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역논리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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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 이라는 과목을 듣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 p -> q 이다.
2. p 이다.
3. q 이다.

연역논리를 간단하게 쓰자면 이런 식이 될 텐데요,
제가 이상하게 생각했던 점은 1과 2과 참이라고 해서 3이 참이라는걸 어떻게 알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GoedelEscherBach에 보면,


4. 1과 2가 참이면 3이 참이다.
5. 1과 2와 4가 참이면 3이 참이다.

이런걸 다시 도입해서 결국 무한 반복이 되어 버리는 그런 이야기가 나와서 결국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제가 1과 2가 참이면 3도 항상 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결국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1과 2가 참이면 3도 참이라는 것을 귀납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역 논리가 옳다는 것을 우리는 귀납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라면 결국 완전한 연역 논리는 없다는 결론이 될 것 같은데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 ALee

1. p이면 q인데 2. p이니까 3. q인거 아닌가요. p일때 q이면 왜 p일때 q여야 하냐구요? 동어반복이니까 그렇죠. -- pocorall

{{|사과는 과일이다.
이것은 사과다.
이것은 과일이다.|}} -- 아무개


단순한 동어 반복은 아닙니다. 제가 물은 것은 왜 “p일때 q”이면 “p일때 q”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왜 “p일때 q이고 p”이면 “q”여야 하는 것입니다. 앞의 문장과는 다릅니다.

예를 한 가지 드셨는데요, 예를 들지 않고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보통 우리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위의 추리가 옳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p나 q가 우리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듣도 보도 못한 것을 가리킬 때에도 위의 추리가 옳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가령,

!@#$%^& 이면 &^%$#@! 이다.
!@#$%^& 이다.
따라서 &^%$#@! 이다.

이런 추리가 올바른 추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요?
경험을 배제한 상태에서 “p일때 q이고, p”이면 “q”라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결국 경험 이라는 것이 개입이 되어야 알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 말은 바로 귀납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구요.

연역논리가 옳다는 것 역시 수학의 공리 다른 공리들처럼 논리학의 하나의 공리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 ALee


제 첫 글이 핵심에서 조금 벗어났었군요 :) 그리고 바로 밑의 예는 제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 다시 덧붙이겠습니다.
ALee님의 첫 글에서 GoedelEscherBach를 언급하신 건 메타언어에 관한 내용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p이면 q"이고 "p"이면 "q"이다. 에서 "p이면 q"에 나오는 '이면'과 '...이면"q"이다'에 나오는 '이면'은 다른 언어입니다. 후자는 전자의 메타언어의 어휘로, 메타언어는 원 언어에 담긴 논리를 증명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ALee님의 예시를 다시 쓰자면 이것이 더 적절하겠군요.

!@#$%^& $%$% &^%$#@! @#@#. 가 참이고
!@#$%^& @#@#. 참이면
&^%$#@! @#@#. 도 참이다.

이 예는 메타언어만 보여줍니다. 이 언어에 의해 원 언어의 삼단논법이 정당화됩니다. 그런데 저 명제는 또 어떻게 정당화되느냐 하는 의문이 남고, 그걸 정당화하려면 메타-메타 언어가 필요하고, 또 그걸 정당화하려면 메타-메타-메타 언어가 필요하고.......이런 식으로 무한 소급되겠지요.

비슷한 예로, 국어의 문법은 엄밀히 말해 국어로 서술할 수 없음을 들 수 있습니다. 국어를 해독하려면 국어의 문법을 알아야 하는데 국어문법을 국어로 서술해놓으면 의미가 없지요. 그렇다고 영어로 쓰면 되느냐? 그것도 아니지요. 문법을 서술해주는 메타 언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메타 언어를 이해하려면 메타 언어의 문법도 알아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 메타-메타 언어가 필요하고.......마찬가지의 소급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앞뒤가 막힌 논리기계는 아닌 듯 합니다. 인간은 메타언어와 원 언어를 구분하지 않는 착각을 일으킬 때 종종 더 유용한 지식을 얻습니다. 국어문법을 국어로 서술해도 나름대로 공부할 점이 있는 것이고, 삼단논법에서 원 언어의 '이면'과 메타언어의 '이면'을 같은 것으로 놓고, 제 첫 글에서처럼 동어반복으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상대성이론이 더 정확한 물리법칙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간략화된 형태인(정확히 말해서는 비진리인) 뉴턴 역학이 현실에서는 더 유용하게 쓰이는 점과 비슷하다고 여겨집니다.

ALee님이 지적하신 것은 연역논리가 정당화될 수 없으므로, 연역논리란 것도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인데요, 제 생각은 모르고서, 혹은 알면서도 메타 언어와 원 언어를 동일시하는 것일 뿐 연역논리가 경험적인 지식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까마귀는 까맣다"인데 "이게 까마귀"면, "이게 까맣다"는 것을 귀납적으로 아는 것일까요? '까마귀를 많이 봤더니 그게 다 까맣더라'라는 건 '까마귀는 까맣다'라는 명제를 경험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이지 삼단논법이라는 형식을 정당화해주는 건 아닙니다. 이 까마귀가 까만가 안 까만가와는 별개로 삼단논법은 참입니다.(라고 착각합니다.) 정당화되지 못할 논리를 정당화하는 것은 인간의 착각이되, 그 착각은 경험에 앞섭니다. -- pocorall

연역 논리는 결국 착각이라는 말씀으로 이해가 되는데요? 한가지 약간 제 의도를 잘못 이해하신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약간 설명을 추가하겠습니다. 제가 연역 논리를 우리가 귀납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뜻입니다.

“p 이면 q 이고, p 이면” q이다.

우리는 이 문장에서 p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q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다면 올바른 추론인지, 잘못된 추론인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 의미도 알지 못하는 것을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모든 까마귀는 까맣다. A는 까마귀이다. 그러므로 A는 까맣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모든 노스모크인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A는 노스모크인이다. 그러므로 A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이런 추론들이 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p, q가 지시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을 경우에만 우리는 그것이 올바른 추론인지 잘못된 추론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신이 한 모든 이런 식의(연역적인) 추론이 올바른 추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제가 하고자 했던 말은, 우리는 지금까지 행했던 이런 식의 연역적인 추론이 모두 제대로 된 추론이었다는 것을 근거로, 연역논리 자체가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보통 처음으로 연역 논리에 대해서 배운 사람은, 정말로 그것이 참인가 확인해 보기 위해서 p, q에 잘 알고 있는 어떤것을 집어넣어 봅니다. 몇 가지 자신이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것들을 집어 넣어 테스트해 본 뒤에야, “아하, 정말 그렇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논리학 교과에도 “모든 사람은 죽는다···” 와 같은 예가 들어 있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죄송하지만 메타 언어에 대해서 쓰신 부분은 전혀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든 예가 메타언어만 보여준다는 말씀도 이해가 되지 않구요, 상대성 이론과 뉴턴 역학 이야기도 그게 왜 비슷한 경우가 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물론, 어떤 언어 자체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면, 그 언어 자체를 이용해서 스스로에 대해서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언어를 기술하는 언어인 메타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 ALee

그동안의 스레드를 읽어보니까 제가 질문을을 제대로 이해하고 답변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좀 풀어서 써보겠습니다. ALee님 말씀대로 "p 이면 q"이고, "p"이면 "q"여야 하는 이유는 아무 데도 없습니다. 제 첫 글에서는 이게 동어반복이니까 맞는 말이라고 했는데, 그게 사실은 착각이라는 말입니다. '"p 이면 q"'에 나오는 '"이면"'과 '"p"이면 "q"'에 나오는 '이면'에 둘러싸인 따옴표가 다르기 때문에 함부로 같은 레벨로 놓고 볼 수 없는 것이지요. 따옴표 밖에 있는 언어는 메타언어입니다.
삼단논법에서 메타 언어를 구분하지 않으면 동어반복이 돼서 스스로 논리가 증명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혼동은 편의에 의해서 일부러 그러든, 몰라서 그러든 일상생활에서 논리를 적용시키는데 유용하기 때문에 많이 사용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혼동이 경험적인 지식은 아닙니다.
칸트 식으로 말하자면 선험적 종합 판단이라고 할까요? 물론 칸트는 삼단논법을 선험적 분석 판단이라고 말했겠지만, 그도 메타 언어가 숨어있는 사실을 모르고 한 말일테니, 20세기에 칸트가 살았다면 삼단논법도 선험적 종합 판단이라고 했을 겁니다. 어쨌거나, "살인은 나쁜 것이다."라는 말이 경험에서 나온 것 같지만, 사실은 선험적인 것이라는 것을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 pocorall

결국, “이유는 없다. 그냥 아는 것이다.” 라는 말씀이신가요?
조금 생각해 보면, “살인은 나쁜 것이다” 라는 말도 경험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회생물학과 인류학을 통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많이 있지만, 우리의 도덕 관념 같은 것도 유전적 선택에 의해서 결정된 것일수도 있습니다. 즉, 유전자적인 경험에 의해 형성된 것일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까지 하지 않더라도, 만약 어릴때부터 킬러로 키워진 아이가 있다고 해 보겠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살인을 하는 데 대해서 죄의식을 느낄까요?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선험적인 판단과 경험적 판단을 구분하는 것은 그야말로 칸트 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판단 혹은 지식은 결국 직, 간접적 경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제가 극단적인 경험주의자가 된 것 같네요. :) -- ALee

마치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문제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그렇지만 제 생각에 이문제는 닭문제보다는 좀 선명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연역논리를 배울 때, p나 q에 실제로 세상에 일어나는 경험적인 문장을 넣지 않는다 하더라도, 진리표라는 걸 만들어서 연역논리에 대한 개념을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만일 수학이, 논리학이 경험이라면, ALee님의 생각이 맞겠지만, 제가 알기로는 우리가 연역논리를 이해하는 방식이 ALee님이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p --> q <=> ~p V q 라는 식의 수리적인 성질에 대해서 이해한다면(혹은 하나의 공리로서 암기한다면), 굳이 p나 q에 경험적으로 아는 문장을 넣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연역논리라는 걸 이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어떤 학생들에게는 p나 q에 사실적인 문장을 넣어서 연역논리를 이해하라고 하면,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문장을 다 넣어볼수는 없지 않습니까! .. 이러면서 말이죠.. ^^ )
그리고 수학이나 논리학은 인간의 두뇌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말하자면, 세상에 아무런 경험도 없고 지식도 없는 아이에게 수학부터 가르친다고 해도, 그 아이는 수학이라는 공리시스템을 아주 제대로 이해합니다. 연역논리라는 구조는 인간이 참 거짓을 구분하는 일종의 메타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타언어는 귀납적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인간의 신경시스템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므로, 그것에 기반을 둔 연역논리라는 것 자체는 인간에게 있어서 완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수학이나 논리학이 인간의 두뇌에 유일한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사정은 달라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직까지는 그 대안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러한 다른 '이해하는 방식'이 존재한다면,.. 노스모크의 오랜 토론 중에 하나인 IsHumanBrainTuringMachine의 답은 무조건 No가 되는 비극을 맞게 되겠지요.. :) --naya

p, q에 이런걸 집어넣어 보겠습니다.

p: 모든 문장은 거짓이다.
q: “p는 참이다.”라는 문장은 거짓이다.

여기서도 “p이면 q”일 때, “p가 참”이면 q가 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연역논리가 인간의 신경시스템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말씀은 수긍이 갑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한 것이라기 보다는 수학이 아닌 물리학이나 기타 자연과학의 법칙들 처럼 완벽한 진리라기 보다는, 단지 인간의 대부분의 경험과 일치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냥 하나의 공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가 바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1. 그러한 사실 때문에 모순이라는 개념이 있는 것이고, 로직디비에서처럼 계층화라는 작업이 머릿 속에서 행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에게 있어서, 연역논리가 인간의 경험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이는 지식정도로 생각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오히려 신경시스템의 결함쯤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2. 인간이 진화라는 긴 과정을 통해서, 연역논리를 귀납적으로 습득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는 어느 정도 수긍해드릴 수 있음!
    p.s. 저는 인간에게 있어서 완전하다고 했습니다. :) (너무 교활했나요?) --naya

    논리학의 존재가 이유가 뭘까요? 주어진 지식들을 통해서 "참"이 보증되는 지식을 찾아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먼저 가장 처음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p->q이고 p이면 q이다.
    p와 q는 오로지 참, 또는 거짓을 갖는 명제이고, p->q라는 것은 p와 q의 입장에서 보면
    (p,q)=(T,T),(F,T),(F,F)의 진리값을 가질 때 입니다. 그런데 p가 참이라고 했으니깐,
    q는 참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p=T 와 (p,q)=(T,T)or(F,T)or(F,F)를 동시에 만족하는 (p,q)는 (T,T)밖에 없으니깐.

    그럼, 다시 한 번 봅시다. 왜 p->q이고, p이면 q입니까?
    p,q는 진리값 참 또는 거짓을 갖는 명제이고, p->q가 참이라는 것은 (p,q)=(T,T),(F,T),(F,F)일 때 뿐이라고 정해 놨기 때문입니다.
    결국 논리라는 것을 주어진 명제를 통해 "참"임을 보증할 수 있는 명제를 찾아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여러가지 제약조건을 가해야 하고요. 예를 들어 명제는 참 또는 거짓이다. 그리고 p->q의 의미도 정의해야 하고.

    그리스 시대에는 삼단 논법이 논리학의 모든 것으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프레게, 어쩌구 저쩌구 사람들을 통해 All a, Exist a,...등등 1차 술어 논리, 2차 술어 논리등이 발전했습니다.
    역설, 모순등도 발견되었고요.

    (거짓말쟁이 모순인가요? 제가 볼 때 논리학에서 모든 모순은 어떤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분명치 않을때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런 명제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재귀적인, 자기 자신의 진리값을 언급할 때 나타나죠. 가장 간단한 예가 "이 문장은 거짓이다"란 명제인데, 이 명제는 참일 수도 거짓일 수도 없죠. 참이면 거짓이 되어야 하고, 거짓이면 참이 되어야 하고. 다른 모순들도 겉모양은 다르지만 이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위의

    p: 모든 문장은 거짓이다.
    q: “p는 참이다.”라는 문장은 거짓이다.

    경우에도 p가 참이라고 하면, 모든 문장이 거짓이라고 했으니까, p가 거짓이게 되고, 따라서 모순이 생기게 된다고 볼 수 있겠죠.)

    결론은 논리학이란 사람들이 주어진 사실로 새로운 사실을 얻어내기 위해(또 그것이 언제나 참이 될 수 있게) 만들어낸, 고안해낸 한가지 체계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뇌 속에 내재해 있었다는 얘기는 논리학이 점점 발전하면서 그 설득력이 상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삼단논법같은 것은 간단하고, 자명한 듯 보여서 그리스 사람들도 생각해냈으니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그러한 체계조차도 모순등으로 보아 완전하지 않습니다.(뭐, 인간이 하는 일 중에 완벽한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마는, 완벽이란 말 자체도 인간중심적인 관점이라고 생각되는군요.) -- 가리오

연역법에 수학적 대상에게 적용될 때는 수학적 언어에 적합하게끔 좀 더 정확하게 사용되어야 하겠지만, 사회과학이나 상식 수준에 연역법이 적용될 때는 그 적합성이 떨어지더라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
1. p -> q 이다.
2. p 이다.
3. q 이다.
|}}
그런데, 위의 예시는 뭔가 허점이 있군요.
{{|
1. 사람은 죽는다.
2.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 고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
이것을 alee님이 의도하신 예시로 고쳐본다면
{{|
1. p이면 q이다.
2. p'은 p이다.
∴ 따라서 p'은 q이다.
|}}

이것을 비추어서 전개하신 다음의 내용을 점검해보면,
{{|
4. 1과 2가 참이면 3이 참이다.
5. 1과 2와 4가 참이면 3이 참이다.
|}}
4는 1. 2. 가 내린 최종 결론 3.과 다를 바 없으며, 5. 역시 3.과 다를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아무개


4. 1과 2가 참이면 3이 참이다.
5. 1과 2와 4가 참이면 3이 참이다.
인 이유는,

2는 1이 2개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역시 1이 3개 있는 것일 뿐입니다.
만약, 각각의 숫자에 컴퓨터 프로그래밍 고전 기법인 #define 펭귄 1 #define 오리 2 일 경우는 참이 될 수 없습니다만,
1은 사과 1개, 2는 사과 2개 이 때, 사과(사과 = 사과 1개. x = 1x)가 참이면 1개이건 2개이건 참입니다.

이 때, 참이라 말하는 대상은 "3" 이 아니라, 안에 담긴 "사과" 입니다. 즉, 말을 바꾼 것 뿐이죠. 동어반복이기 때문입니다.

참한 사과가 먹고싶네요.. :$


또다른 설명으로 집합론을 들어 보자면,

집합 까마귀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모두 까맣다.
A는 집합 까마귀 안에 들어있다.
그러므로 A는 까맣다.(집합 까마귀 안에 들어있으므로.) --PenSaku

추론의 문제는 동일률과 모순률문제로 귀결됩니다.

  1. 1+1은 2이며, 동시에 1+1은 2가 아니다.
  2. 1은 1이다.

1번이 '옳다'라고 말하시는 분 있으십니까? 혹은 2번이 '틀리다'라고 생각하시는 분?
추론 규칙이 경헙에서 왔다고 생각하신분들은, 실제로 이런 비이성적인 결론을 '진지하게' 도출하는 사람의 사례를 찾아내셔야 합니다.
의외로 세상에는 괴짜와 괴인들이 많지요 --namazaki2

1, 2, 1+1=2,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가 정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1은 1이다 에서 앞에 있는 1과 뒤에 있는 1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할수도 있습니다. 하나는 앞에 있고, 하나는 뒤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1이 똑같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편의상 정해 놓은 것일 뿐입니다. 하물며 1이라는 숫자 자체도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우리가 정해 놓은 개념일 뿐입니다.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것들을 제대로 정립시키기 위해서 논리학의 기초 위에 수학을 탄탄하게 다시 쌓아올리려는 시도를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괴델에 의해 그러한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 ALee

위에 수학식을 써서 혼동을 가져왔네요. 하지만 위의 예에서 명제의 내용은 전혀 상관으며, 명제기호로 대치해도 무방합니다. 꿀돼지는 꿀돼지이며, 동시에 꿀돼지가 아니다. 이런식으로 바꿔도 전혀 문제는 없지요.
  1. p&~p 은 항상 거짓이다. (모순률)
  2. p->p 은 항상 참이다. (동일율)
괴델의 정리가 추론에 대해서 뭐라 이야기 한것으로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namazaki2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간단하게 말하면, “모든 무모순인 공리 체계는 스스로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리 체계에는 논리학이나 추론의 규칙 같은 것도 모두 포함됩니다. 만약 제시하신 규칙들이 무모순이라면 절대 스스로 무모순임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단지 하나의 공리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p & ~p는 항상 거짓이다.”는 결코 스스로 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으며,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외적인 것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 외적인 것 중에서 “경험”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제가 처음에 글을 쓴 의도 입니다.

저는 “p & ~p는 항상 참이다.” 라는 공리로 시작하는 논리 체계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역 논리와는 전혀 다른 이상한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논리 체계나 수학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직 연구가 되지 않았을 뿐, 깊이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평행선 공리를 부정한 것에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나왔던 것처럼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그리고 보다 더 풍부한 체계가 탄생할수도 있습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나오기 이전에 사람들이 유클리드 기하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거의 평평하기 때문입니다. 즉, 비유클리드기하가 우리의 경험을 매우 잘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연역 논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추론의 규칙이나 공리들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는, 그 체계가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고, 단지 우리의 경험과 잘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A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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