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모르다

FrontPage|FindPage|TitleIndex|RecentChanges| UserPreferences P RSS
{{|
"모르겠소"

우리말로 옮겨진 외국 문학을 읽다가 나온 일상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갑자기 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모르겠소'는 내가 아는 몇가지 외국어 표현으로는 아마 원래 아래와 같은 문장이었을 것이다.


I don't know
Ich weiss nicht
Je ne sais pas
Non lo so
知らない


재미있는 것은 어느것 하나 할것없이 '알지 못한다'지 '모른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모른다'라는 사실은 대놓고 말하기 부끄러운 고백이어서일까. 다들 저렇게 완곡히 둘러 대고 있는 말을, 잘나고 :) 솔직한 한국사람들만 겁없이 대놓고 내지르는 듯한 느낌이다.

과연 '모르겠소'를 부정문으로 표현하지 않는 언어가 한국어외에 또 있을까?
|}}

누군가가 신기한 질문을 연달아 몇 개 한 것 중 하나를 옮겨왔다. 아, 이런 센스를 가진 사람 맘에 든다, 다들 무심코 넘기는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놓치기쉬운 예리한 포인트를 잡아내는 감수성을 가진. "모르겠다"는 말이 있는 게 정말 한국어 뿐인지 궁금해졌다. 혹 그렇지않다하더라도 분명히 다른 언어들에 비해서 "모르겠다"는 말을 "알지못한다"는 말보다 즐겨쓰는, "알다"에 대한 반대급부나 파생어로서 부정문이 주가 되지않고 "모른다"는 독립적인 단어를 가지고 있는 한국어의 심리가 무엇일지, 또는 그 효과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왜 한국어는 "알다"의 부가적이고 파생적인 측면으로서 무지를 생각하지않고 "알다"와는 별개로(적어도 언어적으로는 별개로) "모른다"는 현상을 독립적으로 개념화해야했는지.. --우산

이렇게 긍정과 부정, 집합과 여집합처럼 의미론적으로 완전한 부정 관계에 있는 단어가 어간에서 서로 공통 형태소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국어에서도 그리 자주있는 일은 아닌 듯 하다.

그리고, 이 "모르다"는 용언은 다른 것들과는 좀 차이가 있다. 독립적 의미를 표상한다기 보다는, 그 단어 속에 "알지 못하다"라는 복합적 의미가 접혀 들어가 있다가 사용되는 시점에 펼쳐지면서 비로소 의미고리를 맺는다고 봐야한다. 즉, "모르다"라는 말은 우리의 언어인식 속에서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고 "알다"에 의존해서 생기는 여백과 같다. 아니면 최소한 그 흔적이 우리 말 속에 남아있다고 본다.

예컨대, "잘"이라는 부사를 생각해 보자. "잘 살펴보다"의 반대표현은 "잘 못 살펴보다"이거나 "잘 살펴보지 않다"가 된다. 여기서 "잘"은 살펴보는 것을 좀 더 정확하고 제대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뒤에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를 쓰게 되면, "잘 무시한다"처럼 "잘"의 의미가 바뀌게 되고, 이때는 "쉽사리"가 되어서 부정의 의미를 한층 강화하게 된다.

그러나, "잘 모르다"의 경우 "잘"은 "자세히"라는 의미로 그대로 남고, 결과적으로 부정의 의미를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모르다"가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할 때, "잘 모르다"는 이 부정을 강화(모르는 것의 정도를 더 높임)하는 것이 아니고 완화하고 있다.

즉, "잘 모르다"의 경우 "잘 알지 못한다"의 구조를 갖는 뜻이지, "잘 알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약속을 (잘) 지킨다", "그는 약속을 (잘) 어긴다"와 함께 "나는 컴퓨터를 (잘) 안다", "나는 컴퓨터를 (잘) 모른다"를 비교해 보라.

같은 이유로, "전혀 모르겠다"와 같이 "전혀"나 "조금도","도저히"같은 부사를 사용할 수 있다. "전혀 어기겠다"나 "도저히 어기겠다"는 비문이지만 "전혀 못 어기겠다/어기지 못하겠다"나 "도저히 못 어기겠다/어기지 못하겠다"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알다"와 "모르다"의 관계가 "맞다", "틀리다"나 "지키다", "어기다" 등의 일반적 반대말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없다. "알다모르다는 차라리 "있다없다"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봐야한다.


"잘 모르다"에서 '모르다'의 의미가 굳이 "알지 못하다"라는 복합적 의미로 사용되는 시점에 펼쳐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잘 모르다"의 경우 "자세히는 모른다"정도로 해석할 수 도 있을테니까요. -- 환이

"잘 한다"와 "잘 못한다"라는 문장이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이라는 물음표를 던진다. 대상이 분명히 제시되었을 때에는 "못하는 것을 한다"는 표현은 잘 쓰질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경험한 적이 없다) 따라서 "잘 모르다"의 '잘'은 부정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잘 알다"에서의 긍정의 정도가 부족함을 말하는 것이다. 즉, '완전히 모르다'에서 부정이 완화된 '덜 모르다'가 아니라, "자세히 알다"에서 긍정의 정도가 낮은 "덜 자세히 알다"가 되는 것이다. "잘 모르다"와 "잘 알지 못하다"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면, "잘 모르다"의 '잘'은 '모르다'를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 '알다'를 수식하는 것 아닌가. (어려워)--bullsajo

익히 그 말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둘의 관계가 다름은 분명히 알겠는데 다르다, 고만 해 버리니 그냥 궁금했었는데 오늘 보니까 "알다모르다있다없다"는 '상태'와 관련된 말인 것 같고, "맞다-틀리다 와 지키다-어기다"는 '행위'와 관련된 말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다름'을 확실히 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는 의미있는 일이겠으나 '모르겠다'라는 말의 존재이유를 설명해 주지는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일단 제 생각에는 '모르겠다'의 존재이유는 다름을 강조하고 있는 그 둘의 존재 이유와 동일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어의 풍요로움 을 보여주는 예들이 아닐까, 라고 간단히 생각하면 '억측'이겠습니까. 문장이 너저분하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뜻을 충분히 전달하려는 심리(?)가 있다면 그 만큼 독립적으로 개념화된 낱말들이 발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전 그냥, 같은 뜻을 전달하면서도 풍부한 어휘력을 지닌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럽더군요.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이런 개인적 취향이 있는 걸 보면 언어란 쉬운 것만이 다가 아닌 건 분명한 듯. '알다'를 알고 '모르다'를 몰라도 얼마든지 의사소통은 할 수 있지만 '알다'를 아는데 '모르다'도 알아야 하는 걸 보면 한국어가 '쉬운 언어'는 아닐 것이라는 그냥 그런 생각. "안 알아요?" - "몰라요!" (바보가되는느낌의) --bullsajo



"; if (isset($options[timer])) print $menu.$banner."
".$options[timer]->Write()."
"; else print $menu.$banner."
".$timer;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