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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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님의 유재하를 읽고 반가운 마음에 옛날에 썼던 글을 올립니다. 난도도 유재하 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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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론



1. 柳在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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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6. 6. - 서울에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남. 3남3녀중 다섯째.
1981 - 한양대 음대 작곡과 입학
1984 -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 키보디스트로 참여
1986 -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 키보드 연주
1987. 8. - 독집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발표
1987.11. 1.- 교통사고로 타계
1997. 9. - 김현철, 이문세, 신해철, 이소라 등이 참가한 헌정앨범 <다시 돌아온 그댈 위해>발표

2. 87.11. ∼ 88.11.


유재하가 죽었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하러 가는 도중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다섯. 석 달 전에 발표된 기념비적인 그의 독집 앨범은 그의 죽음으로 더 유명해졌고, 동료 음악인들과 팬들은 그를 추모하느라고 법석을 떨었다. 당시 필자는 중학교 2학년. 그의 음악을 듣기 시작한 것은 다음 해인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로부터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 세월을 나는 그의 음악과 함께 해 왔다. <우리들의 사랑>, <그대 내 품에>, <텅빈 오늘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미뉴에트(Minuet)>, <가리워진 길>, <지난날>, <우울한 편지>,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 전설 같은 이 아홉 곡은 그대로 나의 전설이 되었고, 나는 그에게 경도된 채 그를 통해 음악을 알았다.
그의 천재성을 감지한 것은 그를 듣기 시작한지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 포켓가요같은 싸구려 노래집에서 <우울한 편지>의 코드진행을 보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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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9)나를 바라 (G7)볼 때 눈물 (CM7)짓나요 (Cm9)마주친 두 (F7)눈이 눈물 (Bb7)겹나요
(Bm)그럼 (E)아무 말도 (A)필요없(F#m)이 서로 (FM7)를 믿어(E7)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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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무정형! 이렇게 자유로운 코드진행 방식을 나는 그 때까지 본 적이 없었다. 클래식에서도, 발라드에서도, 락에서도. 비록 나중에야 극도의 프리재즈에 등장하는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당시 나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더 놀란 이유는 악보를 보고서야 이렇게 코드진행이 산란한 곡이라는 걸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듣기에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애초에 코드진행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음유시같은 노래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곡들은 일정한 코드진행 방식을 가진다.


"나를 바라볼때 눈물짓나요. 마주친 두 눈이 눈물겹나요." 부분은 흔하디 흔한 ii-V-I 코드진행입니다. 처음소절(나를바라볼때 눈물 짓나요)은 C Major scale을 기반으로 한 ii-V-I이고, 두번째 소절(마주친 두 눈이 눈물 겹나요)는 Bb Major scale을 기반으로한 ii-V-I입니다. 두 소절사이의 연관성이라면 처음 소절의 I코드(C Major)의 Paralell minor 인 C minor 로
두번째 소절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한국 가요중에 이처럼 공격적으로 코드가 바뀌는 곡은 이 곡 외에는 들은적이 없습니다. 코드 진행이 복잡하면서도 멜로디가 귀에 거스르지 않는 이유는 위에 설명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견해 -witel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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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Am F G // C Am F G / ...... (이상은의 담다디 같은 곡) 혹은
/C G Am Em F C Dm G // C G Am Em F C Dm G / .... (윤도현, 가을우체국앞에서 같은 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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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것은 가장 간단한 코드진행 방식의 예이다. 이 방식을 벗어나는 경우, 듣는 사람은 긴장감을 느끼는데 심한 경우엔 불쾌감까지 느낄 수 있다. 때문에 變調나 이탈화음 사용은 긴장감을 활용하여 곡에 활력을 주고자 할 때 조심스럽게 쓰인다. 그런데 <우울한 편지>에서는 그 어떤 조(key)나 기본화음도 전제하지 않은채 그저 멜로디에 따라 취한듯 산란한 화음을 펼쳐놓지 않았는가? 이 발견 이후 나는 그의 진가를 파악했다는 교만과 평생 그에게 미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오가며 내 가능성을 점쳤다. 당시 내가 발견한 가장 큰 세계는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88년 11월의 일이었다.

3.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유재하의 음악은 혼자 만든 음악이다. 작/편곡은 물론 노래, 연주까지 대부분 혼자 해냈다. 한 장의 앨범에서 그가 다룬 악기는 피아노, 키보드, 바이올린, 첼로, 기타, 베이스 - 무려 6종이다. 드럼과 플루트, 클라리넷 - 아마도 그가 못 다루었던 악기였던 것 같은데, 그리고 현악중주를 제외한 모든 악기를 혼자 연주하여 자기 앨범을 녹음했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어느 악기도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는 뜻이다. 너무 진부하게 들리는가? 그렇다면 당장 아무 대중음악이나 틀어놓고 들어보라. 드럼, 키보드, 기타, 베이스라는 기본 세션이 얼마나 판에 박힌 반주를 하고 있는지. 네 박자로 돌아가는 드럼비트, 기본 화음을 좍 깔아주는 키보드, 으뜸화음과 딸림화음을 반복하는 베이스라인, 이 참을 수 없는 권태로움들이여! 팀워크를 이루어 음악작업을 한다는 것은 때론 가장 보편적인 연주방식을 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근대적 분업생산과 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마케팅하기 시작한 오늘날의 비극이기도 하다. 유재하는 그것을 미워했다. 때문에 모든 악기를 자기 통제 하에 두고 하나하나의 악기를 반주가 아닌 연주를 했던 것이다. 그가 연주하지 않았던 악기도 치밀한 악보 구성 속에서 자기 자리를 요구받았다.
그의 앨범 B면 첫번째 곡 <가리워진 길>의 예를 들어보자. 이 곡은 고전음악 악기(피아노, 현악중주, 그리고 관악기) 만으로 구성된 기념비적인 재즈곡이다. 현악과 관악으로 조용한 팡파레처럼 울려퍼지는 전주 첫 두 소절, 이어 노래의 시작을 알리는 피아노와의 합주, 그리고 노래가 시작되면서 일시에 잠잠해지는 관현악, 그의 특유한 건조한 목소리와 함께 들릴듯 말듯 어우러지는 고음의 피아노, 도입부를 넘어서면서 자유롭게 등장하여 멜로디를 타고 넘는 플루트, 절정부 그대여 힘이 되주∼오에서 다시 한 번 조용히 폭발하는 관현악, 1절과 2절 사이 짧은 간주를 절묘하게 이어주는 차분한 오보에, 마침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곡의 종료를 알리는 처음과 같은 관현악 팡파레 - 고마울 정도로 완벽한 이 곡의 악기 연주 방식은 깊이 고민한 기획자에 의해 통제되는 완벽한 음악이라는 고전음악의 이상을 대중음악 속에 부활시켰다. 유재하의 음악은 유재하로 꽉 차 있다. 그의 가사처럼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4. 무정형성과 정형성


그는 자기 앨범 아홉 곡을 다양한 장르로 채워넣었고, 無定形과 定形의 中庸을 지키며 자신의 음악을 완성했다. 글 첫머리에서 무정형의 극치인 <우울한 편지>의 발견을 기록했지만 사실 그에게 받은 첫 번째 인상은 꽉 짜여진 정형의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던 것 같은데, 첫 번째는 형식을 잘 갖춘 음악이 지니고 있는 편안함이란 특징을 곡마다 갖추고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라디오에서 처음 들은 그의 음악이 <지난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문세가 코러스를 넣은 이 곡은 아마도 대중들의 귀에 가장 즐겁게 들릴 것이다. <지난날>은 앞에서 전형적 코드진행의 예로 든 <담다디>의 코드진행을 조금 변형하여 곡 내내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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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7)지난 옛 일 (Am7)모두 기쁨이 (Dm7)라고 하면 (G7)서도
(CM7)아픈 기억 (Am7)찾아 헤메이는 (Dm7)건 왜일까(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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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는 이 완벽한 정형성이 좋았다. 음악이란 모름지기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탄탄한 구조를 통해 자신을 완성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지난날>은 내 이런 생각을 높은 수준에서 만족시켜주는 음악이었다. 그런데 음악을 열심히 듣는 사람은 좋은 음악을 들으면 실제로 연주해보고 싶어지는 법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고 <지난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갑자기 난관에 봉착했다. 위의 코드진행에 맞게 아무리 건반을 두드려도 앨범에서 들었던 소리 비슷하게도 안 나는 것이었다. 왜일까? 나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건반소리를 중심으로 <지난날>을 주의깊게 들어 보았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냈다. 위의 코드진행을 따르고 있는 건 베이스 뿐이라는 사실이다. 굉장히 조화로운 것처럼 들리는 건반 소리는 실은 코드진행과 별 상관이 없는 2차화음이다. 노래곡조 위에 씌워지는 이문세의 코러스에서도 코드진행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따라서 <지난날>을 연주하려면 왼손은 베이스 음을, 오른손은 건반 음을, 노래는 노래대로 완벽한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을 해야했던 것이다. 모든 악기를 독자적으로 연주한다는 유재하의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베이스의 일관된 고집은 일관되이 내버려두고, 장난치는 듯한 건반은 끝까지 장난치게 둔다. 이러한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날>에서는 두 번의 조바뀜을 마련해 놓았다. 하나는 C에서 D, 또 하나는 다시 D에서 C로의 조바뀜이다. C에서 D로와 같이 상향조바뀜을 하는 경우는 많다. 그리고 그 진행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문제는 D에서 C로의 하향조바뀜이다. 나는 하향조바뀜이 실제로 쓰이는 예를 <지난날>에서 처음 봤다. 보통 조바뀜은 분위기 쇄신과 감정고양을 위해서 쓰인다. 조를 올려서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면 분위기가 좀 더 강화되고 감정은 고양된다. 종교집회 같은데서 노래를 하면 대중들의 감정을 순간적으로 잡아내기 위해 바로 이 상향조바뀜 수법을 많이 이용한다. 따라서 한 번 올라간 조를 내린다는 것은 비정상적이고 어리석은 행위이다. 또 기술적으로도 어렵다. 바뀔 조의 딸림화음이 등장하면서 으뜸화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조바뀜의 일반적인 수법인데, 하향조바뀜에서는 바뀔 조의 딸림화음이 현재 조와 도무지 조화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재하는 이 짓을 어떻게 해 냈는가? 먼저 상향조바뀜부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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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Am) 얘기하듯이(Em) 옛 추억이란(A#) 아름다 (G)운 (A)걸 (D)다시 못 올 (Bm)지난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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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꺼운 글씨체부분이 상향조바뀜의 순간이다. 일반적인 수법대로 바뀔 조의 딸림화음(A7)이 바뀔 조의 으뜸화음(D)를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향조바뀜은 어떻게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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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그대와 (A7)나의 지-난 날 (D) (Bm) (A#) (G) (CM7)언제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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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다섯번째 마디에 등장하는 내림바장조(A#)에 있었다. 이것을 통해 D조의 일반적 진행을 자연스레 무너뜨리면서 하향될 조(C)의 딸림화음(G7)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파격적 화음 구사가 신기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지난날>이 대중음악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클래식에서는 이 정도의 화음 구사는 그저 자유로운 정도지 파격적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고전음악이 틀에 박힌 음악이고 대중음악이 자유로운 음악이라는 통념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고전음악의 자유로움은 대중음악의 파격까지도 아우르며 넘나드는 정도이다. 고전음악에서 정형적인 것은 프리젠테이션(presentation)의 형식일 뿐이고 작곡의 내용에 있어서는 오히려 자유로왔다. 고전음악에 정형성이 있었다면 대중음악은 정형성이 지배한다. 대중음악의 자유로움은 속 편한 단순성에서 오는 착각일 뿐이다. 심지어 옷차림과 태도에서 오는 착각이기도 하다.( 나는 소위 주류 대중음악에 대해 말하고 있다. ) 그렇다면 대중음악은 고전음악에 비해 왜 정형적이고 단순한가?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 첫 번째는 비트(beat)의 사용이고, 두 번째는 기타(guitar)의 사용이다. 비트는 반복되어야 한다. 그래야 몸이 반응하기 쉽다. 몸의 반응을 통해 인간 실존에 육박하려는 것이 의식있는 대중음악 뮤지션들의 목표였다 두 번째는 기타의 사용이다. 기타는 대중음악 악기의 총아이고 거의 모든 대중음악가들이 기타로 음악을 시작한다. 그런데 기타에는 플랫이란게 있고, 일정한 코드의 이 있다. 型을 통해 음악을 배운 사람들은 좀처럼 型을 벗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음과 음 사이를 파고드는 찰현악기의 섬세함이나, 펼쳐진 건반 위를 달리는 피아노의 자유로움으로 음악을 배운 사람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찰현악기와 건반과 기타와 베이스를 다루는 음대생 유재하의 진가가 여기서 드러난다. 현악4중주 곡인 <미뉴에트>와 본격적인 락비트의 <텅빈 오늘밤>을 한 앨범에 담을 수 있는 뮤지션이 우리 음악사에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정형성과 무정형성을 넘나드는 그의 음악은, 이미 충분히 비트와 기타에 젖어있는 우리 대중음악에 어떤 새로움이 필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5. 뮤직 임파서블


그런데 그의 음악은 불가능하다. 무슨 소린가? 공연이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앨범은 더빙 기술을 통해 혼자만의 작업으로 만들 수 있지만 공연은 그럴 수 없다. 보통 대중음악은 다른 연주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지만( 이를테면 발라드곡을 락버젼으로 리메이크 한다든지 ), 유재하의 음악은 그런 게 아니다. 재즈 <우울한 편지>는 계속 재즈여야 하고, 발라드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은 계속 발라드여야 한다. 아니, 그냥 그 음악 그 자체여야 한다. 유재하는 완벽성이라는 건방진 목표를 걸고 음악을 했고, 그의 앨범이 바로 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재하처럼 많이 리메이크된 가수도 없을 것이다. 97년도에 그의 전곡이 리메이크된 앨범이 나왔지만, 그 전후로도 참 이 가수 저 가수가 많이도 그의 곡을 다시 불렀다. 그런데 하나같이 실패했다. 특히 상업적 앨범에 담겨 상업적 방식으로 재해석된 그의 노래는 그의 팬들을 분노에 몰아 넣을 정도였다. 이승환이 라이브의 황제라고 불리는 이유는 자신의 곡을 라이브에 맞게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변신시켜 팬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샌님 유재하는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일단 다른 사람에 의한 변신은 실패했다. 내 생각엔 유재하 자신도 자신의 앨범에 담긴 음악을 어떻게 재해석할 방도를 찾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그가 공연을 했다면 자기가 지휘를 하고 관현악과 현대 악기를 모두 갖춘 장대한 밴드가 그의 지휘를 따라 연주하는 방식으로 했을 것 같다. 그럼 노래는 누가 하지? 그래서 공연이 불가능하다.
이쯤에서 유재하 음악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을 솔직히 말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은 바로 그의 음악이 철저히 관념적 기획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氣의 발산을 최소화하고 理의 발현을 극대화했다. 그는 타인과의 교섭에서 오는 역동성을 미워하고, 자신의 세계에 몰입했을 때 흘러나오는 아름다움만을 사랑했다. 이런 그의 지독한 면은 <우리들의 사랑>의 드럼 소리를 들어보면 가장 잘 드러난다. 다른 악기와의 즉각적인 호흡의 공유를 전제로 하는 타악기인 드럼이 거기서 완전히 바이올린 독주 같은 소리를 내고 있다. 그 박자의 움직임은 너무 황당해서 여기서 옮겨볼 방도가 없을 정도다. 그런 드럼 소리엔 결코 몸이 움직일 수 없다. 다른 악기가 협연할 수도 없다. 일찌기 전위음악에서 5/4박자와 같은 얼토당토 않은 박자로 음악을 만든 적이 있긴 하지만, 이건 엄연한 4/4박자 곡인데 전위음악같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이 긴장감을 곡이 끝나도록 지탱한 유재하의 정신력이 놀라울 뿐이다. 어찌 <우리들의 사랑> 뿐이겠는가? 완벽을 위한 그의 치열한 긴장은 앨범 전체에 베어있다. 그 긴장을 한 번 더 반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공연은 불가능하다.

6. 2000. 8.


유재하는 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죽는게 가장 자연스러웠다.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그의 모습을 나는 상상할 수 없다. 완벽한 음악을 해 놓았으면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음악이란 죽은 음악이다. 일찍이 베토벤이니 모짜르트니 하는 고전음악의 영웅들이 완벽한 음악에 근접한 어떤 걸 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곡만의 완벽이었지 프리젠테이션의 완벽은 아니었다. 고전음악 영웅들의 음악은 재해석의 여지가 풍부한 하나의 氣 덩어리였고, 완성의 기쁨은 연주자와 청중이라는 역동적인 場에서만 얻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대 더빙기술의 발달과 한 천재의 교만은 완벽한 프리젠테이션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해 버렸다. 그는 그의 앨범과 함께 唯我獨尊의 경지에 올랐다. 신이 된 것이다. 그리고 신은 세상을 떠나야 했다. 생각해보라, 작곡하는 모짜르트만 해도 버거운데, 그 모짜르트가 혼자 연주도 하고 노래도 해서 완벽한 앨범을 자꾸 만들어 낸다면 세상 사람들의 정신력이 그걸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래서 유재하의 앨범과 유재하의 죽음이 고맙다. 그리고 내가 평생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라는 사실도 고맙다. 그래서 음악을 안 하게 된 것이 고맙다. 나는 요즘 편안하게 음악을 즐기고 있다.
유재하 때문이다.

--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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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봤습니다~ :) 음악을 들을 때 이렇게 깊이 있게 들으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요? --지원

난도씨가 재하형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부채질하여 제 마음을 난도질 하시는군요. 한때는 재하형의 화신이고 싶었던.... --김우재

전 오랫동안 사람들이 왜 유재하, 유재하 하는지가 하나의 미스테리였는데... 난도님 덕분에 오랜 의문을 풀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지상은

아아..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중의 하나였는데, 이 글 읽으니 유재하씨에 대한 느낌이 새로워지는군요. 잘 봤습니다. --Kenial

별헤는 밤이면이 귓가에 들려옵니다 --무신

좁은 식견으로 글 중간에 삽입했습니다.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witel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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