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포를 느껴야 할까? 자기보호. 수단이 목적을 압도한 것 같다. (수단과목적) 건강하지 못하다면야 뭐든지. 하지만 때론 수단이 목적이 되고 목적이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런 애매한 상태에서 어디까지가 건강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건강하지 못한 것일까? 어느정도까지 공포를 느껴야 하는 것일까?
1.1. 대상에 대한 공포 (알지 못하는 것) ¶
언제 닥칠지 모를 사태에 대비하도록 만들어주는 자기 보호 본능에 의해 키워진 공포일 것이다. 육식동물, 자연재해, 괴이한 형상의 존재, 귀신 등으로 공포를 유발시키는 대상의 개념도 발전해 갔을 것이다. 육식 동물과 싸워야하는 절박한 상황에서는 자연재해에 대한 공포가 상대적으로 적었을 지도 모른다. 언제나 대비 태세를 갖추기 위해 한 단계의 공포를 극복하면 다음 단계의 공포를 발전시켰을 것 같다.
1.1.1. 귀신 ¶
귀신에 대한 공포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인 것 같다. 귀신이라는 개념은 위험에 대한 대상의 개념이 추상화 되고 발전해서 도달한 단계이다. 인간의 감정이나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감정과 욕망을 일으키는 대상은 자연스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이나 욕망 또한 인위적일 수 있다.
- 처녀귀신 긴머리와 하얀 소복, 창백한 얼굴, 입가에 묻은 피, 쾡한 눈빛. 뒤에 서있을 때,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릴 때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공포를 준다. 처녀귀신은 한국적인 혹은 동양적인 귀신이다. 내장을 꺼내서 휘휘 돌리고 뭐 이러지 않아도 조용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준다. 트랜스젠더 귀신도 상상해 볼 수 있다.
1.2. 상황에 의한 공포 ¶
자기 보호 본능은 어둠, 높은 곳, 갇혀진 곳 등의 위험을 유발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공포를 발전시켰을 것이다. 현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두운 곳에서 느끼는 공포는 맹수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귀신에 대한 공포라는 것은 공포라는 본능이 어떻게 진화해 나가는 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저는 어릴 때부터 귀신의 존재를 기정사실로 생각했습니다. 일고여덟 살에 푸세식 화장실에서 대낮에 귀신을 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상한 것은, 저는 인간의 형상을 한 귀신에 대해서는 별로 무서움을 갖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등골이 슴슴거리기는 했지만.) 제가 무서워했던 것은 추상적인 형태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뒤에 (엄청나게 큰)어떤 글자나 숫자가 버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지요. 아파트에서 계단을 올라갈때 층마다 쓰여 있는 층수가 얼마나 무섭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특히 밤에는. 도대체 이건 무슨 증상인지..-_-; kuroko
2. 공포의 기전 ¶
한의학에서는 놀라는 것과 무서운 것을 유사한 감정으로 본다. 각각의 감정이 인체에서 일으키는 기전은 공즉기하(恐則氣下), 경즉기란(驚則氣亂) 이다.
흔히 놀랐을 때 "간 떨어질 뻔 했다", "애 떨어질 뻔 했다" 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공포를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물리적 방법은 자이로드롭, 바이킹 같은 추락하는 놀이기구이다. 너무 놀라거나 무서울 때에는 대소변에 반응이 오기도 하며, 동물들이 무서워할 때 꼬리를 세우는 법은 없다.
이 모든 현상의 공통점은 나타나는 반응의 방향이 하강한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은 감미롭다. 추락하는 놀이기구나 번지점프처럼. 두려움에 당당하게 맞서서 즐기라. 그것이 해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두려움을 즐기는 것보다 두려움 자체가 해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이는 두려움 자체가 대부분 실체가 없는 대상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공포를 느끼는 대상에 따라서 기전의 종류도 달라지는 것 같다. 추락하는 놀이기구와 귀신의 집에서의 기전은 다른 느낌을 갖는다.
3. 공포의 퇴색 ¶
공포라는 것은 '거부'해야 할 대상이다. '위협', '긴장'에서 벗어나고자하는 행동은 생물의 기본 본능이다. 문제는 인간은 기본 본능을 거스르고 있다. 오히려 공포를 즐기길 바라고 공포의 대상을 찾는 사람도 있다. 퇴색된 것이다.
그것은 금기를 깨고 해방감을 느끼려는 욕망의 작용일 수도 있다. 공포를 느끼지 말아야 할 대상에게까지 공포를 느끼는 것이 공포의 퇴색인 것 같다.
4.1. 믿지도 않는 귀신을 무서워 하는 일 ¶
난 귀신이나 유령의 존재 혹은 영혼이나 혼령 같은 것은 절대로 믿지 않지만 귀신이 무섭다. 늦은 밤 불을 끄고 침대로 들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귀신에 대한 온갖 이미지들을 떠올리며 공포에 떤다.(이럴때 보통 난 '귀신은 없어'라고 되뇌인다.)
이건 귀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공포를 이기기 위해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일까. 아님 단지 귀신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에 확신이 없어서 두려워하는 것일까. 이러나 저러나 알지 못하는 대상에 의한 공포인가.--나와밤
이건 귀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공포를 이기기 위해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일까. 아님 단지 귀신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에 확신이 없어서 두려워하는 것일까. 이러나 저러나 알지 못하는 대상에 의한 공포인가.--나와밤
난 귀신의 존재를 믿는다. 어릴적 내 방에 들어가 책상에 앉으면 등에 느껴지는 누군가 나를 보는 것 같은 간질간질함. 그 간질간질함이 싫어서 방에 있던 사진들을 모두 떼어네거나 돌려버렸다. 마치 사진이 날 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데 별 효과는 없었다. 그렇게 몇년이 흐르다 보니 손쉽게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고, 지금은 만나고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발전하였다. -_-ㅇ 그래도 '귀신은 안 무서워'라고 말하는 순간 무서워진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솨악솨악 찬기운이 스쳐가지요.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귀신 생각하면 귀신들이 몰려드나 봅니다. -- 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