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과학혁명의구조/추가 | 과학혁명의구조 |
Keith Stanovich의 심리학의오해(1989) 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언급된다.
Horace Judson이라는 역사학자는 자신의 저서인 0879694785 The Eighth Day Of Creation(1979) 에서 금세기에 일어난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의 급속한 진보에 대해 놀라운 연대기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진보가 가능했던 이유는 모든것을 바르게 배열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아인슈타인과 같은 거인이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수백 번의 실험에 근거한 수많은 각기 다른 통찰들이 생물학에서의 현대적 종합에 공헌하였다.
{{|
과학사가들은 혁명적 변화를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거의 전적으로 물리학의 역사에 의존해왔으며, 물리학에서는 몇몇 위대한 상투적인 투쟁에 호소하였다....분자생물학의 출현은 상이한 모델을 요구한다....생물학은 진화론 이외에는 그렇게 야심차고 선도적인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 ...생물학은 위대한 상투적인 전투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체 전쟁터에 걸친 무수한 소규모적인 충돌-게릴라 작전-에 의해서 진행되어왔다. |}}
과학사가들은 혁명적 변화를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거의 전적으로 물리학의 역사에 의존해왔으며, 물리학에서는 몇몇 위대한 상투적인 투쟁에 호소하였다....분자생물학의 출현은 상이한 모델을 요구한다....생물학은 진화론 이외에는 그렇게 야심차고 선도적인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 ...생물학은 위대한 상투적인 전투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체 전쟁터에 걸친 무수한 소규모적인 충돌-게릴라 작전-에 의해서 진행되어왔다. |}}
토마스쿤의 과학혁명의구조가 1962년작이므로 이 두명의 심리학자와 역사학자는 분명히 쿤의 이론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자생물학에서의 새로운 모델필요성을 논하고 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김우재
석의 이의 제기: Horace Judson의 말이 듣고 싶다. 어떤 생각으로 연대기를 제시했는지... 정말 생물학에서는 그 날 그 시간, 그 사람이 발견을 순간적으로 이루어 낸 것인지... 그 저서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 특히 Keith Stanovich가 이해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쿤은 과학 교과서가 영웅을 기억하는 대신 역사적 통찰을 거부했다고 비판하는데, 위 주장은 영웅이 없는 곳에는 쿤의 이론도 성립하지 못한다라는 것처럼 들린다. 우리가 이 문제를 제대로 탐구하기 위해서는 Horace Judson의 책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이나, 쿤의 이론을 지지하는 다른 한 명의 생물학사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질문은 많은데, 아는 것이 없어서 답은 하나도 못했군요. 혹시 아시는 부운... 저 쫌 도와주세염...^^;;)
사실 질문이 참 모호하긴 한데요...
{{|
생물학 대가로서의 면모만이 이 책을 메우고 있진 않다. 생물학 이론의 변화가 위대한 과학사가 토마스쿤의 주장처럼 그렇게 혁명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반박하는 부분에서, 그리고 기존의 과학철학이 마치 물리학만 과학인 것 마냥 물리학만을 주요 소재로 다뤄왔다고 비판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저자의 또 다른 권위를 만나게 된다. --장대익 유전자와생명의역사 역자,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
생물학 대가로서의 면모만이 이 책을 메우고 있진 않다. 생물학 이론의 변화가 위대한 과학사가 토마스쿤의 주장처럼 그렇게 혁명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반박하는 부분에서, 그리고 기존의 과학철학이 마치 물리학만 과학인 것 마냥 물리학만을 주요 소재로 다뤄왔다고 비판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저자의 또 다른 권위를 만나게 된다. --장대익 유전자와생명의역사 역자,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
실제로 물리학을 그 기본 시스템으로 전개되 온 과학철학에 대한 비판은 생물학의철학을 비롯한 여러 저서들과 많은 과학철학자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생물학이다 와 Elliot Sober의 생물학의철학 에서 시작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만. 쿤과 도킨스의 Meme은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잘 모르겠군요. 그게 그렇게 확장될 수 있나요? --김우재
1. 그렇다면 쿤의 견해에 찬성하는 생물학의 역사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아주 단순한 궁금증입니다.^^;; 생물학의 철학을 아직 읽지 않은 귀차니스트의 우문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까 위 질문은 다른 견해를 취하는 생물학사가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질문이었습니다. )
2. 석에게 패러다임과 ESS가 너무나도 닮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쿤의 책이 도킨스의 책보다 10여년정도 더 먼저 써졌다는 사실을 알고 어떤 시대정신이 쿤에게 영향을 주고, 그것이 더 커져서 Meme의 발생에 영향을 준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역시 우문인가요?
2. 석에게 패러다임과 ESS가 너무나도 닮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쿤의 책이 도킨스의 책보다 10여년정도 더 먼저 써졌다는 사실을 알고 어떤 시대정신이 쿤에게 영향을 주고, 그것이 더 커져서 Meme의 발생에 영향을 준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역시 우문인가요?
생물학을 쿤의 사관에 맞추려는 시도가 주류였기 때문에 따로 소개할 필요는 느끼지 못합니다. 쿤 자신도 많은 노력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 내공이 부족하여 일일이 논문을 찾아드리지 못하는 점 죄송합니다. ^^;; 과학철학쪽 논문을 조금만 뒤져보시거나, 생물학의 철학 분야Biology & Philosophy 에서 쿤에 관한 부분을 찾아보시는 것이 저보다 정확할 것 같습니다.
도킨스가 쿤에게서 파생한 Khunian 들, 그중에서도 과격한 Social Constructivist 들에게 그럼 니들은 비행기도 타지 마라라고 말했던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커보이지는 않습니다. (See also 상대주의) 사실 도킨스가 밈개념을 만든 것은 "복제자"의 확장이었지, 도약같은 것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모르죠. 도킨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김우재
밈의 진화에서는 ESS에 초점을 둔 것이었습니다. ESS는 불연속적으로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동하는데, 그 이동의 이유가 환경의 변화나 그 환경에서 유익한 유전자가 급속히 유입되어 퍼지기 때문이잖아요. 물론 패러다임의 변화와 차이도 존재하겠지만, 충분히 영향을 받았다는 개연성이 느껴졌습니다. 석만의 억측인가요?^^;;
ESS 가 불연속적으로 상태이동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연속과불연속의 문제는 상당히 해결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예를 들어 John Maynard Smith는 게임이론을 응용한 ESS(EvolutionarilyStableStrategy)를 현대진화론에 도입하면서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
메이나드 스미스(Maynard Smith)의 ESS(EvolutionarilyStableStrategy)는 진화적 안정전략으로서 개체군의 대부분이 이것을 채용하면 다른 대체 전략에 의해서 변화시킬 수 없는 전략으로 정의된다.메이나드 스미스는 매파와 비둘기파의 전략을 든다.매파는 공격적 전략이고 비둘기파는 수비적 전략이다.어떤 전략을 가진 구성원들로 되어있을 때 그 전체집단의 적응도 즉 이익이 최대로 되는 것일까?말할 것도 없이 수비적 전략으로 된 비둘기파들로 되어있을 때이다.인간사회로 말하자면 경찰이나 군대와 같은 비생산적 분야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것은 ESS가 아니다.하나의 매파가 비둘기파 구성원들내에 생겨나면 매파는 전체 이익을 독점할 수 있게 된다.집단은 급속히 매파 구성원들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그러나 매파 구성원들로 된 집단도 ESS가 아니다.이제 매파가 상대해야될 대상은 매파가 될 공산이 높다.이 경우 상호간의 공격으로 서로 상처를 입게 되고 그 적응도는 비둘기파 이하로 떨어질 공산이 크다.이 때 비둘기파는 새로운 기회를 잡게 된다.그러나 비둘기파가 증대하면 매파는 다시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이 두 전략사이를 진동하다가 이 둘사이의 일정한 비율에 도달했을 때 그 집단은 안정을 얻을 수 있다.이것이 ESS이다.
메이나드 스미스(Maynard Smith)의 ESS(EvolutionarilyStableStrategy)는 진화적 안정전략으로서 개체군의 대부분이 이것을 채용하면 다른 대체 전략에 의해서 변화시킬 수 없는 전략으로 정의된다.메이나드 스미스는 매파와 비둘기파의 전략을 든다.매파는 공격적 전략이고 비둘기파는 수비적 전략이다.어떤 전략을 가진 구성원들로 되어있을 때 그 전체집단의 적응도 즉 이익이 최대로 되는 것일까?말할 것도 없이 수비적 전략으로 된 비둘기파들로 되어있을 때이다.인간사회로 말하자면 경찰이나 군대와 같은 비생산적 분야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것은 ESS가 아니다.하나의 매파가 비둘기파 구성원들내에 생겨나면 매파는 전체 이익을 독점할 수 있게 된다.집단은 급속히 매파 구성원들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그러나 매파 구성원들로 된 집단도 ESS가 아니다.이제 매파가 상대해야될 대상은 매파가 될 공산이 높다.이 경우 상호간의 공격으로 서로 상처를 입게 되고 그 적응도는 비둘기파 이하로 떨어질 공산이 크다.이 때 비둘기파는 새로운 기회를 잡게 된다.그러나 비둘기파가 증대하면 매파는 다시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이 두 전략사이를 진동하다가 이 둘사이의 일정한 비율에 도달했을 때 그 집단은 안정을 얻을 수 있다.이것이 ESS이다.
From 면역이 없는 곳에 암도 없다 |}}
이 개념은 이기적유전자에서 RichardDawkins에 의해 더욱 간단한 공식으로 표현되죠. 잘 아시다시피 매파와 비둘기파의 대립 (->) 적절한 비율에서 ESS 의 성립으로 정리됩니다.
즉 제가 생각하는 ESS는 ESS와 ESS 사이는 불연속적이지만, ESS에서 ESS 로 넘어가는 과정은 연속적입니다. 그러므로 ESS 와 패러다임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 이라는 ESS 의 개념적 출발은 RichardDawkins가 아니라, 영국에서 가장 수학적 경향이 강한 진화학자인 John Maynard Smith경이 Game Theory and The Evolution of Fighting라는 Essay 에서 1972년에 처음으로 발표한 아이디어입니다(From John Maynard Smith). 스미스경이 ESS 를 발표할 수 있게 된 계기는 제가 알기로는 Game Theory의 발전때문이었고 스미스경이 한 일은 진화론에 게임이론을 도입한 것이었습니다. 게임이론과 ESS의 관계는 죄수의 딜레마로부터 인생의 전략을 배운다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메이나드 스미스경이 쿤의 영향을 받아서 ESS 의 개념을 만들었는가 그리고 도킨스의 Meme개념도 그렇게 확장된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논의를 확장시키게 되면 1972년 발표된 굴드의 단속평형이론 역시 쿤의 영향을 받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속과불연속, 또는 점진주의와 도약주의의 대결은 철학적으로나 진화론 내부에서도 흔한 주제였습니다. 또한 과학철학적 논쟁이나 논의들이 실제로 과학의 진보에 영향을 미친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이 부분이 과학철학자들이 과학자들에게 열받는 이유인데..이런 이유로 대화가 단절되어 버리죠), ESS 의 개념이 쿤의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은 그렇게 강하게 들지 않습니다. --김우재
추신: 참고로 John Maynard Smith 와 ThomasSamuelKuhn 으로 야후를 뒤져보아도 이 둘사이에 어떤 관계가 연구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오... 그렇다면 석의 눈엔 ESS와 패러다임이 더욱 비슷해 보이는 군요. 패러다임 또한 그 개인에겐 불연속적이고, 패러다임과 패러다임간에는 불연속적이겠지만,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그 자체는 연속적이 아니겠습니까? 소수의 사람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눈을 돌리게 되고, 그 사람들의 선도적 연구로 인해 점차로 많은 사람이 변화해서 주류가 되는 것일테니까요... ESS와 너무 똑 같습니다. 연속과불연속이 해결하기 곤란한 문제라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서는 이렇게 견해차이가 나다니... 역시 사람의 사고는 복잡한 것이군요.^^**
석은 ESS와 패러다임의 관계에서 제 3의 변인을 제외하고 있지 않습니다. 무언지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막연하게 위에서 시대정신이라고 표현을 한 것이구요. 꼭 반드시 쿤이 ESS의 탄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가능성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시대정신이라고 하면 '진화론'이 될 지도 모르지만요. 결국 생물학이 철학에 영향을 준 것이 되네요...
참고로 프로이드의 이론도 그 기원이 다윈의 진화론이라고 배웠습니다. 물론 당시 인간의 내면을 연구하기에 방법론적 발달이 미숙했기 때문에 많은 오해로 귀결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 관계에 대해서라면 아마도 프로이드 학파 사람들은 부인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계에 대한 연구가 있는지는 역시 잘 알지 못하구요. 더 대중적인 것으로는 우생학을 예로 들 수도 있겠군요. 너무나 치명적인 오해였기 때문에 많은 진화론자들도 이들에게 분노하지만, 그 기원이 진화론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오해든, 이해든, 왜곡이든... 영향이 존재했는가에 대한 매우 loose한 질문이었습니다.
어쩌면 굴드의 '단속평형이론'도 같은 시대정신의 영향하에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과연 Meme이 존재하고 진화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패러다임이 그에 대해 어떤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는가? 패러다임이라는 것 자체가 쿤이 어디 별나라에서 가져왔을리가 없다면, 어떤 시대정신을 파악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석만의 공상일 수도 있겠군요... 아직도 굴드의 견해와 도킨즈의 견해의 차이를 이해할 수 없는 석이 최근에 진화의 초점을 개체에 두는 것과 유전자에 두는 것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조금 생기면서 헤메기 시작한 탓도 있는 것 같습니다.ㅡㅡ;; (정리되면 스스로 이 질문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패러다임의 원류를 동시대 서양에 전해진 불교의 인식론에서 찾을 수 있는가... 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연결짓기는 어느곳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태극과 음양의 개념을 DNA 의 상보성에 빗대어 설명한다고 합시다. 도올 김용옥이 포항공대 강연에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억측으로 강연을 잘하다가 절 한번 허거덩 하게 만들었었는데요. (그 때 그는 Codon Usage에 대해 말했죠)
이런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무것에나 ConnectIt 하는 것은 조금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쿤의 패러다임은 과학사를 체계적으로 공부하던 그의 아이디어였고, ESS는 수학과 진화론의 만남에서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봅니다. 비슷하다. 그래서 영향을 받았다. 이런 단순 비교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시대정신과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김우재
논의의 맥락에서 약간은 비껴나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도움이 될까 해서 몇 마디 첨언합니다. (1) 우선, 패러다임이라는 용어가 애초부터 "잘 정의된 개념"이 아니었으며 지금도 아니라는 겁니다. 직접적으로 쿤과 관련이 있는 개념들을 추적해가면 Koyre에게 영향을 주었던 개념들인 "역사적 아 프리오리"(메이에르송)나 "망딸리떼"(레비 브륄) 등이 있고, 독일의 게슈탈트 심리학이 있습니다. 쿤은 이 개념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왔지만, 패러다임 역시 잘 정리된 이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아이디어'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라카토슈의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만 하더라도 쿤으로부터 한 발자국 더 나가려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죠. 쿤의 '패러다임'론에서는 패러다임 내부에서 이론과 명제, 개념과 문제틀이 맺는 관계가 전혀 명확치 않았고 그건 쿤이 죽을 때까지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애매한 개념이었죠. (2) 대체로 '패러다임'의 아이디어가 이런 선행하는 연구들로부터 자양분을 얻었다는 건 확실하지만, 그것이 '시대정신' 혹은 사회적 맥락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과문해서인지 이쪽 연구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약간 찾아봤었거든요). 하지만, '불연속'을 강조하는 쿤의 패러다임론이 어떤 '사회적 맥락'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패러다임론이 다른 분야들에서 '변화'를 정식화하는 일종의 '패러다임'으로 원용되기는 했을 겁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패러다임 개념 자체가 잘 정립된 개념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잘 정리된 이론의 확장 내지는 유추'라기보다는 그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수준에서 그쳤다고 봐야할 겁니다. 중요한 건 이 개념(패러다임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 것인가이고, 그와 유사한 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개념 A가 유추가능한 맥락에서 사용되는가 하는 점이겠죠. 김우재님이 지적하듯 피상적인 유사성에 의해서 무리한 관련을 맺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다지 생산적인 유추가 아닐 것 같거든요. 잘 아시겠지만, 패러다임 개념이 사용된 일차적 맥락 - 과학자들이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정 혹은 연구 방법론이며, 따라서 과학 교육/도제 방식과 관련이 있고 (그래서 과학사회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이 되는 거겠죠), 과학자들의 인지 방식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전혀 다른 걸'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세계관과도 유사하고, 이 세계관의 변화는 게슈탈트 전환으로 비유되기도 한다는 것 - 을 무리하게 넘어서서 확장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3) 하지만, 석님이 말하는 유사성은 그 자체로는 인정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서로 다른 패러다임들간의 경쟁이 일어날 때, 실제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건 '설득'이나 '논쟁'을 통해서라기보다는 '낡은 패러다임을 가진 자들'이 늙거나 은퇴하거나 죽어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 하지만, 그건 '패러다임' 개념의 속성이라기보다는 인간 사회의 속성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이미 그 생각은 '패러다임'이라는 과학철학의 논의가 아니라 '과학사회학'의 논의이며, 따라서 '사회학'의 논의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생물학'적인 주제죠. 당연히 진화론의 여러 가지 이론들이 원용될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인 겁니다. -- Closely
(<-) | 과학혁명의구조/추가 | 과학혁명의구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