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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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국은 서양(유럽과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 비해 토론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고 한다. 왜 우리는 성숙한 토론문화가 없지? 라고 스스로 반문하고 자괴하기도 한다. TV토론을 보면 그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서양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토론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은 그냥 보통 수준의 토론문화를 갖고 있는데, 서양에서 유독 토론문화가 발전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미치기도 한다. 플라톤이 편집한 『대화편』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와 제자,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읽어보면 그 논리적이고 세련된 말솜씨와 내용에 탄복하게 된다. 그런 전통이 현재까지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서양의 토론문화가 높은 수준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 짐작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토론문화의 싹을 키워가야 할까? - kcjun

언젠가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A, B 두사람이 토론하는데, A와 B는 반대 의견으로 대립되었다. 그런데 토론 말미에 A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B의 의견에 반대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B의 발언을 방해한다면, 나는 B가 발언할 수 있도록 돕는데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다."라고. - kcjun
문장이 조금 달라졌긴 하지만, 볼테르의 말이군요.
오~~ 고맙습니다. 다른 분께 들어서 출전은 모르고 있었는데... 혹시 어느 책에 나오는지 아세요? - kcjun
정확히 말하자면 볼테르 자신의 저서에 나오는 표현은 아니고, 후세에 그의 평소 신념(엥똘레랑스에 반대하는)을 축약해 만든 말입니다. 아마 출전이 The friends of Voltaire던가일텐데 이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http]http://www-users.cs.york.ac.uk/~susan/cyc/l/liberty.htm 검색엔진에서 찾은 링크에 그 내용이 나오는 군요.
("I disapprove o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 - Voltaire) - kcjun

위키위키와 게시판 등에서 수많은 '온라인 글쓰기'에 접하게 된다. 익명성 때문에 험한 말도 많이 보기도 한다. 그런데 타인에 대한 비판/비난의 글 중에 많은 경우가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점도 보게 된다. 이런 오해는 대체로 성급한 추측과 예단(豫斷)에서 온다. 추측/예단으로 인한 오해를 갖고 비판/비난의 글을 쓰지 않으려면, 아니 줄이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것은 상대방에게 공손한 태도로 질문해서 확인보는 것이다. - kcjun


바보들의토론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그 바보들은 자신의 처음 생각했던 의견을 고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부터 맞아야만 토론을 잘 한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비난에 가까운 비판도 서슴치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못된 것에 대해서 고쳐가면서, 나와 너의 의견을 점점 더 훌륭한 것으로 고쳐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토론으로부터 우리가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 아닐까? 어쩌면 이것은 GA에서 말하는 echo 기법과도 유사한 것일지 모른다. 각각의 Agent(의견개진자)들이 서로를 공격해가면서, 혹은 서로를 보호해가면서, 보다 좋은 해(좋은 의견)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처음 시작은 바보와 멍청이들의 토론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몇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고, 그러면서 또다시 보다 향상된 의견들이 기어나오고,,.. 또 한 층 또 한 층... 언젠가는 정답이 나올른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오늘따라 좋은 해를 많이 얻는 듯 하는 naya였습니다. :)

이 말씀에 정말 공감합니다. 동의한표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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