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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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권리


1. 낙태는 피임에 실패한 여성의 차선책이다


이런거에까지 권리라는 말을 쓰는 것이 우습지만, 여자들이 자기의 몸에 대해 요만큼의 정당한 권한도 행사하는 것을 무력화하는 대표적인 사회적 테러가 낙태금지라는 주장으로 종종 출몰하기에, 별수없이 말한다. 태아는 어디까지나 모체의 생명에 의해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기생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태아는 힘들게 자기 생명을 유지하고 키워주는 모체에 대해 미안하거나 고마워할 수는 있어도,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엄마의 은혜를 입어, 살아가고 태어나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여자가 자기 몸에 기생하는 덜된 생명을 반드시 키워야하며, 그러기 위해 등장할 수 있는 갖가지 희생을 무조건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순서가 잘못된 주장인 것이다.

당연히 낙태는 좋은 것이 아니며 따라서 전사회적인 피임교육이 우선해야겠지만, 피임에 실패한 여성이 차선책으로 택할 수 있는 낙태를 금지한다는 것은, 여성의 기본권리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게다가 한국의 상황은 별로 안 좋은 것이, 관계후 72시간 안에 복욕하면 간단히 수정란의 착상을 막을 수 있는 [http]사후피임약과 임신 7주 내에 복용하면 간단히 낙태할 수 있는 [http]먹는낙태약이 있는데도 법제도에 방해받아 좀더 나은 길을 놔두고 인공중절수술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싼 수술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저소득층과 어린 학생들은 위험을 안고서 야매(불법의료행위)를 택하는 경향도 크다는 사실. (수술비마련하느라 시간이 걸려 수술이 늦어질수록 위험이 높아지는것도 물론이다.) 중소산부인과의 돈벌이를 위해 법으론 낙태를 금지하고, 음성적으로는 허용하는 이 웃기는 현상이 지속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여성복지를 위해서는 초중고생 성교육을 강화하여 실질적인 피임법을 가르치고, 피임을 남자의 매너로 정착시키는 문화를 창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먹는 피임약은 몸에 안 좋다고 한다.) 아말감

먹는 피임약이 몸에 해롭다는 것은 우리나라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오해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진국의 경우는 많은 여성이 먹는 피임약을 복용한다고 하더군요. 자세한 자료를 찾았으면 합니다. --윤구현

지금 자세한 자료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현재 선진국 여성들이 많이 쓰고 있는 피임약들도 그 부작용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는 상태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체질에 따라서 많이 다른 것이겠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임효과가 완전하지 않죠. 인체의 싸이클이 그렇게 정확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어서, 아주 안정적인 여성들밖에 쓸 수 없고, 그러다가도 또 열달을 잘 맞다가 열 한달째 어긋나면 피박쓴다는거죠. -아말감
먹는 피임약은 수술을 제외하고는 피임률이 가장 높고 간편한 피임법입니다. 처음 나온 에스트로겐 단일제제 피임약은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여성들이 피임약은 몸에 좋지 않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요즘 나온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복합제제에는 그런 부작용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피임약은 인체의 사이클을 조절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이클이 어긋나서 피박 쓸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봅니다. (어쨌든 피임률이 가장 높다는 것은 교과서에 쓰여 있는 것이니까요.) -- SangHyuk

멀쩡한 사람의 생리적인 사이클을 강제로 조절하는 먹는 알약이 몸에 해롭지 않다는 주장은 좀 놀랍군요. 피임에 관한한 한결같이 콘돔의 사용이 가장 안전하고 덜 해롭다는 보건복지 쪽의 피임 계몽(?)은 그럼 뭔지요. 그 외에도, 피임 비용(돈, 수치심, 귀찮음 참고, 건강에 대한 우려 미뤄 놓고, 잊지 말고 꼬박꼬박 먹기)을 왜 여성이 일방적으로 부담해야 하고, 이에대한 책임을 여성이 져야 합니까? 그리고 막말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시집도 안 간 아가씨가 피임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한다면 그 애인이라도 이를 너그럽게(!) 관용해 줄 수 있을까요? 피임은, 아직은 생물학적 문제이지만은 않습니다. 사회적인 문제이죠. 여성의 문제이지만 남성은 발뺌할 수 없는 문제이고요. 성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는 우선 자신에게 대입해 보고 생각하는 편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남성은 '그럴 수도 있지.' 일 수 있지만, 실제로 여성이 받는 사회적인 압력은 현실적인 무게가 있습니다. -- 2월화
호르몬이 우리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여성 호르몬이 신체에 끼치는 영향이 임신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위의 분들께서 그 호르몬을 투여해서 싸이클을 강제적으로 조정해도 사람의 몸의 균형이 깨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것이 놀랍군요. 싸이클이 어긋나 피박 쓸 확률이 낮아지는 것은 중요하고 싸이클을 변형시켜 깨지는 몸의 균형은 중요한 것이 아닌가요.--ilzamusik
모든 약은 인체의 정상적인 기능에 영향을 미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부작용과 효과를 비교한 후 그래도 약을 쓰는 것이 유리한지 따지는 것이지요. 사람의 몸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것을 해서는 안되는 것은 아니죠. 그리고 콘돔은 연구에 따라 실패율이 5%에 이르는 결코 안전한 피임법은 아닙니다. 이상적인 피임법은 경구피임제를 복용하면서 콘돔을 쓰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콘돔의 목적은 피임도 있지만 성병예방도 중요합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지난 30여 년간 십대부터 꾸준히 경구피임제를 복용한 사람들이 특별한 이상없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은 충분한 임상결과라고 생각되는데요. -- 윤구현

2. 낙태찬양은 아니다


그렇다 표현이 낙태권리지만 이는 낙태의 찬양은 아니다. 불가피한 임신으로 초래될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낙태방법 역시 낙태금지만큼이나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 치자. 생명의 존엄성이고 뭐고를 떠나서, 우선 강간당한 여성자체의 생명자체가 위협받고, 학대받은 마당에 그 죄의 씨앗까지 갖게 된다면 이보다 더한 비극이 있을까?

그래서 학생들을 대상으로한 성교육 프로그램에는 강간당했을때 대처하는 방법중에 우선시 되는것이 이 불행한 임신을 차단하자는 것이다. 강간당한 딸이나, 학생이나, 여성이 발견되면 이제 더이상 쉬쉬하고 숨길것이 아니라, 제일먼저 병원에 가서 "피임처치"를 받도록 주위에서 도움을 줘야 한다. 위에 소개된 사후피임약은 이럴때 유용하다. 또한 정액 채취등 법률적인 구조를 위해 진단서등을 받아내는 것도 필수이다. 성폭력이 발생됐거나, 강간을 당했을경우 [http]국번-0118로 걸면 상세한 안내와 도움도 받을수가 있다. 착상방지는 낙태의 개념으로 볼수는 없다. see also 강간피해자가취해야할사후조치

그런데 한가지 중요한 점은 낙태금지낙태권리냐 따지기 이전에 낙태 자체가 여성의 신체에 매우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남의 생명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라도 낙태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러니 제발 위의 아말감님의 지적처럼 최소한, 제발 덕분에 애 낳을 생각 없거든 피임이라도 똑똑히 해야 할 노릇이다. 뭐 가장 확실한 피임법은 관계자제라고 할 수 있겠다. --Jimmy

3. 낙태반대론의 여성 억압


저는 낙태의 위험, 잔임함, 비인간성의 논리가 피임 그 이상으로 확대되어 관계자제, 순결, 순결하지 못한 자에 대한 억압, 성관계의 자유에 대한 억압,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순결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은 겉으로 드러나는 태아의 인권존중, 낙태반대의 의도와는 완전히 거꾸로, 실패한 연인들의 낙태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Aragorn

논지가 "순결"의 문제로 약간 변화하는것 같은데 뭐 일단 방향이 중요한게 아니라, 우리들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므로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가끔 "I am A-moral"이란 말로 저 자신을 정의 내리곤 합니다. 이 사회가 기준을 잡은 '도덕성'하고는 상관없이 살고 싶다는 개인적 의지의 소심한 표출입니다. '순결'의 의미에 목매는 사람은 거기서 의미를 찾으면 될일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무시하면 될일입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기실은 '육체적으로 순결치도 못한 B) ' 아저씨나 아줌마가 대수롭지도 않은 일회성 사고를 가지고 죽네사네 스스로 자괴감에 빠진다거나 오...신의 어린양이여 see also Disclosure 그 밖에 대학생들, 처녀 총각들의 성문제와 관련 상담을 부지기수로 해 오는 과정속에서 더더욱, "난 증말 도덕이고 나발이고 그따위로 무장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위대한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순결'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는가 그문제도 중구난방 제각각이니 일단 어찌됐건 순결의 존재가 있다고 치고, 저는 순결을 떠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관계의 자유"를 부르짖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책임있는 행동'도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결한 이성에 의한 판단이건, 신앙에 가까운 믿음에서건, 순간적 쾌락을 위해서건, 어쨌건 '성'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자유나 권리를 누리는 만큼 '책임'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성생활과 / 기타 복잡하게 옭죄어 드는 억압과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그 연결고리를 '혁명적'으로 끊는다는 미명하에 '생명의 목숨줄을 끊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논의되는것은 위험할수 있습니다.

낙태는 이미 생겨난 태아의 목숨을 끊을 뿐 아니라, 여성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게다가, 낙태의 경험은 한 여자의 정신세계에도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돈 몇 만원 내고 시술받는 일은 간단한 일이지만, 그 여파는 평생을 간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이미 공공연하게 낙태가 가능합니다. 낙태를 원한다면 백번이고, 천번이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낙태해서 피보는건 남자가 아니라 여잡니다. 여권이고 뭐고간에 낙태 한두번에 여자의 몸은 만신창이가 될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걸 경계하자는 겁니다. '애 낳기 싫으면, 애 만들지 말라.' '애 낳을 생각은 없고 성만 즐기고 싶다면 애가 안 생기도록 미리 조처하라.' 책임도 못 질 짓이면 함무로 '자유'를 부르짖지는 말라. 아직 어려서 자유만 알고 책임은 모르는 학생들에게는 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문제에 당면한 사람은 최대한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주위에서 도움을 주라.

저 역시 Aragorn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순결'이라는 파시즘으로 사람의 목을 조르는 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Jimmy B)
전 가끔 넌 윤리의식, 도덕의식이 없어라는 비판을 듣습니다. --Aragorn B)

4. 낙태의 대안, 사회문제를 함께 푼다


낙태를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낙태를 찬성,반대한다는 것은 그것으로 인한 사회문제를 함께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즉 미혼모나 한부모 가정의 생계비를 국가가 어느 정도까지 책임져야 하며, 소위 사생아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나의 자식과 짝이 되더라도 아무런 이의나 불쾌한 감정을 가지지 않고, 아동 보육시설을 대폭 확대하고 여성의 사회활동을 넓힐 수 있는 사회정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이의 성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어머니에게 주고 이후 상상하기 힘든 여러가지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합니다. 이에 따른 조세확대를 감내해야 하구요. 국내입양도 확대해야겠구요. --윤구현

5. 태아는 기생적 존재인가


음, 첫머리 읽어보고 놀랬습니다. 태아가 자기 의지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기생적'인 존재라니, 안타깝지만 그건 영유아도 마찬가집니다. 위의 논리가 보편성을 띠려면 -넓은 의미든 좁은 의미든- 그 논거로 타인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모든 사람까지 같은 기준으로 설명하거나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죠. 생존의 권리를 타에 의한 의존 여부에 둔다면 지상의 모든 생명은 '살 권리'에 대해 주장할 근거를 상실하게 됩니다. 의존 여부가 아니라 의존 정도의 문제로 전환하여 생각하더라도, 그 기준이 명확할 수 없으므로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되죠. 모든 인간은 그가 인간이기 때문에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획득하는 것이지 성숙의 정도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중요한 점은, 그 모든 의존에도 불구하고 태아는 엄연히 자아로서의 엄마와 합치될 수 없고, 뚜렷이 구별되는 '다른 사람'으로서의 생명,이라는 사실이죠. 강간이라든지 근친상간의 경우의 낙태도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태아가 연약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연좌제'의 폭력아닐까, 이것이야 말로 부모의 잘못을 자녀에게 지우는 불합리한 인권 박탈이 아닐까 하는 문제 제기를 하고 싶습니다. 사회적으로 -특히 한국적인 상황에서-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평안을 위하여 '열등한' 생명을 파괴한다는 극도의 이기심이 정당화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더 중요한 개선의 주제는 개인적으로는 인습적 사고에 대한 대항이고 사회적으로는 범죄 가,피해자에 대한 명확한 구별과 그에 따른 논리적 구제가 될 겁니다. 덧붙여 지적하고 싶은 것은 태아시기의 기억도, 체험도 인간으로서의 기억과 체험의 범주에 완벽하게 포함되는 것으로 간주, 그 시기의 경험까지 대상으로 하는 심리 치료도 실행되고 있는 현실입니다.--오늘도 들어온 아무개

태아는 '기생적'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모체와 '공생적'인 관계라고 하기엔 그 의존성이 절대적이죠. (엄마에게 정서적인 지주가 될 수도 있겠지만 비교급으로서) 인간은 태아에서 자라나 아기로 태어나서 자라며 점점 클 수록 하나의 인간이 되어갑니다. 그 과정은 연속적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마땅히 갖는 권리를 태아가 갖지는 않죠.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 때부터, 그만큼만을 갖는 겁니다.) 그리고 인간이 커서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 생명들에 도움받는 삶을 살지만, 그건 동시에 스스로가 도움이 되고 의지가 되는, 공생적인 삶입니다. 차별할 것은 차별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작은 모두 미미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시험관아기 빼고는) 한때는 엄마와 아빠가 불태운 한 순간의 정열의 부산물이었습니다. 이 부산물에게 의미를 주고 잘 키워준 부모나 가족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가질지언정, 현재의 장성한, 고귀한 나와의 괴리감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의 미미함을 멋진 신화로 채색하는 일은... 자기한테나 하고 보편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는 삼가하기를 바랍니다. 남들한테(특히나 인류의 반인 여자들한테) 부당한 책임을 지우는 신화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말감

아무개님의 말씀에는 정작 중요한 대안이 없군요. 책임을 방기하면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특정 개인이 아니라 일반적인 기준에서요. 현재 그 사생아나 그 강간 피해의 부산물로 태어난 아이들을 양육할 책임은 누가 지고 있습니까? 양육을 하거나 말거나, 출산을 하거나 말거나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는 것은 정작 피해 여성일 뿐입니다. 당연히 그 결정권을 쥐는 것은, 국가나 사회가 이를 '정상적으로' 책임져 주지 못하는 이상은, 여성 외에 달리 있을 수 없습니다. 국가의 미혼모 보호책은, 실질적인 대책일 수 없지요. 종종 얘기되는 게 프랑스와 미국에서 출산시 산부인과 의사들의 결정권 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심각한 기형아(예컨데 무뇌아)나 기타 의사가 판단했을 때 생존에 어렵거나 치명적인 신생아의 경우 생존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미국은 무조건 살리고 보자는 주의이고요. 전자는 아이 양육을 책임지는 곳의 범위를 국가와 사회로 보는 입장이고, 후자는 일 개인(과 개인이 납부한 보험회사)으로 보는 주의이지요. 연약한 존재에 대한 폭력이란 말씀은 기가 막힙니다. 자신을 책임질수 있는 강력한 강간 피해자나 근친상간 희생자는 폭력에 노출되거나 말거나 알아서 할 노릇이군요. 도덕주의적 폭력을 달리 파시즘이라고 (흔히) 부르는 게 아닙니다. 또, 그렇게 태어나는 아이들을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받아들여 용인할 수 있을까요? 윗분 말대로 당장 자신의 사위며느리로 들어오겠다고 하면 이를 탐탁이 여기실 수 있겠습니까? -- 2월화

앞에서 제가 이야기한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겠습니다. '안타깝지만 영유아도 마찬가지'라는 대목입니다. 아말감님은 태아에서 자라나 아기로 태어나서 자라며 클수록 하나의 인간이 '되어간다'고 말씀하셨는데 님의 논지 전개의 과정을 살펴보면 그러한 표현이 본인의 생각을 너무도 정확하게 기술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도움이 되는 공생적인 삶에만 완벽하게 인간이라는 호칭이 주어진다면, 예를 들어 지금 막 태어나 스스로의 도움이라고는 몇시간 기대할 수도 없는 아기는 완전한 의미에서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거기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으면 그 숨이 붙어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성인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님의 논지에 따르면 이들은 완전한 인간성립으서의 전제- 조건부의 의존적 공생의 삶-에 근본적인 결격 조건이 생기므로 -극단적이고 보편적으로 그 주장을 적용한다면-사람이 아니며, 설사 사람이라 인정한다 할 지라도 차별받아야 마땅한 '덜 된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클수록 인간이 되어간다? 새로운 개념의 기술입니다. (그 말 뒤에 숨어있는 생각이 연약하여 쓸모없어 보이는 생명에 대한 경시,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모든 경우를 종합해 봅시다. 앞서 든 저의 예에 등장했던 인물-아기와 환자-들이 덜 된 사람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의 형식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면,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 사람을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는 기준은 그 발생 원인으로 인간의 유전자를 이유로 하는가의 여부이며 독자적 생존 능력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속적으로 인간이 되어간다, 그 한계선을 무엇을 기준으로 어디에 그으시겠습니까? --아무개

한계선을 긋는다는게 아주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 한계를 그을 권리를 가진 자로서 태아를 자기 몸안에 지니는 여성을 기본으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책임지는 사람이 권리를 가지는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좀더 나아가면 부모, 좀더 나아가면 가족, 사회까지 갈 수 있겠지만, 직접적인 책임과 권리는 여성에게 있죠. -아말감

또 다른 문제의 대답으로, 여성은 자신의 몸에 자유를 가진다는 말씀 자체에는 동의합니다만 그것이 자해의 방법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는 명백히 반대할 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인공적) 피임의 단계에서 조차 많은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실에서, 일반인들의 피상적 이해를 뛰어넘는 낙태의 위험은, 여성에게 권리를 운운하기엔 너무도 자학적인 선택이 될 수 밖에 없음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여성의 삶을 염려한다면, 오히려 이 경우의 의학적 지식에 의한 판단을 사회가 왜곡없이 이해하기를 바라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어떤 사회적 권리도 그 구성원의 생명권이 위협당하는 상황을 방관, 또는 조장하는 불의 위에 행사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개

낙태의 부작용보다는 임신의 부작용이 더 끔찍하리만치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같이 특히나 사회가 미숙한 곳에서 사회의 판단력을 믿는 것 자체가 여자에겐 더 자학적입니다. 그리고 논점으로 돌아와서. 무엇이라 주장해도, 분명히 여자라는 존재에게 태아는 기생적 존재인 것은 진실입니다. 회충 요충 에일리언 시리즈 등등 덕분에 기생적이라는 말이 껄끄러운 분들도 계시겠지만. - worry

5.1. 아무개님에 대한 반론
답답한 분이시군요. 자기모순을 돌아보시고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태아의 기본인권에 대하여 아무개님의 주장은 출산이 가능한 미성년 여성 및 성인 여성에 대한 신체적 폭력과 사회적 억압은 용인해도 된다. 라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현재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를 아신다면, 설명 안드려도 될것이고요. 무엇보다, 을 말씀해 주시지 않고 교조주의적 주장만 펼치신다면, 누가 이를 공감할 수 있겠습니까? 생명은 소중합니다. 생명이 살아갈 권리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생명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는, 간과하고 넘어가서는 절대 안되는 것입니다. -- 2월화

6. 인간의성립시기에대한의견


위의 논의를 보면서 노스모키안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인간의성립시기에대한의견"이 궁금해졌습니다. 낙태와 태아의 권리,라는 논의가 진행되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법률상 태아는 상속, 피해보상 등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권리를 인정받을 뿐, 自然人과 같은 수준의 권리를 인정받지는 못합니다. -리듬기타

태아 신분에 대한 법리적 해석에 참고되시라고 퍼 왔습니다. 태아가사람인가 --아무개

7. 살인은 정당화될 수 있나


저는 인간의성립시기에대한의견과는 다른 관점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느냐, 을 할 수 있느냐의 질문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아가 사람이냐 아니냐는 논쟁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태아가 최소한 어느 정도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낙태라는 것은 이러한 인격을 죽이는 것임에 분명합니다.

에 대한 저의 생각은, 어쩔 수 없다면 살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로 제가 살인 격투장의 노예가 되어 상대방을 죽여야 한다면, 저는 온갖 수단을 다해 상대방을 죽일 것이고 살아남으려고 애쓸 겁니다. 물론 그 전에 어떻게든 그 상황을 빠져나오려고 노력하겠지만 말입니다.

누군가를 살인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죄책감에 시달리고 괴롭겠지만, 사실 누구나 존재하는 그 자체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괴로움을 줍니다. 경쟁에서 내가 이기면 다른 사람은 눌리고, 능력이 모자란 사람은 굶어 죽기도 합니다. 남을 지배하고 누르는 것이 당연하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식의 주장이라기 보다는, 삶 그 자체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누군가 존재 그 자체로 다른 사람에게 절대적인 짐이 된다면,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저는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이고, 제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불구자가 된다면 자살을 선택할 것이고, 제 아들이 심한 기형아로 태어났는데 제가 능력이 부족해 다른 정상적인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겠다고 판단되면, 그 아이를 남에게 떠맡기기 보다는 제 손으로 죽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사람의 자연권에 대해 이야기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환자는 주변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인간대접을 못 받습니다. 사지 멀쩡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때문에 집안이 망가졌다고 인식되면, 가족들에게 죽일 놈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한 괴로움을 받게 하느니, 편안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사회가 미혼모를 보호하고 그럭저럭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낙태보다는 출산을 선택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당사자의 손에 남겨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낙태찬성론자는 태아가 100%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논쟁을 피해가기 어렵다고 봅니다. --Aragorn

(태아가사람인가라는 헌법 해석도 참고로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 가족적 차원에서 삶의 질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 대상을 죽일 수 있고, 스스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각 개인의 삶의 과정과 결과는 같지 않고 엄청나게 다를 수 있는데, 인간인 이상 다양한 그 삶의 스펙트럼을 주관적 차원에서 -부정적인 면으로만-미리 재단하고 확정적으로 예언할 수 있다고 보는 건 어찌보아 착각이 아닌가 합니다.

일례로, 가족이 버린 사람들 마저 개인적 차원이든 사회적 차원이든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여 보살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불치의)환자, 또은 불구의 몸으로서도 정신적으로 성숙하며 죽는 날까지 훌륭한 삶의 질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국가만이 가질 수 있는 살인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까지 가족차원의 사고에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없다 하여 엄연한 타인,-피살자는 살해자 본인이 아니라는 면에서- 혹은 자신의 생명권을 박탈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개인적이며 사실의 일면만을 본 생각이 아닐까요.

(인간의 존재 그 자체의 존엄성 혹은 가치도 외부의 인정에서 온다거나 '좌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이 경우의 현실주의는 오히려 현실을 지탱하는 근본 가치를 훼손시킨다고 봅니다) 물론 모두가 보살핌을 받고 있고 모두가 훌륭하게 정신적으로 이겨내고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여기서 문제되는 것이 삶의 질을 이어나갈 가능성 자체라면, 모든 잠재적 유동성을 포함한 객관적 상황 또는 원리를 주관적인 예측 위에 두어야 한다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개

인간의 미래를 확정적으로 예언할 수 있기 때문은 절대 아닙니다. 낙태 금지론자들은 곧잘 이런 예를 듭니다.
첫번째 질문 : 어떤 여인이 임신중이고, 현재 8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그중 셋은 귀머거리이고 둘은 장님이며 한명은 정신지체아였다. 또한 그녀는 매독에 걸려있는데... 그녀는 낙태를 해야할까요? 당신이 낙태를 선택한다면, 당신은 베토벤을 죽였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잠재된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거꾸로, 한 사람을 위해 희생된 주변 사람들의 가능성, 기회비용(?)을 고려해야할 것이며, 단순히 경제적인 논리에서 본다면, 한 사람의 장애인을 돌보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의 정상인을 돌보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실제로 동물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생존의 논리에 기반하여 약한 자식을 죽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이러한 주장을 펼친다고 해서 어려운 역경의 상황에서 쉽게 자포자기한다거나 다른 사람을 돕지 않고 이기적인 선택만을 할 것이라는 비약을 할 수 없습니다. 어느 것에 관심을 두고 어느 것에 더 비중을 두느냐의 문제인데, 과거의 윤리에서는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을 더 중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어 순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윤리적인 논란거리를 만들어내자면,
1) 태아를 낙태시키지 않으면 산모가 사망할 확률이 98%, 태아가 사망할 확률 97%이다. 낙태시켜야 하는가?
2) 태아를 낙태시키지 않으면 산모가 사망할 확률이 98%, 태아가 사망할 확률 30%이다. 낙태시켜야 하는가?
3) 태아를 낙태시키지 않으면 산모가 사망할 확률이 20%, 태아가 사망할 확률 80%이다. 낙태시켜야 하는가?
4) 태아를 낙태시키지 않으면 산모가 사망할 확률이 30%, 태아가 사망할 확률 30%이다. 낙태시켜야 하는가?
5) 태아를 낙태시키지 않으면 산모가 식물인간이 될 확률이 90%, 태아가 정상적으로 분만될 가능성 90%이다. 낙태시켜야 하는가?
6) 태아를 낙태시키지 않으면 산모가 정신적 고통으로 자살할 확률 90%이고, 영아가 유기되어 사망할 확률 30%이다. 낙태시켜야 하는가?
7) 10명의 사람이 밀실에 30일동안 갇히게 되었고, 물이 충분하지 못하다. 5명이 물을 나누어 먹으면 30일간 버틸 수 있고, 10명이 나누어 먹으면 모두 죽는다. 어떻게 해야하나?
등의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결론적인 저의 주장은, 이야기는 충분히 하되, 선택과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내버려 두는 것이 낫다는 겁니다. 적어도 아직 우리 사회는 미혼모와 원치않게 태어난 아이들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보다 약간 앞서야 의미가 있을 뿐, 몇발짝 앞서는 건 무의미합니다. 인권이라는 것이 원래 실재하는 것입니까? --Aragorn
Aragorn님, 이 부분 짧게 정리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말감
...모두들 주말 건강히 보내십시오. 논의를 계속하다보니 새삼, 사람의 가치란,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는 군요... --아무개


8. 각자의 삶, 각자의 권리


낙태에 대해서 솔직히 아주 깊은 생각을 한다거나 정리된 입장을 가진 적은 솔직히 없습니다. 하면 해야만 한다면 해야 하는 것이고 안해야만 한다면 안하게끔 놓아두면 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할뿐이라고 할까요? 각 개인에게 주어진 그순간 최선의 선택을 위해, 그 상태의 현실에 가장 걸맞는 답을 위해서 사유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이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는 그 판단을 내린 사람이 모든 책임을 공고하게 지는 것. 그것이 당당한 인간의 삶으로서 보장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낙태'는 법적으로 허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 생각 아무 판단, 고려, 감정 없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도록 만들 법률 외적인 분위기나 사유는 상존하고 있어야 한다입니다. 법적으로는 허용되어어야하며, 사회분위기는 그 판단을 내린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과정에서 진지하게 그사람의 현실에 자리에 서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낙태 반대"에 대한 시사적인 반증의 근거는 인류의 역사상 이미 있어왔던 것입니다. 바로 아주 희소한 확률로 태어나는 '무대뇌아'의 낙태에 관련된 법정에서의 공판이었죠. [http]참조 도서

그 아이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아이의 부모가 자신들이 벌어들이는 돈 이상의 비용을 대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낙태 반대세력은, 그렇다면 모금을 해서 수술비와 양육비를 조달하겠다는 상황으로 공판의 방향을 더 연장시켰습니다. 그 아이가 태어나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불과 몇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낙태반대주의자들은 꼭 "낳아야 한다라고 우겼습니다." 그다음에 그 "대뇌"가 없는 아이는 살아가는 내내, 자신의 몸 안에 대뇌의 신진대사 기능을 대신할 장치를 끼우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어떤 고통을 몸 속으로 느낄지, 그아이가 만들어낼 수 있는 표현도 영원히 알 수 없는 "낙태 반대주의자"들은 그래도 낳아야만 한다라고 말하며, 낙태를 하겠다고 하는 부모들을 고소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건 그래도 이슈화가 된 부분이니까 낫습니다. 그보다 더 심한 경우, 모금을 통해서 수술비를 대겠다는 사람 나타날리 없고, 변호사를 사서 자기 입장을 밝힐 수도 없는 부모들이 겪는 아픔과 인생의 낭비, 그리고 '그게 삶다운 삶인지도 알 수 없는 인간으로 태어나야 하는 존재에 대해서 자의적인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은 함부로 낙태를 하는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들일지, 그건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 부모가 그런 자식이라도 꼭 낳아야 한다고 고집 부릴 때, "어떻든 낙태를 하시오"라고 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도 못지 않는 "깡패"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는 낳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가올 참상에 대해서도 일말의 두려움 없이 선택할 부모들이 있다면, 그들을 말리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판단을 꼭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낙태"에 대한 올바른, 또는 만족스러운 세상의 결론이 아닐까요?

그럼 흑백으로 빨리 당신 Roman의 진의를 가려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 할 것입니다. "당신, 그럼 낙태 찬성주의자네...", 아니요, 난 찬성주의자가 아니라 "법적 허용이 불가피한 사항들이 있으니, 결국 그 사항들에 대해서 조금은 유연할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오에겐자부로는 정신질환이 있는 아이를 낳아 끝까지 길렀습니다. 그런 그를 존경합니다.(물론, 그에게는 다소 여유로울 수 있는 명예와 돈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다만 "코인로커베이비스"라는 류의 소설처럼, "어쨌든 낙태는 안돼!!"라는 지나친 주장이 낳은 "버려진 아이의 비극이나", 한 해 전, 서울역에서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쓰레기통에 조각조각난 아이버리기"같은 일보다는, "낙태"가 보다 현명한 판단이다라는 것입니다. 매독균이 깊이 침투했을지도 모르는 배토벤을 절대로 키워 낼 수 없는 상황에 있는 부모라면 당연히 낙태가 현명한 판단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낳을 수 밖에 없는 그 판단도 또한 현명한 판단일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해 두어야 할 부분입니다.(이건 낙태 반대론자가 쓰는 예시가 아니라, 인간 세계의 모호함을 보다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한 예시라는 것이 Roman에게는 더욱 정당합니다.) 모아니면 도가 아니라, 양쪽 다 "모"이거나 "도"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양비론 양긍론 쓰냐구요? 아니요, 난 처음부터 "생활인"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인간이 아니라 로봇을 원하는 것'은 대부분 나쁘게 생각합니다. 낙태찬성이냐 반대라는 입장은 인간이 되기보단, 기계가 되어서 판단하라는 것처럼 들려옵니다. 그건 정말로 온전히 '각자의 문제'로 돌아와야 합니다. 로봇이 되어 있는 정신은 기필코 자신 안의 인간과 타인을 무의미하게 죽여주거나 죽음과 동일한 삶으로 이끌게 됩니다. 제대로 된 아무런 사유없이...말이죠.)--Roman

저역시 산모나 당사자들의 생각을 존중하는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경제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때문에 반강제적으로 낙태를 하게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전제하 입니다. 국가에서 지원을 하고, 사회적인 인식을 고치는 것을요.(하지만 이것으로 낙태가 줄어들것인가는 의문이군요. 다른 분들이 지적 해주시길...) -- 클스

9. 어린 여성들의 권리와 보호 문제


몇년전에 전철안에서 낙태권리에 관한 포스터를 본적이 있습니다. 포스터의 내용은 '낙태금지를 지지하는 사람은 한번도 애를 낳아보지 않았거나 피해자(강간등의)가 될수 없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 라고 적힌 문구와 함께 아주 거만한 포즈를 취하고 서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습니다. 이 사진속의 사람들은 굉장히 완강한 모습으로 입술을 꼭 다물고 있는 늙고 고집세 보이는 할아버지들이었답니다. 이 포스트를 보기만해도 낙태금지를 외치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수 있었죠.

전 낙태권리, 당연히 여자에게 있다고 봅니다. 원하지 않거나 책임질수 없는 생명을 낳는것 보다 낫지 않나요? 낙태를 해선 안된다고 한다면 윤리와 도덕에 근거해서가 아닌 여자의 건강을 먼저 생각한 후여야 하고요.

한국의 성교육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한국에서 중학교 다닐때, 여자애들만 앉혀놓고는 생리와 관련된 교육(?), 출산장면 같은거 보여주고는 성교육시간이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에서의 성교육은 매우 노골적이며 직선적이죠. Health라는 수업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선 꼭 들어야 하는 수업인데, 이 시간에 성교육이 이루어집니다. 선생님들은 바나나 한개와 남성용 콘돔, 여러종류의 여성용 콘돔, 그외 여러가지 피임기구나 약을 가져와서는 직접 사용법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일주일간 아이들에게 인형을 가지고 다니면서 마치 아기를 돌보듯 데리고(?) 다니게 합니다. 학교안에서건 어디에서건 말입니다. 자명종 시계를 새벽 몇시에 맞춰 놓고 그시간에 일어나서 우유를 주는 시늉까지 해야 한다는 아주 자세한 방법까지 지도해 줍니다. 이 교육의 포인트는 '아기 돌보기는 매우 어렵고 힘들며 중요한 일이다.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조심해라' 입니다. 학교 곳곳에는 양호실에서 콘돔을 나누어 주니 필요하면 받아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지 한달도 안되었을때 학교안에서 이걸 읽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새롭게 나네요.

그.러.나. 이런 직접적이고 노골적이기 까지한 미국의 성교육으로 인해 미혼모의 수가 적을까요? 그렇지도 않은것 같습니다. 십대소녀가 애를 낳는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지탄받거나 집에서 내쫓긴다거나 그런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생기면 그냥 낳는 애들도 많습니다. 이런 경향은 맨하탄 같은 도시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서는 많이 보여지는 현상은 아니고, 좀 외곽 지역으로 갈수록 그 수가 좀 많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가 느끼기에게는요. 하여튼, 이렇게 해서 미혼모가 생기면 정부에서 많은 도움을 줍니다. 듣기로는 기저귀값까지 지원이 된다고 하더군요, 자세한건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임신과 출산의 책임을 나이어린 어쩌면 피해자인지도 모르는 소녀에게만 뒤집어 씌우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요즘 여고생들 사이에서는 낙태계라는 것도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 아니길 바랄뿐입니다.--Jamie

10. 합법적인 살인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합법적인 경우(제한되긴 하지만)가 크게 두가지가 있다. 전쟁(혹은 사형)과 낙태이다. 논의의 간편성을 위해 여기서 사형은 제외하도록 하겠다. 전쟁은 군대를 만든 주체 혹은 주체가 지켜야 할 대상을 보호하기 위해 제한적인 공간과 시간에서 제한된 인명을 가장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방법으로 살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군대 자체는 개인이 아닌 사회이지만 개개인의 군인은 대개가 관습적으로 남자이며, 그들은 직간접적 방법으로 인명을 살상한다. 목적이 비정당화된 전쟁 혹은 그 대상이 상대 적군이 아닌 민간인일 경우 그들은 큰 심리적 외상을 받을 것이다. 충분히 정당화된 적군만을 살상한 군인이라 할지라도 스위치를 누르기만 하는 군인이 아니라 직접 발로 뛰는 보병이라면 그가 겪는 심리적 외상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의 낙태 역시 여자라는 개인 주체의 최소한의 보호를 위해서라면 정당화 될 수 있지 않은가? 군인들이 매시간 어느 장소에서 누구를 막론하고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살인마가 아니듯 낙태한 여자들 매 경우 역시 낙태하지 못해 안달난 여자는 아닌 것이다. 정말 자신이 생각하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일 경우 자신이 겪을 심리적 외상과 태아의 희생을 감수하고 낙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군인들이 평시에 전쟁을 준비하는 것처럼 여자들도 낙태에 대한 평시의 대처가 필요하다. 군대를 가지고 있는 주체의 희생을 막기 위해 평시에 훈련을 하듯이......태아를 인간으로 보기에 낙태를 금지한다면 더욱 인간임이 확실한 적군을 죽이는 것 역시 금지되어야 하지 않나?

10.1. 합법적 살인의 성차별

남자에겐 합법적인 살인이 허용이 되면서 여자에겐 왜 합법적인 살인이 허용되지 않는 것인가! 전쟁이 외부의 합법적 살인이라면 낙태는 내부의 합법적 살인이다.--RockAsian

전쟁과 낙태, 남자와 여자를 연결시키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있는 연결이 아닌 듯 합니다. 이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나 유사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되는데요... 전쟁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주체가 남자냐 여자냐는 전쟁과 큰 관계가 없어보이고, 낙태 문제는 여자의 생물학적인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전쟁이 지구상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낙태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만들어 질 수도 있습니다. --Aragorn

단체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살인하는 것에선 결과적으로 같지 않나요. 태아가 인간이 아니라면 살생이 되겠지만 헌법에서 인간으로 명시되어 있으니 살인이군요. 다만 전쟁이 평상이 아닌 특수한 경우인 것처럼 낙태도 특수한 몇가지 경우에 한해 살인이 아닌 경우가 있군요. 지금처럼 미혼모가 중가하는 경우 과거보단 낙태가 법적으로 가능한 경우를 늘려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RockAsian

모든 살인이 이유가 있고, 나름대로 단체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안정을 유지하게 위해 살인합니다. 예를 들어, 저 녀석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도저히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저 녀석을 죽입니다. 요는 전쟁은 남녀를 불문하고 군인에게 부여되는 합법적인 살상권한이고(엄밀히 말해 이것도 승자의 논리에 좌우되지만), 낙태는 생식과 번식의 과정에서 삐져 나온 문제아입니다. 이 둘은 근본이 다르고, 전쟁은 남자의 몫, 낙태는 여자의 몫이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도 없습니다. 군인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낙태의 경우에도 일차적인 책임소재는 임신하게 만든 (보통은) 두 남녀입니다.

다른 것을 떠나, 극단적으로 남자도 살인하니 여자도 살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은 남자만 수행하는 것이라는 법률과 도덕이 있다고 할 때, 남자는 전쟁을 통해 살인할 수 있으니, 여자도 비슷하게 살인할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을 제공해 줘야만 할까요? 남자가 전쟁을 통해 살인할 수 있으니, 여자도 마음에 안 드는 남편을 평생 3번은 살해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할까요? 전쟁과 낙태, 남자와 여자의 연결은 지나치게 자의적인 연결이라고 생각합니다. --Aragorn




see also 잃어버린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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