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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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행중인 민족분쟁

1.1. 코소보의 알바니아와 세르비아계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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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은 발칸반도느 분할되었다. 크로아티아는 이탈리아의 영향아래 파시즘체제가 수립되었고 슬로베니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일부는 이탈리아로, 슬로베니아의 나머지는 독일로, 마케도니아는 불가리아에 복속되었고 세르비아에는 독일의 영향아래 나찌즘체제가 수립되었다

이 기간 동안 크로아티아 파시스트 집단인 우스타샤(Ustashas)는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인을 정권의 희생양으로 삼아 학살을 일삼았으며, 구왕정을 지지하는 친세르비아 반공산주의 체트니크(Chetniks) 운동세력은 나찌 즘체제에 저항하면서 크로아티아인에 대한 학살을 자행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적인 나찌즘과 파시즘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티토가 이끄는 사회주의 빨치산 운동세력은 지지 기반을 넓힐 수 있었으며 이런 지지기반에 힘입어 전후 이 지역의 유일한 대체 정치세력으 로 서방의 인정을 받아 '유고슬라비아 인민공화국'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반파시즘 투쟁의 대열에서 힘을 합쳤던 제민족은 연방국가를 건설한 이후 다시금 대립하기 시작하였 다. 오랜 역사적 단절과 독자적인 문화의 발전이 또 다시 국가통합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각기 다른 문화권에 속하여 오랫동안 분할 통치를 경험하는 동안 달라진 문화를 단일한 문화로 통일시키기가 용이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화적 변수 가운데 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종교로서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도 그 영 향력은 지속되었다. 여기에 더해 지배민족인 세르비아의 자기 종교우대 정책은 여타 종교를 신봉하는 집단의 저항을 초래하였다.

사회주의 붕괴이후 분리과정을 겪고 있는 유고슬라비아의 재통합과 통합 유고슬라비아내의 주도권 회복 곧 대세르비아민족주의의 관철을 통한 자신의 집권연장을 원하는 세르비아내 보수주의 세력의 의도적 행위로 분쟁 발발.

이들은 연방의 분리의 움직임이라는 위기상황을 맞아 어떠한 방식으로건 활로를 찾지 않으 면 안 되었는데 바로 민족주의로부터 그것을 찾은 것이다. 세르비아 보수세력은 이미 1960 년대 중반 정치·경제적 민주화와 분권화가 시작될 당시부터 민족주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 기 시작하였다. 비록 일부이긴 하였지만 이들은 민주화와 분권화 세력을 반세르비아세력으로 지칭하고 세르비아의 적으로 규정하곤 하였다. 특히 1971년 다시 크로아티아를 중심으로 개혁세력이 득세하자 보수세력은 이들을 파시스트 우스타샤 재건 움직임으로 몰고 갔고 마 침내 개혁세력의 제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철저한 보수주의자였던 현 세르비아 대통령 밀로세비치는 이 시기에 군의 당조직에서 상위직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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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 [http]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의 원인과 향후전망 - 이종훈(정치학박사)

이들의 상황은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비슷한 점이 많다. 위의 분석은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을 설명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유효할 수 있다.

1.2.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유고슬라비아 구성국이었던 세르비아공화국과 크로아티아공화국의 전쟁이 이 지역으로 확전됨.

1.3. 이라크와 쿠르드족


1.4.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1.5. 동남아시아

  • 인도-파키스탄-스리랑카

1.6. 중앙아시아

1.7. 서남아시아

  • 동티모르-인도네시아-필리핀
(독립했으나 또다른 분쟁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http]21세기 첫 국가탄생… 본격 정치무대에 오른 동티모르의 험난한 독립행진 - 한겨레21

2. 왜 지금 서구(서유럽-북아메리카)보다 비서구지역에 분쟁이 많은가

다시 말해서, 90년대 이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민족분쟁(상당부분이 비서구지역에서 진행중인데)의 원인은 무엇인가?

서구에서는 혁명과 내전 등의 혼란의 과정을 거치며 근대국민국가가 형성되었고 그렇게 통합된 힘으로 제국주의 정책을 폅니다. 이에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의 많은 국가(대부분 국가의 틀을 형성하고 있지는 않았고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의 틀이 형성됩니다.)들이 서구의 식민지가 되었고 얼마간의 식민지 지배 기간을 거친 후 어쩔수 없는 세계정세에 따라 식민지는 지배국으로부터 독립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그렇듯이 대부분의 독립국은 사실상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지배국의 편의에 따라 만들어진 국가였기에 분열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분열 역시 간접적인 지배를 노리는 강대국의 입맛에 맞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서구에서는 분쟁을 통해 어느정도는 점차로 힘의 균형을 찾아갈 수 있었지만(특히 프랑스와 같은 경우는 좌와 우가 서로 싸그리 죽여보기도 하며 양쪽 다 무시할 놈들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해서 똘레랑스라는 개념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식민지 경험이 있던 국가에서 벌어지는 분쟁은 힘의 균형을 찾는다는 잇점도 얻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아프가니스탄만 해도 이쪽 저쪽에서 자꾸 건드려서 분쟁은 끊이지 않고 국토는 피폐해져가기만 하고...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제3세계는 왜 이렇게 싸우느라 정신없냐라는 의혹은 뒤에서 무기를 대주거나 팔아먹거나 하는 커다란 세력에게로 돌리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독모에서 잠시 나왔던 이야기였는데 얘기할 기회를 놓쳐서 아쉬웠었고 다른 분들의 의견도 더 듣고 싶네요. --dotory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발달로 인해?, 발달을 일으킨?) 생겨난 근대국가의 형성이란 언제나 폭력의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dotory씨 말대로 서구 역시 엄청난 폭력 속에서 근대국가는 형성되었습니다. 유럽중세 후기 수천개의 군사권력이 19세기엔 수십개로 정리되는 대외전쟁의 연속, 또 국가 내부에서 벌어진 전쟁(계급투쟁)들. 이런 과정 속에서 근대국가는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근대국가체제(+자본주의적 경제체계)가 형성된 이후엔 체계의 압력으로 인해 강한 국가를 만들지 못한 세력은 비참해질 수 밖에 없었죠(페리 앤더슨은 폴란드 귀족들의 예를 들더군요. 그들은 근대 초기 중앙집권적 국가 건설을 거부함으로써 일종의 집단적 자살을 감행했다고)

과거 식민지였던 지역에 대해서도, 전 단지 이런 과정 속으로 이제 들어온 국가들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대부분의 신생독립국들은 독립투쟁을 통해 국가를 쟁취합니다. 물론 정세의 도움을 받았겠지만, 알제리에서 동티모르까지 내부의 열망이 국가 성립의 주요한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그리고 대한민국은 식민지 권력이 가하는 폭력을 거부하고 우리들(우리들 who? 우리들의 가하는 폭력?)의 나라를 세우려 했던 거겠죠.

따라서 어떤 국가의 전쟁원인을 외부에만 돌리는 건 부질없다 생각됩니다. 전쟁이 없는 국가는 전쟁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자기 나라에서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강한 국가일 뿐. 하지만 모르겠습니다. 이런 국가수준의 이해관계가 과연 그 국가의 영토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합치하는지는. 분명 국가가 강해야 국민이 안전하다는 말은 현재의 국제체제 아래선 어느정도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다고 '자신의' 국가가 다른 국가를 더 잘 압박하는 것이 정말 우리들의 삶에 도움을 줄까, 머 그런 생각. --그놈
민족분쟁이 일어나게 된 건, 새로운 요인이 있어서가 아니라 세계체제가 그것을 "억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월러스틴 식의 분석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선 체제는 민족분쟁을 "생산"하지 않을까요?

이 문제에 관해 상대적으로 최근에 등장하는 논의들은, 과거의 전쟁에 비해서 90년대 들어서 심화되고 있는 세계의, 특히 아시아 지역의 분쟁들을 기존의 국민국가 중심의 정치적인 관점에서만 논의해온 경향에 대한 대안으로서,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 등의 문화적, 종교적 문명간의 갈등이 더 근원이 되어나타나고 있다는 진단을 제시하는 것같습니다. 즉 냉전체제 이후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나 민족분쟁이 더 심화된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목격할 때, 현재는 서로 다른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과거의 이데올로기를 대신하여 나와 다른 이들을 타자화시키고 차별화해내는 기능을 하면서 더 뿌리깊은 전통과 신념과 감정의 문제가 되기 때문에 해소되기 어려운 갈등을 양산하므로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죠. 이 부분은 물론 논쟁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차치하고 암튼, 이런 맥락에서 논의되고 있는, 문화-종교들 간의 충돌을 그날 이야기했던 것이랍니다. 근데.. 최근의 이러한 주장들이, 기존의 분쟁/갈등 연구에서 지배적이어온, 근대적인 국가의 형성 혹은 권력구조 등에 초점을 맞춘 정치학적인 분석보다 더 유의미한지, 더 설득적인지는 개인적으로 아직도 고민중이라는... --우산

아직 덜 깨친 정치-경제주의자의 생각을 이야기해보자면, 문화나 종교가 분쟁의 형태로 심각해지는건 대부분 국가나 경제적 메커니즘과 결합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니다. 90년대엔 이데올로기보다 민족이나 자기 국가만의 고유한 문화를 강조하면서 국가를 강화하거나, 특정한 문화적 가치를 국가행위의 발판으로 삼을 때도 많아졌기 때문에 문화가 더 표면에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싶구요. 흠.. 그러고보니 덜깨친 정치경제주의자는 국가권력을 향한 욕망이나 경제적 빈곤이 없다면, 문화끼리는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진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네요. --그놈

인간은 유사 이래 전쟁을 밥먹듯이 해온 동물입니다. 그렇다면 유사 이전은 평화로왔을까요? 대답은 부정적이죠. 우리가 흔히 아는 단군신화도 곰을 숭배(토테미즘)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이 싸워 곰을 숭배하는 부족이 이겼기 때문에 나타난 이야기라는 말(카더라통신-얼마나 믿을만 한지 잘 모릅니다. 역사학 전공하신 부운, 손드세염!^^;;) 신빙성있어 보입니다. 이 보다 더 믿을 수 없는 말로는 평화를 사랑한다고 떠벌리는 한민족이 반만년 동안 전쟁을 얼마나 했냐면 4년에 1번(아님 4일에 1번이덩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요점에는 별 영향이 없을 듯... 앗, 4달에 1번??? 생각해보고 정 생각 안나면 지우겠습니다.--;; 도와주실 부운!!!)꼴이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전쟁이 많았다는 소리이지요.

지금 아시아 지역의 분쟁이 많은 이유를 따지신다면, 과거엔 세계 제 1차 대전 당시...나 2차대전 발발 당시엔 학자들이 왜 아시아는 그리 대규모의 전쟁이 없는데, 유럽만 전쟁이 일어날까...를 따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야 모르는 일이지만, 역사차를 뒤져 보면 과거에도 명분, 문화차, 모욕, 종교가 전쟁의 주요 원인으로 많이 등장했던 것 같은데요... 하지만, 그 모든 이유의 밑에는 이익이 깔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겉으로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 선전포고를 하지만, 사실 내가 빼앗긴 것을 되찾거나, 남이 가진 것을 빼앗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전쟁하는 것은 아닌지요...

이타적유전자를 읽어보면 그런 인간의 맞대응 전략이 빚는 참혹에 대해서 잠깐 언급이 되는데요. 인간이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그렇게 치고박고 싸우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왜 과거엔 유럽이었고, 지금은 아시아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 군요... 왜 임진년에 왜란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할까요? 이거 같은 문제 맞죠? B) 일본은 이런 마찰을 역사 기록에 불일치가 있어서...라고 주장할 지 모르겠지만 한국사람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본이 욕심이 지나친 것이죠. 한국이 그 욕심을 저지할 만큼 아직 강하지 못한 것이구요. 글쎄요... 일본의 입장이 맞을까요? 우리 입장이 맞을까요? 저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시아 지역의 분쟁을 종교나 이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일본이 한국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린 소련과 미국이 대 이념으로 냉전을 하고 있을 때도, 이념보다 욕심을 앞세워 모든 분쟁을 해석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도 우리는 직접적 이해관계였기 때문이겠죠. 강자의 입장에서 제 3자의 상관없는 입장이 아니라, 지금 바로 그 시각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결론적으로 제 생각은 아마도 아시아지역은 아직 소유의 경계선(법, 제도)이 명확하지 않아서, 조금만 싸우면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것들에 대한 죄수딜레마 게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실제 데이터들을 모아야지요.^^;;

악마같은남성이란 책에는 현대 문명 사회와 문명이 별로 미치지 못하고 있는 부족들 간의 폭력 수준을 비교한 자료가 나오는데, 한계야 물론 많겠지만, 아무튼 그 자료는 문명이 발달할 수록 폭력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건 단순한 육체적 폭력이니까, 미디어 폭력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히 포함되지 않습니다. 제도와 법이 체계화될수록 과거의 폭력적인 힘의 방법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시도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가능해졌다는 듯이 보입니다. 물론 여전히 법보다는 주먹이 가깝지만, 과거보단 주먹의 거리가 현저히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 유럽의 법이나 제도가 아시아보다 세련되다는 것은 인정하실 것 같습니다. 어쩜 소유권이 불확실한데, 서구 유럽이 본보기가 되어 무엇을 차지하면 나중에 이득이 될지 너무 뻔하게 알게된 아시아에서 더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추론을 해 봅니다. --
하지만 유럽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광기의 혁명과 전쟁이 지나간 뒤 이번엔 군중 속의 고독이란 문제가 법과 제도가 발달된 사회에 찾아갔으니까요. 비가 와야 땅이 굳을텐데, 비가 안 와서 땅이 안 굳는 걸 슬퍼해야 하는 꼴이죠. 그렇다고 내가 목숨이 위험할 때 나를 도와주는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죽을 위기에 자신을 몰아 넣을 수도 없고... MovieOpenYourEyes를 보았습니다. 쓴맛을 모르면 단맛을 알 수가 없다고 하는 군요. 그렇담 행복만 가득한 낙원이란 만들 수 없단 말인가요...ㅜ.ㅡ 너의 공허는 텅빈채로 완성되어 있었다는 신해철의 노래가사도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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