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마굴리스가 저술한 명저. 세포내 에너지공장인 Mitochondria의 기원을 원시 Cyano Bacteria로 보는 공생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식물의 엽록체역시 박테리아가 그 기원이다.
다윈의 진화론을 흔히 '오로지 가장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식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이 개념은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제창한 표어로, 19세기말의 자본가들이 극악스러운 노예노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아전인수격 해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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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개념은 진화를 생물 사이의 계속적인 협동과 상호 의존의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생물은 투쟁에 의해서 지구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상호 연계됨으로써 지구의 주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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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개념은 진화를 생물 사이의 계속적인 협동과 상호 의존의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생물은 투쟁에 의해서 지구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상호 연계됨으로써 지구의 주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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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콘드리아의 DNA 구조가 밝혀지면서 드러난 것은,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핵의 DNA와는 별개의 독립적인 DNA를 가지는 개체(박테리아)였으며, 우리가 생명의 기본이라고 알고 있는 세포는 하나의 단일한 단위가 아니라 별개의 박테리아들이 모여 구성한 군체라는 것이다.
미토콘드리아가 없으면 대부분의 생명체는 숨을 쉴 수 없다. 산소가 대기중에 잔뜩 깔리게 된 약 20억년전 이후로 산소를 싫어하고 황산이나 염산을 마시는 생명체들은 극소수만이 살아남아 지하로 들어갔다. 산소를 호흡하는 능력을 지닌 미토콘드리아의 조상뻘되는 박테리아와 연합함으로써만이 생명체들은 살아남고,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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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박테리아가 모이고 모여 사는 군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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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박테리아가 모이고 모여 사는 군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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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이후의 삶을 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시민들로서 우리가 갖는 인간 혹은 '개인'이라는 것에 대한 '신앙'을 그지없이 짓밟아버리는 이 잔인한 진실 위에서 우리는 다시금 자기자신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뇌를 통해 수행되는 인간의 지성이란 것은, 기본적으로는 '꼬리가 달려있어 이동할 수 있는' 박테리아의 속성에서 비롯하는 것이다(스피로헤타).
그런데 김우재는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에 의한 진핵생물의 진화가 평화로운 공생이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가 진핵생물안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별로 없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엄청난 착취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반항을 하고 싶어도 방법을 찾을 수 없는 것일 뿐이다. 이들의 후손들이 진핵생물의 밖에서 별다른 변화없이 평화스럽게 살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가 된다.
린마굴리스의 공생이론은 '평화로운 공생'이 아닙니다. 그가 주장하고 있는 바의 공생은 최초에 '침입' 혹은 '포식'의 시도에서 일어납니다. 잡아먹으려다가 실패한 후 공존을 모색하게 되면서 공생하게 되는 것이죠. 마이크로코스모스 혹은 섹스란무엇인가를 보면 잘 나와있습니다. '평화로운 공생'이라는 오해를 누가 유포시키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착각은 린마굴리스의 주장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데 위의 문제제기 방식은 그점이 모호하여 린마굴리스의 주장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봅니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린 마굴리스는 자신의 이론이 다윈을 계승, 발전시킨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말감이 보기엔 그렇습니다.) 그 핵심은 '다산성'이 되지요. 결국 많이 살아남은 자들이 승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산업사회의 특징적인 경쟁'과 같은 것으로 보는 대중적인 오해에 반대하고, 실제 중요한 과정은 공생이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죠. --아말감
지금까지 지구 생물의 진화사에서 중요했던 것은 경쟁이 아니라 공생이었다 라는 구절은 마이크로코스모스가 다윈의 적자생존에 반하는 평화스런 공존의 모색으로 읽히기에 충분하죠. 그런 의미에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공생이 섭식과정의 부산물이라는 점이 위에 명시된다면 그런 오해의 소지는 조금 줄어들 수 있겠죠.
그리고 적자생존의 과정을 산업사회의 특징적인 경쟁으로 대중이 곡해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공생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으며, 실제로 그렇습니다. 마이크로코스모스라는 책은 공생하나로 생명의 역사전체를 설명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생존경쟁은 사실이며, 이를 대중이 오해하기 쉽다면 사실을 사실대로 정확하게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굴드가 다윈혁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오히려 마굴리스의 주장은 대중이 진화의 과정을 평화로운 생물들의 공존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줍니다. 그건 Herbert Spencer 의 의도대로 다윈을 해석하는 대중의 오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우재
방금 마이크로코스모스를 대략 검토해본 결과 지금까지 지구 생물의 진화사에서 중요했던 것은 경쟁이 아니라 공생이었다.라는 말은 린 마굴리스가 한 말이 아니라 아말감이 책을 정리한 과정에서 한 말인듯 합니다.(소스가 몇년 전에 쓴 글이라 확신이 안 섭니다.) 근시일 내로 책 전체를 검토해보겠습니다. 혼란을 초래하여 미안합니다. 그러나 생물의 역사에서 경쟁보다는 협동이 더 중요했음을 강조한 것은 사실입니다. (p.126)
그리고 지금까지 지구 생물의 진화사에서 중요했던 것은 경쟁이 아니라 공생이었다.라는 언명 역시 다윈의 적자생존론에 반하는 것으로 오독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이 곧 경쟁이라는 개념을 배태하는 것은 아닙니다.'모든 개체 혹은 모든 종이 살아남을 수는 없다는 사실' 자체를 경쟁상황이라고 보기 전에는 말입니다. 경쟁은 그보다는 좁은 개념일 것입니다. 즉 적자생존이라고 하는 대전제 안에서 개개의 생명들이 채택하거나 말거나 할 수 있는 전략이지요. 린 마굴리스는 적자생존을 곧 다산이라고 보고, 이를 위한 생명의 전략으로서 '공생'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아말감
좋은 책은 또 읽어도 좋습니다. 그럼 오해가 생길 요소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각자 문서를 수정하기로 하지요,. --아말감
see also 영화마이크로코스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