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정의는,
이와 관련해서 J.S. Mill이 종종 인용한 DarwinsBulldog T.H. Huxley라는 19세기 생물학자의 말이 있다.
A man who has broad intellectual interests and is accomplished in areas of both the arts and the sciences. |
[From AHD3 unabridged] |
이와 관련해서 J.S. Mill이 종종 인용한 DarwinsBulldog T.H. Huxley라는 19세기 생물학자의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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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y to learn something about everything and everything about something.|}}
(헉슬리의 말은 이 시대의 르네상스맨이기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Try to learn something about everything and everything about something.|}}
사실 진정으로 깊이 파게되면 넓게 가지 않을 수가 없고, 진정 넓게 가려면 깊이 파지 않으면 안된다. 문제는 깊이도 폭도 대충 대충인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달변가 이상은 못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달변가 이상은 못 될 것이다.
르네상스맨, 물론 매력적이긴 하지만, 자신의 전공의 얇팍함을 위장하고 미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넓음"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흔히 보인다. 우리는 항상 그런 인류에 별 도움 안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철학 과학 조금씩 건드리는 사람들이 하는 건 pseudo-science(사이비과학)에, pseudo-philosophy 뿐이다.
pseudo-science라는 용어는 어느정도 수긍이 가지만, pseudo-philosophy 는 형용모순인 것 같다. 철학은 그 내부적 완결성에 의해 평가되며, 절대적 지평위에서 전개되는 사유활동이기에. 철학이 아닌 것은 단지 잡담일 뿐. 그러나 잡담을 두고 우리가 "pseudo-mathematics"라고 하지 않듯이 잡담은 단지 잡담이다. 철학에 있어선, 그것이 나름의 체계와 진지함을 담지하고 있는 한, 사이비 철학이라 비판할 수 없다.
DeleteMe그렇게 판단하신다면, pseudo-science라는 단어가 오히려 말이 안될 것 같은데요. 나름의 체계와 진지함은 sience에서 더 강하게 느껴진다고 생각되니까요. pseudo-science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아무런 의미없는 잡설이 거짓이거나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권위를 입고 일반인들에게 통용되는 것을 배격하기 위함입니다. 사회적 상황 때문에 과학의 권위를 입는 것이 철학의 권위를 입는 것보다 효과적이므로 pseudo-science와 pseudo-scientist들이 pseudo-philosophy 보다 많은 것이죠. 단지 pseudo-philosophy라는 말에는 우리들이 익숙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혹은, pseudo-philosophy를 철학계에서 잘 구분해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pseudo-science란 말은 -잡담은 잡담일 뿐이지만- 그 잡담들의 성격과 유형을 분류하는 말이겠죠--JongHoon
무언가를 알기 위해 노력을 할 수록 자신이 가진 지식의 너비와 깊이가 얼마 안 됨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see also 읽어야할책). 아마도 자칭 '르네상스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르네상스맨'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picxenk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곁에는 르네상스맨으로 분류될 인재들이 존재하는듯 하다.
언젠가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참 산이 많다.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정상에 다다를 때 쯤, 올라가는 과정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다른 산의 꼭대기들도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하고, 마침내 정상에서는 다른 산들의 꼭대기도 볼수가 있다." 르네상스맨도 이런 경우가 아닐까요?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든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내부에 있건 어떤 산 하나는 틀림없이 먼저 정복을 했을 것입니다.
같은 얘기인데... 샘물 비유도 있지요... 어떤 샘의 물과 거기서 좀 떨어진 곳의 샘의 물이 같은 수원(水源)에서 비롯된 것이다... 라는 - kcjun
하나의 과학 분야를 일정 수준 이상 도달하는 것도 점점 벅차지는 현대에는 과학자가 예술적 기질을 발휘하는 것이 어려워진 일이지만, 기본적으로 훌륭한 과학자는 훌륭한 예술적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 분야에서 새 패러다임을 창조해내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런 예술적 집념과 창조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 Iron
책SF걸작선에 "르네상스 맨"이라는 단편이 있는데, 미래의 MIT 건물 복도에 있는 한 사람을 현재로 무작위의 소환해 와서 문명 발전의 가속화를 꾀하려는 내용인데 소환되어 온 사람이 너무 좁고 전문적인 지식만 갖고 있어서 좌절하는 내용입니다. 거기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묻습니다. 우리 중 한 사람이 르네상스 시대로 소환되었다면 그 시대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사람은 르네상스맨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PuzzletChung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문화』의 「개인의 완성」이라는 장에 보면...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학문과 예술은 물론이고 운동에 이르기까지 천재적인 역량을 보여준 인물이라는 평입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르네상스맨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Burckhardt('부르카르트'로 표기하는게 나을 것으로 생각함)는 2페이지에 걸쳐 장황하게 칭찬을 해 놓고 나서... 그 끝에 "그러나 알베르티에 대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관계는 창시자에 대한 완성자, 호사가에 대한 거장과의 관계인 것이다."라고 하여 레오나르도(짧게 부를때 흔히 다빈치로 부르는데... 레오나르도라고 해야 맞다고 함)를 칭찬하면서 그 장을 끝맺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야말로 진정한 르네상스인인 것입니다. - kcjun
레오나르도는 정말로 '르네상스 맨'이었습니다. 맨손으로 돌을 격파하는가 하면 다리를 모으고 뛰어서 서있는 사람의 키를 넘겼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니까요. 당시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보석세공사로 이름을 아직도 남기고 있는 첼리니(교황의 사생아였다죠)는 시도 곧잘 썼고 아침 먹기 전에 나가 사람도 대여섯 죽이고 올 정도로 칼도 잘 썼습니다 ("키다리 아저씨"에는 주인공 여자애가 이 얘기를 쓴 첼리니의 자서전을 읽고서 그 얘기를 아저씨에게 편지로 써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날 르네상스맨을 이야기할 때, "지/덕/체/감수성"등을 모두 논의하는 것보다는 사실 지식 분야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교양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건강한 몸과 현명한 지혜, 그리고 풍부한 감수성'을 동시에 갖추는 것보다 "폭넓은 교양"을 갖추는 게 더 힘들어진 시대일지도 모르구요. 예를 들어, "수학의 전 분야를 꿰뚫고 있던 마지막 대가"로 꼽히는 사람이 푸앵카레입니다. 거의 100년 전 사람이죠. 철학 분야만 하더라도, 현대 논리철학과 심리철학(인지과학을 포함해서)의 최첨단 논쟁을 꿰뚫고 있으면서 고중세 철학과 하이데거에 대해 동시에 조예가 깊다는 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문맹에 대한 바르뜨의 기준을 확장해본다면 좀 더 희망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바르뜨는 (잘난 체였다고 생각하지만) "프랑스에 문맹이 반이다"라고 비아냥거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말한 "문맹"이란, 대학교수 혹은 연구자들이 "일반인들"을 상대로 쓴 교양서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 기준을 적용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쓴 교양 서적"을 읽고 이해하는 정도라고 한다면 그가 아무리 '깊이'가 없거나 '전공'이 없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정도라고 인정해야 합니다(그가 학문 연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활인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놀라운 일이죠. '얄팍'하다고 비웃을 일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아를 사회의 크기만큼 확대하는 것('대아'의 확장)은 오늘날 폭넓은 분야에 대한 지식을 요구합니다. 폭넓은 전문 분야의 기본지식들에 대한 소양과 현재의 발전 양상에 대한 관심이 사실상 오늘날만큼 요구된 적이 없었습니다. 19세기만 하더라도 당시 과학과 기술, 철학과 문학, 예술 전반이 교양 그룹의 토론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계급'과 '부'를 바탕으로 한 것이긴 했지만요). 이들 교양 계층이 사라진 것은 시민 사회의 크나큰 장애물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사회가 복잡해지는 만큼 거의 모든 분야가 더 유기적으로 얽혀들어가기 때문이죠. 전문가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을 가지고 공론장에 뛰어들지 않는 사회, 시민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 독자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전무한 사회는 재앙입니다. 모든 것을 테크노크라트와 그들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본-권력이 좌지우지하는 사회가 될 테니까요. 어설프더라도 르네상스맨이 되려는 시도는 자꾸 격려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이 그들을 비웃기는 쉬워도, 르네상스맨의 숫자를 늘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요. -- Closely
'다리를 모으고 뛰어서 서있는 사람의 키를 넘었다는 일화'는 알베르티의 이야기라고 나오던데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문화』의 「개인의 완성」이라는 장에 있습니다. - kcj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