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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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개념이 처음 그 개념을 정의하게 된 원래의 맥락을 벗어나 확장되어 혹은 유추를 통해 다른 맥락에서 사용되거나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됨으로써 그 개념은 이중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즉 한편으로는 (1) 의미의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2) 보다 창조적인 발상과 생각을 가능하게 해주는 시발점이 된다.

창조적오해는 주로 a. 어떤 개념이 번역될 때 생기거나 b. 한 학문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넘어가서 확장/유추 사용될 때 생겨나는데, 전자의 대표적인 현상이 중국 불교에서 일어난 격의불교이다. 전통적인 도가/도교 계통의 언어로 산스크리트 불경의 개념들을 의역한 데서 무궁무진한 오해가 생겨났고, 그것이 독창적인 중국적인 불교 이해가 가능했던 배경이 되었다. 격의불교 시기에 생겨난 창조적오해란 번역 혹은 문화수용 과정에서의 창조적오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례들

진화

진화(Evolution)의 생물학적인 의미는 생물학적 군집 내에서의 유전자 풀(Pool)의 변화를 의미한다. 소진화는 종 자체의 변화는 가져오지 않은 채 새로운 유전자/형질의 탄생이나 빈도의 변화를 통해 유전자 분포가 달라지는 것을 의미하고, 대진화는 종 자체의 탄생/변화/소멸을 의미한다. 유전자와 환경(eco-system)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질을 지배하는 유전자에 변화가 나타나고 그것이 다음 세대로 '유전'될 때 우리는 진화가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화 개념은 다윈주의(멘델 유전학과 결합된)의 맥락을 넘어서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거나 유추적용되었고 이는 오해의 여지와 함께 새로운 발상을 가능케 한다.

  • "진화"에 대한 19세기의 이해/오해 : 많은 19세기 사상가들에게 진화는 일종의 "에너지의 집중", "엔트로피의 저하", "상향의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당시 열역학에서의 '엔트로피'의 발견은 일종의 우주의 "몰락"으로, 생물학이 발견한 생명의 진화는 그와 반대되는 과정으로 이해되었고 이러한 우주의 이중적 구조를 해명하는 것이 철학적 과제로 여겨지기도 했다(이러한 19세기 우주론의 문제설정에 대해서는 베르그송과 화이트헤드 혹은 떼이아르 드 샤르댕 등을 참조). 기계론적 생명관에서는 이러한 식의 철학적 이해가 무지와 오해의 소산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지만(예를 들어, 자끄 모노의 우연과필연), 19세기의 진화 이해는 특정한 형이상학적 해석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과 우주관에 강력한 영향을 끼쳐왔고, 오늘날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할 독창적이고 계발적인 사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See Also 생명체는스스로진화하는가

  • 체계 등의 진화 : 생물학적 진화 모델은 어떤 체계의 변화/발전 양상을 이해하는데 빛(통찰력)을 던져줄 수 있지만, 둘이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칫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기도 하다. 체계 내에서 지속되는 제도적 요소나 학습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되고 공유되는 요소를 일종의 '유전자'로 비유할 수는 있지만(예를 들어, RichardDawkins가 문화적 유전자로 생각한 Meme 개념), 그것이 생물학적인 의미를 벗어난 맥락이라는 점에서 모델의 유추/적용은 오해를 살 뿐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생물학에서의 진화 개념과 체계의 진화 개념을 동시에 포괄하는 진화 개념을 만들어내는 논의는 오히려 생물학에서의 진화 개념을 호도하고 부적절한 이론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이나 사회학에서 물리학의 "장(field)" 개념이 한 것만큼이나 진화 개념은 유용하게 사용되어왔고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생물학에서의 진화 개념과 체계의 진화 개념을 동시에 포괄하는 진화 개념을 만들어내는 논의는 오히려 생물학에서의 진화 개념을 호도하고 부적절한 이론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에서 혹은 어떤 방식으로 '체계의 진화 개념'이 '생물학에서의 진화 개념을 호도하고 부적절한 이론으로 귀결'시킨다고 이야기들하는지요? 궁금..

위에서 언급된 것이지만, 체계의 진화에서는 목표나 방향성의 개념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만 기계론적인 진화 개념-아직까지는 주류적 설명인-에서는 그러한 설명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부에서는 "목적없는 목적론"이라는 표현을 통해 진화를 이해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특정한 방향-상향이나 완전성, 발달과 같은-으로 진화가 진행된다고 보는 것은 이미 진화론 외부에서 들어온 시각이라는 것이죠. 진화를 그렇게 볼 수는 있지만, 꼭 그런 개념이 필요한 것은 아니란 점에서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 그것은 진화 개념을 오해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겁니다. --아무개

나비효과파레토법칙 같은 개념들이 본래 유래한 영역을 넘어선 의미들로 널리 응용되는 것도 창조적오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님 개념을 아무데나 갖다붙여먹는다고 비난을 들어야할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여기서 말하는 창조적오해는 이중적인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창조성"에 주목하고, 어떤 사람은 "오해"에 주목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적어도 "이론적 탐구"의 영역에서는 후자의 문제가 더 중요할 것 같고, 그 유용성 여부는 구체적인 사례에서 어떻게 확장과 유추가 이루어지는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비효과는, 평이하고 단순하게 말해, 다 아시다시피 초기 투입값의 작은 차이가 일정 시간이 지난 뒤의 산출값에서의 큰 차이를 (우리가 갖고 있는 계산적 모델로서는 도저히 예측불가능할 정도로) 가져올 수 있다, 라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모든 모델(계)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 경우,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정치 과정이 과연 그러한 모델이 적용될 수 있는 계인가 하는 것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문제가 되는 것이겠죠. 그렇게 (모델과 실재를 연결시키는) 전제조건에 대한 숙고없이 가져다 쓰는 것은 이론적 탐구에서는 그저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위험이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오해들도 때로는 이전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새로운 조건을 알아차리게 해준다거나 한다는 점에서 창조적인 역할을 할 때는 있겠죠. 말하자면, 위의 격의불교의 예를 들어, 화엄종이나 선종은 이미 석가모니 자신이 말했던 것 혹은 그의 초기 제자들이 이해했던 것으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진, 거의 독자적인 문화유산인데, 그것이 "이것은 진짜 인도 불교다"라거나 "이것이 바로 석가모니의 진짜 가르침이다"라는 것을 문자 그대로 진지하게 주장하는 것은 위에서 말한 "오해"의 측면일 것이고, 그것이 불교 사상을 새롭게 혁신시키며 풍부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창조적인 것이겠죠. 제가 생각할 때, 이론적 탐구가 아닌 분야에서는 창조성이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개

조금 다르지만 뚜웨이밍이 말하는 Fruitful Ambiguity(창조적인 애매모호성)도 있다. 그는 동양의 사상은 애매모호해 보이지만 여기서 오히려 더 포괄적이고 풍성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see also LearnFromMetap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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