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특권계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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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를 만드는 것은 서울대생들이다. 서울대 학생들의 구성이 시대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많이들 간과한다. 예를들어 10년전, 그리고 20년전의 서울대생 생활기록부를 본다면 그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대략 92년을 기준으로(이때가 신세대론이 처음 나오던 때다) 서울대학에 입학했던 학생들의 비율은 농-어업-생산직 부모의 자식들이 70% 차지하던 것이 30~10%로 줄어버렸다 부모들의 학력도 중-고졸이 대부분이었다가 이제는 대졸 이상이 극히 대다수다. 그렇다 92년도부터 학력고사가 쉽게 출제되었고, 이후 김영삼 김대중정권이 해놓은 일이란 고작 대학 입시를 쉬운 문제들로 바꾸고, 외국어나 몇가지 특기를 가진 학생들에게 특례를 주는 길을 마련한 것 뿐이다. 그렇다 과외시키고 돈들이고 어려서부터 고생시키면 누구든지 자식들을 서울대에 보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억은 하는가 농민의 아들딸들이 서울대 수석을 년년히 해내던 때가 있었다. 그 비교육적이고 어리석은 학력고사식 사지선다 문제들이 난무하던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노력하면 누구든지 남보다 앞서가던 시대. 군사정권들이 이 땅의 민중들에게 희망을 주던 엽기적인 시대. 그런 수석합격자들이 그토록 노력해서 얻은 기득권을 자진해서 가져다 버린 시대.
요즘 농사짓는 집안에 어린 애들 있는 경우 있나? 시골에 가 보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애들이 줄었다. 조금이라도 여유있는 집은 부모 중 한 사람이 도시 등지에 자리잡고 자식 교육 시키려고 시골을 떠난다. 아니 농사짓는 것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농사 지어서 먹고 살 수가 없다. 그냥 사회가 바뀐 것이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감상적인 접근과 과장은 버려야 한다. --Aragorn
20년 전과 현재를 비교하려면 아마도 20년전 농어촌 가구수에 대한 서울대 진학률과 도시 가구수에 대한 서울대 진학률을 비교해야 할 것이고요. 이것도 농어촌 인구의 노령화를 감안한다면 농어촌 장년층(40~50대) 인구수 대비 서울대 진학률과 도시 장년층 대비 서울대 진학률을 비교하여 보아야 하겠지요. 이렇게 했을 때 차이가 크다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올 것 같네요. --그로모

2000년대에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보는 기울어진 시각은 한편으로, 경제력이 있으며 교육 잘받은 부모를 가진 학생들에 대한 선입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학생들에 대한 악의적인 시선은 어느정도 근거가 있기도 하다. 문제는 서울대학교 존재 자체가 아니라, 국립대학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내는 점이라는게 문제다. 서울국립귀족대학교가 아니라면, 국민의 70%를 차지하는 생산직 노동자의 아들 딸들이 서울대학교의 70%를 차지해야 하는 것이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여학생의 70%가 서울의 강남 출신인 현실은, 더이상 국립서울대학교가 국민들의 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낸다.

자기들의 기득권과 부를 그대로 재생산하려는 부모의 욕망에 떠밀려 서울대에 들어온 학생들은, 착하게도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려는데에 자신들의 모든 진지한 노력들을 경주한다. - 이게 2000년대 서울대학생들의 현실이다. 얼마전에 학부 2학년 후배가, 선배도 교수되려고 대학원에 갔죠?하는 걸 들었다. 같이 먹던 떡볶이에 얼굴을 쳐박아주고 싶었다. 그래 너는 부모에게 효도하려고 인생을 사냐? 제가 나와 사는 집이 전세인지 자기 소유인지도 모르는 후배는 교수로 출세하는 길과 고시로 출세하는 길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진지하게 이야기 했다.
그 꼴을 보면서, 서울대 입시를 쉽게 하는것이, 서울대 망국론을 펼치는 것이, 자립형 고급귀족고등학교, 초고급 귀족사립대 중심으로 남한의 교육체계를 바꾸어버리려는 교육재벌들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귀족 유치원 귀족 초등학교- 대한민국의 귀족들은 이제 제 말을 않듣는 시옷자 대문에 대해 시비를 걸고 있다
아아 어둡고, 굴종이고, 침묵이다. 아아 대~한민국 -namazaki


음.. 현재의 서울대학교가 이상적인 대학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말씀하신 부분은 서울대학교 자체를 비판하기에는 좀 약하지 않나요? 국민의 70%를 차지하는 생산직노동자의 아들 딸들이 서울대학교의 70%를 차지하는 것이 정상적인데도 그렇지 못한 것은 서울대의 문제라기 보다는 초,중,고교의 공교육 문제 아닌가요? 그리고 서울대 입시를 어렵게 한다고 해서 서울대 구성원의 70%가 생산직 노동자의 아들, 딸들로 채워질 지도 의심스럽습니다. 물론 그런 현실이 좋다는건 아닙니다. --지원
공교육 문제에 한표 --그로모

쉽게 말해 지원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요즈음의 공교육만 가지고는 서울대나 명문대가기 힘듭니다. 따로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그 노력과 공부양의 보충이 과외로 이루어지기 쉬운 것입니다. 물론 과외없이 혼자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만큼 그런 시스템의 취약점이 결국 조금이라도 여유있는 집 아이들이 서울대에 가기 쉬운 현실을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또한 대입선발시스템의 잦은 변화도 입시 제도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접할수 있느냐가 대학진학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제가 다닌 공립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오히려 사설 학원이나 인터넷에서 직접 학생이 얻은 정보보다 선생님이 빈약한 진학정보를 쥐고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결국 중,고교 시절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공교육기관에서의 학생에 대한 관심이 가장 문제인 것 같습니다.--JongHoon
30년 전에도 공교육은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단지 교육에 열성인 부모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문제가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지금의 문제를 확대시킨 것은 나쁜 공교육만으로도 좋은 대학을 갈 수 있게 하겠다는 발상에서부터라고 봅니다. 쉬운 시험 문제만을 내서 대학입시를 치르도록 하는 것은 얼핏 공부 못하는 사람도 시험을 잘 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이라고 보이지만 사실은 안 그렇습니다. 몇 사람은 덕을 보는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통계적으로) 보면 못하는 사람들의 절대점수만 상향될 뿐 상대적으로는(등수는) 차이가 없습니다. 쉬운 시험이 더 나쁜 것은 따로 있습니다. 예전(10~30년 전)에는 시험문제가 어려워서 서울대 수학시험은 합격자 평균이 20점 정도인 적도 있습니다.(이것도 점수를 올려 발표한 것이라는 설이 :) ) 이러한 시험을 잘 보려면 정말로 열심히 노력하여야 하고 또 자질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자질은 꼭 상류층만이 갖는 것이 아니지요. 따라서 농어촌이나 산골에서도 얼마든지 서울대학교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상류층 자제도 대부분 자기 스스로 공부해서 들어왔지요.) 이러한 시험에 과외공부도 있었지만 학생의 자질이 안 되면 한계가 많았었습니다. 그러나 쉬운 시험으로 바뀐 뒤에는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보다는 쉬운 문제를 잘 익히고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관건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공부는 학원과 과외가 가장 잘 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학원에 갈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현재 시험에서는 비교적 좋은 점수를 받을 수는 있지만 절대로 학원에 간 학생 보다 더 잘 할 수는 없는 시험 제도인 것이라고 보입니다. --그로모

'서울대 여학생의 70%가 서울의 강남 출신' 이란 말은 어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현실은 개탄할 게 아니라 왜 그런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여자가 남자보다 고등학교에 오면 수학을 못한다느니 하는 말을 믿으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 학교 성적을 위시한 지적 능력은 가정에서의 대우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리게 되죠. 단적으로 '서울의 대학에 간 오빠 학비를 대기 위해 상고에 가는 여동생' 신화가 존재했던 시대에 남녀지능차 운운하는 것은 웃긴 일 아니겠습니까. 서서히 그런 일은 없어지고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지만, 부모, 특히 어머니 쪽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가진(혹은 가졌던) 가정이 몰린 곳에서 일어나는 여학생의 학력상승은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 소위 명문대 진학률이 높다면 과외를 해서가 아니라 역할 모델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데요. 모든 사람을 신생아때부터 집단 훈육을 하지 않는 이상, 지적 분위기의 대물림이란 어쩔 수 없는 불평등이 아닐런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20년 사이에 대학에 간 사람이 크게 늘어났다는 현실은 간과하는 것 아닌가요. 어쩐지 숫자장난같군요. --기린

가정내에서의 대우, 역할모델, 지적분위기의 대물림, 다 좋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명문학교 진학에 대한 동기부여의 역할 이상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동기부여와 근성과 오기를 시험하는 구시대적 동기부여 사이에 대체 어떤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어서 70%라는 믿기 힘든 수치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요? 이 수치는 너무나도 엽기적이어서 할말을 잊게 만드는데(솔직히 말하면 조사착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니, 그렇다면 '서울대 여학생의 70%가 서울의 강남 출신'이라는 사실명제에는 어폐가 없지 않습니까?
지적 분위기의 대물림에 대해서는, 강남의 수준 높은 분들 가정내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신문, 책, 인터넷, TV 등 매일 접하는 미디어에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인들이 날마다 등장하는 이 시대에, 가정에서 "가족, 계급, 국가의 기원" 따위의 주제를 가지고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귀족적인 품위와 소양을 갖추지 않은 사람에게 인문학적인 이슈들은 역시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요? 생각해보면 강준만이 욕을 먹어 마땅한 이유를 알 것도 같군요.
저는 학력고사 세대라서 수능시험에 어떤 대단한 문제들이 출제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자습서와 문제집 속에 무슨 대단한 지적 성취의 다이제스티브가 들어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하겠군요. --nohmad

'서울대 여학생의 70%가 서울의 강남 출신' 이란 말은 어폐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서울대 스스로 서민을 위한 대학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이 교육부 지원의 대부분을 받아 챙기는 '국립대학'으로서의 존재 이유 입니다. 정원의 50% 이상을 농어촌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던지,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먼저 챙기는 국민의 애정과 사랑을 받을수 있는 대학이 되야하지 않을까요. 학력 저하라구요? 대학이 서울대 하나만 있는건 아니지요. --영후
이런 논리라면, 대학이 서울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서울대가 농어촌 학생들만의 대학으로 돌변할 이유는 전혀 없지요? 전국에는 많은 국립대학교가 있고, 국립/사립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대학에서 성적우수자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전액장학금을 제공할 대학에 진학하면 됩니다. 서울대 아니면 대학도 아닌가요?
서민을 위한 대학이 객관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거꾸로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로 발전하는 것은 지나친 억지입니다.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똑같은 내지는 비슷한 공교육 제공의 기회를 제공받는 것이 평등한 것이지, 가난하다고 평균 이상의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납득할 수 없군요.
서울대가 교육부 지원의 대부분을 받아 챙긴다는 주장은, 글쎄요... 서울대가 교육부 예산을 받아 삥땅치는 것도 아니고, 교수들 월급으로 마구 뿌리는 것도 아니고(실제로 교수연봉을 보면 서울대가 가장 낮은 축입니다. 사립대에 비해서는 20~40% 가량 낮은 건 기본이고, 지방 국립대에 비해서도 낮지요), 장학금을 물쓰듯 뿌리는 것도 아니고(주로 외부 장학금이 많지요. 학과별로 등록금 전액면제 혜택을 받는 사람은 그냥 성적순으로 2~3%입니다.), 학교 시설을 사치스러운 고급으로 치장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서울대가 사라져서 좋은 점도 많겠지만, 대다수 비인기 학문의 씨를 말리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Aragorn
물론 대부분의 대학에서 성적우수자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고 있지만, 현재 상황은 그 혜택을 받기 위한 '우수한 성적'은 과외나 학원등의 투자가 어느 정도 받춰줘야 하는 현실입니다. 물론 돈 한푼 안들이고 학교 수업 만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고 대학이 들어가는 학생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요 사립대에서 합격자중 강남등의 부유층 자녀가 증가하는 추세가 보여주듯이 최소한의 사교육비도 감당하기 힘든 학생들의 거취가 좁아지는 현실입니다. (물론 이것은 '성적에 대한 투자' 만이 원인이 될수 없음은 인정합니다.) '객관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거꾸로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라고 제 의견을 받아 들이시는 원인에는 현재의 서울대=최고의 환경 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서민을 위한 대학 이 계속 유지된다면 서울대가 '가난하다고 평균 이상의 특별 대우를 해주는' 대학이 아닌 '가난하여도 일반 대학에 뒤쳐지지 않게 대학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대학' 으로 될 것 이고, 저의 주장입니다.
  1. '가난하여도 일반 대학에 뒤쳐지지 않게 대학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대학'은 수없이 많습니다. 서울대 입학할 점수로 서울소재의 좋은 대학들에 4년 장학금 받고 다닐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쓸만한 대학이 서울대 하나밖에 없습니까? '가난한 학생들만을 위한 대학'은 없지만, 어느 대학이나 가난한 학생들이 혜택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2. 사교육이 대학입시에 필수적이라는 의견에도 전혀 동감하지 않습니다. --Aragorn
    전액 내지 반액 이상의 장학금을 지원 받기 위해서는 굉장히 높은 점수를 요구 합니다. '공부 열심히 하여 성적을 올리면 될 것 아니냐' 라는 간단한 논리만 내세운다면 가난하면서도 딱히 저 정도의 장학금을 받을 수 없는 많은 학생들을 배제해 버리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사교육이 대학 입시에 필수적이라는 의견엔 전혀 동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저의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대학입시' 를 타겟으로 한 지금의 공교육은 공교육 내의 운영 자체가 사교육에 일정 부분 의존하는 상태입니다. 수십만원 짜리 문제집을 교과서로 사용해버리는 고3의 현실 입니다.
    뭔가 과장되는 것 같은데, 대학교육 과정도 의무교육 정도로 만들고 교육비의 수준을 대폭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 아닌가요? "서울대" 하나만을 물고 늘어질 문제가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대학 다니는 것 자체"에 비용이 많이 드는데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사실 별 대책 없습니다. 학기별 등록금을 10만원대로 떨어뜨리는 수밖에. 참고로 KAIST가 이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전액, 반액 장학금을 지급받기 위해 굉장히 높은 점수를 유지해야 하고, 학교에서 공부만 해야 한다는 사실을 불평하는 것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답밖에 할 수 없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에게 자녀의 대학교육으로 한학기 3~4백만원 정도의 등록금과 기타 필수적인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큰 부담입니다. 대학만 이런 것 아닙니다. 사회 구석구석 모든 곳에서, "교육"에는 많은 비용이 들고, 기득권자 외에는 그 비용을 감당하기 힘듭니다. 원래 부모들은 자식이 사립대에 입학했다고 하면, 등록금 걱정부터 곧바로 시작하는게 당연한 "상식"입니다. --Aragorn

또한 서울대가 교육부 지원의 대부분을... 이하의 주장은 서울대를 공적 자금을 수 조원씩 받는 부실 기업 내지는 은행으로 대체해도 통하는 논리가 되는것 같습니다. 교육부 지원의 대부분을 지금껏 받아왔다면 세계적인 명문 대학이 될 수는 없었던 건가요 ? --영후
글쎄요. 별로 답할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요? 교육부의 서울대 지원의 규모가 세계적 명문대학 수준의 1/10 하다못해 1/20이라도 되나요? 뭔가 한참 한참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세계 500위 어쩌고 이야기는 무의미한 숫자 장난이라는 걸 아실테고요.
그렇다면 국내의 사립대에 비교해 보아도 서울대가 교육부의 지원에 비례할만큼 상대적으로 엄청난 업적을 올려온것은 아니지 않나요? 아니 이것은 어차피 교육부의 서울대 편중 지원의 불합리성을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서울대입시에서 존재했던 불평등한 역사적 과오를 예로 들어 보일까요? 제가 알기로는 92년부터 농어촌 특별전형 제도를 검토하고 시행하려 했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1995년부터 외국어고등학교 특례입학 제도가 무려 5년간 존속했습니다. 그 기간동안 외고출신 학생들은 내신성적은 무조건 수능 성적에 따라 대부분 1등급을 받았고, 이 특례 제도가 적용되는 불문과, 독문과, 서문과, 노문과 는 정원의 95%가 외고학생들로 채워졌습니다. 제 생각에는 지방 학생이 외고 학생들보다 능력이 객관적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들 사이에 차이나는 것은 부모들의 경제적인 능력 뿐이죠. 강남지역의 부모님들의 교육열이나 교육수준이 높아서 자연스럽게 여학생들이 서울대에 많이 들어올까요? 그렇다면 부모의 결정이나 의지가 자녀의 대학진학을 가부를 결정하는 일은 긍정적인 일인가요? 다른 지역의 부모님들은 무식해서, 여학생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필요없다는 식으로 의식이 후진적이어서 대학에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일까요? 지적분위기의 대물림을 긍정하는 것은, 마치 부의 대물림을 긍정하는 것과 같이, 불평등의 대물림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객관적 사실과 완전히 거꾸로입니다. 서울대의 농어촌 특별전형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정원의 3% 이내에서 따로 우대하여 합격시킵니다. 농어촌 특별전형 비율을 확대하느냐 마느냐로 몇년전 왈가왈부한 적은 있지만, 그렇다고 농어촌 특별전형을 10% 이상 늘일 수 있다고 보시는 건 아니겠죠?
그리고 외국어고등학교와 과학고에 대한 "비교내신제" 적용은 그 역사가 훨씬 더 이전부터입니다. 93학번은 분명 비교내신으로 입학했고, 비교내신제가 사라진 것은 99학번부터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비교내신제는 서울대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부의 특수목적고 육성의 정책입니다. 서울대와 하등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외국어고의 비교내신제는 어문계열에 한정되어 적용되었고, 과학고의 비교내신제는 치의대를 제외한 자연계열에 한정되어 적용되었습니다.
또 한가지 더. 외고학생들의 객관적인 능력이 지방학생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서울대 합격자의 대다수는 내신 1등급입니다(비교내신제가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지방의 비평준화지역이라면 또다른 문제이지만.) 외국어고 학생이 모두 부유층 자제일 거라 말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편견입니다. 왜 외국어고 출신들이 주요 대학 어문계열을 독점했는지 아십니까? 단순히 외국어고의 숫자가 많아져서, 외고 졸업생의 숫자가 많아져서 그랬습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후반까지 서울의 중학생들은 인문계 지망자는 외국어고, 자연계 지망자는 과학고로 진학하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그 시절 중학생들 가운데 학교에서 공부 잘한다는 애들은 대부분 특목고 시험보는게 관례였습니다. -Aragorn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부모님이 무식해서 여학생들을 교육시키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요. 무식하지도 않고 보통 사람이겠으나, 지방에는 연대나 고대에 붙어도 굳이 부산대에 보내는 부모도 심심찮게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학생에게 충분한 인센티브가 생길까요? 지적 분위기의 대물림이란 지능의 유전자적 측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학력의 대물림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외고생의 스테레오 타입을 강남의 외고에 한정시키는 것 같군요. 강북의 대일외고, 서울외고 혹은 명덕외고에 가면 학생들 가정의 경제사정은 일반고와 거의 다르지 않은 분포입니다. (강남의 외고들도 주위의 일반고와 비슷하지요) 그리고 외고는 지방에도 상당수 존재합니다. 과천외고, 경북외고 등, 서울강남-지방의 이분법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기린

가장 평등한 입시 제도는 가정환경의 차이에 상관없이 스스로의 열의와 노력에 의해 성공을 거둘수 있게 하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대학입시의 난이도가 쉬워질 수록 학원이나 과외등의 사교육의 약발이 잘 듣게 마련입니다. 사실 서울대가 지금까지 교육환경에 비해 많은 성과를 올릴수 있었던 이유는 훌륭한 자질을 가질 수 있는 학생들을 독점적으로 뽑을 수 있었다는 점 하나 뿐일것입니다.(이러한 독점은 해소되어야 할 과제이긴 합니다) 오히려 서울대가 선발해야 하는 학생들은 부모의 경제적 사정한계때문에, 다른 학생들처럼 과외활동이나 특기를 개발하지 못한 학생들이어야 합니다. 오히려 돌밭에서 진주를 찾아내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어느새 서울대는 사라져 버릴겁니다. 2005학년도 부터는 수능에 실업계고등학교 과목까지 출제됩니다. 지금까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던 과목만 수능의 출제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실분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서울대 입시에서 학생들에 대한 수능반영에 가산점을 주는 방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압니다. 좋은 일입니다. 불평등을 천부적인 것으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야기 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namazaki
글쎄요. 다른 대학과는 달리 서울대에만 특별히 부유층 자제가 많이 입학하는 모양이지요?
불평등을 천부적인 것으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나요?
실제 사실과 문제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편견과 오해로 문제를 접근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서울대가 학생들 잘못 뽑아서 다른 학교에 더 우수한 학생들이 몰린다면, 그 또한 환영해야 할 일입니다. 서울대의 1개대학 정점이 무너지고 다양한 대학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니 말입니다. --Aragorn
이상하군요. '대학입시의 난이도가 쉬워질수록 과외나 사교육의 약발이 잘 듣게 마련'이라니 교육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수능이 쉽건 어렵건 과외의 종류와 내용은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이 과외를 한다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입시가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남들 다 받는 공교육만으로는 불안한 엄마들이 더 시키려고 하는 것이죠. 그러나 대부분이 과외를 시키게 되면 과외하는 아이가 유리한 것이 아니라 안하는 아이가 불리하다는 인식이 팽배하게 됩니다.
게다가 단지 과외를 한다는 사실이 성적을 올려주지도 않습니다. 교육이란 수용자의 적극적인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의미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지금의 수능과 공교육 상황을 보면 돌밭에서 진주를 골라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수능 제도를 바꾸는 것은 공교육 제도의 보완에 비하면 훨씬 간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수능 제도의 변용 자체는 미시적인 차원에 지나지 않죠. 공교육이 무너지는건 과외 때문도, 학생들의 공부하고자 하는 열의 부족때문도 아닌 공교육 자체의 부실 때문입니다.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학벌 불평등, 지적 불평등을 논하려면 공교육의 차원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 아닐런지요. --기린

공교육 정상화에 대하여 잡종은 인성교육 내지는 진짜 사람 만드는 교육이 안되고 있다는 점에서 공교육이 부실한것은 사실인것 같은데 학교에서 입시 교육을 잘 못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 들어서요 그럼 학교에서도 학원에 버금가는 경쟁력을 갖추라는 말인지 혼란스럽습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공교육에 개개인 한 사람을 신경써야하는 인성교육을 바라는 건 지나친 이상주의 같습니다.(물론 그런 이상을 지향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공교육의 목표는 학교교육만으로 고등교육기관 입시를 치를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어야 합니다. 물론 대학에 가고자 하지 않는(그러니까 학문에 뜻이 없는) 사람까지 어쨌든 인문계 고등학교에 우겨넣어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구조가 문제겠으나... 당면한 문제는 학교교육이 전혀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기린

''교육의 경쟁력이라..무슨 군인 훈련시켜서 싸움판에 내보내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제가 보기에는' 우습군요. 혹자는 서울대나 연대, 여자의 경우 서울대나 이대를 부르주아들의 자녀들이 통과해야 할 곳으로 얘기하더군요. 그곳에 들어가기만 하면 자유롭게 부모의 '돈'을 쓸 권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네들은 기를 쓰고 그곳에 들어가려 한다면서요. 물론 그나마 생각없는 친구들은 그 같잖은 입시공부마저도 안 하겠지만요. 어쨌거나 그네들은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공부에 매달리겠죠. 입시 문제도 쉬워지고, 필요하면 옆에서 언제라도 가르쳐줄 과외교사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교육부의 의도와 반대된다? 아직도 정부의 정책 의도를 표면 그대로 이해하는 순수한 분이 계시다니 반갑네요. 박정희의 농간으로 한국의 입시지옥이 생겼으며 80년대 몇몇 친구들을 자살로 몰았다는 것은 아시는지요. 그 때 박정희가 발표한 정책의 목적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문제는 서울대 입학생 학부모의 직업과 거주지가 각각 전문직과 서울 강남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엘리트 집단의 상징(실제로는 절대 아니지만)처럼 돼버린 '명문대출신'이라는 간판이 '돈'을 가진 집단의 자녀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겁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하는 것은 뭔가 이상합니다. --조원장''

학원가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저로서는 이 문제에서 왜 논술 제도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이른바 상위권 대학 진학에서 "서울, 강남, 중산층"의 진학률을 높인 건 다름아닌 논술과 구술 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논술이나 구술은 문화자본의 차이에 의한 교육 재생산을 더욱 용이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자면, 저는 논술에서 그토록 자주 출제되는 "현대 사회의 속도 문제", 그러니까 현란한 자본주의의 파시스트적 가속도를 설명하다가, "우리 동네는 9시만 되면 불 다꺼지구요, 버스는 30분마다 오고 집 뒷산에서는 개구리가 울어요.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구, 감도 안와요. 그런데 왜 저희가 이런 걸 공부해야해요?"라고 순진하게 묻는 농촌 지방 출신 아이 앞에서 당혹스러움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학교 성적이 잘 나오는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지방의 가난한 학생이 "보보스"에 대해서 무언가 알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많은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에 초점이 흐려지기 쉽습니다만, 우선 페이지 이름으로 제기된 문제에만 집중을 해보죠. 공교육 자체의 붕괴라든가 서울대의 경쟁력 이야기를 하면 얘기가 너무 산만해지니까요. 그리고, 교육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체험"을 갖고 이야기한다는 건 어떤 함정에 빠지기 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자기가 속했던 조건"에 대해서만 익숙해져 있기 쉽기 때문이죠. 90년대초부터 지금까지의 10년간 교육 제도는 변화해왔고, 교육 풍토도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지역차와 계층차가 엄연히 존재하죠. 저는 (역시 "제 체험"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변화해온 입시 제도에서 학원의 역할과 비중이 점점 더 커져왔다고 말하겠습니다. 수시 입시 제도만 해도 그렇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학원은 학원 연합체입니다. 서울 시내의 학생들 수천명의 수시 관련 자료를 종합하고 정리합니다. 다른 종류의 학원 연합체들도-대성, 종로, 기타 등등- 그렇게 하는 걸로 압니다. 이런 정보량에서 학교가 학원을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학원의 서비스가 고도화될수록 비용의 문제가 발생하고, 그 고비용을 댈 수 있는 건 특정계층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서 학부모가 자녀의 교육에 대해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건 돈뿐만이 아닙니다. 시간도 엄청나게 듭니다. 부모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프로젝트와 프로그램 매니지먼트를 해야 합니다. 적어도 일류대를 바라본다면 중학교, 심지어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관리 체제"를 만들어나가야 하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구요. 요즘 학원은 (특히 논술학원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기보다는 그런 학생/학부모 입시 컨설턴트 및 학생 관리를 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공부할 마음이 없고 싸가지없는 애들은 어차피 학원을 해도 별 효과를 못본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학원의 수준과 역량을 너무 낮게 보신다고 생각합니다만 ^^;), 비용만 지불하면 아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마음을 잡게" 만들어주는 것도 학원 강사들의 역할입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본다면, 1년 정도의 지속적인 매니지먼트로 돈많은 집에서 싸가지없고 게으르고 공부할 마음없고 부모를 미워하는 아이 하나를 상위권의 착실히 공부잘하는 꿈많은 학생으로 바꾼 사례를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돈" 때문에 그렇게 하는 강사는 아닙니다만, 어쨌든 그렇게 하는데도 고비용이 든다는 건 사실이고, 그런 강사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기 위해서는 꽤 많은 정보 구입비용(시간, 노력)이 든다는 겁니다. 제 경험으로는, 그런 일을 하고 다니는 학부모들은 서울 시내 특정한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습니다.

뭐 간단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저한테 성적이 중간정도인 임의의 중학생 하나를 뽑아서 "얘를 서울대에 보내주실 수 있나요?"라고 누가 묻는다면 저는 그 아이를 서울대에 보낼 수 있는 확률은 7,80퍼센트라고 말하겠습니다(나머지는 연고대에 보내겠지요, 아마). 입시 제도란 별 거 아닙니다. 적절한 투자와 관리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잘 활용하는 (혹은 거기서 살아남는) 사람들이 특정 지역의 특정 계층이라는 건,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구요. 다만 그게 너무 잘 되고 있어서 저처럼 현장에 있는 사람도 놀라울 뿐입니다. --Closely

이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교육의 정상화밖에 없다고 봅니다. 합법적인 방법으로 사교육에 투자하여 수험생의 시험성적을 끌어올리는 것에 누가 어떻게 제재를 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방법은 70년대에도 있었고, 80년대에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80년에 서울대에 입학했었는데, 전과목을 개인교습, 그룹과외로 지도받았습니다.
현재의 문제는 이 시스템이 아주 안정화되어 있고 그 규모가 상당히 커져서 극소수의 돈 많은 사람들만 쓰는 방법이 아니라, 상당히 보편화되어 가고 있으며, 그것이 대세처럼 굳어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정석적인, 공교육의 정상화 이외에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지금의 현상 자체가 공교육이 부실해지고 사교육이 많은 부분을 떠안음으로써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니까요. --Aragorn

잡종은 다시 궁금해지네요. 그럼 Aragorn님이 생각하시는 공교육 정상화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진짜로 학교 교육만 받으면 시험을 잘 볼 수 있게 해서 사교육의 수요를 줄여 보는것인가요 아니면 대입 시험 제도를 뜯어 고쳐서 경쟁자체를 원천 봉쇄하여(예: 대학 평준화)를 통해서 사교육을 차단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아님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인가요.
제가 교육전문가도 아니고, 그저 이상적인 시스템에 대해 상상하는 수밖에 없는데, 사교육비에 들어가는 돈만큼 공교육 시스템이 돈 들이면 충분히 좋은 결과 나올 거라고 믿습니다. 물론 다들 세금 많이 내야죠. 지금보다 훨씬 더.
경쟁자체의 원천 봉쇄는 무의미한 삽질입니다. 대학 평준화는 해서도 안 되고, 되지도 않습니다. 특권계층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상적인 교육, 학문의 발전 등의 기본적인 기능을 직접적으로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이미 서울대에 미적분 제대로 못하는 신입생이 많습니다. 미적분 잘 못하면 대학 과정을 전혀 이수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 어쩔 수 없이 따로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공교육이 정상화되면 많은 사교육비용의 성과가 미미해집니다. 공부라는게 열심히 한다고 무조건 좋은 결과 나오는게 아니기 때문이죠. 지금의 문제는 한달에 30~40만원 들여서 과외하고 학원 보내면 분명히 눈에 띄게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과외하고 학원 보내어도 별 소용없게 만들려면, 교육 수준을 떨어뜨리는게 아니라, 학교 교육의 수준의 질을 높이는 것이 정석입니다.

실제로 이 비슷한 문제가 대학원 유학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공부 잘 해서 전액 장학금 받고 생활비 보조 받아서 유학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지 못하면 년에 4~5만불 드는 학비, 생활비를 본인이 감당해야 합니다. 년에 5~7천만원입니다. 이 비용 감당할 수 있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이 비용 지출하고 공부하면, 당연히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외국에서 학위 땄다는 것 자체로도 간판을 달게 되죠.
장학금 받아 입학하는 사람과 생돈 내고 입학하는 사람 사이에 실력 차이가 있다고 보십니까? 비슷비슷합니다. 사람마다 어떤 학교에선 장학금 받고 어떤 학교에선 생돈 내야 한다고 통지가 옵니다. 가난한 사람(사실 대다수죠. 누가 2~5년 동안 매년 1억원씩 학비로 부담할 수 있습니까?)을 위해 그 학교들이 학생들을 거의 공짜로 교육시켜야 할까요? (외국인에게 그럴 필요 없다, 미국 주립대학은 주민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교육기회를 제공한다, 등은 논외로 하죠. 주립대의 저렴한 교육비용이 우리나라의 대학등록금 수준입니다.)
그런데 유학가기 위해 과외받고 학원다닌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예외적인 영어 빼고). 사교육 자체가 존재하질 않습니다. 중고등학교에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비슷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유학가는 친구들을 보면, 적어도 본인 외의 가족의 생활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예외적인 영어'에 있어서도 본인의 노력이던지 가족의 후원이던지 많은 투자를 해서 양질의 교육을 받더군요. 예컨대 어학연수 같은 게 그렇죠. 공부에 뜻은 있으나 부직으로 가족의 생계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 기본적인 전공과 영어 공부에 투자할 시간도 모자랍니다. 따라서 지레 유학은 포기해버리기 쉽죠. 물론 이 악물고 하면 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옆에서 편하게 가는 친구들 보면 박탈감을 느낍니다. 유학, 특히 미국으로의 유학은 대학입시와 같은 선상에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돈'이 문제가 아닐는지요. --조원장

가족의 생활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이 유학을 가기는 어렵죠. 물론 한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도 상황에 따라 최선의 선택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유학가기 위한 영어공부와 언어연수는 별 관계없습니다. GRE 공부하는데 일상회화가 무슨 관계가 있나요. 유학가는데 영어점수가 당락을 결정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영어는 일정기준만 만족하면 더 이상의 가산점이 없기 때문에, 그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어쨌거나 제 주위에서 유학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돈 안 들이고 유학갑니다.
돈 없어서 유학 못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불과 20~30년 전에는 돈 없어서 대학 못 가고 공부 못한 사람 아주 많았습니다. 옛날에 학교를 많이 못 다닌 사람들은 가정형편 때문에, 오빠 뒷바라지 하느라 여동생은 공장 다닌다든지, 동생 뒷바라지 하느라 맏이는 밖에 나가서 일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기에 남동생, 오빠를 위해 희생된 많은 여자들이 있었죠.
그런데 그런 상대적인 "박탈감"을 가질 수는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공부를 맘대로 못해서 한맺힌 부모가 돈을 벌어 그 아들/딸은 편하게 공부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 아들/딸의 친구 중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위화감 느끼고 박탈감 느낍니다.
이 세상에 성공의 기준이 하나밖에 없다면, 골치아픈 문제가 되겠지만,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은 제각기 다르고, 설사 성공의 기준이 "돈 많은 것" 하나라 할지라도, 돈 버는 방법은 수없이 많습니다. 공부 잘한다고 돈 많이 버는 것, 절대 아닙니다.
돈 많은 집 아들이 부럽고 박탈감을 느낀다면, 잘생긴 사람 좋아해서 나를 차버린 그녀/그도 밉고, 잘생긴 놈/년도 부럽고 박탈감 느껴야 할테고, 조금만 공부해도 성적 잘 나오는 머리 좋은 놈/년도 부럽고 박탈감 느껴야 할테고, 타고나게 남들보다 좋은 것이 있는 사람은 모두 다 부러워해야할 겁니다.

제 의도는 이런 것입니다. 예전에는 대학을 나와야 소위 '성공'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사람대접이라는 표현을 쓰시더군요.) 그런데 요즘에는 대학 나와봤자 예전에 누렸던 것을 얻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대학원을 나와야 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세칭 명문대 다니는 친구들 얘기로는 공부를 '제대로' 하고, 나중에 '뭔가 하나' 하려면 유학을 다녀와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실제로 유학을 다녀오지 않고서 이 땅에서 학문(당연히 서양의 학문이겠죠. 제가 아는 분야는 이공계뿐이지만요)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서울대나 카이스트 이공계 교수 중에서 본교 박사출신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만 봐도 알 수 있죠. 제가 다니는 학교만 해도 '한다' 하는 사람들은 모두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하더군요. 물론 아직은 우리나라의 학문적 성숙도가 떨어져서 유학이 필요한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동경대생들은 유학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하더군요.--조원장
이것은 한국의 이공계열의 특수한 문제와 서구에 종속된 근대 학문의 문제, 두 가지가 엮인 것이라 봅니다. 한국의 이공계열은 공급과잉상태입니다. 박사학위받고 연구실적 좋다고 교수된다는 보장없고, 교수 못 되면 그동안의 공부와 학문적 업적은 거의 무용지물입니다. 박사학위 내세워서 약장수하지 않는다면. 동경대생들이 유학 필요성 못 느끼는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지만, 서울대도 유학 필요성 못 느끼는 경우 많습니다. 하지만 "간판"이 필요하기 때문에 유학하는 경우도 꽤 많고, 전반적으로 서울대의 연구환경과 동경대의 연구환경을 비교하자면, 당연히 돈 많이 쏟아붓는 동경대가 더 낫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유학가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이공계열 분야는 미국이 주도권을 꽉 쥐고 있고, 이것은 뭐 어쩔 수 없는 현재 상태이죠.
참고로 얼마전 교육부에서 듣기에 따라 황당한 정책을 만들어 추진하고 있는데, 외국 국적을 가진 교수진을 서울대에 초빙하여 평균 연10만불 정도의 연봉으로 강의, 연구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외국에 국적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는 10만불 연봉을 받게 되고, 누구는 그에 못지 않은, 아니 더 나은 실력과 커리어를 갖고 있으면서 단지 한국국적이라는 이유로 연봉 2500~3000만원 정도 받습니다(조교수로 부임하면 이 정도 연봉 받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성공, 개인적 성공이 "학력"과 상관관계가 물론 있겠지만, 절대적인 지표는 못 된다고 봅니다. 아주 잘 나가는, 유명한 사람 중에는 학력 좋은 사람이 많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학력 좋은데 별볼일 없는 사람 널렸습니다. 어느 계층에서나 경쟁은 아주 심하고 빡셉니다. 어리버리하게 돈 쓰면서 유학가느니 좋은 회사 취직해서 일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유학이라는 것이 선진 학문을 배우러 가는 것인가, 아니면 예전에 대학졸업생들이 누렸던 '특권'을 위한 것이냐가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전자의 이유라 믿고 싶지만, 흔하게 볼 수 있는 제 주변의 사람들(그래도 한국에서는 꽤나 공부를 한다는 축들)을 보면...글쎄요. 미국의 어떤 학교에 가야 한국에 와서 사람들이 알아주고, 교수를 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것을 보면..--조원장
이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는데요? 학문 배우는 것과 '특권' 누리는 것은 동일한 연장선에서 볼 수 있는, 당연히 양립되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기왕에 많이 공부하고 학문적 성과를 낸다면, 당연히 그 결과를 인정받기 쉬운 '간판'을 원합니다. 그 사람의 능력과 성과만큼, '특권'을 누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요. 미국에서 공부만 하고 때려치울게 아니라면 - 이것이야 말로 지적 허영입니다 -, 한국에서 어떻게 자신의 길을 계속 펼쳐나갈 것인지, 어떤 선택이 좋을지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또 하나, 왜 미국에서는 장학금을 줘가면서 다른 나라의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제3세계 학생들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인데요. 그것과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해방 이후 미국의 대한 정책에는 일관되게 미국적 사고방식의 주입을 위한 교육정책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적어도 전두환 때까지는 그렇지 않나 싶네요.) 제가 억지를 부리는 걸까요? --조원장
장학금 줘서 외국인 받는 분야는 정해져 있습니다. 미국 의대로 유학간다는 사람 본 적 있나요? 미국 의대는 유학 못 갑니다. 받아주지 않으니 말입니다. PhD는 간혹 가능해도, MD는 거의 불가능하고, 미국에서 MD따도 한국 MD없으면 우리나라에 마찬가지로 발 붙이기 힘듭니다. 미국에서 외국인 유학생 받는 분야는 주로 자국의 학생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비인기학과이고, 이런 분야는 온통 외국인 교수에 학생 절반은 중국인, 나머지는 온갖 국적의 인종집단, 이런 식입니다. 미국정부가, 한국정부가 어떤 정책을 갖고 있든, 학생을 뽑는 건 교수 맘이고, 각자 교수는 어떻게든 학문적 성과를 만들어 자신의 연구실을 발전시키는 것이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외국학생 뽑습니다.
이공계열이라도 전산관련, 통신관련된 쪽은 유학가기 매우 힘듭니다. 상대적으로 자연과학쪽은 쉽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돈 되는 분야 선호하고 돈 안 되는 자연과학 홀대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참고로 서울대 자연대에 외국에서 유학온 대학원생 꽤 있습니다. 주로 우리보다 경제수준 못한 곳에서 옵니다. 러시아도 포함되죠.
마지막으로 영어 얘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GRE 점수 잘 받으면 유학은 가겠죠. 그러나 제가 말한 친구들이 고민하는 것은 GRE가 아니라 가서 어떻게 공부를 하느냐입니다. 그네들도 충분히 장학금 다 받고 유학은 갈 수 있는 실력이 있는 친구들이지만, 영어로 강의가 진행된다는 것에 부담을 갖더군요. 어학은 다른 공부와 달리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리 영어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유학에 자신감을 갖게 되겠죠.--조원장
이건 상당부분 어쩔 수 없는 문제이고, 제 주위 사람들은 어학연수 효과봤다는 사람 별로 못 봤습니다. 대다수가 어학연수 없이 그냥 유학가서 열심히 개기면서 잘 합니다. 남자가 유학가는 전형적인 경우가 학부 3학년 마치고 카추사로 군복무하고 복학해서 원서넣고 졸업하자마자 그 다음 학기에 유학가는 겁니다. 물론 운이 좋은 경우이죠. 언어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TA(수업조교)를 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는 영어실력 요구수준이 더 높고, TA를 해야 생활비를 벌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학교마다 기준이나 제도가 천차만별 다릅니다.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요.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이미 그렇게 된 걸 어쩌란 말이냐'의 논조인 것 같습니다. 잘못이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죠. 더 이상 여기에서는 논의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다른 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조원장
전혀 아닙니다. 언어문제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논의는 따로 하는게 낫겠군요.
이렇게 서울대의특권계층화라는 것이 입시문제, 중등교육의 정상화 문제로 좁혀지게 되면, 서울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서울대는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비싼 돈들여 사교육받은 학생들의 수준이나, 그냥 학교 공부만 제대로 한 학생들의 수준이나 그 수준이 똑같다는 겁니다. 시간이 갈수록 서울대 입학생의 수준이 높아져서, 공교육시스템은 그것을 따라갈 수 없고, 사교육 받은 사람들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그런 것 절대, 절대 아닙니다.
수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실력과 수준은 매일반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Aragorn

히딩크쇼크로 보는 서울대의특권계층화의 문제는 서울대 출신 = 사회의 지도층 또는 역의 명제가 성립하는 경우가 사회를 위해서도 서울대를 위하여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히딩크가 한국에서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주된 요인중의 하나가 출신성분 무시하기였다는 사실은 여기에도 성립한다. 사주에 따르면 공부가 잘되는 운이 돌아오는 때가 있는데, 이정호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 2,3학년에 집중되어 공부운이 돌아왔다. 시험성적 역시 실력에 비하여 좋게 나왔음도 사실이다. 한 때의 시험성적에 의해 그 사람의 평생을 보장하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 사람을 위하여도 사회를 위하여도... 그럼에도 국내의 사정은 외국보다 나은 편이다. 국내의 자본주의 역사가 길지 않기에 축적된 자본의 크기도 얼마되지 않고, 로비를 합법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몇몇 출신들이(아이비리그?) 의기투합(로비)하는 댓가만으로 파이의 상당부분을 나누어 가진다. 물론 해당 출신이 아니면 같이 투합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계층의 이동이 거의 불가능한 사회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바라지 않는다.
공부는 평생하는 것이고, 필요할 때 하는 것이 옳다고 이정호는 생각한다. 물론 이 때 말하는 공부는 대학입시공부나 고시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퀴즈를 남들보다 몇 개 더 푼다고 하여 행복한 사회생활을, 훌륭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아님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왜 하는 것인가를 모르고 하는 공부는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정호의 교육관이다. 퀴즈 잘 푸는 서울대입학생들이 또 다른 퀴즈인 고시공부에 매달릴 때에 특성을 살린 대학들이 사회에서 점차 인정받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의 불행이자 사회의 불행이다. 한 때 축구를 잘했다고 영원히 축구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대학은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들이 언제나 가서 공부하고 토론하는 곳이었으면 하는 것이 이정호의 소망이다. 이정호는 그렇게 대학을 다니다가 그렇게 할 수 없기에 대학을 그만두었다고 생각한다. 이정호는 고등학교 물리시간에 철물점의 철사로 만들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관계에 대하여 실험한 내용보다 나은 것을 대학에서 볼 수 없었다(음 벌써 15년전이다). 고시와 토익시험에 집중하는 지금의 대학은 왜 필요한 것일까? 고시공부는 고시학원에서 영어공부는 영어전문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훨씬 싸고 효과적이다. 이 짧은 인생을 떼거지로 몰려 다니며 낭비하다니...
히딩크는 말한다. 세계톱과 붙어서 깨지면서 배운다. 이정호는 브라질과 붙어서 깨지는 경험을 못한 한국축구가 못내 아쉽다. 갈수록 잡문이 되는 내 글이 못내 아쉽다. 국어 공부도 평생해야 하는 것인데 이정호는 시험때에만 하고 하지 않아 이지경이다. 평생공부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서울대의특권계층화에 대한 논의는 국립대학교의 목적과 위상에 대한 논의와 함께 이루어져야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가 서민을 위한 교육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서울대가 특권 계층화되어간다는 사실이 문제시되는 이유는 현재 우리 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국립대학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되는군요. --JongHoon
국립대학교의 목적 가운데 첫번째는 돈 안되는 학문의 연구를 지속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학교는 사회에서 필요한 일꾼 양성하는 직업훈련소가 아닙니다. 두번째로 경제적 능력에 큰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면에서는 학교 등록금을 낮게 유지하고, 장학금 수혜자 비율을 높이면 됩니다. 사실 서울대 재학생은 본인만 약간 성실하게 노력하면 - 남들 술 마시고 놀 때마다 끼지 않는다면 - 과외 아르바이트해서 등록금이나 생활비 둘 중 하나는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활합니다. 30살 박사과정 학생이 과외 없이 학교 다니는 경우는 집이 상당히 여유있는 경우이죠.
국립대학교가 서민을 위한 교육기관이 되어야 한다? 매우 모호하고 구체적 목표가 불분명한, 실질적으로 무의미한 목표입니다. 무엇으로 서민을 증명합니까? 학생 부모의 소득세 증명원으로 증명합니까? 부모가 집을 소유하지 않았으면 서민입니까? 거주지가 부자 동네가 아닌 서민들이 모여사는 동네여야 합니까? 부모가 돈이 많다는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 옳은 것, 정의로운 것입니까? 소득있는 아버지의 주민등록을 옮기고, 소득없는 어머니와 단 둘이서만 사는 것처럼 주민등록을 꾸미면 어떻게 됩니까? 호적등본도 떼야 합니까?
국립대학교가 돈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교육기관이 안 되는 것만도 매우 어렵습니다. 고등교육에는 많은 자원이 투자되고, 그것을 모두 세금에서 충당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 돈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립대학교는 세금에서 모두 지원한다면, 사립대는 무엇입니까? 공부 잘 하는 갑부집 아들이 왜 돈 많이 드는 사립대 다녀야 합니까? 돈 안드는 국립대학교 다니면 되지?
서울대학교에 기실 쥐뿔 실력도 없는데 일시적인 사교육으로 성적 끌어올린 실력없는 학생들만 입학하고, 실제로 능력있는 많은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퍼지는 것은 DJ정부의 교육정책 맞습니다. 의도적으로 대학교간의 격차를 없애기 위해 입시에서의 변별력을 떨어뜨리고, 그날 하루의 컨디션으로 당락을 좌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장기적으로 이렇게 해서 서울대 전체의 능력이 떨어지고, 다른 학교의 위상이 더 높아진다면, 전체에게 더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naya거북이의 서울대 애교심 운운 발언들은 서울대생페이지로 다시 옮겨갔습니다.



서울대에 대해 말하면서 학벌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은 이상해 보입니다. 위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대학은 순수한 의미의 고등학문을 위한 곳이 아니라, 학벌사회에서 써먹을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곳이다라는 말은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말인것 같네요. 뭐 다른 나라라고 그런 면이 없겠습니까만은, 우리나라는 유독 서울대만 모든 것을 독점한다는 점, 그 점이 문제의 핵심 아닙니까? --Khakii

서울대의 독점체제가 무엇인지, 그 폐해가 무엇인지 훨씬 더 명확하고 분명하게 정의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막연한 삼단논법은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학벌문제를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엉성한 3단논법은 이렇습니다.
  1. 우리나라는 좆 같은 나라다.
  2. 그런데 좆 같은 시스템의 정점에 서울대 출신이 독점적으로 앉아 있다.
  3. 그러니 서울대가 좆 같은 나라를 만들어낸 문제의 원인이다.
그 다음부터는 서울대와 연관된 모든 것을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교육,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등. 그 모든 원인을 학벌중심의 풍토, 서열화된 대학 등으로 몰아가고, 이것을 깨뜨려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합니다.

설득력 없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감정적인 접근을 하기 때문에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왜? 대다수는 일류대 출신이 아니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으니까. 왜? 일류대 출신은 왕따를 당하고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잘못하고 있다는 죄의식을 느끼고 있으니까. 감정적인 관점에서 모든 사람이 반박하지 못하도록 논리를 짜맞추고 있고, 반대하는 사람은 계급주의자, 이기주의자로 간단히 몰아 버립니다.

문제를 풀어가려면 대다수 국민들의 머리 속에 뿌리깊게 박힌
배운 사람, 공부한 사람, 학자 = 제대로 된 사람
못 배운 사람 = 제대로 못 된 사람
이라는 도식을 깨뜨릴 필요가 있는데 이는 사실 조선시대와 그 이전부터 내려온 오래된 전통이기 때문에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죠. 양반, 상놈을 구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기에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배운 사람의 상징으로 서울대가 자리잡은 것 뿐입니다.

서울대의 독점으로 인해 학벌체제가 강화되는 것은 어떻게 해소되어봐야 1개대학이 아니라 5~6개 대학이 도토리키재기하는 시스템으로 갈 뿐입니다. 서울대가 지금 곧바로 없어져봐야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서울대의 문제는 사회 문제의 상징일 뿐이며, 좁은 땅덩어리에서 과연 몇개의 일류대학을 유지하는게 적정한가로 접근하는게 맞습니다. 모든 대학을 평준화하자, 모든 사람이 대학졸업의 학력을 갖도록 하자, 이런 접근은 더이상 우리 사회에 학문연구의 대학을 두지 말자는 것과 비슷한 말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학문 연구에 별 뜻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런 대학은 결국 위에서 이야기된 시트콤의 소재로 전락해 버립니다. 시트콤에 등장하는 교수의 유치함과 저급함은 정말 한심한 정도인데, 학생들이 보는 교수의 모습을 약간 과장하여 풍자한 것이 바로 그 모습입니다.)

학벌중심의 사회를 다르게 표현하면, 학벌로 신분상승이 가능한, 학벌로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를 뜻합니다. 이러한 순환구조를 깨뜨리는 것은 2가지 방법이 있을 겁니다.
  1. 학벌만으로는 신분상승이 불가능한 사회, 학벌만으로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사회
  2. 신분의 계급적 구조 자체를 타파하는 사회, 신분 이외의 것으로 평가되고 존중받는 사회
1번은 그나마 공정했던 경쟁시스템이 파괴되는 길입니다. 서울대의특권계층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공정한 경쟁시스템이 파괴되면서 이미 가진 자가 모든 것을 다시 가져가는 순환구도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2번 방법을 뜻한다고 할텐데, 2번의 구체적인 모습은 결국 자유경쟁, 능력위주의 사회(최근엔 히딩크 효과로 이야기되죠)를 뜻하게 됩니다. 아직 우리 사회가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각자의 몫입니다.
--Aragorn

Khakii 역시 모든 사회 문제를 학벌 문제로 치환해 버리는 접근 방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학벌 문제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학벌 문제는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할 많은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서울대의 독점체제가 무엇인가? 이런 얘기를 하려면 실증 자료를 가지고 와서 토론해야합니다. 그렇지 않고 각자 주관적인 의견만 말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Khakii가 기억하는 통계자료는 매년 조사해보면 국회의원, 장관, 기업 이사 등등의 거의 절반을 서울대 출신이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하면 독점하고 있다고 할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물론 서울대 출신이 사회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대 나와야 성공하냐, 뭐 이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한이 없죠. 그러나 우리 사회의 몇몇 좋은 자리들을 서울대 출신이 독점하고 서로 끌고 당겨주며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는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봅니다. Khakii가 말하는 서울대의 독점체제라는 것은 그런 것이지 무슨 상징 차원에서의 지위가 아닙니다. 요즘 대학생이 얼마나 많은데 '배운 사람'의 이미지를 서울대가 독점합니까?

학벌을 타파한다면 어떤 사회로 가야하는가? 학벌 사회가 역으로 생각하면 공부만 잘하면 성공가능한 사회라는 지적은 옳습니다. Khakii의 생각은 그러나 그런 학벌 사회의 정점에서 서울대가 모든 자원을 독식하면서 쓸데없는 경쟁만 가중시키고 있으니(위에 제가 인용한 글에도 나왔지만 우리나라의 대입경쟁이 살벌한 건 대학 수가 적어서라기 보다는 극소수의 '명문대학'이 모든 자원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대입 경쟁은 명문대 들어가기 경쟁이지요.) 그걸 분산시킬 필요가 있지 않냐는 것입니다. 그래봤자 몇개 대학의 과점 체제로 갈 것이다.. 아마도 그렇겠지만 '오직 서울대만'이라는 무시무시한 획일적인 가치관을 깨뜨린다는 점에서는 일단 그것으로도 좋지 않나 싶습니다.

Khakii서울대생이라는 사실에 죄책감까지는 아니지만 가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뭐, 별볼일 없는 서울대학생이니까 그다지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겠지만 말이죠. 그리고 그게 자연스러운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와보니까 얘네들은 한여름에도 추워서 잠바를 걸쳐입어야 할 정도로 냉방을 하데요. 그렇게 전세계의 자원을 독점하면서 지네들 끼리만 잘 살면 그만인 미국인들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낄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집에서 하라는대로 편안히 공부해서 서울대에 들어간 Khakii는 가정형편이 힘들어서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그러나 저보다 훨씬 실력있고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가끔 희한한 성폭력 사건 얘기를 들으면 남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지기도 하죠. 그러나 그런 부끄러움의 의식이 학벌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판단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나마 서울대가 있어서 기초학문이 유지된다?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게 서울대의 학벌 독식문제까지 정당화시켜주진 않죠. 학벌 문제는 일부 '잘나가는' 서울대 출신 아저씨들의 카르텔의 문제이지 해봤자 그리 별볼일도 없는 변방 약소국가의 기초학문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후군은 Khakii님의 주장에 굉장히 공감합니다. 또한 서울대의 독점 문제는 서울대 출신 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교육부 지원의 대부분을 서울대가 받는다 와 연결됩니다. (어느쪽이 먼저일까요?-_-) '좋은 대학에 그만큼 많이 지원을 해주는것이야 당연한것 아니냐' 라는 논리는 당연히 먹히질 않습니다. '서민을 위한 교육 기관을 지향해야한다' 가 불분명한 목표라는건, 왠지 말꼬리잡기로 느껴집니다. 우리가 목표를 표방할때 그 목표의 모든 조건을 서술하지 않습니다.

전국가적 관점에서 볼 때 국가를 지탱하기 위한 인재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실이고 그러한 인재들을 국가가 계층에 차별을 두어서 뽑을 이유는 없으며 누가 더 우수한가라는 기준을 정해서 선발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모아 고등 교육을 시키는 장소로서 어딘가가 필요합니다. 서울대는 기본적으로 과거 이러한 역할을 수행해온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과거에 비해 인구가 증가하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를 들어가고자 하게 되면서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한 우수한 인재를 모아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립대가 생겨났습니다. 즉 서울대의 형성과 그 학벌문제라는 것은 한국사회의 근대화가 맞물린 문제이며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라고 Echo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식선상에서 볼 때 전 공급과잉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시점에선가 근대화에서 현대화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의 변화와 국가공무원과 고도산업 인력에 대한 보다 많은 수요가 발생하면서 각계 각층에 명문대출신들이 진출하게 되다보니 너도나도 교육시스템을 이용해 안정된 자리에 진입하고자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이 가속화되어 공급과잉으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즉 국가가 공급을 늘리는데 신경을 쓴 나머지 공급과잉을 조절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실 서두에서 이야기 했듯이 서울대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계층 문제는 국가적 입장에서 그리 큰 고려요소는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국가(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어느 계층인지는 수요자의 입장에서 불필요한 고려 요소입니다. 국가로서는 다른 입장에서의 접근법을 취할 것입니다. 즉 입시시스템을 수정 보완하게 되는 방향으로 계층 문제를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자본주의를 국가가 합법적인 경제 활동으로 인정하고 이상 강남의 부유층의 경제 활동을 막을 수 있는 권력의 행사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데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입시 제도를 수정 보완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만 제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강남의 자제들이 서울대에 많이 들어와서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들이 이를 통해 개인적인 영달이나 출세를 도모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서울대에서 교육받은 이들이 남들보다 훨씬 가난하게 살더라도 남들을 위해 봉사하고 산다면 아무 문제가 될 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한 번 또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보면 이러한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서울대가 국가 공무원들의 양산에 주력하고 그 공무원들을 독점하는 일을 보다 우선시 함으로써 실제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가장 필요한 자연과학과 인문학 공학분야에 인재들의 고등교육을 책임지지 못한 탓에 서울대의 학문적 위상이 보잘 것 없다는 인식이 서울대가 단지 기득권층을 양산하는(우리나라 공무원 사회의 문제를 서울대의 문제로 치환할 수 있을 만큼의 숫자적 우위로 인한) 문제가 많은 대학임을 입증한 결과가 된 것 같습니다. 즉 학문을 하기 위한 대학이란 책임을 상당부분 등한히 한 책임이 큰 데 서울대가 우리사회에 득보다 실을 더 가져왔다고 하는 주장에 일조를 한다고 Echo는 생각합니다. 물론 서구학문을 배우기 시작한 역사가 짧기 때문인 것과 변방국가에 속해 있어 학문의 중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소외되고 있는 탓도 크지만 자체적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스스로 반성하는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학생들의 독점에 안이하게 대처한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서울대가 대학원대학을 지향하는데 이러한 인식이 밑바탕에 상당부분 깔려 있고 서울대에 계신 많은 분들또한 사회에서 제기된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보다 더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 학문분야의 성과를 높이는데 주력하려고 여러가지 정책을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울대는 규모도 제일 크고 국립대이다 보니 이러한 일들을 추진하는데 있어 국가 재정에 많은 의존을 하지 않을 수 없다보니 재정문제의 독점또한 발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러한 데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Echo

중국과거제도사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과거 제도는 5~6단계에 이르는 시험을 봤다고 하는데 이 각 과정의 사이에 국립교육기관이 끼어있습니다. 생원, 진사와 같은 지칭은 이 각급 기관의 학생을 부르는 직함인 셈입니다. 국감, 국자감이라 하는 것들은 이들을 교육하는 현대로 보면 대학교의 역할을 지닌 최고 교육기관이었습니다. 자질있는 자를 선발하고 그 안에서 재교육, 재선발의 단계를 거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선진 지식의 교육기관이라는 역할을 해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일종의 자격증이랄까 혹은 신분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상급시험을 위한 공부는 개인과외교사나 쪽집게 문제집등의 사교육에 의해서 충당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사제관계도 크게 왜곡되어 자신의 시험을 감독한 감독관을 은사라 하여 모셨다고 합니다. 대개 이 감독관은 조정의 중신들이 담당하였거든요. 그리하여 이 교육기관들은 학생들에게 철저히 무시받는 이름뿐인 학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과거제 역시 비슷한 역사를 밟아 온 것으로 압니다.
이런 배경하에서 우리나라의 대학교육이라는 것은 애시당초 출세를 위한 관문 정도의 역할로 인식되어 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인문, 기초과학등의 연구를 한다라는 개념은 대개의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학교라는 것이 그렇게 인식되었기에 서울대 뿐만아니라 대학교라는 것 자체가 선망과 특권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지금은 워낙 대학교가 많아져서 안 그렇지만 제가 어릴적만 해도 시골동네에서는 대학교에 입학한 집에서는 잔치를 하기까지 했습니다. 과거시험에 붙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지요. 사실상 서울대의 문제점은 서울대생의 특권의식이라던가 서울대생의 경제수준이라던가하는 것보다는 학벌에만 기반해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풍조와 학연, 지연으로 이루어지는 사회 전반의 시스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또 한가지 명문대라는 것의 개념이 훌륭한 교수가 있고 많은 학문적 업적을 생산해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 각계의 상위층이 얼마나 포진하고 취업은 잘 되고 하는 등의 입장으로만 보아지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서울대의특권계층화를 차단하는 방법이라는 것은 오로지 학부과정을 완전폐지하고 각 단과대를 분리하는 발전적 해체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사회의 요직에 펼쳐져 있는 학연을 차단하고 사회의 기반이 될 연구중심의 대학이 되는 좋은 길이 될 것입니다. 바람에이는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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