하면서) 번역해야할 것이다.

EricRaymond의 글 중에 "The Joy of Hacking"이라는 제목을 단 것이 있다. 이걸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해킹의 즐거움"이면 충분할까? 대부분의 영미인은 이 제목을 보고 웃을 것이다. 왜냐하면 "The Joy of Hacking"은 초미의 베스트셀러 "The Joy of Cooking" 이후 미출판계에 유행했던 "The Joy of X"의 패턴(e.g. The Joy Of Sex)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번역하면 우리나라 사람에게서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아니, 제대로 번역하는 고민 이전에, 제대로 이해하려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하나.


이 글은 번역자가 원문의 같은 단어에 대해 임의로 '동의어'를 택해 다 다르게 번역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Freefeel:TheSnowman에도 적혀있듯이 똑같은 단어를 자꾸 반복하는 건 문학적으로 아름답지 않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물론 충실한번역이 아님은 비난의 여지가 있지만, 그 배경에는 하나를 여럿으로 나타내라는 교육이 있다는 것 또한 고려해야 할 것이다.
--kz
번역 작업에 대한 각자의 정의가 달라서인 듯 싶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충실한 번역"이 아닌 것은 모두 번역에 범주에 넣지 않거나 혹은 그 가장자리에 두고 싶습니다. --김창준

강유원은 번역의 기본 요소를 다음 세가지를 들어 말하고 있다:

  1. 번역가는 원저의 내용에 대한 충분한 식견을 가져야 한다.
  2.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을 해야 한다. 말 그대로 원문을 우리 말로 찍어내듯 해야 한다.
  3. 우리 말 문장을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김창준은 이것들이 중요하다는 점에 전반적으로 동의하지만 두번째 요소는 자칫 시야가 좁아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1과 3이 충실하다는 것에 덧붙여, 원저의 언어(영어나 불어가 아니라, 그 "책의 언어")와 그 언어가 만들어 낸 개념/몸 공간에 대한 이해와, 번역될 언어와 그 언어가 만들 개념/몸 공간에 대한 이해가 되어야 하며, 그렇다면 두번째 요소는 "개념/몸 공간에서의 위상적 대응"으로 대치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좀 더 이상적인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슈바니츠의교양의 음악편에서 Drum and Bass를 드럼과 베이스라고 번역한 부분이 있는데, 이상한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전문분야의 번역 흔히 교육 받았던 것을 거스르는 것이 워낙 많은 관계로, 간단한 '미'와 'E'가 같은 것인지를 알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답니다. 그간 가지고 있던 지식이 새로운 것에 대한 반항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느낌을 많이 가지게 되었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번역(오역?)을 접하게 되면 평소에 알던 것을 다른 방면으로 생각하게 하는 기술로 번역이 작용하는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Hiphop은 힙합으로 번역하였다면 Drum and bass는 드럼앤베이스로 번역하여야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첫번째 말씀하신 원저의 내용에 대한 충분한 식견을 가져야 한다는 점과 우리말 문장을 정확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점은 이런 의미에서 중요하게 여겨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덧붙여, 번역이 아니더라도, 작년에 80년대 초반에 나온 문고판의 링컨 연설문을 윤문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불과 20년의 차이지만, 그 사이에는 어의의 변화와 사용되지 않는 한문투의 번역이 많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링컨 연설문집의 원문을 놓고 다시 번역하는 스타일로 작업을 했습니다. 같은 텍스트라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야 하며, 과거의 작업들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독자들이 읽어서 분명히 의미를 전달 받을 수 있게 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번역의 목표는 여러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원어 독자들이 그 책을 읽으며 받아들이는 것 들을 번역서를 보는 독자들도 최대한 유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목적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반된 방법이 가능한데 하나는 원서에 나오는 개념들을 최대한 번역하려는 대상 문화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바꿔서 원어민들의 문화를 전혀 모르더라도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는데 문제가 없도록 하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원서의 개념들을 최대한 그대로 표현하고 대신 각종 보조장치(주와 같은)를 통해 독자들이 원어민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여 그를 바탕으로 책의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방법이겠죠.

또한 원서를 읽는 독자라고 해도 독자의 수준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제각각 일텐데 그 다양한 반응을 하나의 책으로 번역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그대로 대응시킨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 할 것입니다. 따라서 번역을 하기에 앞서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그 독자들의 배경지식을 고려하여 앞에서 거론한 방법들을 적절히 사용하여 번역을 해야할 것입니다.

이상은 원서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번역의 방법이겠고 때로는 원서에서 핵심적인 주제와 그것을 풀어나가는 구조만을 취하고 문장의 서술 자체는 원서에 얽매이지 않고 써나가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보다는 상식을 전달하는 교양서적에 적합한 방법이겠죠. 가끔 원서보다 번역서가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런 경우에 해당하겠지만 웬만한 수준에 오른 번역가가 아니라면 득보다는 실이 많은 방법이겠죠. -- 남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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