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g27 : 내꺼 챙기다가 영영 남들 못돕는건 아닐까?
아말감: 자기 성에 찰 만큼이면 되지 않을까? (그러다가 패가망신하면, 정신차리고 마음을 바꾸면 된다..정신 못 차리면..건 나도 모른다. -.-;)
BluBook: 구체적인 상황과 각자의 여건에 따라 적당히 할 만큼 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기업적 환경에서는 내 몫 챙기기가 제일의 원리 및 원칙이 되겠지만, 세상사 전부를 비지니스 원칙(이윤의 극대화와 손실의 최소화)에 따라 운영할 수는 없지 않나? 인류에 대한 도의적 책임이란 것도 있지 않나?
석: 상대방이 스스로 자신은 도움이나 받고 사는 무력한 존재라고 느끼게 되는 선이 어디일까? 원칙적으로 자신이 도와주고 싶은 만큼,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만큼, 자신이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남을 도와야 하겠지만, 그 만큼이 상대방이 고마와하고 스스로 다시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는 선을 넘는다면, 그래서 도움받는데 길들여진다면 안 되지 않겠는가?
dotory: 이기적이타주의에서 이타주의가 시작됐더라도 인간이 남을 돕는 이유는 그것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BluBook: 여하한 사유로 공감할 수 없거나 공감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한 타자의 절대적 고통에 대해서는 눈감아도 좋은가? 의학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동네 걸인의 굶주림이나 자살을 결심한 몸이 성한 젊은이의 고통은 간단없이 무시해도 좋은가? 타자를 돕는 것은 정서적 동질감(불쌍하니깐)에 앞서 도덕적 의무감(해야할 일이므로)에서 실천해야할 일은 아닌가?
alyadne: 그렇다면 공감 정도의 기준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 동네 걸인보다 아프리카인들에게 더 높은 도덕적 의무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dotory: 도덕적 의무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여리: 남을 돕는건 자신을 돕는것과 다를바 없지 않은가?
Roman : 아무런, 손해나, 아무런 큰 출혈없이, 그 사람을 간단히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우리 중에 대부분은 그것을 마다하지 않는데 왜그럴까? 아주 간단히, 타인을, 이를테면, 거리에서 20개피가 꽉찬 담배갑에서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 선뜻 담배를 꿔주거나, 10원이 모자라 표를 못 끊는 사람에게 선뜻 내밀어주거나, 지퍼가 열린 것을 말해주거나, 넘어지려는 걸 잡아주는 일 같은 것에는 별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일상에서의 공감때문인가? 그게 불편한 상황이라는걸, 절절히 알고 있기 때문인가? 공감은 상대방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어느정도 인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상황은 정말로, 내가 가진 정보나 경험 이상을 알거나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때론 오해로 도와주다 도와준게 아닌셈이 되어버려, 그게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을 때 그건 공감의 부족이 낳은 결과인가? 흥미로운연구결과 from이타적유전자
musiki :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는 도와줌이 꼴리면 돕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스스로 이기적이라고 느끼면서도 정작 때가 되면 돕지 않고는 못견디게 되는 수가 있다.
ChatMate : '자기를 버리고' 남을 돕는 것은 과연 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와 같은 線에서' 남을 배려하는 것은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요는 개인으로써의 남이 소중한 만큼 개인으로써의 나 역시 소중하다는 것이며 그 역이기도 하다. '나'와 '남'을 가리지 않고 개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소중히 여기는 것 이것이 정확한 의미에서의 개인주의이며, 인종평등과 남녀평등을 넘어선 인간평등이며, 또한 민주주의의 출발점이 아닐까?
고무신 : 남을 돕다니! 말도 안된다! 그냥... 하루 버리는 샘 치고 100원씩 정도만 모으자. 그리고 그걸 간단히 은행에 버리던지, 연말에 구세군 냄비어 넣자. 3만6천오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