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유신론이자이지만 신을 증명해야 할 존재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부분을 믿음의 영역으로 넘깁니다. 이러면 간단하지요. 왜사는가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보통 그 믿음의 영역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려 시도할 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강요로 비쳐지가 십상인 것입니다. --고무신
동의한표. 인간에 의해 증명될 수 있는 신이 있다면 얼마나 우스울지 생각해 봤습니다. 과연, 자신이 믿는 신이 인간들에 의해 증명되면... 과연 그 신은 기쁠까요? 아무래도 아닐 것 같습니다. --아무개
실재하지 않는 그 무엇의 존재를 주장하는데 있어서, "논리적 증명 없이 믿어야 참된 신앙이다"하는것 만큼 간편한 주장이 없는것 같습니다. 인간에 의해 그 존재가 증명이 가능한 신이라면 단순히 그 존재가 증명된 신일 뿐, 그 존엄성이나 의미가 손상될것 같지는 않은데요. 오히려 증명되지 않는, 혹은 부정이 가능한 신이 우습지 않을까요. --괴물눈깔
과연 슈크림 빵이 그 제과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슈크림 빵이 recipe에 비추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
여기에 질문할 성질의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기독교 신자분들은 대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 성경에 있습니다.
한혁희 : 성경은 누구의 의지로 만들어졌습니까?
?????? : 신의 의지입니다.
순환논리의 오류 아닌가요?
musiki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성서에 의하면 인간은 그 제과사의 형상 그대로 만들어져있습니다. 인간은 슈크림빵 따위는 아니지요.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인간이 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 신앙인 중 하나였습니다. 전부 이해하는 것따위는 여전히 불가능하지만 말이죠. --musiki
한혁희 : 신이 있다고 어떻게 증명합니까??????? : 성경에 있습니다.
한혁희 : 성경은 누구의 의지로 만들어졌습니까?
?????? : 신의 의지입니다.
순환논리의 오류 아닌가요?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고들 하지요... 단지 성경이 문자였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보같이 맹목적으로 신을 믿지는 않았을 겁니다. 더불어 신이 우리에게 성경만 주신 채 방관하신다면. 우리에게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으신다면 Christian 들은 자기암시와 노력정당화에 빠진 사기꾼들일겁니다.
그러한 체험이란 기적을 말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무속신앙에 존재하는 신내림도 역시 같은 범주에 놓아도 되겠습니까? 예가 너무 조악하다면 제 스스로가 어떠한 영적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독교에서 신이라고 말하는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떤 경우에 속하는 것입니까? 참고로 제가 아는 어떤 형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능력을 드러내지 않으시는 하느님과 그런 기적으로밖에 자신을 나타내지 못하는 잡귀는 같을 수가 없다" 말을 더 하자면 괜한 소모적 논쟁만 벌어질것 같아 그 형에게 얘기하지 않았던 제 견해를 드러내자면, 기적의 강도, 지속성, 진실성이라는 것 역시 어차피 주관적인 것 아닙니까? 교인이 하면 그것은 성스러운 기적이고 다른 사람이 하면 그저 한갓 사탄의 신들림일 뿐입니까? -- 한혁희
원래 신을 만나는 것은 신비한 일입니다. 무속신앙에 존재하는 신내림도 같은 범주에 놓아도 될 것 같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다른 영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신이 있듯 그에 반대하는 다른 영도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런 영을 만나서 그 존재가 확실하고, 자신이 그것을 믿고자 한다면 믿으면 되겠지요. 믿기 힘들다면 그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신을 믿는 것도 아무에게나 주어진 일은 아니라고 하는군요. 성스러운 기적과 사탄의 신들림은 어떤 영이 역사하느냐의 차이를 이야기 한 것이고, 그 중 어떤 영을 선택하느냐는 개인의 자유의지입니다.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구요. 개인적 체험에 의한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어차피 개인적이고 주관적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렴풋이 신의 존재없이 설명할수 없는 일들도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는 있겠지만, 신이 실재하는 인격이라는 사실은 개인의 체험으로 밖에 알 수 없지 않을까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자세한 것은 신학을 전공하시는 분께 여쭈어 보심이...
종교적 체험이라는 것이 신비주의에 기반한 "기적"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기독교적 기적이던 그외의 기적이던 둘 다 비합리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 유치한 예를 들자면, 왜 그들은 AnswerMe 초능력자에게 몇달러 준다던 던 TV 이벤트에 나오지 않았는가? ) "체험"이란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이 부분을 더 이야기한다면, 좀 더 나아가서 아샬은 기독교의 기적은 다른 것에 비해서 더더욱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병자를 정말로 (의학적으로) 고쳤는가"에 대해서 아샬은 기존에는 "그럴 수도 있다"는 입장을 가졌지만, 지금은 "역사적으로 그러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라고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예수가 의료적 치유를 행했다면 그것은 진정한 치유가 아니라 폭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주제로부터 너무 멀어졌는데 이 부분(기적?)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이 스레드보다는 다른 쪽에서 하도록 하구요. 종교적 체험으로 돌아간다면 정확히는 종교적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체험입니다. 유명한 이야기라면 원효대사의 해골물 사건 같은 게 있겠죠. 단순히 삶의 교훈이라는 깨달음이 아니라 종교적인 깨달음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제가 뭐라고 정확히 설명할 정도의 표현력을 갖추지 못한 관계로^^ 사실, 예수나 석가모니도 이 부분에 있어서 어떤 논리적인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긴 합니다.
종교적 체험이라는 것이 신비주의에 기반한 "기적"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기독교적 기적이던 그외의 기적이던 둘 다 비합리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 유치한 예를 들자면, 왜 그들은 AnswerMe 초능력자에게 몇달러 준다던 던 TV 이벤트에 나오지 않았는가? ) "체험"이란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이 부분을 더 이야기한다면, 좀 더 나아가서 아샬은 기독교의 기적은 다른 것에 비해서 더더욱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병자를 정말로 (의학적으로) 고쳤는가"에 대해서 아샬은 기존에는 "그럴 수도 있다"는 입장을 가졌지만, 지금은 "역사적으로 그러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라고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예수가 의료적 치유를 행했다면 그것은 진정한 치유가 아니라 폭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주제로부터 너무 멀어졌는데 이 부분(기적?)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이 스레드보다는 다른 쪽에서 하도록 하구요. 종교적 체험으로 돌아간다면 정확히는 종교적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체험입니다. 유명한 이야기라면 원효대사의 해골물 사건 같은 게 있겠죠. 단순히 삶의 교훈이라는 깨달음이 아니라 종교적인 깨달음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제가 뭐라고 정확히 설명할 정도의 표현력을 갖추지 못한 관계로^^ 사실, 예수나 석가모니도 이 부분에 있어서 어떤 논리적인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긴 합니다.
TV 에서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기적을 본 사람들만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이 땅에 Christian 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겁니다. 그들이 말하는 기적이란 인간이 신을 만나고, 신과 교제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체험, 그리고 감격입니다.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 꿈꾸는자
저는 제가 슈크림빵에 불과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실은 제과사의 일부이고 전부입니다. 제가 기독교(초기 영지주의는 제외)를 싫어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슈크림빵이나 질그릇에 불과하다고 믿으며 자기를 신의 복속물로 전락시키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인간'이나 '삶'이나 '세상'은 없고 오직 '신'만이 있습니다.
종교는 약한 인간들이 기댈 곳을 만들어낸 환상입니다. 인간들이 스스로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되면 종교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런 날은 오지 않겠지만요. 스스로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있는 사람들에게는 '종교'는 없고 '철학'만 남게됩니다.
-- Starpac
종교의 주어는 '신'이지만 철학의 주어는 '인간'이지요. -- Starpac
종교의 대상이 신이요 종교를 하는 주체(주어)는 사람이겠지요. 철학의 대상은 인간의 이성이고 철학을 하는 주체도 역시 인간이고요. 철학이나 종교나 모두 인간이 하는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신학은 인간학이다라고 주장되어 지기도 합니다. --아무개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일반적으로 무신론자의 의문은 다름과 같습니다.
- 신은 존재하는가? (완전부정)
- 신은 특정 종교의 신만이 존재하는가? (부분부정, 부분긍정)
- 경험하면(믿어보면) 안다
- 다른 종교의 신은 없다.
- 책 말고 제대로 된 고고학적, 물리적 증거를 보여주시오.
- 당신이 당신 종교의 "신"인가? 어떻게 그것을 알고 주장하는가?
'무신론자'니 '의신론자'니 하는 구분도 있겠지만, 우선 '무신론자/유신론자'와 '종교가 있는/없는 사람' 의 개념을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예는 유신론자가 종교를 갖고 있으면서 그 종교가 배타적일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소위 말하는 '기독교적 유신론자'의 경우지요.
'그래, 신은 있겠지 아마' 정도의 생각을 갖고서 종교를 갖지 않는 사람들은 무척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위의 예에서 보이는 유신론자와 같은 식의 대답은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보통 '무신론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중에도 사실은 그저 '종교가 없는'것 뿐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을 부정해서 '무신론자'가 아니라, 신이 있는지 없는지 자체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어느정도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무신론자가 반드시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가령 신을 부정하는 라엘리안 무브먼트는, 그들 스스로는 종교성을 부정하지만 실제로 종교적인 색채가 짙다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위의 예는 우리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독교적 유신론자와 의신론자-혹은 해당 종교를 믿지 않는 '이교도'-간의 대화에 대한 예로는 그럴듯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ChatMate
'그래, 신은 있겠지 아마' 정도의 생각을 갖고서 종교를 갖지 않는 사람들은 무척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위의 예에서 보이는 유신론자와 같은 식의 대답은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보통 '무신론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중에도 사실은 그저 '종교가 없는'것 뿐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을 부정해서 '무신론자'가 아니라, 신이 있는지 없는지 자체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어느정도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무신론자가 반드시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가령 신을 부정하는 라엘리안 무브먼트는, 그들 스스로는 종교성을 부정하지만 실제로 종교적인 색채가 짙다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위의 예는 우리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독교적 유신론자와 의신론자-혹은 해당 종교를 믿지 않는 '이교도'-간의 대화에 대한 예로는 그럴듯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ChatMate
예 맞는 말씀입니다. 중간에 낀 사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대화이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발생 빈도수가 많은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대화죠 --안지성
특히 다른 종교의 신은 없다 는건 전형적인 한국 기독교인이 주장하는 말이로군요. 크리스트교 계열이 원래 어느정도 배타적이지만, 한국의 기독교는 그런면이 더 강해보입니다. --ChatMate
특히 다른 종교의 신은 없다 는건 전형적인 한국 기독교인이 주장하는 말이로군요. 크리스트교 계열이 원래 어느정도 배타적이지만, 한국의 기독교는 그런면이 더 강해보입니다. --ChatMate
별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유일신관이란 말의 의미 자체가 다른 종교의 신은 없다라는 뜻입니다. 유일신관의 종교는 크리스트교 계열만 있지 않습니다. 가까운 예로 이슬람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분명 한국인이 배타적입니다. 그러니 한국 기독교도 배타적이라는 --musiki
별로 그렇지는 않습니다라는 말은 이 경우에는 적절치 못해 보입니다. 무엇이 별로 그렇지 않은가요? 한국 기독교인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면 크리스트교 계열이 원래 배타적이라는 것이? (ChatMate가 말하는 '크리스트교 계열'은 이슬람을 포함한 개념이었습니다. Christ가 곧 예수인 만큼, 제외된다면 오히려 예수를 전면부정하는 유대교가 빠져야겠지요.) 혹시 그 윗글에 대한 말씀이라면 '유신론자'에 꼭 유일신교의 신자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윗글에 '해당 종교의 배타성'에 관해 미리 언급했는데요. 한국인이 배타적이기 때문에 한국 기독교가 배타적이라는 말은, 같은 논리를 불교 등 다른 종교에까지 적용시킬 수 있을때 비로소 성립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종교가 배타성을 갖는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유일신을 주장하는 종교 자체의 기본적인 성격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런지요. 안지성 씨가 예로 든 대화는 분명 위의 유신론과무신론의대화가 기독교신자와 무신론자간의 대화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처음 꺼냈던 이야기는 그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유신론자'의 자리에 기독교 대신 불교나 다른 종교를 대입하면 위의 대화 내용은 더이상 적절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ChatMate
ChatMate님의 말씀 인정합니다. 이슬람도 크리스트교계열이죠. 또한 별로 그렇지는 않다는 표현은 크리스트교가 유독 배타적인 것은 아니라는 표현이였으므나 문맥상 부적절할수도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어찌되었건 ChatMate님 말씀대로 크리스트교 계열이 아닌 유대교도 배타적이다... 라는 반례를 들 수 있어지는군요. 크리스트교계열이 유독 배타적이라는 말씀은 예수가 배타적인 진리를 가르친다는 식으로 호도될 위험이 있습니다. 오히려 유대교의 배타성을 배제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크리스트교적 가르침입니다마는... 최소한 한국인이 운영하면 불교도 배타적임을 인정하셔야 할 겁니다. 심지어 같은 종파 스님들끼리 무공을 겨루던 조계종 사태도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최소한 불교가 배타적이라서 한국 불교가 배타적인 것은 아닐 겁니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불교의 근본은 배타적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배타성을 갖는 -그 반대로 불신자들이 크리스트교인들에게 배타성을 가지는 것 역시- 가장 큰 원인은 한국인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기심에서 그 원인을 찾고 싶습니다. 시기심은 나의 힘 --musiki
musiki가 큰일날 소리를 했습니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먼저 "최소한 불교가 배타적이라서 한국 불교가 배타적인 것은 아닐 겁니다." 라는 저의 표현을 다시한번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설명해야 할 정도니까요. 소극적 배타와 적극적 배타 정도로 나누어 설명하기로 하지요. 불교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소승불교는 근본적으로 자기수행위주라 개인주의적이고 인간관계의 연을 끊는 것이 목표중 하나이기 때문에 관계중심적이지 않고 이타적이지 않은 소극적 배타주의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는 이러한 이유로 인해 비난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적극적 배타에 비해 절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불교는 대승불교이므로 이와는 다소 다릅니다.- 적극적 배타는 전체주의에 의한 배타입니다. 남이 나와 다른것을 참지 못하고 열심히 참견하죠. 한국인의 배타성은 이러한 적극적 배타 이기 때문에 폐해가 표면적으로 심각합니다. --musiki잠깐요. 나중에 말씀하시겠다고 하지 마시고 지금 말해 주십시오. 물론 예수가 배타적인 진리를 가르쳤을 리가 없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불교의 근본"이 배타적이라고 말씀하시는 musiki 씨는 부처가 생전에 배타적인 진리를 가르쳤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무슨 근거이신가요. --PuzzletChung
알겠습니다. 오해가 없어졌어요. 그런데 musiki 씨가 말씀하시는 대승불교의 "적극적 배타주의"는 기독교의 전도의 맥락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전자는 교리에 따른 것에, 후자는 신의 뜻에 따른 것에 가깝겠죠. 뭐든지 도를 지나치면 큰일이 나지만, 시작은 순수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PuzzletChung
아악.또다른 오해를 낳았군요. 이점은 문맥상 "-" 로 묶은 표기가 표준 표기법상 괄호표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인데 문맥안에 넣어서 해석하신 듯 싶습니다. 대승불교의 적극적 배타주의가 아니라 한국인의 적극적 배타주의인겁니다. 크리스트교가 그렇듯 대승불교 자체도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타종교인을 전도한다는 것 역시 근원은 "너의 종교를 믿지 말고 내 종교 믿으라"는 게 아니라 이교도도 우리 신앙으로 흡수하고 포용해주겠다는 것 아닙니까. 이걸 어찌 배타적이라고 하겠습니까. musiki 역시 대승이 소승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의 대승적 차원이 참견이 되고 배타성이 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musiki
전능한 신이 존재하는가? 모의채팅모드 ¶
괴물눈깔 : 불가지론자 괴물눈깔은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모두에게서 그들의 믿음을 증명할 증거를 요구합니다. 허나 기독교신앙이라는 특정 종교에 대해서는 무신론자의 입장을 견지합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하고 절대선인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에 악이 존재 할 수 없으리라는 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musiki : 는 괴물눈깔님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전지전능하고 절대선인 신이 필요로 한다면 그의 손으로 그의 필요에 의해 악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자유이고 설득력도 있는 논리지만 모든이의 공감을 요구하기에는 매우 빈약한 논리입니다.
괴물눈깔 : 어떤 이유에서건 악의 존재를 용납하는, 혹은 더 나아가 악을 활용하는 신이라면 절대선이라고 보기는 힘들지요. 전지전능하다면 악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고도 원하던 결과를 얻을 수 있을테니까요. 절대선임에도 불구하고 악의 존재를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면 전지전능하지 못하다는 의미겠지요.
musiki : 이러한 문제는 신이 이 세계 자체를 만들지 않으면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신은 자신의 종인 천사들이 아니라 인격적인 친구를 원했습니다. 전지전능했음에도 왜 이렇게 했는가? 완벽하면서 왜 불완전하게 만들었는가? 이것이 종교의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면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합리에 의해 이 세계도 태어났고, 악도 태어났습니다. musiki나 기타 종교인들은 이것이 불합리적이라 해서 신을 믿지 않기보다 이러한 신의 비합리적이고 인간적인 감정을 사랑합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완벽하기만 한 신따위 musiki 에게 있어서는 즐입니다. 무엇보다 그는 인간을 사랑하기에 어처구니없게도 이땅에까지 내려왔습니다. 매우 불합리하죠. 또한가지 불합리한 예를 들어보지요. 신은 전능함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신이 스스로의 능력을 한정지어버렸습니다. 신이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자신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지요. 약속을 안했으면 이러한 딜레마는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왜 신은 인간과 약속따위를 했을까요? 신은 인간을 위해 자신 스스로에게 올가미를 주었고 선과 악의 선택권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는 매우매우 불합리합니다. 깊은 사랑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요.
괴물눈깔 : 전지전능, 절대선이며 동시에 악을 허용하는 존재 불가능한 존재를 믿거나 믿지 않거나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 하는 말은 이 논의에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절대강자가 절대약자에게 사랑을 보인다는 개념에 대한 신앙인들의 호불호는 성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존재가능성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며 절대선인 신이라면, musiki님의 말씀대로, 이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클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이 존재함은 이 세상이 그런 신에 의해 창조되었을 가능성이 낮음을 보여주는게 됩니다. 그러나 그 역시 지금의 이 논쟁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 신의 행동의 불합리성이 아니라 그 존재의 불가능함을 말하는것이기 때문입니다.
musiki : 존재 불가능 여부는 님이 결정할 수 있을 가능성보다는 신이 결정할 확률이 높겠죠 농담입니다. 가능성으로 따지자면 저절로 창조되었을 가능성도 매우 낮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두가지 논리로 모두 설명할 수 있음을 열어둘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과학과 종교의 두가지 잣대로 움직입니다. 한가지 잣대로 치우침은 이미 스스로의 균형을 상실하게 됩니다. 모든 행동과 도덕과 인과율을 100% 실용성과 합리성으로만 판단하게 된다면? 신의 존재마저도 합리적이지 못하다면 치워버린다면, 혹은 실용성으로 볼때 이미 폐해가 이득을 초과했으므로 없애버리자 한다면? 이미 감정의 기능 역시 합리적이지 못하므로 사랑이라는 것은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 전기적 신호에 불과한 것이다 라며 인간의 감정마저 무시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이퀼리브리엄이 생각나는군요- 사랑에 대한 호불호는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은 감정을 탈출할 수 없고, 괴물눈깔님께서 벌써 탈출하는데 성공하셨다면 이미 괴물눈깔님과 musiki간의 연결고리는 끊어진 것으로서 괴물눈깔님은 이미 종교를 충분히 합리적으로 거부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감정을 떠나고 인간을배제한논리 에 도달한 사람은 더이상 종교와의 연은 없습니다. 종교는 인간만이 믿는 것이니까요. 인간을 배제한 사랑은 없으니까 말입니다. 인간을배제한논리가 노스모크의 베이스라면 더이상 노스모크에서 종교에 대한 논의는 없었으면 합니다.
괴물눈깔 : 인간을배제한논리라는 표현 자체가 뭔가 감정적인 호소를 담고 있는듯 하군요. 읽어보고 다시 읽어보고 다시 읽어보고나니, 이건 "좋은게 좋은거 아니냐" 식의 논리로 이야기 하자는 말인데, 말이 안되는걸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웃고 넘어가기 시작하면 진실을 향한 발걸음은 거기서 멈추게 됩니다. 진화론적인 생명탄생설을 신봉하지는 않지만(사실 불가지론자의 입장에서 "믿는다"는 동사는 사용하기가 매우 껄끄럽습니다.), 논리적으로 존재가 불가능한 성서의 신과 단순히 가능성이 낮은(그러나 없지는 않은) 진화론을 놓고 선택하라면, 그 선택은 누구에게나 명확해야 정상입니다. 물론 좋은게 좋은거고 기독교인은 논리적으로 허술한 주장을 해도 괜찮다 하고 넘어가자면 할말이 없습니다만, 인간(관계)을 고려하는 논리는 결국 그 효율과 가치가 현저히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태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통해 문명은 발전합니다.
musiki : 말이 안되고 되고의 차이는 개인차라고 볼 수 있다고 할때 괴물눈깔님처럼 말도 안된다는 인식을 할수도 있을 것이고 musiki처럼 신이 인격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라는 인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님의 논리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진리가 아니라는 의식을 꼬집은 것입니다. 진리냐 아니냐는 괴물눈깔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님의 이해력과 이해심이 부족한 것을 무조건 내가 이해할 수 없으면 진리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신의 정의는 괴물눈깔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니며 신 스스로가 자기의 모습을 정하는 것입니다. 님께서 정의한 스타일의 신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해서 그 가능성이 희박하느니 있을수 없다느니 하는 논의는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 없습니다. musiki는 분명히 괴물눈깔님의 인식과 다른 형태의 신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고 괴물눈깔 님의 "절대선이며 차갑고 공의롭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신"이 아닌 musiki의 "감정적인 신"은 불합리해 보이는 일을 벌일 수도 있다는 설명을 충분히 드렸습니다.
괴물눈깔 : 기독교 성서에서 묘사하는 신 외에 다른 종류의 신이라면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신은 존재 할 수가 없습니다. 말이 되고 안되고는 개인차라고 볼 수가 없는것 아니겠습니까. 누군가가 2+2=5라고 주장하는것도 존중해달라는건가요. 제 논리로 이해 할 수 없는게 아니라, 성서에 나오는 논리대로 했을때 그런 신은 존재 할 수 없다는겁니다. 다시 말해, 전지전능하지만 절대선이 아닌 신이라면, 존재 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혹은 절대선이지만 전지전능하지 못하거나요. 그 신의 감정 유무에 대해서는 이야기 해본적도 없습니다만, 사실 합리성이 아닌 존재의 불가능을 따지는 자리에서 그건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다시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제가 논증으로 부정하는 신의 범위를 분명히 정하고 시작했습니다. 자꾸 thread에 더하기 전에 지금 musiki님과 제가 다루고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 파악을 해주세요.
musiki : 분명 말했습니다. 괴물눈깔님이 마음대로 한정하고 결정한 의미대로라면 기독교의 신은 결코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분명 앞에서 말했지만 신은 스스로의 능력을 한정했으므로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또한 절대선의 의미도 괴물눈깔님 맘대로 한정하고 결정한 절대선의 개념이라면 기독교의 신은 결코 절대선이 아닙니다. 신은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이 절대선이었을 뿐이지 사람들이 선하다 합의하고 동의하고 동감한 절대선대로 행하지 않았으므로 절대선이 아닙니다. 이제 모든 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확실히 단정하건대 괴물눈깔님은 성서에 나오는 논리를 자꾸 언급하시는데 musiki의 판단으로는 제대로 파악하고 계신것이 아닙니다. 성서에 나오는 논리가 아니라 교회 다니는 뚜쟁이들의 논리겠죠.
괴물눈깔 : 기독교의 하나님이 알 수 없는 것도 많고 할 수 없는 것도 많으며, 선만을 행하지 않고 악을 행하기도 한다, 라고 musiki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약간은 덜 모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musiki님께서 정의하시는 그런 신은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고 인정하겠습니다. 적어도 위에 쓰신 내용 전까지는 분명히 기독교의 신이 전지전능하고 절대선인 존재라고 정의된다는 제 가정에 동의하시는 것으로 보였습니다만.
musiki : 괴물눈깔님의 이해하신 대로입니다. 하나님이 할수 없는 것과 안하는 것의 차이 와 님이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보는 악의 차이 만 이해하신다면 이젠 제대로 이해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갈라드리엔 :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도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에서는 '땅에서 열리면 하늘에서도 열리고, 땅에서 닫히면 하늘에서도 닫힌다'라고 분명히 명시되어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니다.
오류겐 : 네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분명히 권능은 되시나 우리들 때문에 못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말합니다.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마태복음 13:29) 그렇습니다. 하나님게서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사 우리(곡식에 비유함)마져 뽑힐까봐 악을 바라보고 있을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에 한번 더 경의를 표합니다. 아멘.
하늘선물 : 일단 문제에 대답은 그럴수도 있다 혹은 그럴수도 없다라고 하늘선물은 생각합니다. 신의 개념을 어디에 맞추냐에 따라 서로의 견해가 달라지는 거겠죠. 일단 기독교적인 입장에 맞추어본다면 신은 전지전능하지 못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전지전능한 신께서 아담과 이브과 선악과를 먹을줄 몰랐다는것 조차 이해가 안되며, 매일 힘들게 있는 이스라엘 국민들을 모세에게 떠넘기거나, 전지전능한 신께서는 자신의 아들 예수(굳이 신이라고 반문하신다면 할말 없습니다.)를 보내고 죽게한다음 다시 부활해도 여전히 사람들은 악을 행하고 있는것을 지켜보고있다는점.....분명히 전지전능하다면 충분히 알고 있을텐데...이런식의 논리라면 신은 전지전능하지 못하다는 결론이 나올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전지전능에 의미부터 다시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의문점이 드네여..
dirty3 : 행하니까 선하도다! musiki님 같이 dirty3가 만나본 기독교인들은 굉장히 결과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과정을 보지 않죠. 왜냐하면 신이 하는 일과 안하는 일 사이에는 절대적으로 선만이 존재하니까요. 하늘선물님. 신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을줄 알았다니깐요. 하지만 제지를 안한 것일 뿐이죠. 선악과가 있다고 넌지시 귀뜸해두고 에덴동산 덤불에 숨어서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따먹기만을 기다렸던 겁니다. 신은 침을 삼키며 이제나 저제나 '쟤들이 언제 사과를 따먹을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 신은 아담과 이브가 사과 따먹고 난 뒤에 했던 불완전하고 부끄러운 일을 보는 것을 두근거리며 기대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옳으니까요. 인격적인 신이니까 이 정도는 설명 가능하죠. 이스라엘 국민들을 모세에 떠넘기고, 멀쩡한 아들 죽였다가 살리는 것도 인격으로 모두 설명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인터넷 정키들이 컴퓨터 앞에서 바지 내리는 이유 역시 설명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신을 본따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신은 이 세계를 마스터베이션을 위해 만들어내신 거죠. 인격적인 기독교의 신은 충분히 사귀어볼만한 친구같은 신입니다. 우리 친구 하나님 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어 ... 악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 그런데 누구 그 친구 핸드폰 받아 본 적 있어요?
하늘선물 : 음...dirty3님의 글 잘 보았습니다. 그러한 논리로도 설명할수 있는 점을 배웠네여..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런 논리라면 신이라고 볼수 없다고 봅니다. 기독교의 신은 전지전능하지만...인격적으로 안하는것 뿐이다? 라는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어렵네여. 저의 짧은 지식으로는 구약성서에서의 하나님은 자비롭지 못했습니다. 자기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인간을 죽였답니다. (그럴때 보면 엄청나게 전지전능함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신약의 예수님을 보내셨져 (본인 자신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엄청난 자비를 배풀었고 인간의 몸으로 와서 죽었습니다. 다시 부활함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줄려고 했지만...결국 실패(하늘선물의 견해입니다.) 했다고 보여지져..그것이 과연 신일까여? 인격이 들어간다면 과연 신으로 볼 여지가 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musiki : 성공 실패 여부는 100년도 못사는 사람이 판단할 문제는 아닙니다. 같은 행동을 보고 그사람의 의도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단지 성경에 이렇게 쓰여있기 때문에 좋은 의도구나... 하고 판단할 뿐입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당연히 객관성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dirty3님처럼 dirty하게(?) 해석하신다면 신은 변태가 되겠죠. 물론 그점은 dirty3님의 논리전개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 성서를 읽으면 musiki가 봐도 신은 변태가 됩니다. 그렇지만 정작 신이 인류를 사랑하는가 아닌가? 신의 의도는 신만 압니다. dirty3님께서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신은 변태거나 인간을 사랑하는 이거나 둘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musiki가 결과론자인 이유는 기독교인이어서가 아니라 DiSC/CType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은 시간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하늘선물님이나 dirty3님의 사고는 시간에 얽매여있기 때문에 그정도까지의 고찰에서 stop인 것이죠. 일반상대론을 조금만 접목시킨다면 신이 시간에 국한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신은 이미 우주 탄생에서 멸망의 시간까지 다 완성시킨것이니까요. 만들어놓고 어떻게 되나 구경해야 하는 신이라면 시간에 얽매인 신이기 때문에 그렇겠습니다마는 신이 인간처럼 시간에 국한될 이유가 있을까요? 신은 우주를 만들때 결말까지 다 완성시켰던 겁니다. 결국 지금 우리 눈에는 불완전한 세계로 보이겠지만 신의 입장에서 태초-과거-현재-미래-결말 의 조합은 완벽한 완성품일수도 있습니다.
dirty3 :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musiki님이 옳은 겁니다. 이죽대는 dirty3는 이죽대는 만큼 누워서침뱉기고요. 이것 참 부끄러워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려. dirty3가 무엇보다도 유신론에 대해 짜증나고 열불터지고 환멸스러운 것은 그들이 철저하게 자기가 이길 것이라는 결과를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dirty3는 그 믿음에 대해 같은 느낌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거죠. 일반상대성? 시간? 그래서요. 그것이 왜 신이 마스터베이션을 위해 세계를 만들어내고 하는 dirty3의 의견이 설득력이 없는 근거가 되는거죠? 알파와 오메가를 아는데 왜 창조를 하는 겁니까. 신의 의도는 신만이 안다고요? 불가지론은 위키위키에서는 독약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가지론은 musiki님이 말한 인격적인 신이라는 개념과 상충되는겁니다. 제발 목사의 언어가 아닌 노스모키안의 언어로 말해주세요. 신은 변태거나 인간을 사랑하는 이거나 둘중 하나입니다같은 어리둥절한 단어를 늘어놓지 마세요. 혼자서 소설 쓰는 것이 아니잖아요. 원숭이에게는 원숭이의 언어가 필요한 겁니다. dirty3에게 원숭이의 언어로 이야기해주세요. dirty3는 musiki님이 위키위키에서만은 사람이 아닌 원숭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musiki 불가지론이 위키위키에서 독약이라는 의견은 매우 참신합니다. 노스모크에는 괴물눈깔님을 비롯해 불가지론자가 많습니다. musiki는 불가지론자가 아니지만 노스모키안의 언어가 불가지론이라는 판단하에 불가지론에 대한 경외의 표현으로 이러한 표현을 하는 겁니다. (현저한 자기모순만 보셔도 이해하실 수 있을겁니다. ) 그리고 불가지론은 많은 노스모키안의 언어입니다. 최소한 musiki가 겪어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우선 이점 명시하고 들어갑니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dirty3님의 표현대로 신은 마스터베이션하고 앉았는 변태가 맞습니다. 그런데 이게 맞는지 아닌지는 신만이 안다는 사실입니다. 해서 musiki가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라고 하는 표현이나 dirty3님께서 "신은 변태이고 마스터베이션을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 라는 표현이나 신의 의도를 모르므로 실은 서로 설득력없습니다. 신이 인격체라는 말도 사실은 몇번 죽었다 깨나도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역시 설득력없음을 압니다. "그저 우리 신앙이 이렇다."라는 표현에 불과합니다. 유신론에서 musiki가 굳이 이를 표현한 이유는 우리가 옳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신앙이 이런것이기 때문인것이죠. 유신론의 정체에 대해 서로 알기 위해 만들어진 페이지이니 정확한 표현에 오해가 있으면 이점만 정정해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musiki는 유신론이 옳다 그르다식의 HolyWar 는 금하기로 약속한바 있습니다. 물론 깊은 토론을 원하시면 제 위키로 오시면 두발벗고 환영합니다. --musiki
dirty3 : 결국 musiki님의 결론은, 신은 변태인가? 알 수 없다. 신은 인격체인가? 알 수 없다. 신은 왜 행하고 행하지 않은 것인가? 알 수 없다. 신은 왜 과거-현재-결말의 모든 것을 알고도 뻔한 짓을 했는가? 알 수 없다. ..라는 것 아닙니까. 신은 왜 알면서 행하고 알면서 안 행했는가? 알 수 없다. 왜 musiki님은 인격체, 일반상대성이론을 알고 있는 신, 우리가 알 수 없는 신같은 알 수 없는 것들을 유신론이라는 페이지에서 들먹이고 계십니까. HolyWar을 금지하자고요? 좋습니다. 무한에 대한 무지를 인정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뻑으로 승화하면 많이 추해 보입니다. WikiWiki 역시 새벽 2시 술먹고 주절대는 개똥철학적인 성격도 있긴 합니다. 이 페이지는 토론이 아닌 서로의 주정을 늘어놓는 잡담판 정도가 되겠지요. 그렇다면 musiki님이 신비주의자라고 이해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저는 마스터베이션주의자고요. 신앙이라는 것이 불가침적인 영역이라는 것을 우선 주장하고 싶으시다면, 남에게 설득력 없다같은 비수같은 문장은 들이대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설득력 없다같이 물귀신짓도 하지 마시고요. dirty3는 그 점이 참을 수 없는 겁니다. musiki님의 당당함을 보고 있으면 무지 기분 나쁩니다.
musiki : musiki는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있다고 소개해주고 싶을 뿐이지 결과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양측 다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단정적인, 결정론적인,결과론적인 해석에 심히 불쾌해하시면서 반대로 불가지론에도 불쾌하고... 그렇다면 문제는 musiki가 논리적으로 어떠한 문제가 있다거나 어떠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라기보다는 단지 "싫다"는 표현이시라면 그 나름대로 사내답다고 생각하고 싫지않게 받아들입니다. 사람은 좋고 싫은건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 어쩔 수 없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말끝이 날카롭다는 점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안그래도 많은 분들에게 쿠사리 먹었어요. --musiki
dirty3 : dirty3는 단정적인, 결정론적인,결과론적인 해석에 심히 좋아합니다. 언제 그런 것을 싫다고 했었나요? musiki님이 우리는 무식하다라는 결론으로 끌고 가는 것이 싫었던 것이죠. 그리고 신은 변태거나 인간을 사랑하는 이거나 둘중 하나입니다같은 if구문으로 끌고가는 것이 싫은 것이죠. 예. 맞습니다. 감정적으로 싫습니다. 토론판도 아니고 잡담판도 아닌 이상야리꾸리한 분위기로 이런 판을 끌고 가는 musiki님이요. 토론판이 아닌 잡담판으로 인정하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신앙간증은 듣기 싫거든요. 술자리에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술이 약입니다.
musiki : 읏, 앞에서 musiki님 같이 dirty3가 만나본 기독교인들은 굉장히 결과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라는 말은 그것이 불쾌하다는 의미가 아니었군요. 앞서간듯 합니다. 참고로 알고계시듯 musiki역시 단정적이고 결정론적이고 결과론적 해석을 좋아합니다. 하여간 예정론을 일종의 신의 음모론 정도로 표현하는 것은 musiki가 매우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씹는 행동이거든요. 님께서는 신앙고백처럼 들리는 순애보가 불쾌하시겠지만 저는 그 휴대폰도 안걸어주는 친구 험담하는 것 싫어한다는 정도 말해둡니다. 여긴 노스모크지 술자리가 아닙니다. 저희집에 오셔서 한잔 하시겠다면 술상대 해드리죠. --musiki
dirty3 : musiki님 같이 dirty3가 만나본 기독교인들은 굉장히 결과론적인 사람들임과 동시에 신의 의도를 모른다고 말하기 때문에 불쾌한거죠. 섞어놓고 원인을 없애버리고 결과를 원인으로 밀어넣고.. 불가지합니다. dirty3에게는 이해가 안 오는 사람들인 겁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싫어지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musiki님이 사용하는 언어를 읽다보면 안개속을 헤매는 것 같아서 싫습니다. musiki님의집에서 쓰시는 언어들도 술자리용 표준언어로 쓰기 위해서는 좀 순화되어야 될 것 같더군요.
musiki : 언어의 게토화는 안그래도 김우재님께서 적극적으로 지적하신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중 하나임을 주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언어의 게토화로 인해 musiki로서도 도저히 대화가 안통하는 크리스찬도 있구요. 용어 순화해달라고 하시는데 뭐 불건전 용어도 아니고 어떻습니까. 저희집에서는 막말해도 괜찮습니다. 제 맘대로 지우면 되니까. 노스모크니까 정치적(?)으로 순화해서 표현하는것이죠. 아 메신저로 대화해도 괜찮습니다. 메신저로 대화해서 도무지 통하지 않은 사람은 아직까지 한명밖에 없었습니다. 주소는 HallOfNosmokian 에 와보시면 있을겁니다. --mus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