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종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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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2000년동안 인간을 지배해온 종교론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는 원시적멸(, 불교등)이며, 둘째는 말세개벽(민족종교일파, 기독교등)이다. 현재의 대부분의 종교는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이론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에게 어필하지 못한다. 허무와 적멸은 게으름과 나태와 허무로 빠지기 쉬우며 개벽론은 마음이 병드는 데 안성맞춤이다.

어째서 종교는 우리의 삶의 반석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20세기에 들어와서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했던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강증산, 구제프(G.E.gurdjieff), 오르빈도(S.Aurobindo), 라이히(W.Reich)최수운(崔水雲)등이 있다. 대부분은 이들을 이단으로 칭한다. 그들은 교단을 세워서 헌금을 강요한 적이 없으며, 민중의 삶을 영원의 연장선상으로 일치시켰다는 죄 때문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인간은 모순적이다. 자신을 그토록 피폐하게 만든 기존의 종교에는 진저리를 치면서, 새로운 삶과 이상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보수적이다. 일반적으로 그들에 대해서 알기 전에 바로 이단과 사이비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이른바 정통 '교단'을 차린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모순은 20세기동안 인간과 영원을 분리시켜온 기존의 음모와 획책에 기인한 사고작용이다.

  • 우리는 종교에 헌금을 할 필요가 없다.
  • 삶은 영원이나 종교와 분리될 수 없다.
  • 인간은 누구나 다 소중하며, 존재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 게으름은 근본적인 어둠의 원인이다.(물론 창조성을 위해서 이른바 '빈둥거림'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업무에만 매진하는 것도 게으름과 나태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게으름은 습관화에 기인해서 다른 활동을 방임하는 것을 말한다.)
  • 우리는 모두를 도와야 한다.

종교는 삶의 연장이다. 그리고 삶의 도구이자 삶의 사치이다. 우리는 삶과 영원을 분리시키는 기존의 모든 세력권에 대해서 격렬하게 싸워야 한다. 항상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지성으로 매진해야 한다.


아말감은 기존의 세력있는 종교들-불교, 기독교 등-이 요즘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 종교들이 어디까지나 아주 적은 자원과 에너지밖에 쓸 수 없던 시절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자본주의나 물질만능주의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도 없다. 그것이 서양의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에게 불교바람이 불은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의 도시생활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자원낭비 형태를 고래적 절제론 하나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냐 하면, 아니다.

인간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동시에 지구건강을 위해 적절한 에너지정책을 시행하도록 인간을 재조직할 수 있는 무언가가 기존의 종교를 대체할 수 있을것이다. 물론, 적은 에너지로 써비스를 극대화하는 전자기 복제술에, 전자기 네트워크화하는 지구에 대한 적절한 대응도 포함해서.


종교 속에 녹아 있는 강요의 요소를 지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종교는 무의식을 지배한다. 20여년을 수동적으로 종교계에 몸담고 있었던 김우재는 그 무서움을 잘 안다. 인간의 마음이 약해지면 종교라는 무의식적 권위는 울트라 슈퍼 파워업을 한다. 그것을 극복한다는 것은 상당한 공부와 노력을 요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를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다가 자기자신을 파괴하는 것과 그냥 그 종교속에 녹아드는 것 중 무엇이 나은것인지 김우재는 잘 모르겠다.

어떤 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서울 밤하늘 수 많은 빨간 십자가들이 한심스럽게 느껴지다가도 그 안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것에 미쳐있지 않고 종교라는 틀 안에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흐름

음... 어떤 책에서 종교, 아니 신학은 궁극적으로 인간학이라고 말한 구절이 생각나네요. 중세 종교에는 인간이 빠져있어서 몰락했고, 위에 언급된 종교라는 단어에는 인간이라는 말이 묻어있지 않은 종교에 대한 것 보입니다. 저는 신 중심의 종교에서 인간 중심의 종교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아무개

musiki인간 중심의 종교에서 신 중심의 종교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기독교가 무너지고 있는 이유는 신과 그의 가르침을 믿지 않고 교회에서는 단순히 자기의 복을 얻기를 기원하거나 자기의 이익을 위해 교회를 이용할 뿐인 기복신앙에 있다고 생각한다. --musiki


이기심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기 때문에 인간이 이기심을 지울 수 있다면 이런 종교가 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종교를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서 사용하죠 - Iron

모든 종교가 인간의 이기심과 기복적인 요소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는 ilzamusik은 새로운 종교라는 것이 그 경전에 씌인 말이 현대적일 뿐 결국은 기성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내면의 문제다.종교는 내면의 깨달음에서 멈추어야한다.그러한 깨달음으로 사회를 구원하려는 시도는 여태까지 실패했다.사회는 서로 다른 생각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유기체며 그들에게는 소박한 약속이 필요할뿐 거대한 믿음의 체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것 같다. --잡종

옆에 목말라서 물좀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인정과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마실 물을 조금 나누어줍니다. 이것은 종교 이전의 문제이지요. 그런데 종교에서는 이것을 자비(불교) 혹은 사랑(기독교)이라고 하여 종교성을 부여합니다. 종교성이 부여되어 그것이 강령이 되면 변화가 일어나게 되지요. 내면이 바뀌게 되어 그 바뀌어진 자아가 충만하게 되면 그것이 흘러 넘치게 됩니다. 흘러 넘친 것이 곧 말라서 없어져도 계속 흘러 넘치게 됩니다. 내면이 바뀌면 겉으로 자연히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실천하는 것이 실패하더라도, 삽질을 하더라도 계속 하는 것입니다. --아무개
바로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종교성에 관한것입니다.사회적 개혁은 사회적 방법을 따르면 됩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윤리적 지침들은 대부분의 종교에서 비슷합니다. 그 정도 수준에서 세속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개혁혹은 구원할 수 있습니다. --잡종
제가 지적하려 했던 부분은 내면과 행동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종교의 사회성을 설마 부정하려 하는 것은 아니시겠죠 ? 그리고, 세속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개혁하거나 구원하는 방법이 있다면(모든 사람을 배부르게 하는 것 ?) 대단히 환영할 만한 것입니다. --아무개
물론 그렇습니다.진정 깨달은 사람이 많은 사람이 도탄에 빠져있는것을 알면서 사회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것자체는 불가능한 일이죠.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겁니다. 하나님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가지고 마더 테레사가 인도인들을 위해서 수없이 자선을 행했고 그 결과 많은 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했던일은 매우 훌륭한 일이죠. 그러나 현재까지 인도의 구조 개혁에 마더 테레사가 직접적으로 기여한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종교는 구조 개혁 보다는 이렇게 개인적으로 자선을 행하여 문제를 해결해 온것이 사실에 가까운것이 아닌가 하는거죠. 이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하나의 종교를 완전하게 믿지 않는한 인간의 세속적 삶의 진보는 세속적 방법으로 계속 삽질을 해야 합니다. --잡종
잡종님의 의견에 동의하며. 현대적 사회복지의 시작을 1601년 영국 엘리자베스 구빈법으로 보고 있는데 그 법의 가장 큰 의미는 구빈의 책임을 종교에서 국가로 바꾸었다는 겁니다. 현재 사회적 약자를 가장 잘 보호하고 있는 나라들은 종교가 아니라 국가, 사회제도로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윤구현

전 종교가 싫습니다. 특히 유일신을 강조하는 종교는 더욱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제게 자꾸 죄의식을 만들어내서 저로 하여금 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그것을 온전히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만 화평을 가져다 주는 것 같습니다. 자꾸 이리저리 생각해보는 사람에게는 그 과정 자체가 죄의식과 함께 가기 때문에 괴롭기만 합니다. by 열혈여아
신 중심의 종교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입니다. 중세 암흑기에는 신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고 믿었고, 신과 스스로 대화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을 화형에 처해버렸으며, 일반 사람들이 성경을 못 보게 했다고 하지요. 죄의식으로 사람을 울타리 안에 가두고, 받아서 잘 소화시킬 만한 것들만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기독교의 예수가 창녀에게 죄가 없다고 했다는 사실을 중세 교회에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지요. 요즘 교회도 그 경향성은 비슷합니다. --아무개

종교에 대한 안형진의 간략한 생각: (계속추가수정) (1) 종교는 새 대통령을 뽑듯이 개혁과 가시적인 성과를 추진하기 위해 선택할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2) 기존의 거의 모든 종교 - 아마도 100%, 특히 국내의 성경기반종교들과 불교 - 를 혐오한다. (3) 성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의 성서가 100% 신이 본래 기록하게 한 바로 그 성서라고는 믿지 않는다. (4) 진실 - 과학적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엔 어려움이 많은 - 을 알아야/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5) 그 결과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2003-5-9 8:43pm

헌금에 대하여

몇년 전에 이런 이야기를 교회에서 들었다. 원래 십일조의 근본적인 유래는 가을에 추수할 때에 이삭을 일부러 흘려주는 것과 똑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유대)은 가진 자들이 땅을 소유했고, 못 가진 자들이 소작농으로 일해야 했으며, 가장 기름진 땅을 가졌다는 갈릴래아(갈릴리)지방의 사람들이 아이러니컬하게 가장 가난했다고 한다. 즉, 갈릴래아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땅을 소유하지 못하는 소작농에 불과했던 것이다.

부자들은 곡식을 추수할 때에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모두 쓸어갔던 것은 아니였다. 다행히도, 경전(구약성경?)에는 추수할 때에 반드시 이삭을 흘리라고 나와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 이유는, 소작농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한, 남편을 잃은 여인(과부)들이 밭에 있는 이삭이라도 거두어 갈 수 있게 한 배려였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십일조의 유래라니 ? 그렇다면 십일조를 받은 교회는 그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야 하지 않는가 ? 유감스럽게도, 십일조의 대부분은 교회의 운영비/목사,전도사 사례비/전기세/수도세, 그밖에 어린이들의 먹거리, 학생들 교육비로 들어가버리고 10%도 미치지 않은 십일조가 불우한 학생을 위한 장학기금/가난한 성도 혹은 근처 양로원,장애우를 위하여 쓰여진다. 그나마 그것은 나은 편, 어떤 큰 XXX교회에서는 신문사를 차려서 돈을 날리고 많은 기독교 단체에 의하여 비판을 받아도 잘 나간다. 정말 진리를벗어난종교다.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것이다. --아무개
2005년을 맞아 인터넷에서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이용하는 '이지데이'사이트에서는 가계부 외에도 일정, 일기장 등 다양한 무료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나의 다짐, 공개다짐 이런 것이 있어 나는 담배를 끊겠노라 공개다짐을 했다. 공개인지라 이름만 안보일뿐 나이, 성별과 함께 다짐하면서 써놓은 내용이 공개되며 차후에 성취도를 입력할 수도 있고 다른 이용자들이 답글을 달 수도 있다. 공개다짐중에서 이런 것을 보았다. 20대 여자. '신년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꼭! 번 돈의 1/10을 십일조로 떼어놓는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라 헌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저 다짐을 보았을 때 언뜻 내 뇌리를 스친 생각은 '*** *** **** * ** ***'은 아닌가 하는 거였다. 과민반응인가? -- Anke

근거없는 말이다. 십일조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여져야 하고 실제로 쓰여지고 있음을 musiki도 인정하고, 마지막 단락에서 하고자 하는 말에 대해 100% 공감하나 앞의 두 단락은 맞는 사실이지만 십일조의 유래와는 아무 상관없다. 아무개패턴으로 이러한 근거없는 유언비어가 퍼뜨려질때 musiki는 심지어 간담이 서늘해진다. --musiki

십일조는 구약(초기)시대에 토지를 받는 대신 성막을 관리하는 일을 맡은 레위지파를 위해 떼어놓은 몫이다. 그 후, 솔로몬 때에 성전이 세워지고, 제사장들과 관련 직책을 맡은 사람들의 몫, 성전 관리비로 쓰이게 되었다. --친과학자

십일조의 유래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주자 아브라함이 소득의 십분의 일을 바쳤다는 기록인 걸로 압니다. --직감

음.. 이렇게까지 내용이 :> 저기 위의 아무개는 저 무신입니다. 후후. 제가 몇년여간 성경이랑 안 친하게 살다가 요새 조금 보고 있는데, 십일조의 근거가 될 만한 내용을 찾아보았습니다. (사실 이걸 찾으려고 성경을 본 것은 아닙니다만)

구약의 레위기에는 그 히브리인을 이끌기 위한 모든 규약 및 제사방식에 대한 매우 자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가히 레위기 그 자체는 성문법과도 같은 존재였죠. 그런데 여기에 십일조에 대한 얘기가 있느냐 ? 네.. 저의 의도를 미리 예측하고 계신 분 있으실 것 같은데 맞습니다. 레위기에는 십일조에 대한 그 어떠한 직접적인 언급도 없었습니다. 위의 직감님의 말씀처럼 아브라함의 소득에 대한 십일조가 아마도 구약의 처음 십일조에 대한 언급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 간혹 십일조에 대한 언급이 성경 곳곳에 있지만 유독 레위기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현 기독교계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십일조에 대한 언급은 왜 하필 레위기에 없을까요 ? 저도 이게 의아해서 어떤 목사님께 여쭤봤습니다. 맞다고 하더군요. 십일조에 관한 이야기는 레위기에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십일조에 관련된 얘기가 레위기에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현 십일조제도는 그 권위를 절반 이상 잃게 되는 것과도 마찬가지일텐데요. 친과학자님이 언급하신 레위지파를 위해 십일조를 떼어라는 얘기도 레위기에는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물론 비슷한 얘기는 있으나 그것은 십일조에 관한 얘기가 전적으로 아니지요. 레위기에서는 죄를 사하기 위해 무엇을 바치는 제사에 관한 내용, 이렇게 하면 형벌을 주라는 내용. 희년에 대한 내용 등등의 광범위한 규범에 대해 비교적 매우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부분을 찾을 수 있는데, 무엇의 죄를 빌기 위해서는 소를 바치라. 소도 안되면 양을 바쳐라 양도 안되면 비둘기.. 비둘기도 안되면 밀가루(소제)라도 바쳐라.. 뭐 이런식으로 어떻게 보면 매우 세심한 가난한 사람을 위한 배려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십일조도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그 당시 아브라함은 매우 부자였기 때문에 십분의 일을 바치라고 한 것이지 그가 가난한 사람이였다면 십의 일을 바치라는 말씀은 하지 않았으리라 감히 추측합니다. 십일조가 현재 기독교에서 유독 중요시 되는 것은, 또 십일조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식으로 알고 있는 이유는 바로 교회 체제의 편리함을 위한 후대에 나온 발상이지 십일조가 원래부터 꼭 그렇게 내야 한다는 어떤 성경적인 원리나 근거는 매우 희박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군요 --무신


십일조가, 그 근거가 없는 헌금일 수 있다. 위의 논의를 보니 실제로 그러한 듯 하다. 여기서 우리는 '잠정적으로 강제적으로 헌금을 내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결론을 내리자
다만, 이렇게 말하면서 동시에 십일조와 헌금이 내는 자신에게 얼마나 유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기에. 내 경험을 조금 이야기하고싶다.
나는 20년 이상 기독교인으로 살아왔고, 후반의 5년 이상은 매우 적극적인 기독교인으로 살고있다. 그랬기에 용돈이면 용돈, 아르바이트비면 아르바이트비, 십일조를 꼬박꼬박 지키고, 헌금을 드려왔다. 이렇게 신의 앞에(교회 앞이 아니냐고 비아냥거리지 마시라. 걔네들이 어떻게 쓰는지는 내 알바가 아니고, 어쨌든 난 하나님께 돈을 바쳤다.) 돈을 바치며 그때마다 스스로 증거하고 재확인하는 사실은, 나는 돈과, 물욕과, 여타의 욕망에 나를 맡기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에게만 나를 맡긴다고. (또 신은 나를 구속하는 분이 아니시기에)나는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알바가 뭉텅뭉텅 잘려버린 요즘은 주머니 사정이 좀 안타까워서 헌금 잘 안낸다. 어쨌든 그게 본질은 아니지만 스스로 점검해야겠는데... 뭐 이건 개인적인 부분이고. 말하고 싶은 것은

봉헌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며, 요즘처럼 물신주의적인 세상에서는 나를 나로 살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의식이 된다고 생각한다. --송석운

신께 바치는 것이라면 굳이 교회라는 형식을 통해서 수수료 떼고 내실 필요가 있을까 의문입니다. 도와주실 수 있는 좋은 단체 많습니다. 암네스티 인터내셔널이라든가, 적십자라든가, 구세군도 있지요. --panickros
헷헷 사실 엠네스티를 포함해서 두어개 단체에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내는 헌금은, 기독교인 생활에 필요한 커뮤니티로써의 교회의 일원으로 남기 위해서.. ㅋㅋ 사실 봉헌행위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하고 있답니다. 알아주세요...ㅠㅠ -송석운

강압성이 없는, 인간 중심의 종교는 존재할 수 있는가

현재까지 강압성이 없으며, 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종교는 존재한다. 노장사상이 그러하며, Wicca와 같은 종교가 그러하다. 예를 들어 Wicca(Satanism과는 전혀 관계 없다. Wicca는 Earth-Based Religion이다. 자연친화적이며 샤머니즘적인 요소를 잔뜩 포함하는 현대의 종교이다.)를 믿는 사람들 (Wiccan, 여자는 Witch라 불린다. 다시 말하지만 Satanism과 전혀 관계 없다)은 같은 Wicca라는 종교를 놓고 다양한 믿음을 가진다. 일부는 수많은 다신들을 믿고, God/Goddess의 양신을 믿는 경우가 있으며, TheOne을 믿는 자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의 종교로 이어지고 있고, 이러한 주제로 건전한 토론이 이어진다. 심지어 영국에는 크리스트교 교인들이 Wicca 집회(Coven이라 불린다)를 열기도 한다.

좀 더 공부한 다음에 정리해 보겠습니다. You said TakeYourTimePlease, so I will take my time. :) -- CafeNoir

See also 불교

닐 도날드 왈쉬의 '신과 나눈 이야기' 1권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류기정


종교가 강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눈이 강압적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누구든지 안 믿을 권리가 있다. 중세 종교재판의 시대도 아니고... --산우행
성경에 전도의 의무가 명기되어있다고 합니다. --최종욱
그리고 마음이 강퍅해서 안 믿고 지옥에 갈 사람도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강압'이 신의 의지라면, 처음부터 원죄를 짓지 못하는 인간을 만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성경에 씌여진 '전도'의 의무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지역'에 복음을 '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친과학자

종교란 무엇인가? 에 대한 논의가 먼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초기 초기 불교나 노장사상은 종교가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위에서 전개되는 대화에 참여하고픈데 관점이 전혀 다르므로 매우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페이지 이름과 무관한, 그리고 다른 페이지에 적합할 논의들도 보이는데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채로 온도가 식어버려서 역시 좀 아쉽습니다. (물론 저의 글이 온도 상승에 기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ilzamu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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