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ing Test

FrontPage|FindPage|TitleIndex|RecentChanges| UserPreferences P RSS

질문

AlanTuring은 컴퓨터의 이론적 모델인 TuringMachine을 고안해 냈다. 더불어 한가지 의미심장한 (철학적)질문을 던졌는데, 그질문은 기계가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거였다. 기계가 생각을?? 음..지능을 가졌다는 얘긴가?? 정말 기계가 생각하는게 가능할까? 기계가 생각을 할줄안다는 판단을 어떻게 할수 있을까? 나라면 이런 질문에 대해서 어떤 실험을 고안하겠는가?

기계가 생각하는지를 판별하는 실험 (TuringTest)

AlanTuring은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 답게 상식에 근거한 모방게임이라는 실험을 고안해낸다. (이런 명석한 사고가 천재들의 특성이 아닐런지..RidiculousSimplicity를 보시라)

FROM THE IMITATION GAME TO THE TURING TEST

The Turing Test was introduced by Alan M. Turing (1912-1954) as "the imitation game" in his 1950 article (now available online) [http]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Mind, Vol. 59, No. 236, pp. 433-460) which he so boldly began by the following sentence:

I propose to consider the question "Can machines think?" This should begin with definitions of the meaning of the terms "machine" and "think."

Turing Test is meant to determine if a computer program has intelligence. Quoting Turing, the original imitation game can be described as follows:

The new form of the problem can be described in terms of a game which we call the "imitation game." It is played with three people, a man (A), a woman (B), and an interrogator (C) who may be of either sex. The interrogator stays in a room apart from the other two. The object of the game for the interrogator is to determine which of the other two is the man and which is the woman. He knows them by labels X and Y, and at the end of the game he says either "X is A and Y is B" or "X is B and Y is A." The interrogator is allowed to put questions to A and B.



When talking about the Turing Test today what is generally understood is the following: The interrogator is connected to one person and one machine via a terminal, therefore can't see her counterparts. Her task is to find out which of the two candidates is the machine, and which is the human only by asking them questions. If the machine can "fool" the interrogator, it is intelligent.

This test has been subject to different kinds of criticism and has been at the heart of many discussions in AI, philosophy and cognitive science for the past 50 years.


어딘가에 그림을 통한 설명이 있을텐데..

첨가할 사항
  • 튜링 테스트의 의의 :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내성의 문제가 아닌, 외적인 행동을 기준으로 보자는 제안. 기계의 겉모습만 보아서는 '기계의 내적 상태'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관점'의 문제를 프래그머틱하게 해결하는 행동주의적 입장.
  • 튜링 테스트의 모호함 : 누가 그리고 얼마동안 판단하는가가 의외로 중요한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일반인들은 컴퓨터 전문가들보다 쉽게 속는다. 만일 라디오가 처음 나왔을 때였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라디오를 '말하는 기계'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몇 차례 열린 공개 테스트(답변을 예/아니오로만 할 수 있는 제한된 테스트)에서 아주 간단한 프로그램들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는데, 일반인들은 주어진 시간(10여분) 안에 그것이 프로그램인지 사람인지 알아낼 수 있는 질문을 하지 못했다.
  • 논리적 문제 : 기계가 생각한다고 실험자가 믿는 것실제로 기계가 생각하는 것은 별개다. 그러나, 튜링테스트는 이 둘이 같다고 주장한다.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기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생각하는 기계가 아니라 생각하는 것처럼 믿어지는 기계일 뿐이다. --쓴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이유는 단지 그 사람이 지능을 가지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TuringTest를 통과한 기계가 지능을 갖는다고 믿는 것과, 주변의 다른 사람이 지능을 갖는다고 믿는 것, 이 두가지 믿음 사이에 차이점은 없어보입니다. --아무개
    어떤 것이 그러하다고 믿는 것어떤 것이 그러한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림 중에 두 선이 같은 길이인데도 다른 길이처럼 보이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 그림은 길이가 다른 것처럼 보이는 두 선이지 길이가 다른 두 선이 아닙니다. 우리는 '길이(length)'라는 말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알고 있고 객관적인 척도(ex. meter)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TuringTest의 논법을 따르자면 그 두 선은 자로 잴 것도 없이 '길이가 다르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TuringTest는 지능에 대한 객관적인 척도 대신 주관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TuringTest의 결과는 사람마다 달라지기 마련이고 따라서 '시험'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 되고 맙니다. 또, 이런 얘기도 할 수 있겠지요. 미국 백인들이 보기에 서남아시아의 무슬림들이 하는 행동이 이상하다고 해서 무슬림들이 지능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지요. 단지 처한 환경적 조건이 다르고, 역사적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TuringTest는 이러한 가능성들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습니다. AlanTuring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TuringTest에 불합격했기 때문 아닌가요. --쓴귤
    지능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도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관찰하는 것 이외의 방법으로 그 본질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현상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느냐가 그 본질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느냐로 이어집니다. TuringTest의 의의는 객관성에 있다기보다는, AlanTuring이 지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개
    글의 시작은 TuringTest의 논리적 문제이지 AlanTuring이 이해하고 있는 지능이 아닙니다. 튜링테스트의 논리적 문제는 지향적 오류(IntentionalFallacy)에 속하는 것이죠. 덧붙여 말해서 정신(mind)를 TuringMachine으로 설명하려는 기능상태동일론, 튜링 기계 기능주의, 심리기능주의 등은 논파된 게 벌써 20년 전입니다. 물론 TuringTest가 공학적으로는 의미가 있습니다. 대화 프로그램 같은 것들은 사용자가 그렇게 믿기만 하면야 별 무리가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그것이 실제로 '대화'를 하고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쓴귤
    예. 알겠습니다. 쓴귤님께서 주장하신 내용에 대해서 저도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ShowMeTheSource please. 참고로 저의 생각은 십여년 전에 읽게 된 "아인쉬타인의 두뇌와의 대화"라는 DouglasHofstadter의 짧은 에세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제 주장의 소스는 GoedelEscherBach, TheMindsI 등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무개
    Readings in Philosophy of Psychology, Havard University Press, 1980. --쓴귤
    감사합니다 :) 읽을 책 목록에 적어두었습니다 --아무개

{{|
튜링 테스트는 일종의 행동주의, 또는 (더 나쁘게는) 일종의 조작주의, 또는 (가장 나쁘게는) 일종의 검증주의를 토대로 한 독단을 범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이 세 종류의 서로 연관된 관점들은 (...omitted...) 과학철학자들에 의해 반박되어 매장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넌더리나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까닭은 무엇인가?

(...omitted...)

튜링 테스트는 블랙 박스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에 취약한가? 우선 호프스태터가 그의 대화식 글에서 말하듯이 우리가 서로를 블랙박스로 취급하고, 타자에게 마음이 있다는 우리의 신념에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겉보기로 지적인 행동에 대한 우리의 관찰에 의지한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둘째, 블랙박스 이데올로기는 결국 모든 과학적 탐구에서 나타나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우리가 DNA 분자에 대해 지식을 얻으려 할 때, 우리는 그 분자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탐색하고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조사한다. 암이나 지진, 그리고 인플레이션에 대해 연구할 때도 완전히 동일한 방법에 의존한다.

(...omitted...)

우리가 품고 있는 어떤 물음이 어떤 대상이 지적인지의 여부에 대한 것이라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서로 주고받는 물음보다 더 효과적인 검사법은 없을 것이다. 결국 튜링의 행동주의의 정도는, 이처럼 우리가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간편한 실험실 양식의 테스트에 포괄시킨 것에 불과하다.

--by DanielDennett. "이런, 이게 바로 나야(The Mind's I)" 중에서.
|}}

참고 자료

응용

관련 사이트



의식은 방에 들어있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포함한 방 전체에 있습니다. DouglasHofstadter의 "아인쉬타인의 두뇌와의 대화"에서 아인쉬타인의 지능은 책을 읽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인쉬타인의 두뇌를 표상하는 "책"에 있습니다. SeeAlso "The Mind's I", GoedelEscherBach. --아무개


See Also:


"; if (isset($options[timer])) print $menu.$banner."
".$options[timer]->Write()."
"; else print $menu.$banner."
".$timer;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