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의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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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eteMe 다큐먼트모드로 전환해봅니다. 아직 제대로 정리가 안된듯.

서기 476년. 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제국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폐위되었다.
이로써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에 의해 건국되고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중건되어 1200년이상 이어오던 로마는 멸망했다.
(동로마제국이 있지 않느냐..라는 반문도 있을 수 있지만, 동로마제국은 이미 로마적인 특색을 잃어버리고 동양 전제국가화했다는 점에서 로마제국의 정통이라기보다 로마의 또다른 후예 정도로 간주하는 것이 무난하다.)
역사 속에서 많은 나라들이 명멸했지만, 로마처럼 오랜 기간 존속하면서 그토록 넓은 영토를 가지고 주변 국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국가는 없었다. 그런 로마의 멸망을 좇아가면서 그 멸망의 원인은 어떤 것이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민족의 침입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로마의 북쪽에서 로마를 압박하던 이민족의 침입이 될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이후로 넘어오면서 이민족의 로마 침입은 격화되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이후로는 거의 일상적인 일이 된다. 이런 잦은 외침으로 인해 변방에서의 농경은 불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로마제국의 산업은 경직되어갔다. 이것은 제국 전체의 부를 갉아먹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방위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세베루스 왕조

그렇다면 오현제시대까지 튼튼했던 제국의 방위에 구멍이 뚫리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군인의 지위를 강화하여 제국의 국경을 튼튼히 하려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정책에서 시작되었다. 군인의 봉급을 올려주고, 복무중 결혼을 허용한 세베루스 황제의 정책은 군인계급의 고착화를 낳게 되었고, 군인들은 굳이 제대하려 애쓰기 보다 군대 내에서의 지위 상승 혹은 권력에의 지향 등을 노리게 되었다. 이후 제국에서 군인황제가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또다른 원인에는 세베루스 황제의 아들 안토니누스 카라칼라 황제의 칙령이 있다. 제국내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요지의 '안토니누스 칙령' 은 제국의 세수 확대를 노렸지만, 생각처럼 수입은 늘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명시되어 있던 계층간 이동(노예-해방노예-자유민-로마시민)을 없애 경직된 계급사회로의 이행을 촉진하게 되었다. 이에 더하여 속주민들은 군인이란 직업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이것은 로마군단 전체의 군사력 약화를 불렀다. 이로 인해 기원전부터 그치지 않던 게르만의 로마침입은 좀 더 용이해졌다. 이민족의 본거지로 쳐들어가는 등, 국경 밖에서 이루어지던 로마 대 이민족의 싸움은 이제 로마 영토 내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로마군단의 전술에 익숙해진 게르만의 군대들은 기병을 주력으로 로마 영토내를 휘젓고 다녔고, 상대적으로 기동력이 떨어지는 보병 위주의 로마군단은 이들을 뒤쫓는 일 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게르만인을 로마군단에 편입시킨 것은 오히려 군사력 강화에 이바지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로마는 다른 민족,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매우 익숙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국가의 방위를 다른 민족에게 맡겼다기보다는 전통대로 영토 안으로 들어온 다른 민족들을 끌어안으려 했지만, 이민족에게 로마의 이점이 매력을 잃었기 때문에 그것이 실패했다고 여겨진다.

기독교

3세기 이후 로마제국에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 하나가 퍼진다. 기독교를 박해한 황제로 기원 1세기의 네로가 유명하지만, 사실 그 당시의 기독교는 그다지 주목받는 종교는 아니었다. 다신교 사회인 로마에 유일신 신앙의 기독교가 침투하기에 아직은 시기상조였던 것이다. 역사가 디오 카시우스 등의 로마인들은 오직 하나의 신만 믿는 기독교를 미신으로 치부하기까지 했다. 오현제 시대를 지나 점차 격화되는 이민족의 침입은 로마인들에게 세상이 멸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유대교에서 파생된 기독교는 메시아의 도래를 주장하며 이런 로마인의 심리를 파고들어가 급격한 교세 확장을 이룬다. 이들에겐 로마제국이 곧 악이었고, 다가올 천년 왕국을 맞아들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때문에 로마시민이면서도 병역의 의무를 따르지 않는 등. 로마 사회로의 동화를 거부하여 주류 로마사회의 공격을 받았다. 기독교도에 대한 심한 박해로 유명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그의 뒤를 이은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하늘의 십자가 표지를 보고 경쟁자 막센티우스를 제압하는 데 성공하였다 하며, 이는 밀라노 칙령의 계기가 된다. 공인된 기독교는 이후 제국의 전체를 통치한 마지막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국교화 되며 이로 인해 로마제국을 융성케 했던 가장 큰 강점이었던 타인에 대한 관용과 다양성의 허용은 사라지게 된다. 기독교와 관련없는 이교의 신을 위한 조각이나 신전은 모조리 파괴되었고, 제의 또한 금지되었다.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도입해 제국에 활력을 이어가고자 했던 시도는 오히려 로마의 독특한 강점을 상실케 했으며 멸망을 가속화했다. 그러나 서로마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아 멸망했고 동로마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아 1000년을 이어갔다는 사실은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로마는 멸망했지만 기독교국가는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명제라 할 수 있다.|}}

로마 제국 멸망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기독교


Astro : 제 나름대로의 생각으로는 로마제국의 멸망원인 중에 기독교도 포함될 거 같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요. 시오노나나미씨의 로마인이야기에서는 다신교체제의 로마가 일신교인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쇠약해지기 시작했다는 뉘앙스를 여기저기 풍기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가장 큰 강점으로 갖고 있던 로마가 다양성을 잃는 과정이 기독교가 국교화돼 가는 과정이라는 거죠.

Astro : 로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후 점차 쇠약해져가던 중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이 로마 멸망의 결정적으로 작용합니다. 공인된 기독교는 이후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국교화가 되고.. 이로 인해 로마제국을 융성케 했던 가장 큰 이유인 이교에 대한 관용과 다양성의 공존은 사라지게 됩니다. 기독교와 관련없는, 이교의 신을 위한 조각이나 신전은 모조리 파괴됩니다. 그 밖에도 로마시대 유물이 상당부분 사라진 데에는 기독교가 매우 큰 역할을 했다죠.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포용한다. 저는 로마를 배우면서 그들의 진정한 강점은 이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건국 초기.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선택이긴 했지만, 웬만큼 융성한 이후에도 그들은 그 방식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패자를 관용하고, 이교도를 포용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죠. 이것을 잃자, 로마인은 로마인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세계 역사에서 제 2의 로마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기독교를 로마 멸망의 원인으로 들었던 것은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경직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CafeNoir : 로마가 더 이상 로마가 아니게 되면 예전에 로마였던 것은 멸망하게 됩니다. 예전에 로마였던 것이 멸망하고 난 뒤에 남은 것이 비잔틴이 된 거겠죠. 베네치아도 내륙에 영토를 얻어 더 이상 '도시국가 베네치아'가 아닌 '영역국가 베네치아'가 되며 쇠락의 길에 빠져들었고요. 기독교의 존재 자체가 로마를 쇠약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musiki : 기번이 기독교를 원인 중 하나로 들었던 것은 기독교가 현세 중심이 아니라 내세 중심이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당시의 저서들을 읽어보면 기독교인들은 섹스를 등한시하고 정치나 장사나 전쟁에 취미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점은 로마의 "제국주의"를 심하게 뒤흔든 것으로 보입니다. 카라칼라의 칙령 이후로 오히려 대폭 증가한 로마 시민수가 말기에는 카라칼라의 시대 이전의 로마인들의 숫자만도 못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것이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이하 로마의 황제들은 기독교를 국교화했는지는 몰라도 그들 중 스스로 기독교 신도였다고 볼 수 있는 이들은 사실상 없습니다. (이점에 이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배를 위해 기독교를 이용했을 뿐입니다. 이교도들의 반발을 막기 위해 크리스마스를 이교도 신의 생일로 정했다던지, 태양신의 날인 일요일을 "주일"로 정했다던지 하는 로마의 작태는 "기독교를 받아들였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단순히 기독교를 "이용했다"라고밖에요.

Astro : 로마가 기독교를 이용했다곤 하지만, 기독교 역시도 로마를 이용해서 일어섰습니다. 기독교=로마교황청 은 아니더라도 기독교의 부흥에 로마가 큰 역할을 했다는 건 간과할 수 없을 겁니다.

musiki : 그게 또 개신교도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정작 로마교회는 영지주의 말살이라던지 초기교회의 실제 연장선에 선 유대인 지파를 박해했다던지 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해 로마는 로마교회를 만들면서 원조 기독교 교회를 말살했다는 겁니다. 개신교도들은 스스로가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로마교회의 연장선에 서있겠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초기교회의 연장선에 서있고 로마교회 시절동안 말살당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외부인이 보기에는 같은 뿌리로 보이는 개신교와 가톨릭끼리 서로 죽이니 살리니 하는 것이 이해가 안가시겠지만 실제로 그럴수밖에 없습니다. 가톨릭은 개신교를 콘스탄티누스 칙령 이래로 근대까지 핍박하고 학대해 왔던 겁니다.

Astro: 개신교는 종교개혁 이후에 나타난 건데, 그걸 초기 기독교와 혼동하시면 안될 거 같네요. 물론 초기 기독교의 일파가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 그리고 다른 소수 분파로 나뉜 건 알고 있습니다만, 개신교는 분명 로마 카톨릭에서 나온 것이고, 다른 분파와는 직접적인 연결이 안 되는 걸로 압니다. 정신적인 연결이 있었다. 고 주장하시더라도 '개신교가 콘스탄티누스 칙령 이래로 계속 박해받아왔다' 고 하는 건 좀 심한 비약같습니다.

musiki : 나머지를 전부 다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결국 로마는 멸망한게 아니라 콘스탄티노플로 이사갔을 뿐이며 정작 비잔틴은 기독교와 함께 천년을 버텼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합치면 1500년에 육박합니다. 비잔틴은 엄연한 동로마인데 로마로 취급 안해주는 것은 북이스라엘만 이스라엘이고 남유다는 이스라엘이 아니다.. 하는 주장과 똑같은겁니다. 그후 신성로마제국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씨는 문닫지 않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관점만 바꿔 보면 로마는 오히려 기독교를 받아들임으로 인해 역사상 어느국가보다도 긴 기간을 융성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동서고금의 어느 왕국도 로마-비잔틴-신성로마제국보다 긴 기간을 연명하진 못했습니다. 기독교의 국교화가 국력을 약하게 한것인지 아니면 기독교의 박해가 국력을 약하게 한 것인지는 또한 세상사람과 믿는사람의 관점이 반대일수 밖에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비잔틴이 쇠퇴한 것은 그들의 우상숭배 때문이라 믿는 반면에 반기독교적인 학자들은 기독교 문명의 한계라고 말할겁니다. 기독교인들은 로마가 쇠퇴한 것은 기독교에 대한 박해에 대한 결과라 볼것이고 반기독교적인 자들은 기독교를 선택한 것이 국력이 약해지게 한 원인이라 말할겁니다. 이런식의 종교 논쟁은 유럽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의미없는 것으로 비춰지기만 합니다. 결국 기독교적 관점에서 말해달라면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City of world는 망할 것이고 City of GOd만이 영원하다 라고... 망하지 않는 국가는 없습니다. 역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2권으로 이뤄진 어거스틴의 신국론을 보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미 예전부터 로마의 멸망을 예견하고 있었으니까요. musiki는 과감히 주장하도록 하겠습니다. 로마는 기독교때문에 멸망하긴 커녕 기독교덕택에 1500년을 버텼다. 충분히 가능한 주장이죠.

Astro : 서양사를 전공하는 많은 학자들은 서로마의 멸망을 매우 상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때를 서양중세의 기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죠. 비슷한 예로.. 고구려는 멸망했고, 대조영은 고구려를 잇는 의미로 발해를 건국했지만, 고구려와 발해를 같은 연속성을 가진 나라로 보지 않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물론 비잔틴 제국은 로마 멸망 후 건설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분할에 의해 생겨난 국가입니다. 그러나 비잔틴제국과 서로마는 그 국가의 성격이 매우 다릅니다. 물론 신성로마제국또한 앞서의 둘과 다르겠죠. 로마는 왕정으로 시작해 공화정을 거쳐 원수정이라고도 부르는 제정에 이르기까지 그 정체를 바꾸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면 그 구성원인 시민의 의사를 존중하고, 패자에 대한 관용으로 국정을 운영해 왔다는 것입니다. 독재자라 불린 카이사르도 시민의 평판에 매우 신경을 썼으며, 이후, 아우구스투스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는 황제들 또한 그러했습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로마의 최고권력자는 시민들의 지지에 의해 그 정당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변질된 것은 동양적 전제정치를 도입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때부터이며, 그의 후계자인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도구삼아 이것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노력했습니다. '황제의 권력'은 이제 시민의 지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이 내려준 것으로 바뀌었죠. 이는 이후 서양 절대왕정 시기 프랑스 루이 14세의 왕권신수설과도 연결된다고 하겠습니다. 기독교 자체는 그럴 의도가 없었을런지는 모르겠으나, 권력자들은 종교조차도 도구로 사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으며,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중세 초기와 중기에 걸쳐 교황권의 신장을 가져오게 됩니다. '너희들의 권력은 신이 내려준 것이며, 그러므로 신의 대리인인 나, 교황은 너희들의 위에 선다'는 논리이지요. 이는 신성로마제국과도 연결됩니다. 실상 신성로마제국은 동쪽에 아직 남아 있는 강력한 비잔틴제국에 대한 대항의 의미로 생긴 것이지, 로마제국을 부활시키자...라는 의도와는 조금 거리가 멉니다. musiki님께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민족의 나라인 대한민국이 어느날 북쪽 중국 오랑캐의 침입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하지만 그 일부는 살아남아 식민지로 삼고 있던 이웃 일본에 세력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일본에는 신토라는 종교가 있는데, 이것이 속국이었던 일본인의 대부분의 삶을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약간 변형된 종교가 일본으로 넘어간 대한민국의 정체와 조직등에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 일본으로 건너가 세워진 신한국은 이전의 대한민국과는 전혀 다른 나라가 되었습니다. 김치를 먹고 단군신화를 믿던 사람들이 초밥을 즐기며 천황을 받듭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과 신한국을 같은 나라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나마 이 두나라는 유전자의 유사성이라도 보존할 수 있었을테지만, 서로마와 동로마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서로마의 주체는 라틴족이지만 동로마의 주체는 그리스와 트라키아인입니다. 정체도 한쪽은 시민과 원로원의 지지를 받아 오르는 제정이지만, 다른 한쪽은 세습에 의한 전제정치였지요.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에 기대어 전혀 새로운 나라를 '세운' 것이지 로마제국을 연장시킨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또 그것이 유독 기독교인들이 콘스탄티누스를 '대제'로까지 부르며 추앙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요.

musiki : Astro님의 주장대로라면 Astro님이 그토록 강조하시던 그 구성원인 시민의 의사를 존중하고, 패자에 대한 관용으로 국정을 운영해 왔던 로마는 이미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때부터 멸망한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그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인정한 황제이기는 커녕 대박해의 주인공중 하나입니다. 이미 멸망한 나라를 기독교에 덤터기 씌워서 원인제공자로 분류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합니다. 기독교가 인정받거나 국교화된 그 이후에 대해 논하는 것은 전혀 의미없는 행동입니다. Astro님의 이러한 주장은 이미 Astro님이 부정하셨던 바 있는 황제가 공화정을 멸시하고 전제정권위주로 나가면서 그 구성원인 시민의 의사를 존중하고, 패자에 대한 관용으로 국정을 운영해 왔던 로마의 기치가 무너졌다고 주장하는 musiki의 주장과 별 차이가 없어보입니다. 서로마는 이미 Astro님이 그토록 원인이라 주장하시는 기독교 국교화보다 한참전에 Astro님께서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로마를 벗어나 있었던 겁니다. --musiki

Astro : 위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의 도래'만이 로마 멸망의 원인이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원인 들 중 기독교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겁니다. 로마 제국 융성의 시기... 오현재가 통치했던 서기 2세기에도 기독교도들은 있었습니다만, 그 수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제국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기독교와 비슷한 유대교는 매우 폐쇄적인 종교였기에 그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능했구요. 이민족의 침입으로 로마인들은 이전의 평화를 잃고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거주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또한 잃게 되지요. 부모가 살던 땅에서 부모가 가졌던 직업을 이어가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나름대로 기댈 것은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약속하는 종교였고, 기독교는 이 때 급속한 교세확장을 이루게 됩니다. 서기 2세기까지만 해도 로마의 소수세력이었던 기독교가 서기 3세기 후반에 이르면 왕궁에까지 침입할 정도로 큰 세력을 이루게 되는 것이죠.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기독교로 대표되는 유일신교와 로마의 다신교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타인에 대한 관용이라고 생각됩니다. 나와 다른 타인을 인정하는가.. 아니면 배척하는가.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기독교 국교화는 로마의 그런 정신에 마지막 일격을 가한 행위였다고 보구요. 그로 인해 고대 수많은 미술품과 서적과 풍습과 이야기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런 박해를 피해 아직까지 남아있는 소수의 흔적들을 보아도 그 옛 문화의 아름다움은 후세에 길이 물려주고도 남을만 한 것들입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절에 이미 로마의 정신은 몰락한 게 아니냐고 하셨죠.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그 시대 이미 진정한 로마정신을 가진 로마인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게까지 시대를 몰아붙인 원인들은 뭘까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왜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요. 2세기 때는 훌륭하게 통치되었던 로마가 그의 시대에 들어서는 왜 그렇게 약화되었을까요. 이것은 단지 한두가지 원인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겁니다. 그렇기에 저는 앞서 여러가지 원인을 들었던 겁니다.(인플레이션, 안토니누스칙령, 기독교의 대두) 그 중 유독 기독교만을 물고 늘어지시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 기독교 또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아무래도 납득할 수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도 musiki님의 자유이겠지만, 역대 로마 황제들(콘스탄티누스 이전 서로마)이 왜 유독 기독교를 싫어하고 박해했는지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musiki : musiki 자신이 기독교인인데 당연히 기독교가 오해받는 것을 -그것도 사실과 다른 일로 오해받는다면 더더욱- 보고싶지는 않겠죠. 시오노 나나미는 기독교 국교화가 멸망의 원인이었다 주장했지 기독교의 대두 자체가 원인이었다 주장한 적은 없습니다마는 어쩌다보니 이것이 동치인양 상호 이해가 잘못 진행된 것이 상호 오해의 이유인 듯 싶습니다.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기독교 국교화 라는 정책 , 바로 로마 황제의 그 정책이 배타적이다. 라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의 정책이 배타성이어서 로마를 멸망으로 이끌었지 기독교 교리가 배타적 이어서 로마를 멸망으로 이끈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결국은 기독교를 국교로 이용해먹은 로마가 배타적이었던 것이지 기독교 교리가 배타적이지는 않다는 것이 제 주장의 요지입니다.

로마 황제들의 기독교 배척은 그 무엇보다도 황제를 신격화하고자 했던, 시민들의 종교와 사상까지 지배하려 했던 일부 황제들의 정책에 반대했던 영향도 큽니다. 그러나 musiki의 생각으로는 황제의 신격화야말로 수많은 종교.. 특히 님이 그토록 배타적으로 주장하시는 수많은 종교보다도 가장 배타적인 정책 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는 "어짜피 금화는 시이저의 것이니 시이저에게 세금을 내라" 말했고 "나의 왕국은 이땅이 아니라 저세상이다" 라고 말하며 제정 분리를 주장했지만 황제의 신격화는 제정일체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제정일치는 이미 Astro님이 그토록 주장하신 로마정신을 한참전에 떠난 악행입니다. 황제를 신격화하지 않는 모든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매우 배타적인 행동입니다. 오히려 기독교가 이에 반대했던 것은 로마정신에 위배되었다기보다는 어긋난 황제로부터 그나마 로마정신을 지킨 쪽에 가깝지 않을까요? 그러나 결국 로마 황제는 이것이 안통하자 오히려 기독교를 국교로 끌어들임으로서 제정일치라는 사악한 정책을 성립시켰던 것입니다.

다음 문제는, 약간 외적인 것이지만, 비잔틴이 로마의 연장선이 아니고, 발해가 고구려와 연속성이 없고 원나라가 몽고 역사가 아니고 중국 역사인 것이고 청나라가 만주국의 역사가 아니라 역시 중국 역사인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남유대와 북이스라엘은 다른나라일망정 다른 역사라 하지 않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연속성이 있다고 우리가 믿듯이 말이죠. 서로마와 동로마는 같은 왕국의 분화인데 한쪽은 유럽 핏줄이라는 이유로 유럽인들의 자존심에 따라 로마였다고, 한 유럽이었다고 주장하고 옛로마의 부활을 외치면서도 비잔틴은 다른 인종의 제국이었다는 이유로 로마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유럽학자들의 "유전자의 유사성"을 논하는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인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musiki

Astro : 저는 시오노 나나미씨만이 로마제국 멸망의 주요 원인으로 기독교를 들었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기번을 비롯한 많은 역사가들도 '기독교국교화'가 아닌 '기독교의 대두'를 로마제국 멸망의 한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윗 글에서 텍스트로 삼은 것은 '로마인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또 덧붙이자면 시오노나나미는 로마인이야기에서 '기독교 국교화'를 멸망의 원인으로 들고 있지 않습니다. 오현제 시기. 아니, 그 이전 유대 멸망의 주역이었던 베스파시아누스 왕조시절부터 유대와 유대교.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된 기독교에 대해 로마 황제들이 우려하고 있는 점들을 보여주고 있지요. 그리고 로마인 이야기 속에서도 기독교 세력의 확대에 대해 중요하게 다루고 있구요.

기독교 교리가 배타적이다. 라는 명제를 부정하시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기독교 교리가 배타적이지 않다면 십자군 전쟁은 왜 일어난 것입니까? 십자군 전쟁 이전에도 성지순례는 있어왔고(그것이 십자군전쟁의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그 성지에 타 종교의 세력이 들어앉아 이익을 취하고 있는 것이 불만이어서 십자군이 일어난 것 아닙니까? 마녀사냥과 신.구교의 대립 또한 그렇습니다. 아니, 그 이전에 동서 로마가 갈린 계기가 서로 다른 교리가 대립했기 때문이며, 서로 상대방을 인정치 않으려 했기 때문이 아니었는지요.

황제의 신격화...에 대해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고대 로마의 신은 30만이 넘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그들 자신이 영위하는 문화의 뿌리가 바로 로마제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악의 제국으로 재단해 마지 않는(이것은 비단 시오노 씨의 말을 받아적은 것이 아니라, 로마사 관련 책을 찾아 읽고 느낀 제 생각이기도 합니다)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로마가 기독교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일신교의 눈으로 다신교세계를 봤기 때문에 그러했던 거죠. 시민의 종교와 사상까지 지배하려한 건 기독교지 로마제국이 아닙니다. 로마에서는 무슨 신을 믿던 그건 그 사람의 자유였습니다. 황제가 신격화 됐다지만, 그건 그 사람이 죽은 다음의 일이고, 또 그 신격화된 황제를 믿으라고 강요하진 않았습니다. 제정 치하에서 공화정에 대한 찬양을 하는 것까지 허용됐을 정도로 사상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현대 대한민국에도 없는 자유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를 찬양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리지 않습니까? 21세기인 아직까지도. 뭐 지금은 거의 사문화됐다고 하지만.

로마는 제정분리의 국가였지만, 최고제사장과 임페라토르, 프린캡스를 한 사람이 겸하고 그 사람에게 아우구스투스라는 존칭을 얹어줌으로써 제정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로마에는 목사나 신부, 수녀같은 전문 사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제정일치였지만, 종교 관련 직종은 최고제사장을 제외하고는 공직과 마찬가지로 선출직으로 돌려가며 하거나 유소년들에게 맡겼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제계급을 만듦으로써 그쪽 직종을 고착화시키고 영리를 추구하게 된 것은 기독교가 서방세계를 장악하게 된 이후입니다.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돌리라 했지만, 중세 농민을 착취하던 계급은 영주와, 그리고 교회였습니다.

남북한은 서로 연속성을 갖는다고 이야기하진 않습니다. 정체성을 공유한다고 해야죠. 그나마 50여년의 분단으로 이질감이 심화되고 있긴 하지만.. 하지만 어쨌든 남한과 북한은 다른 나라입니다. 같은 나라라고 하시진 않겠죠? 유전자의 유사성..이란 말은 인종차별적 태도로 쓴 것이 아니라, 유독 민족성을 중시하는 한민족의 입장에서 사용해봤던 단어입니다. 우리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반대하는 것은 고구려가 현재의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는 아니지만, 정체성은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musiki : 기독교 교리가 배타적이라는 말씀은 좀 억지성이군요. 십자군 전쟁은 봉건영주, 특히 하급 기사들은 새로운 영토지배의 야망에서, 상인들은 경제적 이익에 대한 욕망에서, 또한 농민들은 봉건사회의 중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희망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종교적인 것은 그들에게는 사실 관심밖의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야욕에서 시작된 것이지 기독교 교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기독교 교리는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 했지 "이교도인 내 이웃을 점령하라" 라고 한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또한 "욕심이 임신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임신하면 죽음을 낳을뿐"이라고 했지 "너의 야욕으로 약탈하라 점령하라" 한적은 결코 없습니다. 교리에 대한 이해없이 역사적 사실만으로 기독교를 배타적이라 몰아세우시는 것은...-그것도 로마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변질된 기독교- 매우 근거없이 감정적인 비방으로 들릴 뿐입니다. 동서 로마가 갈린 계기는 서로 다른 교리가 대립했기 때문이 아니라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나라를 둘로 나눠주었기 때문입니다. 모든것을 기독교 교리에 이유를 대시는 것은 결국 Astro님께서 기독교에 대한 편견이나 사적 감정에서 이 페이지를 열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추측을 제개 줍니다.

신격화는 둘째문제로 치자 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일단 로마황제의 신격화를 기독교가 거부했기 때문에 기독교가 박해를 당했던 것이고 이는 일종의 미신 타파로서 그 누구나 진보로 생각하지 퇴보로 생각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사상의 자유를 파괴한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신격화를 거부하는 것을 박해한 로마가 사상의 자유를 파괴하는 셈이 되는 것이죠. Astro씨의 시각으로는 로마황제를 섬겨줄수 없다는 이유로 박해를 가한 황제는 과연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 황제라 할 수 있습니까? "기독교만 제외하면 다 인정해 주었으니 로마의 사상적 자유는 충분히 보장된 것이라 볼수있다"는 Astro씨의 말은 "빨갱이만 제외하면 다 인정해 주었으니 한국의 사상적 자유는 충분히 보장된 것이라 볼수있다는" 는 말과 다를바 없게 들립니다.

제일 중요한 요점은 이것입니다.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만든것은 기독교 교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로마의 정책이었으며 이것이 사악했던 겁니다. 로마는 결국 기독교 외의 다른 신앙을 배척하게 되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황제의 정책이었고 기독교의 교리가 배타적이어서가 아니라 로마제국이 배타적으로 변했던 것 때문이라는 점을 인지하셔야 할겁니다. 로마의 위정자가 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를 거부하고 종교의 자유를 빼앗는 배타적 정책을 펼쳤기 때문인것이지 기독교 교리가 배타적이어서 황제가 정책을 그렇게 세웠겠습니까? 그렇다고 주장하신다면 다분히 감정적으로 들립니다. musiki는 한번도 로마를 악의 제국 따위로 격하한 적 없으며 단지 "City of The God"이 아니라 말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로마는 기독교를 입지로 삼아 사람들의 사상의 자유를 억눌렀고 황제는 곧 교황의 자리에 올라 자신의 의도하에 모든 인간들의 사상과 종교마저도 지배하려 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사악한 행동이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사제계급을 만듦으로써 그쪽 직종을 고착화시키고 영리를 추구하게 된 것은 기독교가 서방세계를 장악하게 된 이후이고 이것은 모두 로마교회의 행위에서 나온것입니다. 또한 이런 로마교회의 고착과 파탄은 로마의 악행의 산물일 뿐이지 기독교 교리에 충실해서 일어난 일과는 모두 거리가 멉니다. 기독교는 로마교회만 있는 것이 아니며 (ex:그리스교회 이집트 교회 에디오피아 교회 소아시아 교회 루터교회 등등) 신교가 로마교회의 연장선이라는 사고관은 좀 깨쳐주셨으면 합니다. 오히려 신교와 같은 주장을 하는 파는 초대교회에도 있었고 로마교회는 이러한 교파마저 이단으로 규정, 말살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이러한 신구교간의 분쟁역시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라는 악행에서 파생된 것이지 기독교 교리 근본의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서로마와 동로마는 연장선에 있지 않으며 별개의 국가라 하시면서 구교와 신교는 자꾸 연장선으로 치부하시는 이중잣대의 면모또한 편견에서 비롯된 편향확증이 빚어낸 오류라고 보여집니다.

마지막으로 Astro님께서 항상 주장하시던 "남과 다른 것을 인정하는" 로마란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연속성을 의미하는 성격의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남북한이 정체성을 공유한다면 동서로마도 정체성을 공유한다고 볼수 있을것이고 로마는 다른 민족,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매우 익숙한 국가였음에도 왜 후대의 역사가들은 다른 민족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만든 동로마를 인정해주지 못하는 것일까요? 인종차별적 편견이 그속에 포함되어있다고 볼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로마를 악의 제국으로 보는 서구인들의 자세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서구인들이 서로마 동로마를 다른 국가로 보는 판단은 인정하시는 것 역시 이중잣대가 아닐까요? Astro님이 그토록 주장하시는 정체성은 서로마 멸망 이전에 이미 기독교 국교화와 함께 멸망한지 오래인 것입니다. 더이상 서로마제국에 미련을 둘 이유가 없어진 것이고 서로마는 그런 연유로 더이상 멸망해도 아쉬울게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결국 기독교 국교화가 물리적인 로마제국의 멸망을 불러일으켰지만 Astro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시던 정체성은 그보다 전에 이미 멸망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로마는 결국 자멸한 셈인데 Astro님이 가지신 로마제국에 대한 애정은 대체 무엇에 대한 애정이며 이러한 로마를 멸망시킨 기독교에 대한 증오는 대체 어떠한 실체에 대한 증오입니까?

Astro : 컴터를 고치느라(메인보드가 맛이 가서) 혹은 대항해시대 온라인에 빠져서 등등.. 여러가지 핑계로 그동안 노스모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글이 늦어진 점 우선 사과드립니다.

기독교 교리가 배타적이라는 것이 왜 억지성인지요. '나 이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라는 것만 봐도 그 배타성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자면야 이 문장이 당연한 거지만 기독교 밖에서 보면 이처럼 독선적인 말은 없습니다. 이건 물론 이슬람교 등 다른 일신교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이슬람교의 경우는 기독교만큼 타 종교에 대한 차별이랄까 하는 점이 심하진 않은 걸로 압니다. 모세가 받았던 십계명의 몇가지는 사람이 살면서 꼭 지켜야 할 도덕적인 계율도 있지만, 다른 몇가지는 그 유일신을 위한 것이죠. 그리고 유대교와, 그 유대교에서 파생된 기독교(신구교 포함)가 타 문명과 충돌하게 된 것은 이런 점에서 대부분 기인합니다. 제게는 '기독교가 배타적이 아니다' 라는 말이 오히려 더 억지성으로 들립니다.

십자군전쟁에 관한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보시고 그런 말씀 하시는 건지요. 십자군의 도화선이 된 사건은 애초 이슬람 땅이었던 성지 예루살렘에서 기독교인 수도사가 타종교(이슬람교)를 모독하는 짓을 함으로써 발생한 겁니다. 그 수도사는 당장 내쫓김 당했죠. 그러고선 자기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유럽으로 허위허위 기어와서는 성지 탈환을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 십자군의 성립이 교황의 정치적 의도와 타 영주들의 영토적 야심등이 결합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1차 십자군에서는 영주들보다 오히려 일반농민들의 참가가 더 많았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기에 8차까지 계속된 십자군들 중에서 이 1차와 나중의 5차만이 성공할 수 있었겠지요.(5차 십자군의 경우는 성공하고도 오히려 유럽에서 욕먹었다죠. 이슬람교인을 한명도 죽이지 않았다고..) 상인의 경제적 이익...은 사실과 다릅니다. 상인이라면 그당시 대표격이 제노바와 베네치아등일텐데요... 그들은 오히려 전쟁을 바라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전쟁 이전에도 무역은 활발했으니까요. 또 전쟁나면 무기니 뭐니해서 상품들이 많이 팔리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니올시다입니다. 십자군의 수송을 담당한 베네치아는 그 수송만으로는 거의 본전치기밖에 못했습니다. 베네치아 인들이 4차 십자군을 이용한 건 사실이지만, 그 4차 십자군이 향한 곳은 중동이 아니라 비잔틴이었죠. 4차 십자군의 주축이었던 프랑스군은 사람과 말의 운송료를 비잔틴의 약탈품으로 갚았구요. 암튼 십자군 전쟁에 관해서는 좀 더 알아보셨으면 좋겟습니다. 님의 생각처럼 영토적 야심과 상인의 경제적 이익, 또는 봉건사회의 중압감으로부터의 해방 등만으로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교과서에선 그렇게 가르치고 있을진 모르겠지만요.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믿지 않는 이웃까지 사랑하라고는 안했을겁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까요. '기독교 교리는 배타적이지 않다' 고 합시다. 하지만 역사속에 나타난 기독교 또는 기독교인의 대부분은 수많은 배타성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건 기독교인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겠지만, 비교인의 입장에선 당연하지 않은 모습들이니까 인정해주셔야 합니다.

'로마 황제에 대한 신격화 거부'가 왜 미신타파가 됩니까? 그거야 말로 기독교적 입장에서의 생각이시죠. 기독교만이 유일한 믿음이요 종교이니까 다른 모든 종교 및 숭배는 미신이다..가 되는 거 아닌지요. 역사를 볼 때 그런 식으로 보시면 안됩니다. 로마 황제의 신격화를 거부하는 행동이 왜 역사적 진보가 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나 진보로 생각하지 퇴보로 생각한다고 볼 수 없다' 라는 말의 누구나는 기독교인'이 아닌지요. 또 잘못 이해하고 계신 점 하나는 로마 황제에 대한 경배를 거부한 사람이 박해를 당한 것이 아닙니다. 신격화된 황제 숭배를 거부한 사람은 로마시민권을 얻을 수 없을 뿐입니다. 그 밖에는 자유였습니다. 물론 그 당시 로마 시민권은 여러가지 이점이 있긴 했지만, 그것을 박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 황제숭배를 거부해서 로마 시민권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지요. 나중에 가서야 그것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간의 구별법이 됐을 뿐이죠. 때문에 황제숭배 거부 ->박해로 이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기독교가 '위험한 사상 또는 종교'가 된 것은 그것이 로마제국의 방위와 연관돼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기독교인들이 행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도 양심적 병역거부는 유죄입니다. ) 로마제국도 처음에는 기독교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니 거부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유대교부터 셈하면 율리우스카이사르 이래 수백년간의 노력입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받아들이질 않았죠. 로마제국은 기독교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후 기독교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혀 다른 나라가 되었죠. 그게 비잔틴 제국이고, 저는 그것을 이전의 로마제국과 다른 나라라고 봅니다.

기독교 외의 다른 신앙을 배척한 것은 로마의 정책이었지만, 어디까지나 기독교 자체의 기질에 뿌리를 둔 정책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유일신교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그렇게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필이면' 기독교였던 거죠. 그로 인해 초기 교회 자체도 많이 변질됐습니다. 그노시스, 콥트교 등은 배척되었고, 이단시됐습니다. 콥트교황은 따로 있지만, 지금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그 교인 빼고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황제가 교황의 자리에 올랐다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교황이라 불린 것은 서로마와 북아프라카(콥트교)의 총대주교였고, 그밖의 교구는 그냥 총대주교였습니다. 그리고 동로마의 황제와 총대주교는 각각 따로 있었습니다.) 또한 '모든 인간의 사상과 종교마저 지배하려 했던' 황제는 기독교 국교화 이후의 황제였지 이전의 황제가 아니라는 점도 기억해 주시길..

'로마 교회의 고착과 파탄이 로마의 악행의 산물일 뿐 기독교 교리에 충실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칼로 사람을 찔렀다고 해서 그 칼이 나쁜 건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 칼이 사람을 죽이는 데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당연히 칼의 탓도 조금은 있겠지요. 사제계급이 생긴 것은 성서가 라틴어였기 때문에 그것을 해석해서 들려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로마 멸망 후 라틴어는 식자층만 쓸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사제계급에는 권위가 따라붙게 되었던 겁니다. 교황은 아예 신의 대리인, 성 베드로의 계승자로 불리며 일반 농민과는 격이 다른 사람이 돼 버렸구요. 그러니 사제계급의 악행과 기독교가 전연 관련이 없을 수 있을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원래 로마엔 사제'계급'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종교의 최고직으로 최고제사장이 있었지만, 이건 그냥 공직이었고, 사제를 대신할 사람들은 성년식 이전의 아이들이 맡거나 혹은 추첨식으로 돌려가며 맡았습니다. 한데 '로마교회'는 왜 굳이 사제계급을 만들어야 했을까요. 그건 의문입니다.)

신교가 구교와 다르다는 건 압니다. 그런데 큰 맥락에선 같다는 것도 압니다. 또한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일에는 신구교가 다르지 않지요. 신교가 무슨 짓을 했냐구요? 아메리카 대륙을 신이 주신 땅으로 여긴 청교도들은 원래 자리잡고 살던 인디언들과, 수백만에 달하던 물소들을 가리지 않고 죽였지요. 기독교 교리와는 상관 없겠지만.. 그것이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일임은 부정하지 마시길.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 동서교회의 분쟁,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신구교의 대립... 모두 기독교의 교리와는 관련 없을겁니다. 그건 인정하지요.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일들이며, 여기에서 많은 비극이 일어났던 것까지 부인하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건 기독교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제가 말하는 '로마제국'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전의 로마제국을 가리킵니다. 이건 동서로마분리 이전의 일이죠.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로마부터 전제화가 시작되긴 했지만, 아직 이 때는 로마제국 전성기 시절의 활력이 남아 있을 시절입니다. 인재도 부족하지 않았고, 팍스 로마나도 지켜질 때였지요. 이런 로마의 정체성이 완전히 상실된 시기를 콘스탄티누스 이후로 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동서 로마와는 상관이 없지요. 자꾸 인종차별적 편견 운운 하시는데 그것과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단지 고대와 중세의 분기점이 될 뿐이고 한두명이 아닌 역사가들이 단지 '인종차별적 편견'에 입각해서 시대나 국가를 나누지는 않습니다.

'왜 로마를 악의 제국으로 보는 서구인의 자세는 인정치 않고, 동서로마의 구분은 받아들이는 것이냐'. 고 하셨는데..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까? 그게 이중잣대에 속하는 것인가요? 서구 역사가들의 모든 관점을 일괄적으로 부정하거나 혹은 일괄적으로 인정하는 게 올바른 자세일까요? 그건 흑백논리입니다. 스스로 생각에 납득할만하면 인정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이중잣대라는 말까지 붙일 수 있는 것인지 오히려 묻고 싶습니다. 그동안의 독서를 통해 서구인들이 고대 로마제국을 악의 상징으로 많이들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고, 하지만 그것이 편견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들이 '악의 상징'으로 여기는 고대 로마를 왜 그렇게 열심히 연구하는가. 신성로마제국도 아니요, 칭기즈 칸의 원 제국도 아니요, 알렉산더의 제국도 아닌 고대 로마. 왜 그들이 그것을 열심히 연구하는 것인가. 그건 단지 고대 로마가 악의 상징때문이어서가 아니라, 그토록 넓은 세계를, 그토록 오랜기간동안 평화를 유지하며 통치한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답은 제가 알기로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 그 한가지였구요. 패자를 자신들과 동화하여 받아들이는 것, 나와 다른 종교, 사상, 피부색,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계층간의 유동성이 커서 노예도 당대에 시민권을 얻고, 그 자식 대에 지배계층으로 편입해들어갈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한 가지가 '관용'이었습니다.

그러면 결국 로마는 자멸한 것인가. 그에 대해서는 전술한 바와 같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중첩된 결과이며, 이중 한가지만이 유독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인플레이션, 이민족의 침입, 세베루스 왕조, 그리고 기독교.

musiki님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유독 기독교에 초점을 맞추시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저는 유독 기독교에만 책임을 전가하는 게 아니라 그런 여러가지 이유 속에 기독교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것은 제 개인이 기독교에 갖는 감정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musiki : 글이 늦어진건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어짜피 우리가 약속하고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 위키인데 님께 답글에 대한 부담을 끼치는건 저도 부담스럽습니다. :)

1. 우선 기독교와 이슬람의 예를 들면서 이슬람의 교리는 배타적이지 않다 말하고 기독교는 배타적이라 말하는 님의 논리 자체가 매우 심한 무지, 편견, 혹은 개인감정을 가지고 계신 것이라고 보여질수밖에 없습니다. 이슬람과 유대교는 근본적으로 하나 입니다. 이슬람과 유대교는 같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아브라함의 큰아들이지만 첩의 아들인 이스마엘의 자손(이슬람)과 아브라함의 작은아들이지만 적자인 이삭의 자손(유대교)에서부터 시작한겁니다. 같은 유일신을 믿고 똑같이 '신은 하나이다' 라는 교리를 가졌음에도 기독교의 뿌리가 되는 유대교쪽은 배타적이라 말하고 김선일씨의 목을 베고 911테러를 일으키고 런던 테러 이스라엘 곳곳에 테러 등을 일으킨 이슬람쪽은 배타적이지 않다고 말하시면 이러한 이중잣대를 제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역시 개인감정이나 편견에 의한 판단일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기독교국가" 미국이 자초했다고 핑계대시겠죠. 클린턴은 과연 기독교도여서 걸프전을 일으켰습니까? 그건 아닐겁니다. -그는 무신론자죠- 미국이 자초했지만 기독교국가가 자초했다는 말은 좀 곤란하게 들리는군요. 기독교가 배타적이면 모든 유일신교는 배타적입니다. 아니, 불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전부 배타적일겁니다. 심지어 다신교인 힌두교도 역시 마찬가지로 이슬람과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지금도 하고 있는데 기독교도만 유난히 배타적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무지나 편견이나 개인감정에 기인함이 분명합니다. 실은 모든 종교가 배타적이 아닌데 종교인들이 배타적으로 이를 수용한 것 뿐입니다.

"애초 이슬람 땅이었던 성지 예루살렘"이라는 말도 님의 편향적인 감정적인 표현입니다. 애초부터 이슬람땅이 아니라 애초부터 유대인의 땅이었고 이슬람이 이를 차지한 것은 로마가 유대인을 전부 몰아낸 이후 얘기입니다. 누가 박힌돌이고 누가 굴러온돌일까요.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을 정벌하기 전 그전에 가나안에 살던 족속은 "결단코 이슬람이 아닙니다." 라고 단언할수 있습니다. "애초 이슬람 땅이었던 성지 예루살렘"이라는 말은 Astro님의 이슬람과 유대교에 대한 감정적 성향이 어느쪽으로 편향되어 있는지를 다분히 보여주는 표현중 하나입니다.

2. 예수는 결단코 예수를 믿지 않는 이웃은 사랑하지 말라 가르친 바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 했습니다. 기독교 교리에 대해서는 사실 전혀 무지하시면서 -뭐 그점은 어쩔수 없는 것이지만- 경험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쉽사리 몰아세우시는 것은 곤란합니다. 역사속에 나타난 기독교 또는 기독교인의 대부분은 수많은 배타성을 보여준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점은 기독교 혹은 기독교인이 아닌 이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성향입니다. 배타성이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비교인들 입장에서 배타성은 당연한 것이지만 기독교인들은 배타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함에도 비교인들과 똑같은 배타성을 가지고 있음이 문제인겁니다. Astro씨가 배타성을 보이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고 비난받을 이유조차 없는 것이지만 기독교도인 musikiAstro씨와 똑같은 배타성을 가진다면 비난받아 쌀것입니다. 게다가 실제로 기독교도들은 그런 역사를 보여왔습니다. 로마가 개국 이래 줄창 해온 점령전쟁의 역사에서 보이는 배타성은 비난의 여지가 없지만, 기독교 국가가 된 로마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자 하는 십자군 전쟁의 배타성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그점은 당연히 비난받아 쌉니다. 그점에 대해서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은, 또한 musiki마저도 기독교 교리 그대로 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비난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습니다.

3. '인간에 대한 신격화 거부'는 당연히 미신타파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적 입장이 아니라 현시대를 살아가는 경험주의적이며 신비주의를 타파하려는 합리주의적 입장입니다. Astro씨가 기독교 이슬람교를 미신으로 생각하는 것 역시 이러한 현시대적 합리주의의 입장인것이지 기독교의 입장이 아닙니다. 상식적인 것조차 기독교의 편견으로 몰아가시는 논리는 매우 위험합니다. 21세기 지금, 기독교도가 아닌 누구나 인간을 신격화하고자 한다면 거부할것입니다. 인간의 신격화가 진보적인것이고 이의 거부가 퇴보의 결과물이라 우기신다면 우리 두사람은 상식의접점이 전혀 없는 것이고 더이상 대화의 여지는 없습니다.

특히 "기독교가 로마사상을 받아들여 교리를 변경해 변형기독교가 되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는 Astro씨의 의견에는 절대 공감해줄수 없습니다. 국가는 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인정해야 합니다. 심지어 그것이 국가사상과 다를지라도 말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정교분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유죄지만 대다수의 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됩니다. 오히려 Astro님의 사상이 유신정권하에서 교육받아 너무 전체주의적인 풍토에 물들어 있지 않은지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결국 기독교는 이러한 로마교회에 의해 변형되어 기독교의 기질이 아니라 왕권과 종교를 동시에 차지한 자들의 기질이 -언제나 그랬듯이- 드러나 타락의 극치를 보여줬습니다. 기독교의 본류를 지켰어야지 변형기독교가 되었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절대 공감할수 없습니다. 특히 종교와 왕권을 동시에 얻어 천상천하유아독존이었던 자들의 교만을 왜 애꿎게 신앞에 겸손하라 했던 기독교 교리에 그 이유를 대는지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한 예로 택하신 사제계급이 생긴 것은 성서가 라틴어였기 때문에 라고 하셧는데 성서는 원래 헬라어입니다. 구약은 히브리어입니다. 라틴어 성서는 나중에 제롬이라는 사람이 번역한겁니다. 라틴어성서밖에 없었던게 아니라 로마가 라틴어를 썼던것이겠죠. 라틴어는 식자층만 쓸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사제계급에는 권위가 따라붙게 되었던 것은 로마교회만의 특성에 의한 성격이지 기독교 교리적 성격이라 자꾸 착각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리스 정교회에는 그런 라틴어 성서를 읽지 않았겠죠? 영국 성공회는 자신들의 성서를 히브리어 성서에서 직접 번역했습니다. 신의 대리인, 성 베드로의 계승자로 예수가 부른게 아니라 로마교회인들이 자기맘대로 주장한겁니다. 개신교측에서는 그러한 주장을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지간하면 서로가 서로를 지상최대의 이단이라 부르겠습니까. 물론 신의 이름을 빌어 야만을 벌이는 행동은 누구나가 계속 해왓던 일이고 이러한 야만에서의 해방이 우리들 하나하나의 목표입니다. 이러한 야만은 기독교의 역사속에서만 있어왔던 것이 아니며 단지 기독교도들이 기술해왔던 기독교 국가들의 역사 -특히 로마->프랑크->독일프랑스 계통의 국가들- 만이 우리에게 강조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세계의 역사에도 눈을돌릴 필요가 있으며 그들도 똑같은 야만의 과정을 통해 지금의 모습에 근접하게 된 것에 불과합니다.

4. 결국 Astro씨가 주장하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전의 로마제국의 멸망은 기독교때문이 아니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독단적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것 때문입니다. 게르만의 침입때문도 아니고 (Astro씨만의 그 로마는 이미 그이전에 멸망해있었으니까) Astro씨가 주장하고 싶었던건 Astro씨만의 로마는 기독교 국교화와 동시에 이미 멸망한 것이고 결국 이유는 단하나 기독교라고 주장하시고 싶은겁니다. 나머지 복합적 의견들은 이를 뒷받침할 일부에 불과했던겁니다. 서구인들이 고대 로마제국을 악의 상징으로 많이들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고, 하지만 그것이 편견이라는 말은 저도 공감합니다. 그러나 로마가 선이고 기독교가 악이라 악이 선을 삼켰다고 생각하는 것은 Astro씨의 정반대되는 또하나의 편견이라는 사실 또한 인정하셔야 할겁니다. 알렉산더의 제국도 아닌 고대 로마. 왜 그들이 그것을 열심히 연구하는 이유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 이라는 결론은 최근에 써진 로마인 이야기 정도의 독특한 세계관에서나 나오는 결론이고 상식이 있는 사람, 혹은 정규과정을 통해 배운 분이라면 모두 서구인들의 기독교 왕국에 대한 로망때문이라는 이유를 알겁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로망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것 또한 사실입니다마는, Astro씨의 관점이 정설과는 상당히 어긋나 있다는 점을 지적해 드리고 싶군요.

정설이라 한다고 해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Astro씨의 의견... 즉, 스스로 생각에 납득할만하면 인정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행동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겠다는 소리와 같은소리입니다. 스스로 생각에가 아니라 절대적 상식에 따라 옳으면 인정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아야지 나 혼자 듣기에 그럴듯하면 받아삼키고 그렇지 않으면 즐~ 해버리는 것은 부정적으로 인식됩니다. 이러한 "절대적 상식"에 대한 제 사고방식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으신다면 한국브라이트넷에서 김우재님께서 쓰신 "상도" 혹은 "상식"에 대한 의견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정답은 두가지 이상이 있을수 있습니다마는, 어떠한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에"보다는 "상식적인, 자연적인 인과관계에 의해" 결론을 내리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결국 로마는 자멸한 것인가. 그에 대해서는 전술한 바와 같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중첩된 결과이며, 이중 한가지만이 유독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인플레이션, 이민족의 침입, 세베루스 왕조, 그리고 기독교....

뭐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멸망한 서로마제국이 Astro씨가 말하는 Astro씨의 로마맞나요? 오히려 이 이전에 멸망해 있었던 것 아닌가요? 과연 역사시대의 언제까지 로마는 관용의 로마였을까요? 콘스탄티누스때부터라 주장하신다면 님의 주장은 오직 기독교가 원인이라 말하고 싶으셨던 것이라고 밖에 볼수가 없습니다. 아마 황제들은 이미 그 이전에 관용을 잃었을겁니다. 줄창 튀어나오는 폭군들은 줄창 Astro씨만의 로마, 그 로마의 정체성을 위협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때까지도 로마는 로마다왔고 콘스탄티누스 이후로만 로마답지 못하게 멸망했다 주장하신다면 결국 오직 기독교가 원인이라 말하고 싶으신겁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생각해보세요. 과연 콘스탄티누스 이전의 로마는 Astro씨의 그 로마였나요? 혹시 이 페이지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기독교 국교화 이전의 고대로마의 멸망" 이런식으로 말이죠. 서로마제국의 멸망원인과 Astro씨의 로마, 즉 고대로마의 멸망원인을 그럭저럭 희석해서 뭔가 논점을 흐리고 싶어하시는 것 아닌가요? 발단과 결론이 너무 달라져 버렸단 말입니다?


오히려 서두가 길었는데... 결론은 이것뿐입니다.

이 페이지는 Astro씨께서 과연 1. 동서로마제국 전체의 멸망을 논하고 싶으셔서 만드신겁니까 2. 서로마제국의 멸망에 한해서 논하고 싶으셔서 만든겁니까 3. "Astro씨의 로마", 즉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전의 고대로마의 멸망에 한해서 논하고 싶으셔서 만든겁니까? 그것이 궁금합니다. 시작이 틀어지면 다 틀어집니다. 이페이지는 아예 지우고 처음부터 논의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세단락으로 나눠서 하던가요.

모럴 해저드

개인적으로는 모럴 해저드를 높게 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럴 해저드의 결정타는 CafeNoir 님 지적대로 카라칼라의 안토니누스 칙령일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이라 보지는 않지만 모럴 해저드에 결정타를 날린건 분명합니다.)

musiki로서는 로마가 멸망한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 그토록 오래 로마가 존속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들의 식민지 정책의 폭압성은 CCMPic:ThePassionOfChrist같은 영화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들의 매형과 채찍형과 십자가형의 잔혹함을 보셨다면 이를 아실 겁니다. 폭압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로마의 도시공동체는 그 땅이 커가면서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도시공동체보다 식민지가 커지는) 결과를 양산했고 폭력적 방법을 통한 정벌은 폭압적 정치로 이어졌습니다. 맹자에서도 아실 수 있듯이 덕이 있으면 땅이 거칠어도 작아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요, 덕이 없으면 사람들이 떠나기 마련입니다. 결국 총칼도 무기도 없이 단순한 열정과 신념으로 가득찬 한 남자, "유대인의 왕"은 결국 죽은 후에도 그들의 정복자, 로마를 무너뜨렸습니다. --musiki
아니, 그럼 예수님이 게르만 종족이었단 말입니까! --Puzzlist
자꾸 기독교가 멸망시켰다고 하길래 해본 소린데 말이죠... ㅡ_- 당연히 Astro님 말씀대로 기독교가 그 이유에 포함되지 않겠습니까. --musiki
"위대한 로마"를 멸망시킨 것은 누구냐는 질문에는 "게르만"이라고 답하면서, "악의 제국"을 멸망시킨 것은 누구냐는 질문에는 "예수"라고 답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모순없이 해결하려면 예수님이 게르만 종족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여쭤 봤습니다. --Puzzlist
"위대한 로마를 기독교가 멸망시켰다" 고 말하고 싶으신 분에게 "악의 제국을 기독교가 멸망시킨 것이다" 라고 답해드리면 어떤 반응 나올까 한번 떠봤습니다. 명백히 악의가 숨겨져 있었군요. 죄송스럽습니다. --musiki

그정도 폭압은 고대국가에선 굉장히 흔하고,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까? -- CafeNoir
현대의 사고방식으로 고대를 제단하면 고대의 국가는 전부 악의 국가가 되어버립니다. 페리클레스시대의 아테네에도 노예제도가 있었고, 여성은 참정권이 없었고, 이방인이 아테네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중국의 궁형, 과형(산체로 무딘 칼로 발가락끝, 손가락끝부터 뼈가 드러날때까지 살을 발라내서 죽이는 형벌)을 현대적인 입장에서 보면 정말 악마같은 행위입니다. -- wizzet

그래서 국가의 흥망이 고대국가에서는 굉장히 흔하고 당연한 일이었던 게죠. 로마가 특이하거나 중요한 점은 그리스 문화의 연장선에서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평등"했다는 겁니다. 저는 로마의 멸망의 징조를 지배계층(로마시민)이 피지배계층(식민지)보다 압도적으로 적어지면서... 로 보고 있지만 시이저같은 황제가 나타난 순간부터 로마의 멸망을 예견한 시각도 있습니다. 이미 기원후 1세기경부터 로마의 멸망을 예언한 저서도 있습니다. --musiki

로마가 소위 '속주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거나, 후에 로마 제국민 전부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로마의 피정복민 정책이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그것처럼 폭압적이었다고 볼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게 사실 로마가 오랫동안 그 덩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고요. 만일 로마 제국의 통치가 그렇게 잔인했다면 켈트나 그리스인 및 소수 게르만은 절대로 로마 제국에 그렇게 오래도록 충성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Zer0

최초엔 그랬습니다마는, 제국이 비대해질수록 공화정은 사라지고 제정이 시작되고 다양성과 관용이 잃어져가며 특정 폭군에 의해 폭압이 강해지고 모랄 해저드가 심각해져간겁니다. 노예의 무한 공급을 위해 전쟁은 계속하고 식민지는 계속 넓혔어야만 했구요. 이러한 폭압의 강도는 중앙정부로부터의 거리의 네제곱에 비례해서 강해진다는 어쩌구 저쩌구의 이론이 있습니다. :) --musiki

선정이 꼭 모랄 해저드를 줄이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까요? 카라칼라가 제국내의 모든 속주민을 시민권자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 내의 모럴 해저드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심각해졌죠. 우리나라나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들이 투표권을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면서 점점 투표율이 떨어지듯, 시민권이 당연한 것이 되면서 모럴 해저드가 급속해졌다는 겁니다. musiki님의 말씀대로라면 이 시점에서 급속히 모든 시민들에게 노예를 공급하기 위해 로마가 전쟁을 계속해야 했겠지만, 실제로 이 시대 이후 로마의 전쟁은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대한 방어전의 양상을 띱니다. 로마가 마지막으로 외부를 향해 힘을 뻗은 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대의 일입니다. 카라칼라의 시민권 확대는 '로마'를 '로마가 아닌 무언가'로 만들었고, 기독교의 전파는 더더욱 원래 로마에서 멀어지게 만들었으며 이 사건들은 모두 로마를 약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기독교만이 로마를 멸망시킨 건 아니지만 기독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사실입니다. (참고로 Passion of Christ를 보진 못했지만, 영화는 영화지 역사가 아닙니다.) -- CafeNoir

물론 타당성 있는 지적입니다. 폭압과 모럴 해저드는 별개로 구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시민권자로 만들었다는 정책이 선정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세수를 증가시켜 기존의 로마시민마저 억압하지 않았던가요? 그는 네로 이상으로 로마사의 최악의 폭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선정이 오히려 모럴 해저드를 증가시키는 경우도 있다는 주장은 타당합니다. 허나 카라칼라의 예와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게다가 시민권이 공짜니 군대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줄어 군사력이 급도로 약화되어버렸지요. 출정이 불가능해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카라칼라의 정책은 "실정"이지 "선정"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습니다.
p.s. CCMPic:ThePassionOfChirst를 역사로 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지적한 고문기구나 형 집행 등은 고증을 거친겁니다. --musiki

영화 한 편 보고 국가 로마가 피지배인에 대해 폭정을 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CCMPic:ThePassionOfChrist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성경은 그 당시에 쓰여진 것이 아닌 예수 사후(부활후?) 30여년이 지난 뒤에 원시 교회인들이 기억을 더듬어 쓴 것으로 압니다. 그것이 얼마나 정확할까요. --Astro
영화의 "예수 사건"을 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형벌"의 잔혹성 만 놓고 말한겁니다. 예수 사후 30여년이든 100여년이든 그때는 로마시대 아닙니까. 로마에 대해서는 그당대의 것을 썼어도 충분히 역사적 사료가 되고 참고가치가 있습니다. --musiki

Astro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 사건' 자체를 로마 지배 탓으로 돌려야 할까요? 로마의 식민통치가 조선에 대한 일본의 통치 정도로 여겨지면 곤란할 듯 합니다. 유대에 부임한 로마 총독은 유대민족 내부의 일에는 그다지 관여하지 않았던 걸로 압니다. 이건 비단 유대뿐 아니라 갈리아 등의 다른 속주에서도 마찬가지였구요. 예수는 로마법이 아니라 유대법에 따라 처형되었던 걸로 압니다만... 물론 십자가형은 로마에선 반란을 일으킨 노예에게나 내리는 중형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바랬던 건 유대의 제사장들입니다.

musiki : 예수 사후 3~60년 이후에나 쓰여진 성경을 역사적으로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다시 한번 답하죠. "로마에 대한 악플은 삭제됩니다." 유대인에게 모두 덮어씌운 것은 로마 가톨릭이 후에 삭제 첨삭 구라쳤을 것이다. 라고 추측됩니다. (최근 로마 가톨릭이 이러한 이유로 유대인을 용서(?)했습니다.) 유대 내부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빌라도 전형적 군인형 총독으로 유대인의 성전을 직접 침범하는 등 유대인의 반발을 일으키는 행동을 여러차례 했고 이로 인해 그의 재임 내에 유대인의 폭동이 두차례나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대지방은 로마가 직접 관리 안하고 헤롯 안티파터라는 사람을 왕으로 두었습니다. 이친구도 엄청난 폭군으로 알려져 있죠. 일제시대때도 일본인 총독보다 한국인 관리가 더 악독했듯이 말입니다. 하여간 중요한 건 "예수 사건" 이 아니라(근본주의 기독교인이 아닌한 로마의 멸망과 이는 큰 연관을 찾기 어렵습니다.) 로마의 군사정치와 식민지 정책이 과연 얼마나 관대할수 있느냐, 폭력이 아닌 "덕에 의한 정치"를 펼칠 수 있었겠느냐 하는 문제인 겁니다.

Astro : 소위 '폭정' 이라 함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거운 세금이 첫째일 겁니다. 로마 제국 내에서 가장 문제가 많았던 곳이 유대속주였다고 추측됩니다. 타 종교를 인정치 않는 유대교도들의 지역이었다는 것이 그 첫째 이유이구요, 그 유대속주가 로마제국으로서는 파르티아 왕국과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이 이런 추측의 두 번째 근거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파르티아와의 안보 상황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바로 반란을 일으켰다지요. 카이사르의 정복 이후 수백년간 반란 없이 조용하여 로마화의 우등생이라고 칭해지는 갈리아지방과는 매우 대비되는 지역입니다. (저는 시오노 나나미의 제국주의적 성향은 매우 경계하는 편입니다만, 로마인이야기에서 그가 주장하는 이런 내용들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비단 유대지역에 국한해서 로마는 폭압적인 지배를 했다.. 고 주장할 순 없는 겁니다. 같은 시기 로마의 다른 지배지역은 어떠했나..도 살피고 비교를 해야 더 정확할테니까요. 더군다나 로마의 제국주의는 옛 일본이나 서방 여러나라들이 펼쳤던 제국주의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겁니다. 소위 '로마화' 로 일컬어지는 사회 간접자본 구축은, 일본이 대한제국에 행했던 철도, 항만 부설과도 차이가 있죠. 일본이 정복지에서의 수탈을 위해 인프라 정비를 했다고 한다면 로마는 정복지를 기존 지배지역과 정치, 경제적으로 통합시키기 위해 인프라스트럭쳐를 구축했다고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직접세율은 그 치세의 대부분의 기간동안 십분의 일을 넘지 않았고, (우리나라의 현 직접세율이 25%를 넘죠 아마..) 때문에 세금때문에 반란이 일어났다는 기록은 군인황제가 난립하는 제정 말기에나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유대에 대한 로마의 폭정이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가혹한 세금은 아닙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그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겼기 때문에... 18세기 프랑스대혁명의 이념을 천 수백년 전에 먼저 깨닫고 들고 일어난 걸까요? 로마의 다른 정복지에서는 잠잠했는데, 유대인들이 유독 똑똑했기 때문에? 당연히 아닙니다. 그들이 로마의 통치를 폭정으로 느꼈던 건 오직 하나. 그들이 믿는 종교와 정면으로 대치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믿는 종교를 인정해 주고, 그들에게 자치를 주었으며, 경쟁자였던 그리스인과 동등한 위치에 서서 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유대왕국이 카이사르 사후 100여년 뒤에는 디아스포라를 겪게 되니까, 카이사르에게 격렬하게 저항했던 갈리아가 카이사르 사후에는 조용히 지배를 받았던 걸 비교해본다면 꽤 아이러니한 일이죠.
유대교는 다들 아시는 것처럼 기독교보다도 훨씬 폐쇄적인 종교입니다. 유대인이 아니면 신앙의 자격조차 없으며 하나이신 야훼 이외에 다른 것은 일절 인정되지 않습니다. 유대는 명목상이나마 그런 유일신의 통치를 받는 제정일치의 국가였습니다. 그런 그들이 로마의 지배에 반발하게 된 건 양 국가간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이었지, 로마쪽이 지나치게 폭압정치를 행했기 때문인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에는 수많은 신전들이 있습니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인 아그리파는 그 수많은 신들 모두에게 바치는 신전, 판테온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현재 로마에 있는 판테온은 그것을 개축한 거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로마에는 그런 수많은 신전과 함께 유대의 신, 야훼에게 바치는 신전도 있었습니다. 그럼 유대에는? 유대인들은 자기네 땅에 오직 하나이신 야훼 이외에 다른 신에게 바치는 신전을 짓는 건 용납할 수가 없죠. 로마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로마에도 야훼의 신전이 있으니, 예루살렘에도 다른 신께 바치는 신전이 하나쯤 있는 것도 좋지 않냐?....유대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로마에 야훼의 신전이 있건 없건 예루살렘에 이교의 신전따위 용납할 수 없다. 그럼 여기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로마인들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유대인들이 로마의 폭정을 실감케 되는 거죠. 헤롯왕이 폭군으로 알려져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속국의 왕은 어쩔 수 없이 정복자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게다가 헤롯은 청년기를 로마에서 생활해서 로마가 얼마나 강력한 나라인 지도 알고 있었다고 하고요. 로마식 사고가 몸에 밴 유대인이 유대왕국을 다스리게 되면 그 또한 유대인들에게는 폭정이 됩니다. 예수 처형 당시 총독이었던 폰티펙스 필라투스(빌라도의 라틴이름이 맞는지.. 자신은 없군요)를 위한 변명을 해 보자면, 그 역시 유대인을 로마식 사고방식으로 대했을 뿐입니다. 유대민족의 일은 유대민족 스스로 처리하도록 놔둔 거죠. 그는 예수가 별다른 잘못을 한 것이 없으니 예수를 풀어주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한 걸로 압니다. 유대인 장로들은 강도인 다른 범죄자를 석방하면서까지 예수를 처형하도록 종용했다죠? 그 시점에서 필라투스가 속주민의 의사에 반하여 예수를 풀어주고 그 강도를 처형했다면 필라투스는 아마 총독 임기가 끝난 후에 로마로 돌아가 속주민으로부터 고발당했을 지도 모릅니다. 로마에선 속주민의 총독 고발도 인정되고 있었으니까요. (필라투스 재임시 유대의 반란은 총독 개인의 통치 스타일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앞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파르티아와의 정세 변화에 따른 봉기였을 겁니다. )

idoun : 웃기는 일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로마에 대하여 부정적이며 로마가 퇴폐정권이라고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로마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죠. 로마의 일부 부정적인 사례들을 매우 부풀려 알려주고는 그것이 사실이라 믿게 합니다. 그 자료들의 출처도 불분명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학술지나 논문이 인용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교회에서 직간접적으로 그렇게 가르친다고밖엔 볼 수 없습니다.

musiki : 개인적으로는 제정의 출현시점부터 그리스-로마 문화는 이미 멸망의 수순을 걸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musiki 개인으로서는 그리스-로마 문화의 핵심은 곧 "공화정"이라 생각합니다. "직접민주주의"지요. 그러나 로마는 결국 제정을 택했습니다. "은하영웅전설" 같은 만화의 경우 제정의 이러한 강점과 한계점을 매우 잘 표현해 줍니다. 강력한 황제의 출현은 로마의 "중흥"은 이끌었을지언정 그리스-로마 문화의 전통 "멸망"을 이끄는 것 또한 필연적 수순이었을 것입니다. 제정은 천재적 황제 한명에 의해 중흥되기도 하지만 결국 황제 개인의 역량에 너무 크게 좌우된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습니다. 다른 영웅이 탄생하면 자리를 물려줘야만 합니다. 그리고 선정을 이끈다 해도 제국은, 제정은 결국 "힘"에 의한 논리입니다. 폭정과 폭압이라 했던 것은 선정을 베풀었다 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폭정과 폭압의 절정은 시이저같은 "영웅"이 이끌던 시대가 아닐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웅의 시대에도, 그 이전에도 폭정과 폭압은 있었던 겁니다. 영웅들은 시민들이, 식민지 사람들이 기뻐하는 정치를 펼치겠지만 자신에 대한 반대는 용납이 안되는겁니다. 이러한 폭력성이 결국 역사속에서는 폭군의 등장과 함께 도드라져 나타나죠. 또한 역사는 승리자의 역사입니다. 역사속의 영웅은 이러한 폭정과 폭압을 펼치고도 승리자라는 이유로 영웅이 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히틀러가 이겼다면 히틀러는 시이저와 같은 평가를 받았을지 모릅니다. 로마가 로마답지 않아졌다는 평가가 지속되는데 저는 로마가 로마답지 않아진 제1 이유로 제정을 꼽습니다. 직접민주주의 -> 직접민주주의의 한계 -> 독재자 -> 로마공화정 -> 공화정의 한계 -> 독재자 -> 새로운 형태의 정권 -> 독재자 -> 또다른 형태 -> 독재자....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 로마 문화의 끝일 뿐 직접적인 로마제국의 멸망의 원인이라고는 생각않습니다. 아래의 Astro님 글에도 나오지만 오히려 로마 자체가 이미 예전부터 모랄해저드와 폭정으로 얼룩져 있었으니까요. 기원전 1세기경부터 로마 멸망의 예언은 득시글했습니다. 로마의 절대 강점이라 했던 다양성의 인정과 기타등등 그리스 로마 문화는 제정과 함께 이미 끝났다고 봅니다.

Astro : 은영전은.. 만화로 보셨나요? 전 책으로 봤습니다만... 제가 얻은 교훈과는 약간 다르군요. 전 은영전을 읽고 민주주의가 절대선은 아니다..라는 걸 느꼈답니다. 혹 musiki님은 직접민주주의가 최고조로 달한 페리클레스시대의 아테네를 가장 바람직한 정치형태로 보시는지요. 그땐 공무원들도 다 투표로 뽑았다죠? 하지만, 그 아테네의 황금기였던 40년은 페리클레스의 독재가 있었기에 가능하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로마 공화정은... 안타깝게도 직접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집정관이나 국가 관리를 뽑는 선거는 1인 1표가 아니라, 100인 1표제. 아시죠? 이건 사표가 너무 많아요. 게다가 표가 평등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재산이 많은 사람은 표도 많이 갖고 있죠. 게다가 소위 로마 시민의 표심이라는 건 이미 기원전 100년. 마리우스때부터 유린당해 왔지요.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으로 군대의 '사병화'가 시작되어서리... 로마 장군들은 이들을 투표에 동원해서 공직에 당선되곤 했다죠.. 선거가 있었다곤 하지만, 후보 자격은 대개 원로원 의원들이었습니다. 선거를 통해 뽑힌 것도 아닌 원로원 의원들이 로마 국정을 쥐고 흔들었잖습니까. 그 원로원이 제기능을 할 때는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도 물리쳤지만, 의사결정도 늦고, 또 공화정 말기에 들어가면서는 기득권의 유지에만 급급해서 통치능력을 상실했다고 하죠. 꽤 효율적이었던 로마 공화정도 한계가 있는겁니다. 민주정만 옳고 제정은 그를까요? 공화정이 제정보다는 나은 정치체제일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 정치체제는 '다를' 뿐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성격이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민주정은 역사의 키를 시민이 쥐고 있다. 주권재민이다. 좋은 길로 나쁜 길로 갈 지는 스스로 결정한다.' 과연 그럴까요? 시민은 언제 어디서나 올바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립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시민 개개인이 내리는 결정은 철저히 자신의 판단에만 의존한걸까요? 군중은 기본적으로 중2 정도의 지식수준과 연령을 가진 것으로 간주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군중을 선동하고, 휘두르는 건 나찌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같은 사람한테는 일도 아닙니다. 시민이 국가의 키를 쥐고 있다고 믿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그런 구멍투성이의 공화정. 그게 로마문화의 핵심이었을까... 앞서 들었던 관용과 다양성의 수용 외에 로마의 강점을 하나 또 들자면 사고의 유연함...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찌보면 이건 앞의 강점들과 통하는 듯도 싶지만... ) 초기 왕정에서 출발해서.. 이게 시대에 안 맞게 되니깐 왕을 쫓아내고 공화정이 시행됐죠? 하지만 모든 권력은 여전히 귀족들의 손에.. 시대가 지나면서 평민의 지위 신장으로 인해 평민출신 집정관도 나오고 했지만, 로마 공화정의 형태가 '과두정' 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제정... 오늘날 우리의 사고방식으로 민주주의가 좋은 거니까 로마 제정은 로마 쇠퇴의 과정이야... 라고 재는 건 위험합니다. 로마인들은 단지 당시 상황에 맞춰서 정치체제를 바꾼 것 뿐입니다. 그 체제 변환이 아우구스투스까지는 성공했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때부터는 계속 패착을 두었을 뿐.... 우리의 사고 방식으로 수천년 전 인간들을 평가한다? 그게 잘못된 평가방식이라는 건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에만 비춰봐도 압니다. 지금에야 이승만도, 박정희도 나쁜 놈이지만, 그 당시엔 어땠나요? 그리고 우리 윗 세대들은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요... 우리 아랫 세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요.... 이건 어떻게 보면 상당히 조악한 예입니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현재의 잣대를 과거에 들이대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나라만의 잣대를 다른 나라에 대고 평가하는 것이 위험하듯이, 현재만을 비춰 과거를 평가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Astro : 그래서 덧붙이자면 한 국가의 멸망 원인에 도덕적 해이...를 덧붙이는 건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로마제국에 국한한다면 모럴 해저드가 멸망의 원인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총기소지가 허용되고, 살인, 강도, 마약, 전쟁.. 어느것에도 빠지지 않는 미국같은 나라도 있잖습니까. 도덕적인 문제에만 국한하자면 로마 공화정시절이 제정시절보다 훨씬 문란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전까진 자유로웠던 이혼도 제정에 들어서면서 아우구스투스가 어렵게 만들었다죠. 형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지를 말에 묶어놓고 달리게 해서 찢어죽인다든가 하는 형벌은 초기 로마때부터 전해오던 형벌이었구요, 군대 내에서 행해지던 10분의 1형 또한 전통적인 형벌입니다. 밤이면 매음굴에서 손님을 받았다던 황후 이야기도 오현제보다 더 전인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절 얘기입니다. 개인적으로 모럴 해저드를 한 국가의 멸망과 연관시키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musiki : 이러한 식의 토론이 위험한 점이, 앞에서는 "로마는 폭정을 했다 볼 수 없다."라는 주장을 하시다가 musiki가 "제정이 폭정을 펼쳤다"라고 하자 이를 반박하기 위해 "제정 이전에는 더했다"라고 말씀하시는 자기 모순에 빠지고 계시다는 겁니다. 지금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자신의 예전 주장에 반대되는 주장을 펼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점은 조금만 다시 살폈으면 좋겠습니다. 뭐 이것은 별 것 아니니 차치하고 넘어가도록 하고, 일단 musiki가 말하는 모럴해저드의 도덕성이라는 점이 말하자면 "절대적 윤리, 도덕, 철학" 이런 측면은 아닙니다. 프라이버시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말하자면 정치논리상 필요한 모럴을 의미합니다. 애국심이나 자국에 대한 자긍심, 시민의식, 공공의식, 국가에 대한 의무와 권리 뭐 이런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과 같은 국가는 모럴적으로 매우 성숙한 국가형태입니다. 내/외부에서 무너트릴래야 무너지기 힘듭니다. 이런 것은 폭정과 폭압, "힘"의 통치논리 하에서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덕"의 통치논리 하에서만 이뤄진다는 것이 musiki의 지론이자 공,맹자선생의 논리입니다.

Astro : 아뇨.. 이전에는 더했다..는 주장이 아니라, 이런 걸 폭정의 예로 들 수는 없다..는 겁니다. 폭정의 구체적인 예는 뭐가 있습니까? 피지배층에 대한 탄압, 일반 서민 계층의 생계난, 세제 혹은 법집행의 불평등 이런 걸 예로 들 수는 있어도 도덕적인 문제를 폭정의 예로 들 수는 없습니다. 덕치주의를 주장하신다면 그것 역시 동양적 관점에서 서양을 바라본 예라고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그 행간에 배어 있는 제국주의적 냄새에도 불구하고 시오노 나나미씨의 저작을 즐겨 읽는 것은 그가 기독교적 세계관, 그리고 윤리적 역사관에서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덕치를 행했던 중국의 요순시절은 그 왕 당대에 끝났습니다. 법치로 일관했던 로마는 그 전후를 제외하더라도 2세기의 100년 내내 황금기를 구가했습니다. 훌륭한 왕의 통치는 물론 칭찬할 만 합니다. 하지만 그 통치의 문제점은 당대에서 끝난다는 겁니다.

게르만

Astro님의 주장 인정합니다. 하지만 역시 게르만이 가장 큰 이유가 되겠죠. -갈라드리엔

님한테 인정받고 싶지 않은데요. 앞뒤 잘라먹고 '게르만이 가장 큰 이유'입니까? 왜 게르만이 로마 멸망의 가장 큰 이유인지요. --Astro

게르만이 로마를 쳐서 무너뜨린 사건 자체

게르만이 로마를 쳐서 무너뜨렸으니 가장 큰 이유죠. 이는 너무도 명백해서 답변의 필요성이 없지 않을까요. --musiki

그건 단순한 정치사에 불과합니다. 그 이전에 로마가 망할 만한 상태가 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이유가 있겠죠. 게르만 장수 오도아케르가 로마를 점령한 것이 로마 멸망의 직접적인 이유는 될 수 있어도 가장 큰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Zer0

물론 그렇다면야 musiki는 모럴 해저드를 제1원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에 대한 견해는 사람마다 너무 달라서 말이죠. 게르만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게르만의 침공도 결정적이고 군사권을 게르만 혼혈들이 많이 이어받은것도 한 이유일 것입니다. --musiki

정설, 교과서적 입장, 정치사의 중요성 문제

첫째, Zer0갈라드리엔님이 말씀하신 게르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마음대로 한정해 버린 것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musiki님의 답변 또한 이미 그러한 취지로 쓰여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게르만을 가장 큰 이유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틀렸다는 Zer0의 입장을 반박하는 데 부적절한 논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musiki님 입장에서는 반박 안하신 건지도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_-;
셋째, musiki님이 모랄 해저드를 로마 멸망의 제1원인으로 생각하신다면 명백한 근거로 다른 견해를 논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musiki님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회의주의를 택하시든지, 아니면 모랄 해저드가 로마 멸망의 다른 요인들보다 어떻게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명백히 하셔야 합니다. 따라서 musiki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게르만이 로마를 쳐서 무너뜨렸으니 가장 큰 이유죠.라고 갈라드리엔님을 변호하실 수는 없습니다. 부탁드리건대 분명히 해주십시오. 이 논쟁은 이 수준에서 정리했으면 좋겠습니다. --Zer0

그러나 수능을 앞둔 고3에게 "로마는 왜 멸망했는가?" 1번 모럴 해저드 2번 기독교 3번 게르만 4번 이슬람 5번 납중독(-_-) 이런 문제 나오면 Zer0님은 몇번을 찍으시겠습니까? ^^; 갈라드리엔님의 발언은 이런 측면에서 보면 너무도 명백한 겁니다. 제가 그런 의견이라는게 아니라 수능세대의 한계점이죠. 그런 측면에서 이해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제 의견은 소수의견에 지나지 않지요. 게르만이 주원인이라는게 "정설"이긴 합니다. 그쪽 측면에서만 보아서는 안된다는 Zer0 님의 의견에 반대의견인건 아닙니다. '정설은 정설이고 정설을 제기한다고 해서 비난받는것은 옳지 않다...' 정도로만 받아주십시오. --musiki

물론 갈라드리엔님이 현재 고3이시고(맞나요?) 교과서에 쓰인 정설을 공부하시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는 것을 Zer0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노스모크는 수능시험지가 아닙니다. 따라서 Zer0는 게르만이 로마 멸망의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일 뿐이며 그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정도로 로마 멸망에 큰 요인을 제공하지 않았음을 지적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능세대라서 이해해줘야 한다는 건 노스모크라는 공간에는 적절치 않은 지적입니다. musiki님이 갈라드리엔님의 입장을 대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너무도 명백해서 답변의 필요성이 없지는 않다는 게 Zer0의 의견입니다. 몇몇 부분에서 제 오해를 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Zer0

갈라드리엔의 주장에 감정적으로 대응한 면이 있었다곤 생각합니다. 하지만, 왜 그랬나...도 한 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갈라드리엔이 아무런 근거 제시 없이 그냥 한 마디 툭 던지고 지나가는 일은 이번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자기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왜 그런가..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적절한 반론인 것이지, 그냥 나는 이렇게 배웠다. 고 앵무새처럼 내뱉고 지나가는 건 누구든 할 수 있는 겁니다. 제가 '게르만이 가장 큰 이유겠죠' 라는 말에 '아닙니다. 기독교의 도래가 가장 큰 이유입니다.' 라고 똑같이 대응한다면 그건 토론이 아니라 대립각을 세우는 일 밖에 되지 않을겁니다.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의도는 아니더라도 이러이러한 근거가 있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고 하는게 제대로 된 토론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고3이라고 용인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요즘 고3은 논술고사는 안 보나요. )--Astro
계속 봅니다. 하지만 안 보는 대학도 엄청 많습니다. --Zer0
Astro님 심정 잘 알죠 ;) 제가 몰라서 그랬겠습니까. 이젠 솥뚜껑만 봐도 놀랄 만 해요. --musiki

추가적으로 정치사 부분에 대해서는 그 동의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정치사 문제는 정설 문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단 교과서에 쓰인 로마의 멸망은 서로마가 476년에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 동로마가 1453년에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 이렇게 쓰여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멸망 그 자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로마 제국이 그 지경으로 가게 된 사회경제사적, 문화사적, 지역사적 이유가 이 부분에서는 더 중요시되는 것이 현대 역사학계의 보편적인 견해이자 방향입니다. '로마 제국의 멸망의 원인'이 단지 그것뿐이라는 의미에서 교과서를 저렇게 썼을까요? 오도아케르나 오스만 제국은 로마 제국의 멸망이라는 특정한 사건의 이름을 붙이는 데 사용된 개념일 뿐, 그 자체로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이상은 WikiPedia:AnnalesSchool이나 WikiPedia:EdwardHallettCarr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취하는 관점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역사관에 정설이 없다는 점도 인지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정치사적 사건이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이 정설이 아니라는 점 또한 충분히 증명되었습니다.
.....어쩌면 무의미한 단락일 수도 있겠군요. -_- --Zer0

게르만 족의 이동

Zer0는 로마가 게르만 족의 이주를 허용하게 된 요인을 두 가지로 알고 있는데 이중 외부적 요인은 훈족의 침공으로 인해 게르만 족의 밀입국이 많아진 현실이고 내부적 요인은 병사의 부족입니다. 병사가 부족해진 데는 콜로나투스 제도가 만연하면서 지주가 신분상으로는 로마 시민인 소작인을 묶어놓고 병역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한 탓도 있고, 제국 확장이 중지되면서 직업 자체의 비전이 크게 줄어든 탓도 있고, 모럴 해저드 탓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로마는 게르만 인을 용병으로 구입한 것입니다. 게르만 족이 군사권을 쥐게 된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도아케르에 대해서도 교과서를 포함한 역사서들은 '용병 대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Zer0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이런 관점에서의 게르만도 가장 큰 이유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게르만 족이 로마 사회에 편입되어 군사권을 쥐게 된 데에는 실제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훈족의 침공이 있었던 시대에도 로마의 군사력이 여전히 강했다면 게르만 족이 로마의 군인으로 편입되지 않았을 것이며, 게르만 족의 이동을 국경선에서 막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Zer0

게르만인을 로마군단에 편입시킨 것은 오히려 군사력 강화에 이바지했다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마는 다른 민족,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매우 익숙한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방위를 다른 민족에게 맡겼다기보다는 전통대로 영토 안으로 들어온 다른 민족들을 끌어안으려 했지만, 이민족에게 로마의 이점이 매력을 잃었기 때문에 그것이 실패한 게 아닐까요. --Astro

카라칼라의 안토니누스 칙령

Astro : 로마는 3세기 이후 결정적으로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고 여겨집니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가 오현제 중 하나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때부터 시작되긴 하지만, 직접적인 계기는 카라칼라의 칙령(제국 내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시민권 부여)라고 생각되거든요. 계층간 이동에 유동성이 컸던 로마 사회가 이 칙령으로 인해 경직된 계급 사회에 들어서게 된 거죠. 노예 수급에도 문제가 있었구요. 시민권이 갖는 이점이 사라지자, 군인이란 직업에 매력이 없어지게 되고 이것이 군사력 약화를 불렀고, 이로 인해 기원전부터 그치지 않던 게르만의 로마 침입은 좀 더 쉬워지게 된 거죠. 로마인이야기에는 게르만인들이 로마인의 전술에 익숙해졌다.. 고 주장하던데 이것도 일리 있는 말일 겁니다. 여기에 더하여 외적 침입에서 기인한 인플레이션. 그리고 거기에서 이어지는 경제위축도 들 수 있겠구요.

벨로린 : 로마제국의멸망과 관계가 없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기독교와기독교인으로 ExtractPage 합니다.

왜 "로마 제국의 멸망"인가
파란꽃은 이곳의 글을 읽다 보니 한가지 색다른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로마 제국의 멸망"인가. 왜 하필 로마 제국의 멸망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왜 "원 제국의 멸망"이나 "고려의 멸망" "잉카제국의 멸망"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서 로마 제국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연구를 하는 것일까요. 지구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져간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로마는 불사의 운명을 보장받기라도 했다는 것입니까? 국가가 망하는 이유를 "파란꽃"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사회구성원이 변하고 사회구조가 변하고 외부적 요인이 변하는데 로마는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어느 사회구조, 통치체제이든지 이런 경향은 있다고 봅니다. 즉 한번 형성된 구조는 그 형성 당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는 최적(?)이었겠지만 그 시점 이후의 변화에 대해서 이미 모순과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이 점은 오늘날의 국가나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파란꽃"은 오히려 로마가 그만큼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경탄합니다. 로마는 부족체계에서 공화정, 제정 등으로 모습을 바꾸면서 어느정도 적응력을 유지했다고도 볼수 있지요. (사족이지만 "파란꽃"은 임진왜란후에 조선이 망하지 않은 것을 무척 아쉬워합니다. 새로운 왕조나 계급이 등장해서 새로운 정치 이념을 도입했다면 근대화에 조금은 더 적응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순신이 충성한 조선 태조의 모범을 따라 새로운 왕조를 창시했더라면.... 어땠을까요 )

로마 제국의 멸망에 대해서 이렇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첫번째로 "로마"는 서양역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 비로소 오늘날 유럽에 해당하는 지역이 역사의 무대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전까지 역사의 주무대는 주로 이집트나 중동, 아시아 지역이었습니다. 로마가 있고 나서 비로소 프랑스니 영국이니 하는 나라들이 성립될 수 있었던것이지요. 그리스 시대의 주무대도 유럽은 아니었습니다.

두번째는 "제국"이었다는 점입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난 후에 다시는 로마처럼 전 유럽을 아우르는 제국이 출현하지 못했고 혼란과 무질서 상태가 불과 몇백년전까지만 해도 계속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몇백년이 아니라 몇십년일수도 있겠군요. 2차 세계대전도 사실은 유럽의 내전으로 간주할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로마제국의 추억'에는 이와는 다른 '질서','권력','힘'에 대한 향수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파란꽃"은 로마에 열광하는 일본인들과 시오노 나나미를 의심합니다.)
더군다나 '로마제국의 추억'은 '현실'이 아니라 '추억'이기 때문에 현재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제국"할 때의 우리의 감정과 "미국제국"할때의 우리의 감정이 다른것 아닐까요.

세번째는 많은 분들이 지적한것처럼 "로마"와 "기독교"와의 특별한 관계입니다.

쓰고보니 "파란꽃"이 "로마제국의 멸망"에 대한 씁쓸한 감정의 이유가 드러나는군요. 이 세가지 이유는 모두 "서양인" "유럽인"의 관점이라는 것입니다. 서양만이 문명이고, 유럽의 역사만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우리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로마제국의 멸망"에 대해서 우리가 "추억"에 젖어서 다른 모든 나라와는 달리 불사할수 있었을것이라고 아쉬워하고 망령을 불러내는 이유는 우리가 서양인의 시각으로 모든 역사를 보기 때문이 아닐까요 (심지어 우리는 우리 자신마저도 서양인의 시각으로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역수입한 '젠'스타일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요. ) 하긴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아놀드 토인비가 20세기 초에 썼듯이 오늘날 살아있는 문명은 어쩌면 서양문명 하나뿐이니까요 -- 파란꽃 2005-10-05

''왜 하필이면 로마인가'''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의문입니다. 그에 답하라면 역사상 그토록 넓은 영역을 가지고 그토록 오랜기간동안 존속하면서 그토록 많은 나라에게 영향을 미쳤던 나라가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인이야기의 저자인 시오노나나미의 답이긴 하지만요.

저 자신만의 답을 말하라면 조금 다르죠. 중국역사, 일본역사는 대충 알았으니까 서양 역사도 한 번 배워보자. (물론 그 전에 국사는 더 열심히 봤었지요) 라는 생각이 들었고, 서양 역사를 배우려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로마제국의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비잔틴도 대충 훑었고, 서양중세쪽도 조금씩 파고 있지요. 그리고 초기 로마와 같은 시기 존재했던 다른 나라들의 역사도 찾아보고 있구요. 다른 나라.. 원, 고려, 잉카등은 남겨진 문화나 자료가 없거나,(원, 잉카) 국사라서 당연히 알고 있기 때문일 테구요..

잉카는 농담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이유라면 역사 속에 명멸해 온 수많은 나라들 중에 로마만은 조금 특별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존속했던 기간만 봐도 그렇습니다. 기원전 8세기 중엽에서 기원후 4세기까지.. 천년이 넘는 세월이죠. 그렇게 오랫동안 존재한 국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뭐, 조선처럼 쓸데없이 명이 길었던 국가도 있지만, -저도 이순신장군이 휘하 장병들을 이끌고 역성혁명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부류입니다. 아니면 정조가 좀 더 오래 살았거나..- 로마는 실속없이 오래 존재했던 나라도 아니었죠. 지금의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 영향을 끼쳤던 나라니까.

그래서 유독 로마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페이지는 제가 열긴 했지만요.

시오노 아주머니의 '로마인이야기'를 요즘 다시 읽고 있습니다. 십수번을 읽으면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더듬어가면서요. 이 아주머니의 책에는 곳곳에 님 말처럼 제국주의, 전체주의에 대한 향수가 묻어납니다. '그냥 조용히 로마통치에 적응하면 니들도 편하고 좋지 않았겠는가' 하는 내용.. 그 '로마' 라는 자리에 '일본'을 넣어서 읽어보곤 합니다. 그랬더니 상당히 위험해지더군요. 아마 이 아주머니를 포함한 일본인들은 아직도 대동아전쟁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래도 역사속의 로마제국이 중요한 것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님 말처럼 세계는 동양중심이 아니라 서양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고, 그 서양을 알려면 서양문명의 원류인 그리스, 로마를 알아야 하니까요. 어느 라면광고처럼 동양문명이나 우리나라 문화도 지금은 1등(주류)이 아니지만, 언젠가는 1등(주류)이 되지 않겠습니까? --Astro

로마인이야기서평에 이미 잘 정리되어 있네요. Astro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파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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