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원제 : 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은 1995년 10월부터 1996년 3월에 걸쳐 방영되어진 만화영화이다. 그러나 기존의 유치한 로봇물들과 다른 심오함을 보이면서 일본의 청소년들은 물론 30, 40대의 기성세대들에게도 큰 붐을 일으키게 된다. 내용이 상당히 철학적이다. 기획·원작·제작은 나디아, 그남자그여자의 사정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GAINAX 이다. TV판에서 감독은 명확한 결말 없이 작품을 끝내려 했으나 광분한 팬들에 의해 결국 EVANGELION DEATH AND REBIRTH, END OF EVANGELION의 두 편의 극장판으로 에바는 종결을 짓는다.
1. 줄거리 ¶
신세기 에반게리온 은 서기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한 SF물이다. '세컨드 임펙트'라 불리는 대재앙으로 인해 이상기온과 경제공황이 발생하고 인류는 그 충격으로 인하여 숫자가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 주인공은 14세의 소년 신지. 신지는 사도로 불리는 정체불명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에반게리온이라는 생체병기에 탑승한다. 신지의 아버지인 겐도오 박사는 인류보완계획이라는 기밀 프로젝트를 추진중인 과학자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청소년들이 초과학적인 병기에 의존하여 인류 생존을 걸고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TV판은 주인공 신지의 시점에서 고뇌하는 개인의 내면과 해체된 가족관계, 불투명 한 인류의 미래를 부각시켰다. 다른 SF물과는 달리 주인공의 캐릭터 가 음습하고 어두운 기운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 TV판에선 에반게리온의 적수인 사도의 정체, 주인공 중 한명인 아스카의 운명, 세컨 드 임펙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보류된채 남겨졌다. 이는 극장판에서 밝혀 지는데...
EVANGELION DEATH AND REBIRTH DEATH 편은 TV판의 내용을 재편집한 것, 그리고 REBIRTH 편은 극장판을 위해 새로 제작. 네르프와 네르프를 배후에서 조종하던 제레가 반목하자 군대가 네르프본부에 투입된다. 신지는 정신적 방황 끝에 전투를 거부하고 신지의 동료들은 제레의 군대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END OF EVANGELION 제레는 네르프에 전략자위대를 투입하여 무차별 살상을 감행한다. 그러나 아스카는 실신상태이고 신지는 카오루를 자기손으로 죽였다는 죄책감에 정신적 실신상태이다. 미사토는 아스카를 3호기 태워 호수 밑으로 숨기고 신지를 초호기로 이끌고 간다. 한편 3호기에 타고 있던 아스카는 에바에게서 모성을 느끼고 자각, 전략 자위대를 처절히 무찌른다. 그때 하늘에서는 9대의 양산형 에바가 모습을 드러내고 아스카는 날개달린 에바를 무참히 박살내기 시작한다. 그 도중 제레가 복제한 롱기누스이 창에 의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고 상처를 회복한 양산형 에바에 의해 무참히 찢겨진다.(에바에 탑승시 에바의 고통은 곧 파일럿의 고통이죠) 이때 신지는 아스카의 비명을 듣게 되고 신지의 간절한 바람을 느낀 초호기는 제레가 투입한 베크 라이트를 해치고 나타난다. 그러나 신지가 도착했을때는 이미 양산형 에바들이 3호기의 시체를 가지고 날아가던중..이를 보고 눈이 뒤집힌 신지의 절규는 초호기의 절규로 이어지고 에바 초호기의 절규는 지오프론트를 검은 폭풍의 공간으로 바꾸는 동시에, 달의 표면에 꽂혀 있던 롱기누스의 창을 돌아오게 한다. 이러한 지오 프론트의 변화와 롱기누스의 창의 귀환은, 제레와 겐도의 서로 다른 보완 계획의 개시를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롱기누스의 창을 다시 손에 넣은 제레는 모든 생명의 평등한 죽음을 의미하는 인류 보완 계획의 의식을 시작한다. (인류 보완 계획이란 결국, 지구상의 모든생명의 죽음, 그리고 모든 영혼의 일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인류 보환 계획은 서드 임팩트란 용어를 감추기 위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즉 제레와 넬프의 목적은 서드 임팩트를 방지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서드 임팩트를 일으키는 것이다.) 롱기누스의 창이 초호기의 양손을 뚫고, 초호기의 포효가 세계를 뒤덮으며 의식이 시작된다. 한편 인류 보안계획을 완성하려는 이까리 겐도는 레이와 함께 아담 이 있는 장소로 가지만, 여기서 레이는 겐도를 거부하며 레이와 아담이 결합을 하게된다. 이로서 인류 보완계획이 완성이된다. 형태를 지니지 않은 인간으로의 보완이...롱기누스의 창에 의해 움직임을 봉쇄당한 에바 초호기와 아홉기의 에바들은 세휘롯의 나무와 형태를 만들어 내고, 결국 에바 초호기는 하늘을 향해 뿌리를 뻗치고 땅으로 가지를 향하는 나무의 모습으로 변한다. 후유츠키는 이 모습을 보고 에바 초호기는 생명의 나무로 환원되었다라고 말한다. 의식은 계속 되어지고 제레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사람은 지혜의 열매를 따서, 지혜(과학)를 손에 넣었다. 그러나 그것은 저주받은 힘이기도 했다. 지혜로 인해 사람은 번영하고, 지혜로 인해 멸망하는 것인가." 제레가 말하는 지혜의 열매와는 다른 생명의 열매를 딴 사람도 있었다. 바로 사도가 그 생명의 열매를 선택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즉 사도란 미래를 걸고 싸우는 인간의 또 하나의 모습이었던 것이고, 사람은 18번째의 사도였던 것이다. 지혜의 열매와 생명의 열매라는 두 가지의 열매를 동시에 소유 하는 것, 그것이 사람을 새로운 단계로 진화시키는 인류 보환 계획의 참모습이었다. 제레는 지혜의 열매와 생명의 열매를 융합시켜서 에바 초호기를 완전한 생명의 나무로 환원 시킨다. 검은 달의 출현, 레이와 에바의 결합, A.T필드, 즉 마음의 벽을 잃은 지구의 모든 사람들은 원시의 바다로 돌아간다. 모든 인간의 혼이 해방되고 빛의 십자가가 지구를 뒤덮는다. 모든 인간들은 자신이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해온 심리적 비밀, 원념을 눈으로 보게 된다. 후유츠키는 남 몰래 마음속으로 사랑하던 여자인 유이를 보게 되고, 발령실의 이부키 마야는 같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애정을 느끼던 리츠코 박사의 모습을 보며, 네르프 본부의 자폭을 지시하는 키를 누른다. 겐도는 유이를 만나게 된다. 겐도에게 있어서 인류 보완 계획이란 유이와의 재회를 위한 계획에 지나지 않았다.
미소녀+메카닉+종말론+저패니메이션 경제주의의 극한(혹은 멈춤의 미학 -.-;)
5. 평 ¶
에반게리온에 대한 다른 생각 하나: 이 영화(물론 재미있다는 것에 대해 유보없이 인정하면서도)를 보면서 자폐아를 위한 글로벌 환타지라는 생각을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영화의 내러티브를 읽을 때 보통 일반적인 인과관계와는 달리 그 관계를 역전시켜 생각하는 것이 때때로 편한데, 예를 들어, "타이타닉이 침몰했기 때문에 잭(디카프리오)이 죽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잭을 죽이기 위해서 타이타닉을 침몰시킨다"는 것이 영화 내러티브의 구조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에반게리온은 자폐아 신지 하나를 치료하기 위해 벌어지는 한 편의 거대한 사이코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아무개
얼마 전에 TV판과 극장판을 함께 보았습니다. 극장판은 TV판 24이후부터 이어집니다. 상당히 다른 줄거리, 그때까지 이어지는 정상적인(?) 내용으로 나가게 됩니다. 극장판을 보시면 다른 평가를 하실 것 같습니다. -- 윤구현
얼마 전에 TV판과 극장판을 함께 보았습니다. 극장판은 TV판 24이후부터 이어집니다. 상당히 다른 줄거리, 그때까지 이어지는 정상적인(?) 내용으로 나가게 됩니다. 극장판을 보시면 다른 평가를 하실 것 같습니다. -- 윤구현
정상트랙과 비정상 트랙. 마치 이승환의 세기말 난리부르스를 보는 듯 싶군요. --musiki
극장판 요약 정말 힘들군요. 요약해 놓은 것을 다시 요약하는 것인데도 저렇게 길다니...그러나 에반게리온의 심오함을 설명하자면 사실 저것도 많이 모자랍니다. -- newtype
에반게리온을 보고 혼동스러웠던 것은 과연 이 영화의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이었는가 였습니다. 에반게리온은 작은 규모의 작품이 아닙니다. TV판도 6개월 정도의 규모이고 여러번에 걸쳐 극장에서 개봉되었습니다. 주제만을 고려한다면 대중적인 작품도 아닙니다.
TV판의 결말은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고 봅니다. 설마 자폐아 신지를 위한 환타지를 위해 그렇게 많은 분량의 영화를 만들 필요는 없었겠지요. 그렇다면 극장판의 결말이 주제를 더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 극장판이라는 것이 그리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제레와 Nerv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어 보입니다. 서드 임팩트를 맞이하는 것. 그러면서도 두 집단은 이상한 갈등이 있습니다. 왜 두 집단이 갈등하는지도 명확치 않습니다.
인류보완계획이라는 것도 자칫하면 파시즘이라는 오해를 사기에도 적합합니다. 세속적인 번민에 시달리는 모든 인간이 하나로 융합하여 지혜로운 하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메시지는 다분히 그렇지 않을까요.
인터넷 속에 있는 에반게리온의 추앙은 대부분 영화의 이미지만를 좇는 것 같습니다. -- 윤구현
TV판의 결말은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고 봅니다. 설마 자폐아 신지를 위한 환타지를 위해 그렇게 많은 분량의 영화를 만들 필요는 없었겠지요. 그렇다면 극장판의 결말이 주제를 더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 극장판이라는 것이 그리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제레와 Nerv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어 보입니다. 서드 임팩트를 맞이하는 것. 그러면서도 두 집단은 이상한 갈등이 있습니다. 왜 두 집단이 갈등하는지도 명확치 않습니다.
인류보완계획이라는 것도 자칫하면 파시즘이라는 오해를 사기에도 적합합니다. 세속적인 번민에 시달리는 모든 인간이 하나로 융합하여 지혜로운 하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메시지는 다분히 그렇지 않을까요.
인터넷 속에 있는 에반게리온의 추앙은 대부분 영화의 이미지만를 좇는 것 같습니다. -- 윤구현
에반게리온이 다루는 문제는 분명 자폐입니다만, 일반적인 자폐와는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좁은 의미의 자폐라고 봅니다. 즉 오타쿠적인 폐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노 히데아키는 그 자신이 광적인 오타쿠이면서, 크리에이터였습니다. 작품 이 곳, 저 곳에 고전작품의 패러디가 등장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죠.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크든 작든 자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오타쿠의 여러 단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사토도, 신지, 아스카, 레이, 겐도... 크든 작든 자폐적인 특징을 하나같이 드러내죠. 그가 표현하려 했던 것은 아마도, 이런 자폐적인 우리만의(오타쿠만의~패러디의~)놀이를 즐기는 과정에서 우리의 자폐성을 이해하고 타파해 보자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에반게리온의 주제는 그 내용 자체가 포괄하고 있는 사상들보다 지극히 마이너적입니다. 오타쿠의 사회적인 입장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죠.
또한 가지 집고 넘어갈 것은, 안노 히데아키 자신은 대중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TV판의 엔딩을 만들고, 안노 히데아키는 감독으로서 무척 만족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인터넷 게시판과 가이낙스 본사에 수많은 테러를 당하게 되죠. 이 일을 격고 만들어진 극장판에는 이런 대중에대한 혐오?가 적나라하게 들어나는 것 같습니다. 극장판을 보시면 실사와 결합되는 장면등이 나오죠.. 그 부분중에 잘 보시면 감독에대한 협박성 메시지들이 짧은 컷으로 끼어들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 자신이 원했던 오타쿠의 사회성 이상의 주제를 강요당한다는 것이 싫었을지도 모릅니다. 크리에이터로서 말이죠. 동시에, 자신의 컨셉인 오타쿠에대한 비판적 관점을 들어내기도 합니다. 심한 협박을 하는 사람은 사실 오타쿠일 가능성이 크거든요 ^^;
마지막으로 엔딩씬.. 인류보완계획이 완료되고, 모두가 죽는다.. 그 것은 그러나 고통과 슬픔이 아닙니다. 인류보완계획.. 그 것은 어쩌면.. 자.살. 입니다. 제레와 겐도가 모두 원하던.., 행복하게 죽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유이를 보고 싶던 겐도. 죽는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레이의 모습은 점차 그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옵니다. 이 것을 저는.. 자살에대한 환상.. 이라기 보단 희망을 나타내는 것이라 봅니다. 물론.. TV판의 엔딩이 진정한 엔딩이라 저는 생각하지만, 두 번째 가능성으로 제시된.. 오타쿠의 최후.. 현실에의 희망과 꿈에의 기대가 뒤섞인.. 그러나.. 그 것이 박수를 받으며.. '난 혼자가 아니야'라고 깨닫지 못하게 된 상황.. 마지막 부분 실사장면의 대사를 기억하시나요? 저도 정확히는 기억못하지만..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우리는 애니메이션에서 찾는다.(코스프레한 채 길에 서있는 장면 보여줌) 그러나, 그 것이 끝나고 난 후에는.. 그 공허함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이부분에서 객석을 찍은 필름을 보여줌..)" 애니메이션과 현실에서 희망은 어디에있는가.. 라는 질문. 그리고 다시 신지와 레이의 대화..가 잘 기억이 않나지만.. 꿈과 현실에 대한 대화를 주고 받죠.. 서드임팩트가 벌어지는 도중에요. 이 것을 통해 감독은 오타쿠의 최후는 모두의 가운데 서는 것과 모두를 죽이는 것(자신을 죽임으로써..)라고 제시한다고 느꼇습니다.
하하!! 조~금 황당한 생각이지만 ^^; 에바는.. 여러번 볼 수록.. 많은 상징에 비해 주제는 작고 명료하다고 느껴지는 애니입니다!! -- 붉은눈의시체
또한 가지 집고 넘어갈 것은, 안노 히데아키 자신은 대중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TV판의 엔딩을 만들고, 안노 히데아키는 감독으로서 무척 만족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인터넷 게시판과 가이낙스 본사에 수많은 테러를 당하게 되죠. 이 일을 격고 만들어진 극장판에는 이런 대중에대한 혐오?가 적나라하게 들어나는 것 같습니다. 극장판을 보시면 실사와 결합되는 장면등이 나오죠.. 그 부분중에 잘 보시면 감독에대한 협박성 메시지들이 짧은 컷으로 끼어들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 자신이 원했던 오타쿠의 사회성 이상의 주제를 강요당한다는 것이 싫었을지도 모릅니다. 크리에이터로서 말이죠. 동시에, 자신의 컨셉인 오타쿠에대한 비판적 관점을 들어내기도 합니다. 심한 협박을 하는 사람은 사실 오타쿠일 가능성이 크거든요 ^^;
마지막으로 엔딩씬.. 인류보완계획이 완료되고, 모두가 죽는다.. 그 것은 그러나 고통과 슬픔이 아닙니다. 인류보완계획.. 그 것은 어쩌면.. 자.살. 입니다. 제레와 겐도가 모두 원하던.., 행복하게 죽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유이를 보고 싶던 겐도. 죽는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레이의 모습은 점차 그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옵니다. 이 것을 저는.. 자살에대한 환상.. 이라기 보단 희망을 나타내는 것이라 봅니다. 물론.. TV판의 엔딩이 진정한 엔딩이라 저는 생각하지만, 두 번째 가능성으로 제시된.. 오타쿠의 최후.. 현실에의 희망과 꿈에의 기대가 뒤섞인.. 그러나.. 그 것이 박수를 받으며.. '난 혼자가 아니야'라고 깨닫지 못하게 된 상황.. 마지막 부분 실사장면의 대사를 기억하시나요? 저도 정확히는 기억못하지만..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우리는 애니메이션에서 찾는다.(코스프레한 채 길에 서있는 장면 보여줌) 그러나, 그 것이 끝나고 난 후에는.. 그 공허함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이부분에서 객석을 찍은 필름을 보여줌..)" 애니메이션과 현실에서 희망은 어디에있는가.. 라는 질문. 그리고 다시 신지와 레이의 대화..가 잘 기억이 않나지만.. 꿈과 현실에 대한 대화를 주고 받죠.. 서드임팩트가 벌어지는 도중에요. 이 것을 통해 감독은 오타쿠의 최후는 모두의 가운데 서는 것과 모두를 죽이는 것(자신을 죽임으로써..)라고 제시한다고 느꼇습니다.
하하!! 조~금 황당한 생각이지만 ^^; 에바는.. 여러번 볼 수록.. 많은 상징에 비해 주제는 작고 명료하다고 느껴지는 애니입니다!! -- 붉은눈의시체
하필이면 이 애니메이션을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본 관계로... 거의 극중 신지의 정신상태로 1-2년을 해메었다죠. -- Kenial
이 애니의 주제는 "오타쿠여, 이제 오타쿠짓 그만하고 세상으로 나가자"라고 하던데요.-.-; 안노 히데아키가 오타쿠질에 진력이 나서 만들었다는....(그러나 그 바로 뒤에 나온 카레카노를 과연..? 이라는 생각이...참으로 특이한 연애 애니라서) --황원정
개인적으론..상당히 상징성 강한 여러 심볼들을 사용해서 뭔가 있을듯하게, 그럴듯하게 만들긴 했으나 그것들을 전부 다 소화하지 못한 느낌이 강하다. 연출부분은 정말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지만..
솔직히 표현하자면 감독이 "난 이럿것들 안다.", " 난 이런 것도 알아", "요런것도 알지" 라고 자랑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것이 참..정말 기발하거나 새로운것이나 창조적인 것이라면..그다지 기분상하지 않을텐데..약간의 신화적 상징체계등등 을 알고있는 사람에게.."그게 뭐?", "그런걸 사용해서 어떤 얘기를 할려는건데?"라는 반응이다. 몇몇은 스토리랑 잘 버무려져서 잘 사용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별로 쓸데없이 사용되진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내용도 이데온의 동어반복이란 느낌이다.(물론 이데온보단 에반게리온이 훨씬더 재밌었지만.)
이런 느낌은 '공각기동대'에서도 느꼈었다. 비주얼적인 상징성은 참 멋진긴 했으나 내용자체가 이미 80년대 SF계에서 지겹도록 얘기되었던 것을 마치 감독이 새로운것인마냥 떡 내세우면서 봐라 나 잘났지? 라는 느낌이 들어서다.
음..내가 세상을 너무 삐딱하게 보는것같군.. -- nyxity
에반게리온이라는 프로젝트는 거창하고 그럴듯하게 보이는, 그것 자체가 목적이입니다. 일본의 이른바 오타쿠 세대들은 60년대의 좌절한 전공투 + 그런 전공투 좌절자들의 초기 작품들을 본 매니아로 이루어집니다. 가이낙스(안노 히데아키)는 후자였죠. 좌절한 운동권이 가장 잘하는 짓은 문화 운동입니다. 90년대 우리나라의 운동권 소설들 처럼요. 일본의 애니메이션도 그런 좌절이 많이 들어가 있었죠. 좌절에 대한 극복으로서 집착하게 된 것이, '거대서사', '거대 담론'이었습니다. 거대 담론에 대한 욕구가 70년대, 80년대 오타쿠 출신 아니메 크리에이터들을 사로잡게 되었고, 건담이라는 괴물 프렌차이즈를 만들어냈죠. 그런 허공에 박치기가 정점에 달한 것이 '오네아미스의 날개'였는데요. 그 작품이 상업적으로 찬란하게 실패해 버리고 맙니다. 전공투 세대 오타쿠들의 꿈이 허공속에 산산이 부서진거죠. 에반게리온에서 거창하지만 알맹이가 비어 보이는 것은 그런 좌절의 증거입니다. 아니메로 세계를 바꾸지 못한다는 냉소라는 거죠. 건담과 똑같이 외양적으로는 '거대 서사'를 추구했지만 그 속은 건담 때의 크리에이터 처럼 전투적이고 진취적인 것과는 반대로 스스로에 대한 자학과 조소가 넘쳐난다는 거죠. 난 이런 것들을 안다라는 것이 아니라 난 이런 것들을 아는 척 하고는 있는데, 사실 이딴것 알 필요도 없는거야. 애들 보는 아니메따위에..라는 거죠. 이런 시각에 장인적인 올드 크리에이터들은 당혹감을 느끼고 반발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안노 히데아키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요. -- dirty3
그리고 가이낙스의 감독으로는 에바를 만든 안노 히데아키보다는 '오네아미스의 날개'를 만든 야마가 히로유키라는 사람이 더 좋다. 에바 보다도 '오네아미스의 날개'를 더 좋아해서인진 몰라도..독선적으로 평하자면, 에반겔리온은 그 이전의 제페니메이션들이 단골로 사용했던 '신비주의(x-file틱한)'로 활용될만한 소재들을 다 끌어모아서 그 중에 가장 x-file틱한 것들을 이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애니메이션을 떠나서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이 산재해 있다. 그 중에서 신의 영역으로 간주되어온 소재들을 잘 포장하면, 독자들은 감히 논리적인 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그 신비한 안개속에 심취해서 허우적대는 것이다.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사탄은 왜 하와를 유혹했는가, 외계인은 존재하는가,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아마게돈은 허구인가 사실인가, 스톤헨지는 외계인이 새운 것인가, 피라미드의 꼭대기 탑은 신이 쌓은 것인가, 버뮤다 삼각지대에는 블랙혹이 있는가 따위 등의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 즉 끊임없이 논쟁하고 있지만, 아무도 그 답을 말할 수 없는 사건들을 미소녀+자폐증+로보트 따위의 매혹적인 재료들과 잘 배합해서 진열대에 올려놓은 것일 뿐이다. 즉, 에반겔리온은 어떤 훌륭한 문학작품 나부랭이라가 아니라, '매혹적이면서도 참신한 아이디어들'을 상품화한 것일 뿐이라고 보면 모든 것이 간명해진다. '로스트 하이웨어'나 '변신' 따위의 작품들을 해석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단지 그걸 좀더 이쁘게 포장해서 작품화한 것일 뿐이다. 독자들은 그 '기발함'에 감탄하고 새로운 시각과 시도를 칭찬하면 그만일 뿐인데, 그 신비한 안개속에서 허우적대며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작가가 재료에 마약재료를 탔기 때문이다. '아키라',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코난', '나디아' 등이 모두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본다. 중요한 점은, fiction은 fiction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작가가 과연 그 fiction의 바탕이 소재를 어디서 훔쳐왔는지를 파악해서 바로 그 nonfiction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합당하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독선(獨善)이었다. -- 안형진(ahj6@hotmail.com)
작품, 문화생산품,인간삶을 대상화시켜 놓은 것들,삶의거울, 우리 삶의 잘되고 잘못된 모습들을 반추해 보고자 하는 것. 흔히 우리가 작품이라고 하는 것들은 다 그런 면들이 있습니다. 에반게리온이라는 애니도 최소한은 그렇게 봐 주어야 할 것이라 봅니다. 어떤 작품을 상품으로 보기 시작하면, 우리가 얻을 것은 단 하나도 없을 겁니다. 이 에반게리온에 대해 '자폐아'라는 키워드가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본 에반게리온은 이 시대에 대한 경종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시대를 함축할 수 있는 용어는 자폐아가 아니라 개인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자폐아의 등장은 개인주의의 대격으로 보았습니다.
이런 뉴스도 있었지요. 시간이 많이 흘러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이런 비슷한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일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이유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주변에는 서른명이 넘는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다지요. 그런데도 그 많은 사람들이 구경만 하고, 그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죽게 내버려 뒀다는. 그리고 일본에서 한국인 한 명이 지하철에서 인명을 구했습니다. 일본 전국에서 그 사람을 심각하게 영웅으로 대접했었죠. 일본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듯이. 또한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일진회니 뭐니 하는 학생폭력의 모태도, 바로 일본에 있었지요. 일본이라는 나라의 그러한 정황들이야말로, 에반게리온과 같이 스스로를 반추해 보고자 하는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한 충분한 동력이었다고 봅니다. 그런 자국의 시대적 배경이 있었으므로, 그 작품의 거슬리는 면이 있더라고, 용납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배경을 가진 일본에서 나왔고, 많은 호응을 얻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논쟁을 합니다. 이러쿵 저러쿵. 이렇쿵 저러쿵 할 수 있는 댓거리를 제공하는 것, 이것이 문화생산물의 최고의 목표지요. 어찌 누군가를 가르치겠습니까. 우리들이 에반게리온을 두고서 많은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면, 그것이 그 작품의 가장 바람직한 성과가 아니겠는지요. 그랬으면 하는 맑은이의 소망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자, 우리나라로 돌아와면, 우리나라에는 학교폭력이라는 어떻게 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회 악이 하나 있습니다. 연일 뉴스에 나오는 학생들에 의한 학교폭력과 왕따문제, 그로 인한 피해학생들의 자살, 그에 대응하는 선생님들의 무반응, 이런 것이 개인주의의 표본이라고 봅니다. 상관마, 니 일이나 잘 하세요. 바로 이거지요. 선생님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폭력학생들로부터의 화살이 무서워 학생폭력을 못본척하며 아슬아슬하게 나날들을 보내는데, 나서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무관심하지도 못하고, 속안에서는 정의심이 들끓고 있는데, 감히 나서지 못하고 우물쭈물 망설이는 우리들의 선생님들, 바로 신지의 모습,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신지는 결국에는 나서게 되고, 나중에야 악에 대응한 자신의 결정과 행동에 박수를 받게 되고, 또한 이것이, 프로그램 안에서 일어난 fiction이었음을 알게 되지만, 그것을 두고 어찌 자폐아 치료필름 정도로만 본단 말입니까.
배울점이 없을까요? 작품의 결말에서, 인류보완계획이라는,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약간 무서운 말이 나오긴 했지만 그것을 또한 파시즘 냄새가 난다고 비판해 버리면 우리가 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지요. 그것은 큰 손해입니다. 파는 사람은 돈을 챙기지만, 저는 무엇을 챙깁니까. "개인주의를 극복하자는 어떤 제안이 꼭 파시즘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요? 개인주의와 파시즘, 이 둘은 극과 극입니다. 인간이 극복해야 하는 양극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가가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이 애니를 보고 나서, 우리 사회에 두 극단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고, 자신이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서 있는지 또한 깨닫고, 융화할 수 있는 중간점이 왼쪽에 있는지 오른쪽에 있는지 깨닫고, 자신의 위치에 맞게 융화의 방향으로 무게 중심을 약간만 옮겨 준다면, ....
이것이 에반게리온을 보고, 맑은이가 얻은 그 무엇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에반게리온에서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작품이 이런 메세지를 발산하고 있다면, 흐뭇한 일이 아니겠는지요.
--맑은 2012.1.1(일) 새해 벽두에.
6. Q&A ¶
질문인데요. 신지는 왜 세컨드 칠드런일까요? 세컨드 차일드가 아니라..? -- magnusyi
일본/한국에는 멋있고 좋아보이는 외국어 표현이라면 무조건 갖다붙이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더군요... 비록 그것이 틀린 표현이라고 해도... -- PuzzletChung
세컨드 칠드런은 아스카인데요. [...] 그리고 칠드런이라는건 '몸은 어른이고 생각은 어린이 수준인 대다수 오타쿠들'(복수임에 유의하시길..)의 의식을 캐릭터에 투영하고자 하는 의도로 사용했다...(카더라통신)라는 내용의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네요. -- Kenial
children 으로 복수인 것은, 각 파일럿들에게 더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양산형 에바에는 카오루 더미가 있죠. -- firefeast
세컨드 칠드런은 아스카인데요. [...] 그리고 칠드런이라는건 '몸은 어른이고 생각은 어린이 수준인 대다수 오타쿠들'(복수임에 유의하시길..)의 의식을 캐릭터에 투영하고자 하는 의도로 사용했다...(카더라통신)라는 내용의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네요. -- Kenial
children 으로 복수인 것은, 각 파일럿들에게 더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양산형 에바에는 카오루 더미가 있죠. -- firefeast
8. 최근소식 ¶
2003년 2월에 홍차중독이 들은 소식인데요. 리뉴얼 버전이 나온다고 합니다. 저는 오프닝만 보았는데요. 아직 DVD로 출시는 안되었고, 몇가지가 고쳐지고 확실한건 2채널 스테레오였던 것이 5.1채널로 된다는 것입니다. (오프닝을 받았으나...5.1채널 시설이 없어서 확인을 못했습니다.) 새로 DVD가 나오면 이미 전집 사신 분들은 슬퍼하실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최근에 들은 정의에 따르면, "매니아라는 건 사고 사고 또 사는 거죠." -- verotas
아악 에바 리뉴얼 버전... 죽음입니다. 설마 했는데 사운드 리마스터링을 이정도까지 다시 하다니.. -- Ken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