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성미(女性美)에 반발하는 여성(女性) ¶
거의 모든 동물에서 수컷이 암컷보다 아름답다. 근데 도대체 인간만 여성은왜아름다운가하고 어떤 남자들은 말한다. 이런 의문에 대하여 어떤 여자들은 강한 반발을 나타내곤 한다. 왜냐하면 여성이 아름답다고 보는 시각속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또다른 편견의 여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동물이 암컷이 수컷보다 상대적으로 아름답다고 말할수 있을까? 여성은왜아름다운가라는 화두는 여성의 미를 논의한것이지 여성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미적 가치가 높다는 개념은 아닐지도 모른다. 여성에게 여성미가 존재하듯 남성에게 남성미가 존재한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남성미를 미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던가? 가장예쁜유전자만살아남는다에서는 여성미의 기준을 다산성에서 찾았다. 하지만 이런 다산성을 근거로 삼은 여성의 아름다움 역시 시대에 따라서 미적 기준이 달랐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아프리카의 비너스로 알려진 비너스상은 배와 가슴이 퉁퉁하여 다산을 상징하는 모델로 그 아름다움을 뽐냈다. 오늘날의 여성미의 기준은 굶어죽게 생긴 삐삐마른 막대기다.
여자가 남자보다 아름답다고 얘기할수 있을까? 남자가 더 아름답다고 말하면 일반적인 경향에서 벗어나는걸까? 어떤 면에서 보자면 남자가 더 아름답다고 말할수도 있다. 성악가의 예를 봐도, 남녀공히 소프라노보다는 테너를 선호한다..남성들조차 테너나 바리톤을 소프라노보다 선호한다는 것이다. 헬스장에 가보면 아름다운 근육을 자랑하는 미청년들의 사진이 즐비하다. 정말 아름답다. 세계미인대회에 줄서 있는 미인들보다 더 아름답다. 정말 여자가 남자보다 아름답다고 말해도 되는것일까? 그냥..각자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아름답다고 말해야 하는것 아닌가?
물론 이는 아름다움의 기준차이때문에 생기는 오해일수도 있다. 우리가 동물은 대부분 수컷이 아름답다라고 말할때는 '화려하다'정도의 의미가 될까? 그렇다면 인간의 남성과 여성중에 누가 더 화려한가? 라고 묻는다면 대답이 될까? 또한 치장하기는 대부분 동물의 경우 수컷의 몫이지만 인간의 경우 치장이 여성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인간세계에서 치장이 여성의 몫으로 남은 것일까?
동물의 세계에서 힘의 우위가 어찌되었건, 남성을 선택하는 것은 여성의 몫인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분명 인간도 여성이 남성을 선택하던 시기가 있었다. 일처다부제이건, 일婦다夫제이건 체제의 변화와 상관없이. 동물이 사냥이나, 채취를 생존기반으로 살아가는 삶을 계속 영위한데 반해,인간의 삶의 양식엔 소유, 정복의 개념이 지배적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힘과 권력을 장악한 쪽은 남성쪽이었다.
이런 특수 상황속에서 남성이 미모를 키우기보다는 권력의 면에서 열등한 위치에 있는 여성쪽에서 선택당하기 위한 전략으로 아름다움을 키우는 쪽으로 발전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허무맹랑한 가설을 스스로 만들어 놓은 어떤 여자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제밥상 제가 걷어차듯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남성중심의 사회구조속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은 자칫 또다른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장치가 될지도 모른다. 일부 여성들은 이를 우려하는 것이다.
2. 일반 생물 진화론에서 비켜난 인간 남/녀성의 미의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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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이가 존재할 때에는 진화론적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것이 강하게 예상된다. 즉, 자기를 과시하는 것은 남성이고 여성은 충충한 색채를 나타내게 될것이다. 그런데 현대 서구인은 이 점에 관해서 의심없이 예외적인 존재이다. 물론 화려하게 치장하는 남성과 우중충하게 꾸민 여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보면 우리의 사회에 있어서 공작의 꼬리에 상당하는 것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지 남성은 아니다. <중략>
성차이가 존재할 때에는 진화론적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것이 강하게 예상된다. 즉, 자기를 과시하는 것은 남성이고 여성은 충충한 색채를 나타내게 될것이다. 그런데 현대 서구인은 이 점에 관해서 의심없이 예외적인 존재이다. 물론 화려하게 치장하는 남성과 우중충하게 꾸민 여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보면 우리의 사회에 있어서 공작의 꼬리에 상당하는 것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지 남성은 아니다. <중략>
이런 사실에 직면하면 생물학자는 그가 보아온 인간 사회는 실은 여성이 남성을 가지고 경쟁하는 사회이고 그 역(반대)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것이다. 풍조의 경우에 암컷이 충충한 색채를 나타내는 것은 그 암컷이 수컷을 가지고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암컷이 유인술이 좋아서 신중하게 수컷을 고를 여유가 있으므로 수컷이 밝고 화려한 색채를 나타낸다. 풍조 암컷의 유인술이 좋은 것은 난자가 정자보다 희소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현대 서구인은 어떻게 된것인가? 실제로 남성은 상대가 애써 찾는 성, 파는 사람마음대로인성, 즉 신중하게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측의 성으로 되고 만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from 이기적유전자 pp. 24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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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용문은 인간사회에서 전도된 남/녀성의 권력구조를 보여주는 예가 아니겠는가. 작가 도킨스는 <물음표>로 이 주제를 일단 마무리 하지만, 그 해답은 성의 권력 너머에 있는 인류문명의 권력구조에서 찾을수 있지 않을까?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힘의 우열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한개의 안정되고 규모가 큰 <난자>를 차지하기 위해 무수한 작고 힘없는 <정자>들이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서 <남성>들이 <난자>를 유인하기 위하여 '아름다움'이 필요했지만, 그러나 인간사회에서는 '무기' '권력' '재력'등의 다른 요소가 '남성미'의 또다른 이름이 되었다고 보면 어떨까? 이 눈부신 '美'앞에서 <난자>의 권능이 빛을 잃었다고나 할까. 이러한 남성 권력미의 기원을 인류학자들중 대다수는 육식의 기원과 함께 본다. 홍적세의 수렵사회를 상상해보자. 남성은 사냥으로 육류를, 여성은 채집활동으로 곡류와 채소류를 충당하던 사회였다. 인류에게 육식은 매우 중요했는 데 이는 호주나 동남아시아의 원시부족사회에서 아직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육류의 에너지 효율은 곡류의 그것에 비해 상당히 높다. 이타적유전자에서도 소개되듯이 인류의 역사에서 채소류는 개인소유가 인정되었지만 육류는 철저히 공동으로 분배되었다. 그만큼 육류의 가치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요한 육류를 사냥하는것이 남성의 몫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남성의 권력화가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있는 것이다.
RichardDawkins는 이글에서도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려 하는 것을 엿볼수 있다. 그는 사람들의 경우 여성이 치장에 더 신경쓰는 현상에 대하여 현대 서구인의 범위에 한정시키고 있다. 서구인 뿐 아니라, 다른 문명권, 혹은 서구문명의 영향을 받은 문명권에서 여성의 치장이 보편적인 것으로 용인되기도 하지만, 지구의 한편에서는 여전히 남성들이 치장에 열심인 문명도 존재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정자><난자>가 생존과 영생의 끄나풀이지만, 인간 세계는 그리 간단치 않은 여러가지 장치가 있는듯하다. 그리고 그 장치들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는 힘있는 쪽은 애석하게도 <남성>인듯 하다. 여성들이 <미모>만 가지고 이런 권력구조를 뒤집을수 있을까? 아니. 절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이미 가진자로서의 남성은 <여성미>를 적절히 사거나, 소유하고, 즐길수 있는 위치에 있으나 여성이 <여성미>로 득을 보는 것은 개인차원에서 끝나고 말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특징들은 성협동의 진화라고 생각한다. 조지 윌리암스가 말했듯이 우리의 몸은 홍적세의 조상들이 적응했던 그 몸에 불과하다. 거기서 별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인간의 사회행동이 유전적인 요인과 사회/문화적인 요인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자. 우리의 몸과 마음은 현재 따로 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현재의 인류는 자연선택에 직접 노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노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전의 그것만큼의 영향은 없다. 우리는 문화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다. 여성미와 남성미는 점차 변화해 갈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한국사회에서 혹은 서구사회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질문 '여성은 왜 이름다운가?' 라든가 '인간의 여성은 왜 치장을 하는가?' 하는 질문은 그대로 '남성은 왜 아름다운가?' '인간의 남성은 왜 치장을 하는가'라는 질문과 동등한 내용을 전달하지는 못하고 있다.
3. 오해 : The Evolution of Human Sexual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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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종에서 암컷의 꾸미기와 수컷의 단조로움의 역설에 대해 생각해보자. 성선택이론은 일반적으로 수컷은 더욱 근사한 색을 가져야하고 많이 꾸며야 하며, 한편 암컷은 실제로 대부분의 조류 종의 사례에서처럼 우중충해야 한다고 예측한다. 하지만 적어도 서양 문화 속에서는 그 역이 참인것으로 보인다.
인간종에서 암컷의 꾸미기와 수컷의 단조로움의 역설에 대해 생각해보자. 성선택이론은 일반적으로 수컷은 더욱 근사한 색을 가져야하고 많이 꾸며야 하며, 한편 암컷은 실제로 대부분의 조류 종의 사례에서처럼 우중충해야 한다고 예측한다. 하지만 적어도 서양 문화 속에서는 그 역이 참인것으로 보인다.
이부분은 [이기적유전자]를 그대로 인용한듯
이것은 성선택이론을 반증하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사이먼즈(Symens)의 <인간의 성별 진화 The Evolution of Human Sexuality>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누구나 기대할수 있는 것이다. "여성의 가능한 생식적 성공은 그들의 표면적 외형 (큰가슴, 넓은 엉덩이)으로 공시되고, 여자는 그 외형을 강조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남성의 단조로움은 남성은 보수적이고 따라서 경제적으로 호사스런 생활을 하게 해 줄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증명한다. 더욱이 자신을 꾸미는 남성은 성관계가 난잡하고 가족을 버릴수도 있다. 결국 여자는 남자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성적으로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로 선택될 가능성이 있다. / 모든 인간 사회에서처럼 서양에서 성교는 보통 여성의 서비스이거나 여성의 호의이다. / 사람 암컷은 육체적힘 그리고 정치권력에서 성인 수컷에 의해 지배당하는 환경속에서 진화해 왔기 때문에 여자는 그들의 자산을 그들 자신의 이익에 맞게 쓰도록 진화해 왔다."
결국 이 논의들의 어떤 것도 설득력있는 것은 아니다.
--from 우리유전자안에없다 pp305-306 에서 The Evolution Of Human Sexuality가 설명하는 인간 여성치장의 의미|}}
4.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열등하지 않다 ¶
사회생물학의 문제되는 부분에 첨예하게 반박하는 책 우리유전자안에없다의 여성미에 대한 논의의 요점은 : (1) 동물의 세계에서 자주 보이는 성선택 즉 암놈이 숫놈을 고르는 경향을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시킬수는 없다. (2) 인간 여성의 치장은 정치권력의 열등함의 소산은 아니다 로 정리될수 있다.
그렇다면 이글의 앞머리에 논의된 인간의 여성이 사회적 힘과 권력을 차지한 남성에게 선택당하기 위하여 치장하게 된것같다는 논점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절반은 참이고 절반은 거짓이라고 말하고 싶다.
절반이 참인 이유는: 한국사회, 혹은 한국사회와 비슷한 서구사회, 나아가 일반적인 인류사회에서 정치,사회적 권력을 가진 집단은 남/녀 양성중에 남성쪽이라고 할수 있고 권력의 면에서 보면 여성은 '가난뱅이'일수 있다.
절반이 거짓인 이유는 : '가난뱅이'가 신체적, 유전적으로 열등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치, 사회적 권력의 중심을 덜 차지한다고 해서 그 생명체가 열등하다고 본다면 이는 반박의 소지가 큰것이다. 여성은 열등하지 않다. 그들이 인류사회의 권력구조에서 조금 소외되었다고 해서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고 볼 이유는 안된다. 여성이 유전적으로 남성보다 지능이 떨어지거나 기운이 딸리는 것도 아니며 여성이라고 해서 특별히 남성보다 '예쁘거나' '귀여운'것도 아니다.
여성미는 생물학적 특성이 아니며 사이비 미학, 사이비 과학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남성미' '꽃미남' '미소년'이란 표현역시 '여성미'만큼이나 남근중심적 개념을 조금 다르게 포장한 상품이라고 할수 있다.
여기서 잠깐 한담 : 삼강오륜중에 夫婦有別 이란 말씀이 있다. 남성과 여성은 분명 다르다. 차잇점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차잇점을 성의 차잇점내지는 성의 우열을 논하는데 이용해서는 곤란하다. 남성이 여성에게 가했던 여성멸시적인 사고체계를 여성들이 그대로 남성에게 적용시킨다면, 판이 뒤집어 진다고 해서 달라질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권력의 주체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는 것일뿐. 권력을 가진자와 굴복하는자, 우세한자와 열등한자로 나뉘어지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라면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흔쾌히 논의해보고 싶다. 그런 사회가 올까..올까?
5. 편견을 넘어서서 ¶
여성은왜아름다운가? 또는 '인간의 여성은 왜 치장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혹자는 반문하고 싶어질것이다. "아름답지 않다면 여성이 아닌것인가?" "여성이 치장을 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아닌것인가?" 현상을 '당위' 또는 '진리'쯤으로 오해하는데서 편견이 시작된다. 한 남성이 아름답다면 그는 '여성'으로 불리워야 하는가? 남성이 치장을 한다면 '정신병'인가? 여성이 아름다운가? 인간이 아름다운 것이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것이며, 아름다움의 기준또한 제멋대로이다. 당신은 아름답다.
{{| 아름다움 공화국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자라는 멋진 구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워야 한다는 명령을 내리고 모두를 아름다움의 전사로 만들려고 했다. 이런 뷰토피아는 실제로 아름답지도, 살만하지도 않다.--양운덕 / 비트겐슈타인은 왜 말놀이 판에 나섰을까? pp137|}}
6. 하이에나의 여성미 ¶
어떤 여자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제밥상 제가 걷어차듯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고 이글의 서두에 밝힌바있다. 아름다움은 善이며 기쁨이다. 이를 배척할 이유는 전혀없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이용하여 여성이 사회에서 득세하기를 원한다면 이는 매우 근시안적인 생존방식이 될것이다. 악마같은남성에서는 폭력적인 남성의 힘에 의지하여 생존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성이 여성다움, 섹시함을 키운게 아닌가 하는 점이 조심스럽게 제시된다. 이는 결국 남성을 더욱 가부장적인 존재로, 여성을 더욱 굴종적이니 존재로 진화하도록 만든게 아닌가 생각이 들게끔 하는 대목이다.
흔히 비루하고 폭력적인 동물로 일컬어지는 하이에나 무리는 여성중심으로 지탱이 되고 있다고 한다. 하이에나의 암놈들은 강하다. 남성보다 더 강하다. 그리고 인간사회에서 남성들이 누리는 권능을 하이에나 무리의 경우 암놈들이 누리고 있다고 한다. 하이에나가 해치우는 일을 인간의 여성이 못해치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여성이 아름다움을 팔아서 남성중심사회에서 권력을 유지할수 있는 시기는 삶의 한때에 지나지 않을것이다. 제대로된 권력을 키우지 않는다면, 판은 뒤집어지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고 키우라. 동시에 정신과 육체의 힘을 키우라.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오며, 인간세상의 권력도 유형, 무형의 힘에서 발생한다.
7. 제대로 된 권력을 키워서 판을 뒤집을수 있는 방법은? ¶
여기서 판을 뒤집는다는 것은, 여성이 현재의 남성가부장적인 체제를 전복시켜 그 자리를 여성이 차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미가 없다. 평화공존의 장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지향점이다.
more to come
개인적으로 여성남성의 문제에 권력이라는 시각을 잡고 시작하는 것을 상당히 경계합니다. 지금까지 본 그런 논쟁들은 거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돌고 도는 논쟁이 되기 십상이지요. 또한 여성이 치장을 하고 남성이 그렇지 않는 것이 사회적으로는 어떤 해악을 가져오는가 이러한 관습을 굳이 부러 고쳐야하는 이유가 있는가 그렇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굳이 다른 의미를 부여하려고하는 것이 아닌가 에 대한 논의가 먼저 점검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평등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차별이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그러한 것을 사회 전체적인 시각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여성과 남성의 평화 공존의 장을 만드는 사고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timelesstime
8. 참고문헌 ¶
후기 : 한편의 되먹지도 않은 글을 쓰면서 몇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보니, 결론은 결국 처음에 막연하게 생각했었던 것들을 참고도서에서 확인하는 정도 였다는 거다. 다시말하자면, 나는 책을 읽기전부터, 이런 문제를 논의하기 이전부터 이미 본질을 알고 있었고, 단지 논의 과정에서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론화 할수 있었다는 정도이다. 이땅에서 수십년 부대낀 여자라면 어려운 책 여러권 읽지 않아도 여성의 본질을 파악한다. 단지 이를 논리화 하는데 힘겨워 할뿐. 학문은 칼갈기이다. 의식의 무딘칼에 날을 세우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칼이 있고, 이를 슥슥 가는 작업이 남겨진 것 뿐이다. more to 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