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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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Page별의반짝임달마에서성철까지 군대이야기

노스모크에는 민방위군방위병만 있는게 아니다. 군대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군대를 제대했거나 복무중인 사람

1.1. 김우재

이 이야기는 정말 하기 싫지만, 군대이야기를 하다보면 항상 밝혀지기 때문에 노스모크오프라인모임에서 이야기 하기전에 미리 내어 놓으려고 한다..

김우재의 입대일은 95년 8월 8일이다. 제대일은 97년 4월 14일이다. 여기에서 뭔가 눈치채셨으리라 생각한다. 정확하게 5개월하고 25일이 빈다. 그러나 김우재는 병장으로 제대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그것은 바로 김우재가 간첩을 잡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97년 2월의 혹한기 훈련에서 김우재는 부상을 입었다. 고지를 기어 오르다가 미끄러졌는데, 뒤집어지면서 떨어졌기 때문에 허리를 다쳤다. 결국 복귀후 다음날 일어날 수가 없었다. 휴가를 받아서 NMR을 찍어본 결과 선천성양성종양이 발견되었다. 즉 입대전부터 이미 자라고 있던 종양이 그날의 부상으로 인해 신경을 건드렸거나 혹은 약간 터졌거나..뭐 그런 것이다. 결국 후송에 후송을 거듭 청평까지 가게 되었고, 거기서 제대했다. 그 덕분에 6개월의 시간을 번 김우재은 미국으로 건너가 약간의 해외경험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남자에게는 허리가 중요하다는데...하지만 수술 후 김우재의 허리는 멀쩡하다. 비가 심하게 오는 날 가끔 뻐끈한것을 제외하고는..

후일담: 수술할 때 전신마취를 처음 해봤는데, 죽으면 이렇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나서 처음으로 한말이 이랬단다. 내가 내 아들 군대 보내면 인간이 아니다 아픈 추억이다.

1.2. 자하

저는 교도대(矯導隊) 다녀왔슴다. 육군에서 말하는 교도대대(敎導大隊)와는 다른 곳이다. 법무연수원에서 조교들이 그러더군요. 예들아 청송만 안가면 된다. 제 동기 5명이 청송으로 빠졌습니다. 그중에 2명이 맞아 죽었습니다.요즘은 구타사건이 일어나면 군기교육대로 가지만 그곳은 구타를 하던 타구를 하건...-_- 전혀 상관을 하지 않았지요.
사족인데... 저는 예술적인 감흥이 뛰어난 사람은 되도록이면 군에 안갔으면 좋겠습니다.(어떤 수를 쓰던) 군대는 사람을 (적어도 감수성적인 면에서는) 범인(凡人)으로 만드는 묘한 힘을 지닌 곳이라고 생각합니다.-자하

1.3. 이기

그 부대에 있으면서 제일 듣기 힘들었던 말은 역시.. 타부대에서 와가지구 우리부대는 너무 편해보인다느니 하는 말을 할때죠..제가 군생활내내 포상휴가라는거를 딱 한번나왔죠..그것두 제발 보내달라고 사정까지 해가며 각종 작업을 다하고 해서..수송부 차량이 50대인데 운전병은 38명..그리고 배차는 언제나 나고.. 휴가 한명을 보내면 그대로 차량 1대가 멈추는거죠.. 그래서 휴가를 잘 안보내요.. 제대하기 전날도 철원인가 갔다 왔었는데..-_-; 실상 편해보이는 부대일수록 삐리한 구석도 많구요..(대령한테 맞고 다니고-_-;)..에이..군대 얘기는 아직은 하기도 싫네....(실은 제대한지 35일째랍니다~ 오홀)--이기

1.4. yong27

군대에서 축구한얘기처럼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얘기는 없는듯...(> 푸하하..역시 yong27님 넘 웃겨요..한참을 웃었네..^^..>) 그러나 과감히 써본다. 우리부대는 유난히 축구를 많이 했다. 일주일에 세번, 전투체육의날 수요일오후, 토요일오후, 일요일오후... 모두 축구만했다.-_- 그러다 보니 쉴시간두 없고 마냥 볼만 찬다. 보통.. 점심먹고 축구집합해서 끝나면 저녁먹을 시간이였다. 게다가 축구점호. 보름에 한번정도는 아침에 축구점호를 했다. 기상하자마자 볼차기... 음냐;;

그러다가... 부대체육대회날 축구예선... 당시 우리중대는 최강의 멤버라 자부하고 있었고, yong27도 일병계급장달고, 당당히 수비선수로 뛰였다. 그날따라 골이 안나고... 0:0의 점수로 끝나기 일분전... 나에게 패스된 공을 골키퍼에게 패스했는데.. 이런, 정확하게 골대로 들어가버렸다. 하늘이 무너지는듯... 그 이후로 고참들은 나에게 공도 못만지게했다. 으.. 최근 김병현의 월드시리즈를 보자니, 그때가 생각난다.

1.5. 병준

병준은 대학 2학년때 친구가 치는 카투사시험에 재미로 같이 응시했다가 운좋게 붙어서 본의아니게 군대를 일찍 갔다왔다. 85년 12월이니 만 20세가 채 안된 나이에 입대를 했으니.. 용산에 있는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 특전처에서 2년 3개월 11일 동안 근무를 하고 88년 3월에 제대를 했다. 3명이 한 방을 쓰는 막사에서 자고, 사무실에 출퇴근하는 9 to 5의 생활이었으니 육체적으로는 남들보다 편하게 군생활을 했다. 문제는 장교가 사병보다 2배 이상 많은 특이한 곳이었으니 보직과 상관없이 시키는 거라면 뭐든지 하는게 바로 내 보직이라는 점이었다. 몸 건강하게 무사히 제대할 수 있었음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1.6. ChatMate

96-1월 군번. 강원도 홍천. 보병 제 11 사단. M60 기관총. 중간에 PC병 생활도 6개월 정도. 책 두권쯤 만들고, 맘에 안든다고 몇번 다시 만들고, 편집 잘한다고 남의 대대 책도 좀 만들고... :(( 서울보다 위도가 밑이어도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진다는걸 알았다. 여름에 백엽상 건구 온도계가 -흑구가 아니다- 50도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 나라 맞어? 무슨 최전방이면 말을 안하겠는데... 예비 사단이라고, 죽어라고 훈련만 했다. 몇달에 한 번 꼴로 한달에 세 번 훈련이 있는 달도 있었다. 젠장... (다 아시겠지만, 대규모 훈련일수록 사병들은 편하고 소규모 훈련일수록 죽어납니다) 간첩도 잡으러 가봤다. 한달 보름내내 노숙(?) 하며 강원도 전역을 안가본 곳이 없다. 민통선 바깥에서 바라본 밤하늘은 맑았다. 하지만, 오대산 정상에서 본 별빛은 더욱 맑았다. 미륵암의 그 스님은 잘 계실까?

1.7. fin

1월 군번으로 논산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의아스럽게도 주특기 교육이 끝나니 헬기정비병이 되었다. 실제로 자대에 가서는 작전, 정보병으로 근무하면서 회사원처럼 군생활을 하였다. 그 회사는 매일 야근하고 정리해고가 없었으며 가끔 체력단련을 의무적으로 시켜주었다. 인천에서 1년, 용인 에버랜드 옆에서 1년을 근무하였다. 군대에 대한 결론; 당시에는 이런식의 강압도 접해볼만 하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좀더 긍정적인 인간이 된 것도 아니고, 훈련받은 부지런함은 제대 3일 후에 날아갔으니 정말 신기하다.

1.8. nonfiction

용인 에버랜드 옆에 헬기 부대라면..1개밖에 없는데...;; 제가 기재병이었던 관계로 거기 자주 갔습죠...;;
부대는 상당히 편해 보이나.. 의외로 헬기부대치고 오래되서 시설은 별볼일이 없었던듯....
저는 UH-60부대에 있었는데.. 나중에 나오보니 역시 그냥 우리나라 육군중에 정말정말 편하게 생활 했었다는...
혹한기 훈련에 근무갔다와서 컵라면에 튀김에 고기를 간부들과 사이좋게(?) 나눠 먹는 그런 부대가 있을런지..헐...ㅡ.ㅡ;;

1.9. summerkid

보병사단 보병으로 복무
은하수를 맨눈으로 보다

1.10. 윤구현

94년 12월 1일 군대에 갔습니다. 이날 군에 간 유명인사가 있는데 바로 차인표씨입니다. 논산은 4주, 2주로 나누어 훈련받는데 4주 훈련때는 다른 소대에 있어서 별로 만날일이 없었습니다. 2주 훈련때는 어찌 같은 분대에 소속되어 형이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냈습니다. 지금 만나면 기억할까요.

오늘(2002.10.17.) 스포츠 신문을 보니 전도연과 동아그룹 전회장 아들인 최우진씨가 사귀고 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최우진씨도 논산훈련소 동기였습니다. 같은 소대였고 친하게 지냈던 녀석과 최우진씨가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죠. 솔직히 별로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여러 모로......

1.11. 난도

신병훈련소에서 각개전투를 했습니다. 각개전투란 별게 아니고 야산에서 각종 방식으로 기거나 뛰거나 구르는 행위 일체를 가리킵니다. 제가 그걸 할 땐 10월 중순이었습니다. 얇은 훈련복 입고 야외에서 버티긴 알싸하게 추운 날씨였죠. 그런데 유난히 추웠던 하루, 저는 낮은포복으로 진흙창을 기어가는 행위를 강요받았습니다. 한 번 기어나고 나니 이번엔 누워서 거길 한 번 더 기어가라더군요. 기었습니다. 기래니까. 잠시후 10분간 휴식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추운날 땀이 식으면 더 춥고 오줌이 마렵죠. 그래서 오줌을 누려고 한 쪽에 가서 팬티를 내리는 순간 그 속에서 진흙더미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더군요. 그 때 느낀 감정은 비참함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자신감이었습니다, 자신감. 더이상 낮아질 데가 없다는 그 든든한 느낌!

다음주엔 화생방훈련을 했습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최루가스를 터뜨려놓고 그 안에서 못살게 구는 코스죠. 그 때 느낀 죽음의 공포! 독한 개스를 폐는 거부하는데, 본능적으로 공기를 흡수하려는 신체가 공기를 삼키는 탓에 위장으로 그 개스가 막 넘어가던 그 상황! 산소부족으로 손발과 머리가 저릿저릿해지면서 빗살만한 틈으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동기들과 투쟁했던 그 상황! 그 지옥같은 공간에서 벗어난 저는 두 배는 더 겸손해져 있었습니다. 세상엔 내가 견딜 수 없는 고통도 있다.

군대 갔다 와야 사람된다는 속설에 일말의 진실이 내포되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극복과 자기 한계체험을 해볼 수 있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처절한 형태로요. 오늘처럼 기분이 꿀꿀한 날, 그 시절을 가만히 돌아보며 살아갈 힘을 얻고 싶어지는 거죠.

1.12. 임상현

1999년 11월 9일 의정부 306보충대로 입대해 28사단 신교대를 거쳐 같은 사단 분대장교육대 조교로 있다가 일년후 행정병까지 그리고 2002년 1월 8일 전역.

지금 내가 가장 증오하는 말 중 하나는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해!" 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은 이말을 통해 군에 가기전 다양한 생각과 행동을 가진 인간이 사회에 적합한 인간으로 변화하길 강요한다. 그 사회가 비뚤어진 사회든 정상적인 사회든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일방적 강요만을 요구한다. 또한 획일화 강요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은 열등한 인간이고 사회인으로 가치조차 부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의 군생활은 어떠했을까? 난 매우 모범적이었다. (그곳에서 원하는 행동패턴은 극히 단순하기 때문에 충분히 수용 가능하다) 표창도 받고 가끔씩 용돈을 주기도 할 정도로 날 신뢰했다. 결국 그곳에서 나에 대한 사회화는 실패인가? (대답은 뒤로 미루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그 세계를 공감할 수 있는 책 두권을 소개하겠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신세계"와 미셀 푸코의 "광기의 역사"다. 먼저 "멋진 신세계"에서 말하는 인간의 획일화를 위한 세뇌, 조직화를 위한 기율등 그리고 "광기의 역사"에서 말하는 정상인의 비정상인화등.

1.13. Roman

1995년 2월 입대, 그리고 1997년 4월 제대, 강원도 화천의 3 동네와 철책 근무를 병행하는 부대에 있었다. 입대 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문장이 없었으면, 아마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약간 부적응하는 구석이 있었지만, 부대 레크리에이션 시간마다 나서서, 노래와 춤을 선사한 관계로 만인의 귀여움을 받는이가 되었었다. (원래대로 하자면, 부적응자였는데, 춤과 노래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그정도의 기쁨이었을 뿐이었지만. 살아남고는 사반세기의 평생 동안 가장 건강했던 상태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철책과 산을 오르내리던 무릎은 겨울마다 좀 쑤신다.

M60을 들었고, 상병때까지 군기가 쎈 환경에 있다가, 이후 철책 생활 동안, 하루키의 태엽감는새 전 4권을 비롯, 파스칼의 팡세, 시골사람의 편지, 등등의 책과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도 어느정도 진도를 내면서 쓰면서 생활할 수 있었다. 소대 군종병 생활도 했었는데, 강의가 지나치게 난해했던(?) 탓으로 소대에서 신자가 줄었던 기억이 있다. 단 한번 포상 휴가를 나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건 분대장 일지를 하루하루 빼꼼히 채우면서, 대대장이 이 일지에 대해서 상당한 호감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열심히 쓴만큼 대대의 모습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고, 그렇게 열심히 썼다는 댓가로, 포상휴가를 받았다. 그건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이었다. 펜의 힘은 강하다는걸 아는 또하나의 실제적 예시였으니까. 대대 혹한기 훈련 영상에 내가 쓴 시와 나의 낭송이 더빙되었던 것을 즐겁게 생각한다. (대대장은 철책에 있을 때, 내가 무라키미 하루키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알고서는 우리 소대로부터 그 책들을 공수해서 대대 본부로 가져가 보았다. 하루키의 전도사이기도 했다. 소대원들도 하나둘씩 읽기 시작했다.)

제대하고서는 그 때, 나름대로 마음이 맞았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하루하루 같이 시간을 보내고 어느정도 고통을 서로 덜어줄 수 있었던 기억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군대를 가보지 않았다면, 정확히 군대가 무엇인지는 평생 알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맞다가, 나올 땐 욕조차 못하고 나왔다. 하지만 때릴 수 있었던 사람들을 그다지 증오하진 않는다. 시스템이 폭력을 주입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을 컨트롤 하는 방식에 사용되었을 뿐이지, 그들이 폭력으로 뒤덮힌 존재들은 아니었으니까. 결국에 시스템이 이를 없애고자 할 때, 그들은 영창으로 던져졌고, 주민등록엔 빨간 줄이 그어졌다.

삶을 돌아보고, 관조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고, 정말로 다양한, 이 세계에 실제로 살고 있는 갖가지 유형의 사람들과 살을 맞대고 살아갈 수 있었던 짧지 않은 기회였다고 자위해본다. 그렇게도 생각해본다. 빚 갚으러 갔었다고. 그리고 갚을만큼 갚고 나왔다. 자, 이제 난 이 나라가 나를 지켜주기를 당당히 바라고 있다. 아무런 꺼리낌이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GIVE AND TAKE원칙에 준하고 있다. (그러나 아다시피, 그런 생각은 "환상"이다. 누구도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고 살고 있는데,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일 뿐이다.)

제대할 때쯤 나의 천재적인 친구 하나가 강원도 홍천에서 포병으로 주둔하게 되었다. 그녀석을 면회 갔을 때 녀석이 써내린 5개의 단편 소설을 보았던 일은, 아직도, 나의 자기반영을 여지없이 뭉게주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있었던 거였다.(끊임없는 이미지 트레이닝의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내부에도 있다. 베트남전 때 베트콩의 포로가 되었던 미군들의 이야기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서로의 머리를 굴려서, 자신들이 기억나는 구절들을 연결하여, 성경책 한권을 수용소 안에서 만들어냈다고 한다. 종교 생활을 유지하면서,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들은, 변함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은 남자들로서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고 한다(카더라통신). 이슬람을 믿었던 터키인들은 한국전 당시 주둔지에서, 알라의 가르침대로 한국인들을 위해 아낌없이 교육기관을 짓고, 봉사활동을 마다치 않았다고 한다. 물론, 고엽제에 당하거나, 견딜 수 없을만큼의 정신적, 육체적 외상을 입은 이들은 평생을 그 울타리 안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있다...'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다.

조금씩은 건져먹을 삶의 갖가지 앎의 조각들이 군대 안에 있다. 모조리 부정하지도, 모조리 인정할 수도 없는 "삶"의 모습이 그 안에 있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해볼수록...그것은 몇마디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되어간다. 그래서 술자리는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끝나질 않는 것이다.

1.14. 너훈아

99년 10월부터 01년 12월까지 천운으로 8군본사에서 용산행정병으로 근무했다. 보직은 1511 전투통신이었는데, 워드 잘친단 이유로 행정병 했다. SGM와 SFC가 양 옆에서 받쳐주는 덕에 Detail 거의 없이, 정말 편하게 군생활 했다. 자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병장이 된 후 동기와 함께 NCO 막사로 이사간 일, 조인트 엠티(카투사만이 누릴 수 있는 추억이 아닐까?) 등. 최악의 기억은 역시 911 테러. 그 테러 이후, Future Operaions에 Typing Specialist로 편성되구선 제대하기 한달 전까지 12시간씩 근무했다.

훈련소에서 재밌는 일이 하나 있었다. 전라도 애들과 같이 훈련 받았는데, 훈련소에서 막 보급을 다 받고 분대장이 고문관처럼 보이는 놈을 한명 골라선 뭐라고뭐라고 막 갈구고 있었다. 이때 훈련병, 잘 못들었다는 듯,
"예?"
그 훈련병 엄청 굴린 후, 상급자의 말을 놓쳤을 때는, "잘 못들었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예절 하나를 배웠다.
그 다음날도 아닌 그날 저녁 점오시간, 첫날이라 그런지 분대장의 설교가 길어지고 결국 한 놈이 차려자세에서 움직였다. 분대장이 뭐라고뭐라고 했다. 이때 훈련병, 잘 못들었다는 듯,
"잘 몬알아먹었슴다."
우린 그날 어깨동무하고 앉았다 일어나는 단순한 몸짓 50여차례에 모두 넉다운됐다..... - 너훈아

1.15. 재룡

올해 3월 중순쯤에 제대했는데(말년휴가를 한달정도 나왔었죠..) 부대명은 복지단..정식명 육군복지근무지원단이다. 거기에 복무하는 사람들은 총들고 훈련받는게 아니라 빵팔고 짐나르고 계산하던가 아님 행정병(주로 업체상담과 같은..)하던가 호텔에서 써빙하던가 이 셋중하나였다
써빙하는 놈들은 완전 민간인처럼 보여서 다들 보고 부럽다고 하지만 6시에 일어나서 연회후 정리가 끝나는 12시까지 풀로 써빙을 해야 한다는 무서운 보직이였다. 거기다 고객한테 컴플레인 들어오면 영창가거나 강원도 쩌~~쪽으로 귀향간다. 짐나르는 놈들은 다섯중 하나는 척추수핵탈출증이라는 걸로 해마다 의가사 제대한다. 그나마 나는 행정병이였는데 그나마 나았다. 밤새는 것은 원래 숙달되었기 때문에 별 힘든 건 없었다. 간부들 따까리하느라 청소하고 커피만 열라 탔지 뭐..
총은 훈련소때보고 한번도 못봤다. 탱크와 기관총 이런거는 국군의날 전쟁기념관에 놀러가서 처음 보았다.
친구들은 유격받고 혹한기훈련한다구 그러던데 짐나르는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우리 부대 혹한기 훈련은 주류 동파방지 훈련.. 병맥주가 특히 많은데 이게 강원도쪽은 추우면 얼어서 터진다고 그런다.
군대는 면세주류라는게 들어와서 무지 싸다. 병맥주 한병이 450원이라는.. 거기다가 양주는 만원이면 충분했다. 군대에서 늘었던 것은 주량이요 오락의 고단수가 된다는 것이였쥐..
부대에 있는 동안 가장 놀란 것은 뇌물사건이였다. 껌을 파는 모회사가(그것도 인지도가 있는 거인껌,은하수껌 이런것도 아니였고 처음보는 껌회사) 이 물품을 선정해 주라고 상사(별로 짬도 안됨)한테 2천만원을 먹였다는 것.. 한통 이윤이 오십원이라면 도대체 몇통이나 팔아야 하는거야? 군인 한명당 몇통씩을 씹어야 하는거야? (가정 이윤 50원, 육군 군인 40만이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한통씩을 꼭 사야한다는 계산) 아래에서도 이정도인데 위에서는 거기다가 드러난 것만 이거지 -.-;; 아~~지겨웠다 군생활

1.16. ghkgrk

ㅡ.ㅡ00년 11월6일 입대 03년 5월 5일 제대 오널 02년 9월8일..군대 안입니다 병장 4호봉의 554기
왜 다덜 육군만 있는건지..전 공군입니다..
공군.

군대..누가 그랬죠??한번은 갈만한 곳이라고..정말 모른 상태에선 갈만한곳입니다.하지만 절대 1번 이상은 와선 안되는 곳입니다.
군대가 사람을 만들어 준다란 말 정말 실감나게 느끼지만.. 군대 말고도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건 여러가지 있다고 생각 됩니다
그중 하나가 무전 전국 여행이겠죠..사람은 다 어느정도의 시련이 오면 자기 주변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뭔가가 생길꺼라 믿습니다.

여튼 지금 계쏙 군복무 ing 입니다.
에피소드 하나 적어 드리죠

제가 이병때 였습니다..01년도 2월쯤이었는데..
저희때도 그놈의 축구를 좋아 하는 마빡 많이 까진 대전대 댕기는 jyh(A-535기)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맨날 축구 집합및 축구 사역의 핵심인물로 그 주변엔 개발로 유명한 syj(A-536),jjw(A-536)..등 공을 줘도 못먹는 축구인들이 었습니다.
ㅡ.ㅡ쩝.. 제가 이병때니 힘도 없고 짬도 없고 뭣도 없으니 가장 욕만먹을수 있는 자리인 골키퍼를 내주더군요..
솔직히 내준다고 받고 싶은맘은 없었는데 .. 골키퍼를 하기싫어 하는 표정이 얼굴에 표현되면 바로...
다음날 으쓱한 건물로 끌려가서 맨땅에 머리심기를 시키는 고참들 A-545(oji,cmw,ksc,chm충대가 2명)이 있기에..
쩔수 없이 골키퍼를 봤죠..

ㅡ.ㅡ근데 그들의 플레이는 정말 듣도 보도 못한 개발 플레이의 원조였습니다.
세상에나 공그냥 흘러가는 대로 냅둬도 들어 가는걸 괴니 건들여서ㅡ.ㅡ++ 홈런으로 만들어 버리더군요.

정말 너무나 빈곤한 플레이에 전 기가 막혀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편이 이길수 있게 하는 방법을 강구 했죠..
속공..속공 하나 나오더군요 잽싸게 공이 오자마자 전 공을 두손으로 잡고 힘껏 차는 포즈를 취하면서..

앞에 있는 병장 1호봉부터 10호봉들에게 외쳤습니다.

"다나가!!!!"
ㅡ.ㅡ그때 저 이병 4호봉..

덕분에 병장 꺽인 6호봉이상이신분들이 수습해준다고 .. 웃으면서 말했죠.
(공군은 이렇답니다..육군은 상상도 못할일이죠.)
"야 뭐해 빨리 다덜 나가서 공격 하자"

그주말 일요일 ..ㅡ.ㅡ저와 제 동기 6명은 맨땅에 헤딩을 심하게 했습니다.

아직까지 그날 머리심기시킨 고참들은 싫으네여..하도 나쁜기억이 남아서..그럼이만.

1.17. nyxity

1995년 8월8일 의정부 306보충대 입대.
2~3일후 강원도 철원 3사단 속칭 백골부대로....하늘이 노래지는것같았다.
그러나 신병훈련만 거기서 받았다. 최전방이라 그런지 장비들이 최신이었고 사단장이 기본권 절대보장! 을 철저히 내세워서 훈련에만 집중할수있었다. 밥먹는시간, 싯는시간 확실히 보장해줬고 얼차려, 구타 일절 없었다. 심지어 4주훈련기간중 1줄일에 한번식 집에 전화도 걸수있게 배려를 해줬다.

게다가 자대배치는 3사단에서 벗어나 2군지사였다. 결국 3사단에서는 위탁교육만 받은것이다.

자대에선 의무병으로 대대 의무실에 있었다. 이때 사전을 외웠고 책도 200권가까이 읽었던거같다.

군의관이 이때 못놀면 평생 못논다며 기를 쓰고 놀아서 덩달아 나도 같이 잘 놀았다. 군의관 아파트에 내 사복과 스키를 갔다놓고 겨울철엔 군의관과 베어스타운에 스키타러 갔었다. (영외중대 순회진료를 간다고 하고서.)

아주 편하게 군생활을 한 편이었다.

1.18. 빈이

2001년 5월 29일 입대하여 03년 7월 28일 제대
소총, 유탄, 로그, 팬저, 고정포(M48A2C)마스터.
한건 많은데 포상휴가한번 못받아본 불운한 사람
도열받을때의 기분은 말로 못함~

1.19. bloodlust

97년 8월 입대.
후방 동원사단 사령부 작전처 행정병으로 근무.
24개월(자대복무기간)동안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면 새벽 1시 이전에 사무실에서 내려와 씻고 자는 것.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어떤 빌어먹을 두 놈을 죽여버리는 것.
이놈의 26개월을 인생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같이 일했던 참모부 간부들과 아이들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점.
군대가서 사람된다고 말하고 싶은 놈은 다시 군대에 가서 사람이 되어라.

1.20. djshuin

92년 11월 입대, 95년 1월 제대
내무 반장 하다가 후임 병 한 대 때렸다. djshuin은 아무리 잘 봐줘도 군자는 아니다.(당연한가^^;;) 비폭력주의자도 아니고. 하지만, 후회는 남는다.
요즘 군대는 구타가 거의 사라졌다니까 다행이지만, 입대했더니 구타가 남아 있는 군대라면 확실히 정하시라.
아예 남들처럼 패든지, 손도 안 대든지. 괜히 한 대에 평생 찜찜하다. 물론, 손도 안 대는 쪽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1.21. seaofmagic

03 - 7604XXXX 군번. 위에 있는 분들 중 저 군번의 의미를 해석하실 수 있는 분들이 대다수이리라 생각합니다.

군 생활 하면서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와 닿는(공감했던) 말 몇마디 적어봅니다.
"군대란, 남자라면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하지만 정당하게 오지 않을 수 있다면, 반드시 그 길을 택해라."
"군 생활은, 뻘짓이야."
음,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제발, 국방부 사람들에게. 모병제로 바꾸든지. 오기 싫어했던 사람들 정신교육 시키면서 성격 버리고 국고 낭비하는 것과, 모병제로 웬만큼 보수를 주면서 자발적 군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랑, 무엇이 비용이 많이 들지 생각은 해봤는지.

2. 병역 대체 근무자(면제, 공익근무요원, 병특 등등)

DeleteMe 각종 사유자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 대체근무자라고 바꿨습니다.

남자들은 군대 얘기만 나오면 항상 말이 많아진다. 도대체 어떤곳이길래 그러는건지 나도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 --Jamie
한달만 갔다와도 할 말이 넘치는데 26개월 이상 갔다오신 분들은 정말 며칠이고 말하실 수 있을 듯. 그 이유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정말 이상한 곳이고 거의 모든 것이 일반 사회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것들이라서 그렇지 않을까요? 물론 약간의 과장도 있지만 적어도 거의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에 근거한 과장일 듯. -- dark

군대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재미있다. 군대이야기 들으면서 밤샐때가 많았다. 군대이야기를 할때의 사람들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난다. 자꾸만 듣고 싶다. 군대이야기 Kim씨가 카투사이야기 해주셨으면 정말 좋겠다.

2.1. Kwon

2001년 5월 쯤인가 서울지방병무청에 갔더니 5급 판정을 내주더군요.

2.2. zetapai

저도 군면제자. 대학 2년때던가? 면제라카더군요 :) 시간 벌었단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군대얘기 아주 싫어합니다. 그런 위계질서와 말도안되는 명령들...까라면 까라는 식의...듣기만해도 돌아버리겠어요. 그 다음으로 싫어하는게 축구 얘기입니다. 전 학창시절 체육시간에 축구공 내주고 홀짝 나누어서 하는 축구에서도 맨날 공이 안오지싶은 방향으로 피해다니는 놈이었습니다. 공은 희한하게도 제 뒤통수에 와서 잘붙더라고요. 그래서 총체적으로 볼때 최고로 싫어하는 얘기는 군대서 축구한 얘기입니다.
앗! 축구와 군대! 저도 제일 싫어해요 ㅡ_ㅡ;; 축구라기보단 운동이라는 걸 안함. 어쩌다가 붙들려서 축구하는데 끼면, 한쪽에 멍하니 서있음. 그러다가 한번 씨익 웃어주기라도 하면, 괴기영화 ㅡ_ㅡ;; 군대 가느니 혁명을 일으키는 편이(현실성이없더라도) 100배는 올바른 것이라 생각하고 있음. 군대에서 한 축구하는 얘기라니!!!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함 ㅡ_ㅡ;; --은눈의시체

2.3. 거북이

3년짜리 산업기능요원 3년차로 복무중입니다. 작년 3월 한달간 훈련소 생활을 했죠. 나오면서 드는 생각은 한달로도 충분하다. 한달이지만 악명높은 모 부대로 가는 바람에 훈련병이 겪을수 있는 각종 험한 꼴을 겪은듯 하더군요.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본 결과.
한달동안이라서 저는 제 생활처럼 못느끼고 왔습니다. 마치 전쟁터에 들어간 종군기자같다고나 할까요. 르뽀기사 쓰는 기분으로 일기(aka 수양록)을 썼습니다. 나중에 기분 내키면 올릴지도. :)

2.4. Skullkid

4급 받아서 공익으로 일하는 중입니다. 올 7월에 끝납니다. 법원 등기과에서 일하고 있는데, 제가 있는 곳은 잔심부름이 아니라, 정해진 일을 하기 때문에 일이 조금 있습니다. 그저 시간이 아깝습니다.

2.5. happycoat

happycoat는 특례로 군생활을 대신 하는 중... 2003년 6월 9일 ~ 2003년 7월 5일 까지 총 27일간을 군대라는 곳에서 생활을 했음...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것들
  •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 있을 때 정말 길게 느껴졌음...
  • 수많은 훈련 중에서 유격 훈련이 젤루 힘들었음 -.-;; 중간에 현기증 느낌...
  • 여자 친구와 이야기 할 수 있는 한통의 전화가 너무 그리웠음...
  • 맑은 날 보다 비오는 날이 그리워짐...
  • 퇴소식 날 기간병들이 많이 안쓰러웠음....(우리보다 한주 먼저 퇴소한 산업기수 훈병들이 손흔들며 위병소로 가면서 "잘있어"라고 할 때는 기분 묘해짐.... 기껏해야 한주 차인데....)

대략 상상해본 군생활에 대한 것들
  •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가야함...
  • 군대에서 여친이 고무신 거꾸로 신었을 때 최선의 대응... 그냥 참고 넘어간다... (탈영을 할 수도 없고...그렇다고 전화해서 내일 보자고 할 수도 없음... 사실은 이런류의 구속이 사람을 너무 힘들게함...)
  • 전우애... 전우애라고 해봐야... 느낄 시간도 없었던 4주 훈련이었지만... 유격 끝나고 구보 뛰는데... 뒤로 쳐지는 동기 끌고 가면서 얼마 안남았어... 힘내... 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은 군대 말고는 별루 없음.
  • 모든 것이 끝나고 제대 했을 때 남자로서 인생에서 가장 큰 짐 중에 하나를 떳떳하게 끝마쳤다는 자부심.

2.6. 괴물눈깔

만 16살때 도미하여 병역면제를 받았습니다. 군생활 비슷한 경험이라고는 중학생 때 사흘 정도 인천의 무슨 유격장이라는 곳에 극기훈련을 가서 군복입고 생활했던 기억이 전부입니다. 그때 제가 있던 막사가 새벽 3시에 불려나와서 기합을 받았었는데, 제 친구가 잠을 안자고 장난치다가 빨간모자를 쓴 조교에게 걸려서 그랬던걸로 기억합니다. 조교는 그 친구는 그냥 옆에 세워두고, 그 친구가 잘못을 뉘우칠때까지 우리를 벌주겠다고 했고, 조교가 "잘못했나 안했나"하고 물을때마다 그 친구는 씨익 웃으면서 "아니오" 했습니다. 어떻게 끝났는지는 잘 기억이...

3. 기타 군대 이야기



See also 추억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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