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페이지가 인구문제, 기근, 식량난, 과학의 역할, 자본주의, 이기심...이런 갈등구조의 해결에 어떤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이 페이지의 논의가 확장된 과학의윤리를 읽고 토론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광기다. 어떻게 이런일이 벌어진다는 말인가 사람에게 편리하도록 생명체를 마구 조작하다니 왜 차라리 뼈없는 닭을 만들지 뼈를 발라먹는것도 귀찮은 일이 아닌가 이 닭을 잡종교배한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라 광기어린 자본주의에 세뇌당한 미친 과학 기술자다. 잡종
광기 아닙니다. 현재 잡종씨가 먹는 닭과 돼지와 소가 모두 수천년동안의 육종기술에 의해 인류에게 먹기좋은 형태로 인위선택되어 온 것들입니다. 털많은 토끼, 뚱뚱한 돼지, 젖소, 예를 더 들어드릴까요? 누드닭은 유전자조작식품이 아니라 육종기술의 산물입니다. 원래 닭종류 중에 목에 털이 안나는 종이 있습니다. 그 종과 교배를 시키다보니 저런 종이 나온 것이고, 아프리카나 더운지방의 육류생산에 획기적인 돌파구가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사람들도 고기먹게 해줘야죠. 잡종씨는 그럼 앞으로 닭먹지 마세요. -_-;; --김우재
김우재님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이 동물을 먹기좋은혹은 인간에게 유리한 것을 양산하는 품종을 인위적으로 선택하고 육종시켜온 면이 있는데 그러한점은 무시하고 광기라는등의 단어를 쓰면서 열을 내는것은 온당하지않은 판단이 아니냐는 말씀 이신것 같습니다. 일단 가축을 먹기좋게 인위선택 했다는 점만 이야기 할까합니다. (토끼나 양의 털 동물 가죽의 문제등은 나중에 말씀드려야 할듯 합니다.) 예 저도 사람들이 가축을 먹기위해서 육종기술로서 조절해온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육종기술과 현재의 육종 기술은 그 맥락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축산학의 역사를 정확히는 저도 잘 모르지만(전공하신 분이 이점을 대답해주시면 좋겠는데) 아무튼 제가 알고 있는 지식하에서는 지금처럼 가축을 고기로서만 바라보고 가축을 교배 시키는 시대는 거의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축을 단순히 고깃덩어리로만 보는 시각은 매우 현대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전 육종 기술은 보다 건강한 가축을 만들기 위한 것이지 고기를 얻기위해서만 육종기술을 사용한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따라서 제가 광기라는 표현등의 격렬한 표현을 썼던것은 육종기술이든 유전자 조작 기술이든 가축이 기본적으로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인식을 잊어버리고 단순한고깃덩어리로만 판단하여 함부로 교배 혹은 조작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이런 뜻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인데 표현이 다소 거칠고 전후 맥락없이 사용되어 오해의 소지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잡종은 자주 흥분하여 문제를 꼬이게하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습니다.물론 이 누드닭의 경우 김우재님의 말씀처럼 목에 털이 없는 종과 단순한 교배를 통해 생겨난 종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이건 더 성찰 필요하지만 여기에서 논의 사항이 아니니 일단 넘어가지요)하지만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가축이 생명체라는 인식을 결여한체 동물은 인간에게 단백질공급원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식의 발상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발상입니다.저는 그것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누드닭의 사례에는 맞지 않을수도 있다는 반론은 수용할 수 있습니다.이왕 말씀드린김에 한걸음더 나아가지요 현대 축산업은 고기공장이아닌가 하는게 잡종의 생각입니다. 과거에는 동물이 자연적으로 존재하고 그걸 육식동물인 인간이 자연스럽게 먹었다면 이제는 동물의 생명체로서의 속성은 사라지고 고기덩어리로 대상화 하는시각만이 남아서 그 정도를 지나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것이 잡종의 생각인거지요. 광우병의 경우에도 동물 사료를 먹여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는데동물을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생명체로 인정하지 않고 고기덩어리로만 보아서 단기간에 더많은 고기를 생산해야 한다는 생각에 소에게 소고기를 먹이는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이런 행동들때문에 인간광우병이라는 무서운 결과가 생긴게 아닐까요 현대 축산업의 이런 측면은 반드시 비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식(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기술을 이용하여 식량문제를 해결하자)으로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믿는것은 옳은 측면이 있을수있지만 대체적으로 옳지 않다는게 잡종의 생각입니다. 아프리카 기아문제는 절대적 식량부족의 문제도 있지만(홍수 기근 등으로 인한 농사의실패로 인한 식량부족을 뜻합니다) 그보다는 유럽에 팔기위한 환금작물을 재배하느라 식량 작물을 제대로 재배 못하거나 아니면 정치 불안으로 인한 문제로 인하여 생기는 문제로 인하여 기아가 더 심각해지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절대적 식량부족이 현재의 극심한 기아를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은 아닙니다. 북한의 식량난이 식량 생산기술의 부족이 가장큰 원인이 아닌것을 보면 쉽게 이해하실수 있으실겁니다 --잡종
- 육종에 대한 거부감에 대해서.
과거에는 동물이 자연적으로 존재하고 그걸 육식동물인 인간이 자연스럽게 먹었다면 이제는 동물의 생명체로서의 속성은 사라지고 고기덩어리로 대상화 하는시각만이 남아서 그 정도를 지나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것이 잡종의 생각인거지요
자기 모순입니다. 스스로의 동물애를 이런식으로 정당화 시키지 말아주세요. 가축은 어차피 먹거나 부리기 위해서 기르는 것입니다. 가축은 애완동물이 아닙니다. 육종과 육식과 동물애(BioPhilia) 사이에서 고민하시는 것 같은데, 인간은 건강하게 살기 위해 육식을 필요로 하고, 수요가 존재하는 곳엔 공급이 따르는 법입니다. 마지막으로 광우병의 원인은 광우병에 걸린 소로 만든 사료를 먹었기 때문이지, 고기 사료를 먹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차피 소들도 풀뜯어 먹다 보면 개미나 곤충등으로 육식을 하게 됩니다. 잡종씨가 생각하는 자연적 이라는 것은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고 사회를 이루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없었습니다. 지구상에서 인간을 지운다면 그런 세계가 건설될지도 모르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식으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전세계 육식인간들 모두에게 육식하지 말라고 주장하실 건가요? 잡종씨가 원하시는 자연적인 낙농으로 고기 수요를 줄이면 고기값은 뛰고 우리는 모두 채식주의자가 될까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고기 수요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고기에 대한 욕구는 매우 뿌리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집약적인 축산을 할 수 밖에 없고, 다만 건강에 해가 되지 않는 방법은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약적 낙농을 하면서 어떻게 가축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하는가. 오히려 그것이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잡종씨도 이에는 동의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서 한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유전자 조작된 미생물을 이용한 혁신적인 빵이 개발된다고 해도 이렇게 흥분하실것 같나요? 털 안달린 동물에 대해서도 말이지요. - 아프리카의 기근해결에 대해서.
아프리카의 정치가 안정된다고 현재의 기근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움은 되겠지요. 지구 인구의 8억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이게 모두 사회구조의 문제라고 보십니까? 어차피 지구가 감당하기에 인간이 너무 많습니다. 기근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60억의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한 식량은 부족합니다.거대 자본국가에서 원조를 해준다고 해도 그건 임시 방편입니다. 남 좋은 일 계속 해줄 나라가 어디있겠습니까. 스스로 자족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옥수수 재배를 가르친다거나, 누드닭을 기를 수 있는 기술을 전수해 준다거나 하는 방법 말입니다. 저도 세계 경제 시스템이나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때려부수고 미국의 썩어가는 식량을 모두 아프리카에 원조해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기대하느니 차라리 아프리카의 사막이 모두 초원으로 바뀌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국가간 관계라는 것도 어차피 경쟁이고, 죄수의 딜레마를 따릅니다. 아프리카의 기근을 해결하려면 악조건의 기후에 맞는 농업시스템과 축산시스템을 공급해주는 것이 당장의 원조보다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과학입니다.
식량난은 전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이 점을 명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사회시스템적인 문제와 제국주의의 잔재에 의해 그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저도 충분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근데 정말 식량이 부족해서 식량난이 생겨나는 것인가요? 어떤 책을 보면 식량 자체가 부족한건 아니라고 하던데...이것도 음모론 인가요? -- magnusyi
물론 지구 전체를 두고 볼때 지구 전체 식량 생산량이 지구 전체 인구수에 대해 부족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문제는 식량 생산, 소비가 일부 국가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겠지요. 국지적으로 볼 때 몇몇 지역에서는 '식량 생산량/소비 인구수'가 적정 비율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구 한편에서는 고도 비만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근으로 목숨을 잃어가는 현 상황이지만, 고도비만, 과잉 식량 소비가 문제인 국가들이 기근이 문제인 국가에 그들이 생산한 식량을 나누어 주는 상황은 현재로선 이상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아와 폭식으로부터의 탈출--흐름
솔직히 말해서 잡종은 육종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번기회에 알아 봐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알아 보는 중입니다. 제가 글은 쓴것은 모든 종류의 생명조작을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가지는 현대 생명과학에 대한 문제의식은 대상화 와 과도성 의 문제 입니다. 우선 대상화 의 문제부터 말하면 물론 가축은 사람이 먹거나 부리기위한 존재인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 세탁기(인간의 빨래를 도와주는 존재)나 텔레비전(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과 가축이 차이가 없는가 그건 아닐것 같다 분명 다르다 이것이 잡종의 생각인 거지요. 과거에 임꺽정이라는 드라마에서 백정 임꺽정이 소를 다루는 장면을 보면(물론 드라마라서 과장되는 측면이 있지만)도살을 하더라도 생명에 대한 인식을 하면서 도살을 했습니다.물론 이런 행동을 웃기다고 생각 하실 분도 많겠지만(어쨌든 도살이 아닌가)말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간단히 말해서 가축은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생명체다 제발 이걸 인식하자 이런 이야기죠. 다음은 과도성의 문제입니다. 인간이 생긴이후로 여러가지로 인간은 nature를 조작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조작속도는 오늘날과는 달리 천천히 이루어졌고 조작의양도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대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많은 nature에 대한 조작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행동이 생태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과학기술이 환경문제를 일으키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중을 기하자는 거죠 완전히 기술을 가로막자 과거로 돌아 가자 이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
질문에 대한 답변
물론 이번경우처럼 흥분하진 않지만 바람직한 기술이라고 생각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역시 대상화니까요
왜 이해하기 어렵게 대상화의 문제와 과도성의 문제라고 하셨는지 잘 모르겠네요...-_-;; 생명의 가치에 관한 문제와 발전의 속도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요? 솔직히 잡종씨가 말하는 대상화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식한 제게 설명 좀 해주세요...
김우재님이 무식한게 아니고 제가 무식한것 아니 논지를 잘 정리를 못했다고 해야하나요 아무튼 윗글에 쓴 대상화와 과도성의 용어는 일단 폐기합니다. (발전과 생명의 가치와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게 뭔지 잘 정리를 못하고 있습니다)
질문을 한가지 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잡종씨가 바람직한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판단은 직관에 의해 이루어집니까? 판단의 기준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직 잡종의 기술에 관한 생각은 명확히 정리 된 바가 없습니다.
잡종은 분배구조를 우선시 하는 노력이 과학 기술로 해결하려는 노력과 같이 가야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그러나 그 둘이 같이 가기보다는 기득권층에 의해 과학 기술로 해결하려는 노력만 옹호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되면 두 노력이 함께하기 보다는 서로 갈등하는 관계가 될것 같은데요.김우재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잡종님이 두려워 하시는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과학기술이 자본에 종속되는 시스템입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종속된 과학기술이 분배구조를 바꾸려는 세력을 억압할 수 있다는 뜻이시겠지요.
이쯤에서 MonsterInScience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공상과학속의 미래는 항상 어둡습니다. 인류는 멸종하거나, 컴퓨터에게 지배를 받는 식으로 그려집니다. 미래를 희망적으로 그린 공상과학 소설을 김우재는 별로 읽어 본적이 없습니다. 100년전의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네. 그 시절에도 과학기술에 의한 미래는 암울한 상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잡종씨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암울한가요?
자본에 의한 종속을 이야기 하는 분들이 많군요. 그럼 되묻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것은 그럼 무엇입니까? 예술은 자본에 전혀 종속되어 있지 않습니까? 인간관계는요? 우리는 우리의 환경이 모두 자본에 종속되어 있다는 이유로 비관론에 빠져야만 합니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기술을 사악한 무엇(예를 들면 환경파괴)으로 몰고가는 거대 세력 같은 것은 없습니다. 환경문제는 국가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일개인에게 환경은 국가가 느끼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결국 개인의 이러한 견제는 국가가 과학기술을 이용해 맘대로 환경을 이용하는 횡포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견제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면 과학기술자와 시민단체, 그리고 국가로 이루어진 대화기구가 필요하겠죠.
왜 과학기술은 기득권층에 이용되는 기술로만 인식되어야 합니까? 과학자의 연구엔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이용하기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말이 됩니다. 결국 부르디외가 과학의사회적사용에서 이야기하는 과학장 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강개발이나 시화호문제를 해결한 환경단체들의 노력에는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유전자조작식품이나 줄기세포연구에 대한 공포감 조성에는 반대합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는 대화의 부재때문이고, 대화를 위한 시스템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영국이나 프랑스는 민감한 사안마다 시민과 과학기술자가 함께 하는 포럼이 열린다고 하더군요. 일단 그런 구조를 만든 후에 이야기할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두 노력이 갈등하게 될것이라는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환경문제에 관해선 이미 전세계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환경문제의 주 원인은 이해관계 때문입니다. 개발로 인한 이익과 파괴로 인한 소실사이의 갈등구조가 되죠. 이에 관한 제 생각은 CanSelfishnessSaveTheEnvironment 에 있습니다. 환경문제로 갈등하는 일은 이제 없을 것입니다. 정치인들의 공약중 가장 앞의 한두가지는 항상 환경문제입니다. 최근 서울시장의 공약도 핫이슈가 청계천 복원사업 이더군요. 전 이러한 인식 전환에 기여한 환경단체들의 노력을 인정하며, 이젠 환경단체가 과학기술을 끌어들여 좀 더 체계적인 운동을 전개할 것을 원합니다.
개인적으로 과학이 해낸 일에 비해 큰 욕을 먹는 것에 민감한 편입니다. 원자폭탄을 만든 사람은 과학자이지만 그것을 이용한 사람은 정치가입니다. 밑에 흐름님과 sweetaby님이 과학의 자본종속 문제를 이야기 하시는데...그게 과학자들의 잘못으로 돌릴 수 있는 문제입니까? 전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코웃음을 치곤 하는데....이공계출신 정부관료가 50%만 되어도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김우재
이쯤에서 MonsterInScience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공상과학속의 미래는 항상 어둡습니다. 인류는 멸종하거나, 컴퓨터에게 지배를 받는 식으로 그려집니다. 미래를 희망적으로 그린 공상과학 소설을 김우재는 별로 읽어 본적이 없습니다. 100년전의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네. 그 시절에도 과학기술에 의한 미래는 암울한 상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잡종씨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암울한가요?
자본에 의한 종속을 이야기 하는 분들이 많군요. 그럼 되묻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것은 그럼 무엇입니까? 예술은 자본에 전혀 종속되어 있지 않습니까? 인간관계는요? 우리는 우리의 환경이 모두 자본에 종속되어 있다는 이유로 비관론에 빠져야만 합니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기술을 사악한 무엇(예를 들면 환경파괴)으로 몰고가는 거대 세력 같은 것은 없습니다. 환경문제는 국가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일개인에게 환경은 국가가 느끼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결국 개인의 이러한 견제는 국가가 과학기술을 이용해 맘대로 환경을 이용하는 횡포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견제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면 과학기술자와 시민단체, 그리고 국가로 이루어진 대화기구가 필요하겠죠.
왜 과학기술은 기득권층에 이용되는 기술로만 인식되어야 합니까? 과학자의 연구엔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이용하기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말이 됩니다. 결국 부르디외가 과학의사회적사용에서 이야기하는 과학장 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강개발이나 시화호문제를 해결한 환경단체들의 노력에는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유전자조작식품이나 줄기세포연구에 대한 공포감 조성에는 반대합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는 대화의 부재때문이고, 대화를 위한 시스템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영국이나 프랑스는 민감한 사안마다 시민과 과학기술자가 함께 하는 포럼이 열린다고 하더군요. 일단 그런 구조를 만든 후에 이야기할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두 노력이 갈등하게 될것이라는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환경문제에 관해선 이미 전세계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환경문제의 주 원인은 이해관계 때문입니다. 개발로 인한 이익과 파괴로 인한 소실사이의 갈등구조가 되죠. 이에 관한 제 생각은 CanSelfishnessSaveTheEnvironment 에 있습니다. 환경문제로 갈등하는 일은 이제 없을 것입니다. 정치인들의 공약중 가장 앞의 한두가지는 항상 환경문제입니다. 최근 서울시장의 공약도 핫이슈가 청계천 복원사업 이더군요. 전 이러한 인식 전환에 기여한 환경단체들의 노력을 인정하며, 이젠 환경단체가 과학기술을 끌어들여 좀 더 체계적인 운동을 전개할 것을 원합니다.
개인적으로 과학이 해낸 일에 비해 큰 욕을 먹는 것에 민감한 편입니다. 원자폭탄을 만든 사람은 과학자이지만 그것을 이용한 사람은 정치가입니다. 밑에 흐름님과 sweetaby님이 과학의 자본종속 문제를 이야기 하시는데...그게 과학자들의 잘못으로 돌릴 수 있는 문제입니까? 전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코웃음을 치곤 하는데....이공계출신 정부관료가 50%만 되어도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김우재
오랜 만에 이페이지에 글을 수정해 봅니다. 이글을 쓸때는 명확치가 않았는데 오늘 생각이 나서요.그러니까 과학 기술이 기득권층에게만 이용되는게 핵심이 있는것이 아니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과학 기술에 의존하는 방법과 그렇지 않은 방법이 있는데 기득권층은 과학기술만으로 모든걸 해결할수 있다고 선전을 함으로써 사회적 방법으로 해결될수 있는문제들이 기술적인 문제로 변환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것이죠. 예를들면 현재의 식량난 같은 경우 더 많은 과학 기술로서 이문제를 해결할수도 있을것입니다.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이것을 사회적 분배 개선의 측면으로 이문제를 해결할수도 있겠죠. 바로 이점이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이듭니다.
저도 하루 빨리 제대로 된 -과학적 지식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과학 정책가들이 나와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쓴 글도 그런 견지에서였구요. 즉, 과학의 잘못된 사용이 나은 일부 부정적인 현재 상황들은 (힘없는)과학자들 권한 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힘있는)자본가나 과학,기술 정책자들이 발 벗고 나서주어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또한 올바른 과학의 사용을 위한 '근본적인 의식 형성'은 과학자 자신들은 물론 사용자(정책자, 자본가, 일반 대중) 전체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흐름잡종이 조사한 서유럽 농업사중 축산학 부분
잡종은 축산학에 대한 무지를 이번 기회에 아주 조금 깨고 있습니다. 서유럽농업사(까치에서 번역된것)391페이지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가축은 다음과 같은 네가지 이유로 축산농민에게 중요했다
-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치즈,버터,우유,고기,가죽및 양모의 생산
- 농민 자신의 가족 소비를 위한 이와 같은 축산물의 조달
- 말 황소 및 암소와 같은 큰 가축들의 견인력으로의 사용
- 두엄생산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환경 문제, 식량 문제-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다 완전하게 구현하려면 과학 기술로서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게 만드는 어떠한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의 과학기술은 날이갈 수록 자본에 종속되어가고 있습니다. 즉, 돈이 되지 않는다면 기술연구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구조이죠. 환경 문제의 측면에선 -한계가 있긴 하지만- 환경문제가 초래하는 인류 대다수의-특히 선진국 사람들의- 불편함이 환경 문제 해결을 과학 기술 발전을 도구삼아 해보려는 노력을 가속시킬 수 있습니다. (역시 한계는 있겠지요. 기술과 자본을 손에 쥔 이들의 환경 문제만 해결된다면, 그보다 더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안고있는 이들의 문제는 어찌되었던 간에 관심사 밖으로 물러나기 쉬우니까요) 식량 문제에 이르러서는 과학 기술로의 해결이 보다 힘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대부분 식량 문제를 안고있는 나라들이 저개발 국이고 어떤 자본과 기술도 섣불리 제 돈 들여가며 그것을 해결하려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선진국에서의 기술 개발이 언젠가는 -실제 문제를 안고있는-저개발 국가에도 그 효과를 파급시키겠지만 자연적인 효과 파급을 기대하기엔 시간이 너무 없습니다. 따라서 잡종님이 말씀하신 것 과 같이 분배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것입니다. 또한 과학, 과학 기술의 주체자들이(과학, 과학 기술자, 과학 기술을 사용자: 자본가 포함) 스스로가 그런 사회적 문제들 해결에 동참해야 함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필요합니다.
과학 기술이 당면한 문제 해결에 사용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의 변화와 그것을 유도하고 지속시킬 보다 근본적인 의식 형성이 필요합니다.(교육, 기타 등등의 사회화 과정을 통한) 지금 이대로(주류대로) 나아간다면 과학, 과학 기술은 결국 인간의-결코 충족될 수 없을-무한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머물게 될 것입니다. 기본적인 생활과 관련 없는 '더욱 더 강도 높은 쾌락을 얻으려는'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서요.. --흐름
과학 기술이 당면한 문제 해결에 사용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의 변화와 그것을 유도하고 지속시킬 보다 근본적인 의식 형성이 필요합니다.(교육, 기타 등등의 사회화 과정을 통한) 지금 이대로(주류대로) 나아간다면 과학, 과학 기술은 결국 인간의-결코 충족될 수 없을-무한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머물게 될 것입니다. 기본적인 생활과 관련 없는 '더욱 더 강도 높은 쾌락을 얻으려는'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서요.. --흐름
흐름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현재 모든 과학은 과도한 자본주의적 사상에 의해 올바른 윤리관과 가치관이 제대로 성립되지 않은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형태이든 인간에게는 당장은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서 토론되는 누드닭같은 100% 고기화 된 종의 출현, 즉 단지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량된 종의 출현이 먼 미래에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줄 지는 두고봐야 알수있는 일인듯 합니다.. 위의 논쟁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잡종님과 비슷한 의견입니다. --sweetaby
저도 글을 썼었는데, 마침 흐름님의 글과 비슷하여 이렇게 생략하여 붙여놓습니다^^. 저는 과학 기술이 발전한다면 지금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강대국의 주도로, 강대국의 소유로 될 것이 불보듯 뻔합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배불리, 아프리카는 굶주리게 살겠지요. 이 방법으로는 절대로 나아질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효과는 커녕 '식량 무기'(식량 무기 : 상대국을 굴복시키는 도구로서의 식량을 말한다. 고가 판매, 협상의 도구, 독극물 위협등의 방법이 있다.) 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라도 잡종님의 의견과 병행해야겠지요. -- 최종욱
단지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량된 종은 이미 얼마든지 있습니다. 관상용 비둘기나 금붕어들이 소위 자연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마 엄청난 선택압을 받고 다른 모양으로 진화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입니다. 누드닭이 우리에게 논쟁거리를 안겨주는 단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보기에 흉하다는 겁니다. 보기도 좋고 고기도 좋은 품종이었다면 이 페이지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모든 가축은 단지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량된 종들입니다. 인간이 가축을 길들이기 시작한 것은 수만-수십만년입니다. 보통의 사람은 치와와를 늑대와 비교해서 불쌍한 넘들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누드닭은 덜 익숙할 뿐 다른 가축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윤구현
단지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량된 종은 이미 얼마든지 있습니다. 관상용 비둘기나 금붕어들이 소위 자연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마 엄청난 선택압을 받고 다른 모양으로 진화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입니다. 누드닭이 우리에게 논쟁거리를 안겨주는 단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보기에 흉하다는 겁니다. 보기도 좋고 고기도 좋은 품종이었다면 이 페이지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모든 가축은 단지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량된 종들입니다. 인간이 가축을 길들이기 시작한 것은 수만-수십만년입니다. 보통의 사람은 치와와를 늑대와 비교해서 불쌍한 넘들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누드닭은 덜 익숙할 뿐 다른 가축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윤구현
더운지방의 육류생산에 획기적인 돌파구 가 될 수도 있군요.. 오.. 저도 부정적으로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TV에서보니 좀 보기가 민망하더군요.. --picxenk
잡종이 이번 토론에서 생기는 스스로에게 생기는 의문점
- 과연 동물을 집약적으로 생산하는것과 식물을 집약적으로 생산하는것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 식물을 먹기위해 기르는것과 동물을 먹기위해서 기르는 것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식물을 먹는 대상으로만 보고있으면서 동물은 고깃덩어리로 보면 안된다는 논리의 근거는 과연 있었던 것인가
- 과연 식량생산을 늘리는 과학기술이 식량난에 종지부를 찍어 줄 수 있는가 마치 도로가 늘어나도 차는 여전히 막히는것처럼 식량생산이 아무리 늘어나도 결국 식량난은 해결되지 않을수 도 있지 않을까?
- 하이테크 농업방식이 진실로 효율적인가 일시적으로 효율이 높을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재래식 농사 방식이 더 효율이 높은게 아닌가
과연 식량생산을 늘리는 과학기술이 식량난에 종지부를 찍어 줄 수 있는가 마치 도로가 늘어나도 차는 여전히 막히는것처럼 식량생산이 아무리 늘어나도 결국 식량난은 해결되지 않을수 도 있지 않을까?
또다른 얘기를 해볼까요... 굴이나 생선따위는 양식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양식과 천연산의 차이는 거의 두배 이상 납니다. 당연히 천연이 더 맛도 있구요. 하지만 천연산은 소량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먹을 양만큼 생산되지 못합니다. 아마도 그게 양식을 하는 이유겠지만.. 그래도 저는 천연산만 먹습니다.
또 다른 얘기입니다. 제가 챙겨보는 만화 중에 '맛의 달인' 이라는 일본만화가 있습니다. 거기서도 육류나 생선, 채소등의 대량생산이 나오고, 맛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 위해서는 대량생산이 필요하다..라는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천연의 맛을 잊으면 안된다...
소는 풀을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닭 역시 그 본모습을 갖추고 있을 때 닭답고, 또 더 맛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겪어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대량생산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굶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요. 인간의 손을 많이 탄 것일수록 생명 자체에는 더 해롭습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먹어야 사람도 건강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제 자식에게도.. 브로일러닭이 아닌 토종닭의 고기를 맛보이고 싶군요.
--Astro
식량난과 교통란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속도를 원해서 차를 원했지만 결과적으로 도로가 마비되어서 속도가 다시 느려진것 과는 달리, 사람들이 식량생산을 늘려서, 충분한 분배를 한다면(아마도 잡종 님이 강조하시는 것일 것입니다.), 배가 충분히 부른 인류는 더 많은 식량을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luftschlosz
하이테크 농업방식이 진실로 효율적인가 일시적으로 효율이 높을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재래식 농사 방식이 더 효율이 높은게 아닌가하이테크 농업방식을 일컫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녹색혁명이라 불리는 농업혁명의 대표로 알려져 있는 질소비료를 예로 들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재래식 농사방식을 이른바 유기농법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화학적으로 봤을 때, 유기농법에서 사용하는 퇴비라는 것과, 질소비료의 차이는 최소한 질산염의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퇴비의 인정될만한 장점은 가축을 키우는 농가에서는 무료로 얻을수 있다는 점인데, 이도 가축이 뜯어먹을 땅에 심지 못한 작물을 생각하면 무료가 아니기 때문에 재래식 농법의 효율은 하이테크 농업방식보다 높을 수 없습니다. --luftschlosz
저는 이 문제를 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저는 스무살 좀 지나서까지.. 닭고기라면 양계장에서 대량으로 키우는 것밖에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여름엔가에 시골 외할머니댁에 가서 '토종닭' 의 맛이란 걸 거의 처음(어릴 때도 갔지만, 그 때는 맛에 대해서 그다지 생각해보지 않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닭고기란 토종닭의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취할 때 종종 프라이드치킨을 먹었지만 말이죠. 또다른 얘기를 해볼까요... 굴이나 생선따위는 양식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양식과 천연산의 차이는 거의 두배 이상 납니다. 당연히 천연이 더 맛도 있구요. 하지만 천연산은 소량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먹을 양만큼 생산되지 못합니다. 아마도 그게 양식을 하는 이유겠지만.. 그래도 저는 천연산만 먹습니다.
또 다른 얘기입니다. 제가 챙겨보는 만화 중에 '맛의 달인' 이라는 일본만화가 있습니다. 거기서도 육류나 생선, 채소등의 대량생산이 나오고, 맛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 위해서는 대량생산이 필요하다..라는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천연의 맛을 잊으면 안된다...
소는 풀을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닭 역시 그 본모습을 갖추고 있을 때 닭답고, 또 더 맛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겪어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대량생산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굶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요. 인간의 손을 많이 탄 것일수록 생명 자체에는 더 해롭습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먹어야 사람도 건강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제 자식에게도.. 브로일러닭이 아닌 토종닭의 고기를 맛보이고 싶군요.
--Ast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