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자의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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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말인가?

오늘 강의시간에 교수님께서 하신 이야기 이다. '대중예술에 보면 의로운(여기서 의로운은 착한. 옳은. 나름의 선한 철학을 가진. 법 없이 살... 등등의 개념을 포괄하는 개념인듯 하다)사람은 대개 잘되는데. 실제로는 논리적으로만 가능한 일일뿐. 거의 일어나지 않는일이다' 고 하셨다. 더불어 자기가 아는 '의로운'(당시 '멋진' 이라고 표현하셨다.) 사람들은 고생만 무척 하면서 산다고... 하셨다.
'정말일까?' 등의 생각을 하는 꾸는자의 생각을 읽으신듯. '권모술수를 권모술수로 대항할 수 없는 사람이 어찌 권모술수쓰는 사람을 이길 수 있겠느냐?' 는 질문을 하셨다. 그럴듯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선의 힘을 악보다, 진실의 힘을 거짓보다 크게 생각하는 꾸는자는 아니라고 생각한(하고싶)다. 그런 의미에서 용기를 줄 수있는 것. 또는 반론을 기대한다.

개념정리

약간의 혼동이 있으므로 개념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여기서 (교수님이 말씀하신) '의로운자' 는 어디까지나 상대적 개념이다. 절대선(신?)의 존재 가정하에, 어떤 인간도 의인일 수 없다. 죄인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절대적 개념의 '의로운자' 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나오는 '의로운자' 는 남들보다 좀더... 라는 상대적 개념이다. (어폐가 있겠지만. '평균이상'?) 그런 사람은... '더' 악한 사람이 <이용해먹기> 좋은 걸까...

'의로운 자'의 개념을 위와 같이 상대적 개념이라 낮추게 되면, 의롭다는 것 자체가 상대적인 것이고, 게임에서 누가 더 단수가 높으냐, 수를 많이 읽느냐의 싸움이 될 뿐이다. 스스로 의롭다 생각하는 사람은 기실 자신의 우둔함, 편협함을 의로운 것이라 자위하는 것일 뿐이다.

원래 이 세상에는 절대적 규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스포츠에선 규칙을 만들고 규칙대로 경기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축구선수의 반칙, 농구선수의 반칙은 효과적 팀플레이, 승리를 위한 전략, 전술일 뿐이다. 다시 말해, 반칙과 그에 따른 페널티 또한 스포츠를 재미있게 만드는 스포츠의 한 일부분이고, 다르게 말하자면 반칙을 포함함으로써 박터지는 현실세계를 적절히 잘 투사시킨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가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반칙을 해선 안 된다고 가르치지만, 프로세계에 들어서면 적절히 반칙을 못 하면 우둔하고 멍청한 것으로 평가절하된다. 반칙을 많이 해서도 안 되고, 아예 안 해서도 안 된다.

글쎄요. 의로운 자의 개념을 낮춘다고 의롭다는 기준 자체가 상대적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무엇이 의로운 것이고 아닌지는 모두 알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속에는 양심이 있지 않습니까?
제 의로움의 기준과 아무개님의 의로움의 기준이 일치한다고 보십니까? 대충이라도 비슷할 것 같습니까? "무엇이 옳은 것이다"라고 사람들이 다투는 것 자체가 비슷하지도 않다는 증거입니다. 구체적으로 열거하라면 당장이라도 뜨거운 감자가 될 논란거리를 여러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열거하라면 당장이라도 뜨거운 감자가 될 논란거리를 여러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음... 그런가요. 하나만. 살짝 만들어 주실래요? 아직 구체적 예는 모르겠네요. ^^;
Aragorn은 Business는 모두 사기치기라고 봅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학문을 연구하는 행위도 실제적으론 사기치기입니다. 마케팅은 어떻게 필요한 물건, 좋은 물건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제품을 좋은 제품으로 대중에게 인식시킬 것인가, 살만한 제품으로 인식시킬 것인가", 인식의 문제가 되어 버립니다. 모든 상행위는 바가지씌우기의 요소를 상당히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기치는 자가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성공한 사기치기는 더이상 사기가 되지 않습니다. 실패한 사기만이 비난받을 뿐이고, 우리는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들키지 않게 사기를 쳐야 합니다. 그래서 옳지않은일을굳이하는이유 같은 것을 고민하는 것은 덜 성숙한 사람(see below "요술램프와 지니")의 주제라고 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마케팅 하면 안되나요? 이건 이렇고 이렇고 이래서 좋다. 당신에게 필요할 것 같다.... 라고 하면 안되나. 과대광고 하지 않고... 방법은 있는 것 아닌지요? 그러니까... 필요성은 인정한다 해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해도... 잘 생각하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할 방법이(달성할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ㅡ.ㅡ) 있는데 거짓말 하는 건... 잘 생각해 보면 의롭지 않은 일이 아닐까요?
아마...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로운자' 라는 사람들은... Business같은 걸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
있는 그대로 마케팅하면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개님은 있는 그대로 영업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Aragorn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Aragorn의 의로움은 대다수의 사람을 그럴듯하게 잘 속여넘기는 사기치기를 잘 하는 것입니다.
아무개님... ^^ 숨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드러낼 필요가 없는 글이라고 생각해서 였습니다만 이제 보니 자기 의견이니까 필명을 남겨도 되겠군요. 계속 꾸는자 였습니다.

옳지않은일을굳이하는이유 같은 것을 고민하는 것은 덜 성숙한 사람(see below "요술램프와 지니")의 주제라고 봅니다.
정말이라면. 성숙하지 않고 싶네요. 피터팬으로 살려네~
위와 같이 옳고 그름은 지극히 상대적이고 개인적이기 때문에, 함부로 옳지않은일을굳이하는이유같은 가치판단이 포함된 글을 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피터팬으로 사는 건 좋습니다. 어리버리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기치기 좋은 것이고, 서로서로 지나치게 피곤하지 않게 좋게좋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피터팬처럼 살면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줄 겁니다. 스스로는 의로움을 추구하지만, 기실 아주 나쁜 행동을 하는, 이기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혼자만의 의로움을 위해 주변 사람에게 상처주는 것이죠.
정말인가요? 저도 모르는 새에 다른 사람에게 많이 상처를 주었겠네요... 그런데 왜 그렇게 되는 거죠? 꾸는자
어릴 때에는 주로 다른 사람들에 의존하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난 의로운 사람이야"라고 말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특별히 줄 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노스모크에서 어떤 글을 쓴다고 해서 상처줄 것도 별로 없습니다. "난 의로운 사람이야"라는 것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회사에서 영업하는 사람이, "난 의로운 사람이야"라며 자기만의 생각대로 영업하고 마케팅하면, 그 회사 망합니다. 경영자가 그런 생각 갖고 있으면, 모든 사람이 괴로와지고, 집안의 가장이 그런 생각 갖고 있으면, 집안 식구 모두가 괴로와집니다. 왜 상처를 주냐면, 의로움이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태까지 잘못 배우고, 잘못 알고 있었던 겁니다.


구체적으로 열거하라면 당장이라도 뜨거운 감자가 될 논란거리를 여러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면, 일상생활의 "의로움"이, 대의명분의 "의로움"이 지극히 상대적이고, 양심이라는 것을 믿어봐야 혼자만의 개인적인 영역에 불과하며, "왜 의로운 자는 승리하지 못할까?"라는 의문이 별 가치없는 것인지 설명이 된 것 같습니다. --Aragorn
양심을 믿어봐야 개인적 영역에 불과하다... 왜 아직 수긍이 되지 않는지. 보편적 양심 이라는 건 없나요? 극단적으로. 살인 같은 경우를 의로 보는 (특수한경우는 있겠지만) 사람도 있나요? 꾸는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서로 잔인하고 죽이는 것은 어떻습니까? 누가 의로운 것이죠? 오사마가 911테러에서 수많은 유대인과 유대인 아닌 사람들을 죽인 것은 어떻습니까?(오사마가 범인인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자기 딸에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여 폐인을 만들고, 자살하게 만든 악당을 아버지가 살해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뜨거운 햇살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총을 쏘는 것은 어떻습니까? --Aragorn
모두 의롭지 않은 일 아닌가요?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도. 오사마도. 악당도 아버지도... 맨 마지막은... 정신병자가 아닌가요 ㅡ.ㅡ 꾸는자
일제치하시대에 벌어졌던 독립투사들에 의한 수많은 폭력 투쟁은 어떨까요? 도시락 폭탄을 던지고, 요원을 암살하고.. 글쎄요.. 의로움의 기준은(옳고 그름의 기준도 마찬가지로) 상대적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이민호

파생의문

왜 선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선한 사람이 승리하는 이야기를 보며 안도할까? 그런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할까? 그것을 믿고 싶어할까? (여기서 선하지도 않은 사람들 이란. 모든 사람들을 지칭한다.) 또, 그럼 '나쁜'(예를 들어 사기꾼?) 사람들은 그런것을 싫어할까? 보고싶어하지 않을까? 보면 안도는 커녕 마음이 불편해 질까?

이론적으로...


  1. 우리는 상황따라, 그리고 사람따라 선과 악에 대한 다른 규준을 갖고 있다. 또한 평균적으로 선과 악을 오가고 있을 뿐, 솔직히 선한 사람이라고 해서 100% 순도 높은 선한 행동만을 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쪽으로 더 치우쳤는가의 정도 차이가 바로 선한자냐 악한자냐를 그나마 가름하는 것이 된다.(소유냐존재냐참조)
  2. 명목적이나마 그 '선'이라는 가치를 보다 객관적인 의미에서 지향하는 사람, 행동과 사고의 비중을 그 쪽에 더 두는 사람을 우리는 아마도 '선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3. 자기 편의적이고, 자기 합리화를 통해서 여러 스트레스 받는 상황들을 향해 무장한 대부분의 현대인들의 의식 속에는, 선한 자는 이용해야할 대상 내지는 정서적 교감 정도 이외에는 그다지 상대할 필요가 없는 사람 정도로 취급될 수 있다. 단, 선한 자가 강할 때, 그리고 함부로 다른 것에 휩쓸리지 아니하는 굳센 심지를 보여줄 때, 우리는 이른바 그를 존경하거나 사랑하게 된다.
  4. 선함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당신이 바로, 비교적 선한자인지도 모른다.
  5. 의로운 자는 자신의 마음 속으로부터 승리한다.
  6. 히드라라는 식물이 있다. 주변의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자신 주변의 모든 양분을 자신에게로 빨아들여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생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존재이다. 보리수라는 식물이 있다. 주변의 생태계를 살찌우고, 자신 주변으로 양분을 같이 나눠주어 풍성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존재이다. 히드라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좋겠는가? 보리수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좋겠는가? 내 옆에 히드라같은 친구가 있다면, 당장 난 내 양분의 방출을 막고 같이 생사를 건 투쟁을 하고자 하겠다. 하지만, 내 옆에 보리수같은 친구가 있다면, 나 또한 그같은 친구가 그에게 되어주고자 할 것이다.
  7. '선'이란 사회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며 지속적인 행동과 사유 속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이 사회 속에서, 당장 그 사람에게 '선'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행위가 목격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선'을 구현해내는 인간이 있다.
  8. '돈'만을 유일한 인간의 이익으로 보자면, 우리는 사람도 죽일 수 있고, 전쟁도 일으켜도 되고, 그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고, 돈이 된다면 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더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한 생각들이 그나마 남아 있기에 현대, 그리고 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아직은 서로 쉽게 죽이거나, 전쟁에 쉽게 가담하지 않고, 그 온갖 추접스런 일들에 뛰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선'은 없는 것 같지만, 아직은 우리를 붙잡고 있다.
  9. 인류가 자연 현상이나, 기타 예상치 못했던 재해 등등으로 절멸한다면, 아마도 그건 우리 탓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만든 이유들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절멸하거나, 지구가 되돌릴 수 없이 망가져버린다면, 아마도 우린 우리가 선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며, 우리 탓으로 우리가 절멸했음을 또한 인정해야 할 것이다.
  10. 자잘한 '악'들이 '선'을 구현하기도 하며, 자잘한 '선'들이 '악'을 위장하기도한다.
  11. 선을 향하여 권위나 권력이 필요할 수도 있고, 악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권위나 권력이 무너져야 할 수도 있다. (Vice Versa)
--Roman

나의 선이 남의 선이 되지 않으며, 남의 선 또한 나의 선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 똑바르고 올바르다 여기는 길을 향해 큰 두려움 없이 생활해 나아가는 사람은 독선으로 빠지기 마련이고, 스스로 선하다 일컫는 위선자일 뿐이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선한 존재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을 뿐이다. 스스로 선하다 칭하는 자가 누구인가? 하늘아래 어디에 의인이 존재하는가?
동의 한표! 나는 절대적 선의 개념을 지지하기에. 모든 사람은 죄인임을 믿는다. 그러나 위에서 교수님께서 하신 '의로운자' 는 상대적 개념인듯 하다. (아니라면. 존재하지 않으므로.)


위 문장이 뜻하는 바는 간단하다. 그동안 알고 있던 것, 믿고 있던 판단 기준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 순간, 그 선각자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곧바로 그는 보수세력에 의해 악의 세력이라 낙인찍힌다.

실제 의로운자가 승리하는 사례

??? 거꾸로 아닌가? 살아남은 자가 의로운 자가 된 것 아닌가? 정의의 여신은 항상 승자의 편에 선다. 실제 의로운 자들은 애초에 제거되어 사라져 기록이나 전설조차 남지 못했고, 지금 남은 자들은 모두 의롭지 못한 자들밖에 없다.

우리가 서로 아직은 비교적 선하기 때문에 서로 죽이지 않고 살아 있다고 한번 생각해보자. 적어도 '살인'이 죄이자, '악'이라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화나게 하는 타인을 바로 죽이거나, 금전적 이익, 기회 때문에 바로 없애버리진 않고 있는 것이다. 규제하는 법망을 피해서 벌어지는 살인이 묵과되기도 하지만, 대다수가 갖고 있는 행동과 사유는 바로 이런 정도의 '악'은 쉬이 저지르지 않고 살고 있다. '악'을 일단 쉽게 행하지 않는 것은 적어도 '악'을 능동적으로 행하는 것보다는 '선'하다, 그러나 온전히 선하지는 않다. '악'하지 않다일뿐이다. 실제 온전히 의로운자가 승리하기보다는 적절하게 의로운자 또는 적절하게 악한자가 승리한다. 때로 적절하게 악할 줄 알아야 하고, 때로 적절하게 선할 줄 아는 것이 현대인이다. '순수한 악인'과 '순수한 의로운자'는 현대에서 '적절하게' 승리하며 살아남을 수 없다. 그 둘 다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비교적 선한 판단과 비교적 악한 판단을 얼마나 빨리 구분해내어, 실제의 생활 속에서 응용변환하고, 자기 고유의 가치와 접합시키고, 상황에 맞는 행동과 능동적으로 연결시켜내는가이다.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찾는 루트도 변환한다. 생활이라는 개념으로 보았을 때, 그 개인의 이익에 작용 되는 요소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난수를 일일이 하나하나씩 다 들어보자면, 이런 생각도 들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맑스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이 만화경 같은 세계를 다시 어떻게 해석했을까 하는 생각. 궁극의 절대적인 판단은 뛰어난 인재일수록 더더욱 쉽게 내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가장 답에 이르는데 가까운 길들을 제시하고는 그 '점'을 지나 새로운 길 위에 있기 마련이다. 다만, 죽었기 때문에 그 궤적이 끝난 것이다. 그 궤적의 뒤쪽에는 계속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그 궤적을 이어가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맑스'가 혹 상당히 선한자거나 의로운 자라면, 혹, '테레사 수녀', '다이애너비' 등등이 그나마 그럭저럭 선한자라면, 그리고 그 가치와 의미와 명맥이 조금이나마 현대인들에게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면, 실제로 (비교적) 선한자들이 승리하고 있지 않더라도, '선한 것'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있으며, 계속해서 전파되고 있다면, 그것은 적어도 성공적인 것이다. 적어도, 하나의 일례로써 "이웃에 대한 살인"이라는 '악'이 공공연히 인정되던 옛날에 살았던 사람들에 비해서 세월이 지난 지금의 시기에 있는 사람들은 보다 "선"하다.

자기 이익을 도대체 무엇으로 삼는가가, 의로운자와 의롭지 않은자의 갈림길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이게 자신의 이익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가 바로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파악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익의 범위내지는 정의는 서로 간에 매우 닮아 있는 면도 있지만, 기실은 서로 미묘한 것 이상으로, 극단적으로도 차이가 난다.--Roman

덧붙이기

옳은. 나쁜. 선한. 악한.... 등등의 개념은 모두 상대적인 것에 다름아니다... 고 하면. 더이상 어떤 의견의 교류도 없을 것이므로 우리모두가 알고 있는 선에서 생각하는것이 좋겠다. 인류가 공통적으로 마음에 가진 선과 악의 선은 어느정도 있지 않을까? 개인차가 심하긴해도...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진 선과 악의 구분이라는 건, 보통 매우 좁은 특정 사례나 두리뭉실한 뜬구름잡는 경우에나 가능한 것 아닌가? A와 B가 다투는 한가지 상황을 놓고, 해석하기에 따라 A가 나쁜 놈이 될 수도 있고, B가 나쁜 놈이 될 수도 있다. 상대적인 개념을 놓고 왜 그럴까 고민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별 상황에서 상대방을 이기는 전략과 전술일 뿐이다.

때때로의 상황 속에서는 개개인의 선한 행동이나 사유도 이른바 상대방을 이기는 전략과 전술로 작용된다. 명목적으로 선한 행위를 취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평판과 판단에 긍정적인 것으로 작용된다. 오로지 전략과 전술뿐인 사람임을 타인에게 들키면, 그때부터 타인들도 그에 대한 경계의 수위를 높히게 된다. 집단 속에서의 장기적인 맥락으로 보았을 때 보다 선한 생각과 행동을 지향하는 사람은, 그 어떤 전략이나 전술과도 맞먹는 효과를 가진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도 필요에 따라서는 전략과 전술을 고려한다. 바보는 아니니까.--Roman
전략과 전술은 도덕적 우위, 선한 행동, 정확히 말해 남들이 선하다고 인식하는 행동을 당연히 포함한다.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삶에 대한 의미부여와 일련의 삶을 영위하는 가치, 세계관 인생관 등의 좀 더 굵직한 태도나 자세로 분류되는 인간의 양태는 전략과 전술이라는 개념과 구분될 수 있다. 이것을 무의미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고 구별하기 곤란하니까, 대충 한데 뭉쳐버리자처럼 보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그 구분이 무/의/미/해/야/만 만사가 다 내뜻대로 이해된다.의 반영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런식으로 환원시키자면, 인류의 삶과 문화의 갖은 양태와 그 많은 어휘들은 왜 굳이 존재하는가 몇개로 한정시키고 대충 살지. '당연히'라는 말도 필요없이 이 구분은 의미가 있다. 믿지 못하겠으면, 다시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뒤져보기 바란다.--Roman
???? 혼자만의 어휘, 혼자만의 개념 속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초등학교 교과서에 선한 행동이 전략과 전술과 구분된다고 가르치고 있는지? 초등학교 교과서, 윤리교과서야말로, 어떻게 행동해야 착한 사람으로 칭찬받는지, 사회에서 살아남는 전략과 전술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교본이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책에 그렇게 나와 있으니까, 시험점수 잘 받아야 하니까, 답이 그거라고 하니까, 그렇게 답하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 학교 동산 뒤에 누워서, 세상의 치졸함과 역겨움을 친구와 함께 논했다. 이른바 학교에서 '악'으로 처단하는 '담배'를 피면서, 이 정도 일탈 정도로는 잽도 안되는 갖가지 위선과 악랄함, 그리고 위선적인 세상을 함께 저주했다.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가슴이 후련했고, 왠지모를 기쁨이 밀려왔다. 비교적 순수하고 보다 세상을 명확하게 보는 눈이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하니, 굉장한 인물들이 된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대해서나 불특정 다수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거는 '소송'의 기쁨은 이기던 지던간에 극치의 쾌락중에 하나이다. 여기에 물들면, 더이상 세상을 보다 넓고 세세하게, 보다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은 성장할 수가 없게 된다. 양철북의 난장이가 되는 것이다.

'나'는 어느정도 위선적이고, 어느정도 사회에 찌들은 인간일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아주 작은 선의조차 진실이나 진정이라고 말할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나아가 느끼게 할 수 없다면, 또한 타인의 그 어떤 선의도 하나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라면, 굳이 사람들 틈에서 끼여서 살 필요가 무엇일까, 그 지옥같은 자리들에 끼여 있을 이유가 무엇인가? 게임에 강한게 자신이라서?

개개인의 인간들은 일종의 같은 경향을 가진 하나의 군집 무리로 항상 설명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존재들이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끼리건, 양아치 깡패끼리건, 불한당 같은 집단이건, 그 어떤 종류의 사람들끼리건, 적어도 최소한의 예의와 선의와 진심을 보여주고 유지할 수 없다면, 그 집단의 존속은 바람 앞의 민들레 꽃과도 같은 것이 된다. 이기주의자끼리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이익'의 측면이 끝장나서이다. 그리고 상호간의 이익의 구축이 무너지는 것은 언제나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그러나 보다 오랬동안, 여러가지 난수를 딛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임, 또는 사회라는 것은, 정서적인 측면이나, 가치, 의미를 제대로 기반으로 잡고 있으며 보다 유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사회의 부정함에 대한 자정작용이 일어나고, 가치의 다양화와 발전, 자기 계발의 이유들이 넘실거린다.--Roman

이 말이 가장 맘에 든다. "5. 의로운 자는 자신의 마음 속으로부터 승리한다."

{{|
유머 - 요술램프와 지니

-앞부분 생략-


한참후, 지니는 담배 한대를 입에 물면서 부인에게 물었다.
"당신 남편이 지금 몇살이죠?"
"35살 인데요."
그러자 지니가 담배 연기를 푹~ 뿜으며 내뱉는 말,

"그런데 아직도 '요술램프와 지니'를 믿나보지?"
|}}

선과악이라는 개념은 절/대/로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선이라는 개념은 지금까지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면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가 아니다!)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좋은것' 으로 받아들여지는 행동들을 추상화시켜놓은 것일 뿐이며, 악이라는 개념은 그 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소규모 사회에서 주위에 착한 사람들만 있다면 착한 일만 하고 살아가면 된다. 그런데 사회가 커지고 사람들 사이, 사람들이 모인 집단들의 관계가 복잡해 지면 '착하게 살면 보답을 받는다' 는 간단한 도식은 더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착한 사람들만 모여있는 곳에서 착한 행동만 하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 못된 사기꾼이 하나 들어왔을 경우, 어떤 형태로든 못된 행동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는다면 그 사기꾼은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두 사기꾼으로만 이루어진 마을에서는 그 사기꾼이 별 이득을 보지 못할 것이다. 더 설명하려니 말이 잘 안되는데.. 하여간 도덕시간에 배웠던 '선함' 또는 '의로움' 이라는 개념은 경우에 따라 전혀 쓸모없는 말장난이 될 수 있다. 왜 그런지 궁금하다면.. 이기적유전자 에 나오는 tit-for-tat 과 이타적유전자 에 나오는 게임이론의 적용 예들을 보면 좋지 않을까. -- JikhanJung

인간의 '거짓말하는 능력' 역시 개인에게 또 종의 보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발전해왔다고 봅니다. 하지만 거짓말을 잘 못 하는 사람은 대개 그 약점?을 보완하는 다른 장점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거짓말 처리하는 데 드는 노력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능력을 키운다던가, 사람들의 신임을 얻는다던가. --아말감

인간이라는 생물도 유전자라는 존재의 역학을 통해서 영향을 받고 살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축적된 의식의 산물들로 구축된 문화가 있음으로 해서, 한발자국은 그 역학으로부터 더 걸어나가 있습니다. 이기적유전자의 통찰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사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은 지은이조차도 어느정도는 유보하고 있는 것이죠. 유전자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설명하는 것은 인간의 행동에 대한 100%를 통찰하는 설명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책 이전의 인간의 문화 전부를 부정하고 나면, 델키 한번 누르고 깨끗이 새로운 설명을 하는 것 같아 간편하지만, 이전의 문화가 없었다면, 그러한 통찰또한 불가능한 것은 혹 아니었을지, 또는 그 통찰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더군다나, 이기적유전자는 진화론을 설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책으로서의 가치가 있지, 인간사 전체를 완벽하게 통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굳이 게임을 하고 있는 존재라면, 그 게임은 진화론과 결부된 이기적유전자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는 간략한 게임이론의 복잡함을 훨씬 뛰어넘는 게임이 아닐지요?--Roman

(DeleteMe) 의로운자의딜레마 페이지를 수상한 고아 페이지라고 써 놓은 맑은 메모를 발견 했답니다. 수상하잖아요. 참여자들도 많고 내용도 꽉 차 있는데, 고아라니 말이죠. 페이지인양작업이 필요한 상황인가 봅니다. --맑은
RecentChanges에 보면 수상한 고아 페이지 후보가 될 녀석들이 많습니다. 추가삭제수정은 열심히 되는데, 정작 그 페이지로 가는 링크는 어디에도 남겨지지 않는 경우 말입니다. 여기서 해주고 싶은 명언 하나. Ask not what you can do for your page, ask what your page will needs from you! 에잇,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쳤다. 관둘래요. --PuzzletChung
덩말요? 두 마리 토끼를 누가 다 잡아 갔는지도 아세요? 알려주면 제가 한 마리만 잡아 먹으려고요. 한 마리면 충분해요. 넘치죠. 넘치는 건 PuzzletChung님 드세요. :) --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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