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서의해악

FrontPage|FindPage|TitleIndex|RecentChanges| UserPreferences P RSS
내가 무척 존경하는 번역가이자 소설가, 신화학자인 이윤기 씨는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see also 신화추천도서) 역자 후기에서 양서의해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 간단히 이야기를 하자면, 양서는 마치 색안경 같아서 그 책을 접한 사람에게 한동안 사물을 그 책의 틀을 통해서만 보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 글을 읽을 때는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한참 나중에 다시 곱씹어보니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동안은 신화 관련된 이야기만 보면 어줍잖게 조셉 캠벨을 가져다 붙이고 싶어 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이렇게 되겠다. 어떤 분야에 대해서 관심만 있고, 지식은 별로 없는 사람이 그 분야에 대해 시원스럽게 설명해 주는 양서를 한 권 읽고 아주 감명을 받았다고 하자. 그러면 이 사람은 그 분야에 대해서 별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그 책을 거의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고, 한동안은 모든 것을 그 책에서 이야기한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 책이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해도, 그 책의 관점이 유일한 관점 은 아닐진대 그 사람은 당분간 그 책의 관점에 사로잡혀 다른 생각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윤기 씨가 말한 양서의해악 이다. 만일 처음에 접한 것이 양서가 아니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라면 어떻게든 또 다른 책들을 찾아 읽을 것이고, 그렇게 책을 읽다 보면 더 좋은 책들을 분명히 찾아 읽고 차근차근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 접한 것이 수십 갑자의 내공을 지닌 초절정고수의 비급이라면.. 그보다 못한 하수들이 시전하는 초식들이 눈에나 들어오겠느냐는 말이다. 맛없는 음식을 먹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먹을 수 있지만, 맛있는 음식을 한 번 맛본 후에 맛없는 음식을 먹기란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지 않은가.-- JikhanJung


가장 좋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이하의 것을 경험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요? 그럼 이러한 양서의해악을 없애려면 계속해서 좋은 책들이 나오는 수 밖에 없겠군요. (동감 --김창준) 저도 현재의 위키위키보다 더 멋진 것이 나와야 위키의 해악에서 벗어날 수 있을 듯. ;) --이카

노력을 하지 않는다기보다.. 그 양서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된다는 이야기죠. -- JikhanJung


흔히들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서 도약점을 몇 번 가졌느냐는 것이 그 사람이 얼마나 발전했냐는 것을 말해준다고 합니다. 우리가 성큼 계단을 올라서는 도약점은 새로운 틀에 망치로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고 기존의 틀을 넘어설 수 있는 시점일 겁니다. 양서의 중요성은 안주에 있는 것이 아니고 탈주와 초월, 파괴를 통한 새로운 창조에 있다고 봅니다. 논어집주서설에 이런 말이 있죠 "今人不會讀書 如讀論語 未讀時是此等人 讀了後又只是此等人 便是不曾讀". (오늘날 사람들은 독서를 제대로 할 줄 모른다. 이를테면 논어를 읽음에, 읽기 전에도 이 놈이고 다 읽은 뒤에도 이 놈이면 이것은 전혀 읽지 아니한 것과 같다.) 저는 읽기 전의 저와 읽은 후에 저가 달라지는 책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건 책과 동시에 저도 관련된 문제 같군요) --김창준

음, 쓰려다가 깜박 빼먹은 이야기가 김창준 님 말씀과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양서 자체도 하나의 도약일 수 있고, 결국에는 그 양서의 영향력을 벗어나 자신만의 관점을 확립하는 것이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은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죠. -- JikhanJung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이카 (See Also 음양오행

그럼 이기적유전자의 영향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것은 좋은 징조이겠군요. 결과적으로 양서란 읽기 전과 읽은 후에 사람을 달라지게 하며, 양서를 진정한 양서로 소화시키기 위해선 그 양서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관점을 가져보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군요. 다시한번 도약을 해야 할텐데요... --김우재

양서의해악을 말씀하심에, 하나의 정신적 틀에 안주하고 TunnelVision이 될 수 있다는 점과 중급, 하급들이 우습게 보인다는 점은 조금 구분해 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전자는 언급을 했으므로, 후자의 경우를 이야기 하자면 전 이렇게 봅니다. 엄청난 대가가 쓴 비판서만 달랑 읽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 경우 다른 사람들의 이론이나 저술들은 모두 비리비리하게 보일 수 있죠. 그런데, 그런 비판서의 올바른 이해는 비판 당하는 것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 연후에야 가능한 것(예컨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처럼)인데 자칫하면 그 맥락을 얻지 못하고 비판의 노예가 될 수 있겠죠. 공부를 겉핥기 식으로 하는 사람들은 높은 위치에서 이것 저것 비판하고 새롭고 거시적이며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책을 좋아합니다. 이 사람들은 비판은 잘해도 생산은 못합니다.



원전의중요성과도 연결됩니다. 특히 그 양서가 2차/3차 자료일 경우엔... 그리스 로마 신화는 불핀치의 책보다는 원전에 가까운 '메타모포시스'를 읽어야...

단점에서오는장점과도 같이 때로는 악서의 이로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군요. 자동사적타동사적 작가와도 연결이 되고요. --dotory

비슷한 말로, 책 한권만 읽은 사람하고는 얘기하지 말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책은 그 작가의 시각과 사고를 대변하고, 그 시각에 유리한 사실만을 나열합니다. 이것을 항상 인지하고, 해당 분야에 대해서 진실을 알고 싶을 경우에는, 반대 시각을 가진 책들도 한권쯤은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그러지 않았을 경우, 전문가흉내내기 는 절대 피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 이에 관한 내용이 나는이런책을읽어왔다 에도 나와 있습니다. 어차피, 그의 일에 이런면이 많거든요. -- Iron



"; if (isset($options[timer])) print $menu.$banner."
".$options[timer]->Write()."
"; else print $menu.$banner."
".$timer;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