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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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꿈은 선생님였다 너무나도 존경스럽고 너그러워 보이는 선생님은 나의 동경대상이었다...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선생님이 선생님으로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무차별적인 폭력(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폭력의 피해자는 아니었다) 여학생을 남선생님이 발로 차고 마구 때리는, 우리 담임은 자율학습시간에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기도 했다...물론 정말로 좋은 선생님도 있다 우리의 편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말씀해주시는 하지만 선생님이 선생님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다 물론 그들도 인간이기에 실수는 한다. 내가 말하고자는 것은 정도의 차이를 말하고 싶다. 때리는 정도의 차이를 말이다. 정말 때리지 않고 가르칠 수 없는 애들이 있다. 하지만 넘 심하게 하지 않았음 하는 바램이다. 앞으로는 우리의 아이들이 그런 무차별적인 폭력이 가해지지 않는 세상이 되었음한다 --bites

가끔 친구들이 모여 술자리를 하다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그 기억의 절반은 교사의 폭력에 대한 것이다. 그 때 아무개가 이런 이유로 죽도록 맞았다, 어느 학교에서는 아무개 교사가 이런 식으로 애들을 두들겨 팼다더라 등등의 얘기들이 나중엔 무슨 무협지처럼 흘러나온다. 이럴 때마다 섬뜩한 생각이 드는 것을 지울 수 없다. 어떻게 폭력을 가지고 이렇게 낄낄대며 즐거워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왜 이렇게 맞고 자란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가. 폭력보다 무서운 것은 그 폭력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원영식
제목이 바꾸어네요...헤헤헤 제가 워낙 문장력이 떨어지는 바람에...흑흑흑....휠씬 조리있는 제목 bites

신체적인 폭력도 폭력이지만, 심리적, 정신적인 폭력의 폐해도 크다고 할수 있다. 네 주제에...네가 감히... 이런식으로 무시해버리거나, 학생을 버러지 취급하는 언사는 주먹질보다 더 폭력적이다.

남자 후배 아이들과 이야기 하던 중, 고등학교 이야기가 나오자, 하나 같이 그 순해 보이던 아이들이 눈빛이 변하며 교사의폭력을 이야기 하면서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우리가 그렇게 당하고 앉아 있어야만 했던가에 대해 분노가 치민다"고 표현했었다. 내심 충격이었다. 그랬는데 이 곳 노스모크에서도 어디선가 이 비슷한 이야기를 크리스틀(자하)님인지(맞나?) 누군가가 적은걸 본 기억이 난다. 여학교에선 "죽도록" 때리는 교사는 그리 보편적인 경험은 아닌듯 하고 (그러나 사실, 개인적으로, 거의 사이코에 가까운 이런 교사를 만난 적은 있다) 언어 폭력 내지는 성희롱(이것도 폭력이 되겠지)을 취미로 일삼는 못난 교사들이 더러 있다. 정말 '못나서' 그렇다. 자신의 억압된 어느 부분을 약자를 통해 해소하는 것이다.--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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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는 남녀공학. 학교 선생님들 중에는 중학교때 보아오던 그런 "폭력교사"가 없다. 학교 정책이라고 한다. 폭력없는 학교...
물론 학생들이 잘못한 일은 따끔하게 충고한다. 벌점제도라는 것도 있는데, (사실 고3들은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 폭력이 없으면서도 학생들의 인격을 지키면서 계도하는데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Serenade

내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다. 나는 초등학교 6년 중 3년 동안을 어머니께서 교편을 잡으시는 초등학교에 다녔다(어머니께서 전근을 가시면 함께 전학을 갔다). 그 3년 동안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모두, 5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차별 없이 사랑할 줄 아는 좋은 선생님들이었다.

나는 그 때도 꽤 다루기 힘든 아이였다. 예를 들자면 - 지독한 책중독 증상이 있어서 교과서와 참고서까지도 새학기 전에 다 읽고 가서는(생각해보니 그건 예습이었다...;)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수업을 들었다. 2학년 실험관찰(그런 수업 이름이 있었다!) 시간에 사람의 시각기관에 대한 부분에서 선생님께서는 "사람의 눈에서 빛이 나가서 저 나무에 맞고 눈으로 돌아오면 나무가 보이는 거에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전날 전과를 다 읽고 온 나는 "선생님, 그게 아니라 나무에서 나온 빛이 눈으로 들어와서 보이는 거에요. 눈에서 빛은 안나가요."라고 선생님께 알려 드렸다(?). 그러나 이런 건방진(?) 내게 선생님께서는 화를 내지 않으셨고 오히려 "내가 잘못 가르칠 뻔했구나,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다. 같은 학교에 내 어머니가 계시니 그런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아니다. 그분들은 아이들의 순수함에서 나오는 건방짐이나 잔인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아시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3학년 말 전학간 초등학교에서 처음 만난 남자 선생님은 충격이었다. 그분은 일기와 숙제 검사를 해서 잘 해오지 못한 아이들에게 벌을 주셨는데, 남자 아이를 칠판 앞으로 불러내 바지와 팬티를 벗기고 밥주걱으로 엉덩이를 때리기도 하셨고, 50cm 자의 날 부분으로 머리를 때리기도 하셨다. 그때부터 선생님에 대한 불신을 가졌느냐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머니를 포함한 좋은 선생님들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의 반을 풍요로운 지식탐 속에서 지내온 나는 선생님을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고까지 생각했고(?), 그래서 그 선생님은 내 관점에서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그는 갓 빨아 말린 이불속처럼 깨끗한 선생님의 세계에 묻은 오점 같은 존재였고 나는 그를 선생님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경멸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만난 선생님들은 좋은 선생님보다 나쁜 선생님이 더 많았다.

중학교 때 : 수업이 없는 날 체육실에서 술을 마시고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놓고 시끄럽게 떠드는 체육 선생님, 여자아이들에게 벌을 준다는 명목으로 온갖 성희롱을 하는 다른 체육 선생님, 여름방학 동안 미국에 다녀온다는 아이에게 "미제 나이키 트레이닝복과 운동화를 사오라"고 요구하는 또다른 체육 선생님(왜 체육 선생님들만 이렇게 많지?;), 특이한 과제를 많이 내주길래 열심히 해갔더니 그것들을 자신의 커리어에 이용한 생물 선생님 등.

고등학교 때 :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아이들을 툭툭 때리는 것을 참지 못해 항의하는 한 아이들 마구 때리길래 일어선 내가 "그만하라, 선생님께 잘못이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눕혀 놓고 발로 마구 밟고 걷어차는 짓을 한 독서 선생님(은사이신 국어 선생님께서 "저 X끼는 교사 이전에 사람이 아니다,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라고 말씀하셨다), 동성애 취향이 있으신지 미술실에서 많은 아이들을 성추행하신 미술 선생님, 내 수능 성적이 높게 나오자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나를 억지로 서울대 서양화과에 진학시키려던 고3 담임 선생님이자 세계지리 선생님(당시 서울대 입시전형은 수채화였고 그 외의 거의 모든 대학들의 입시전형은 석고데생과 평면구성이었다. 진학하려 생각지도 않았고 그래서 준비하지도 않은 엉뚱한 대학교의 엉뚱한 과에 어떻게 간단 말인가. 결국 나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척도 않고 건국대학교 시각멀티미디어과에 진학했다) 등.

--irenchel

휘랑은 교사의 폭력 옹호론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폭력의 이름을 빌린 '계도' 되겠다.
현재 대한민국의 학교 시스템은 하나의 정답을 놓고 많은 학생들을 그 하나로 끼워맞추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잘 따라오는 학생도 있고, 맞지 않아도 노력하는 학생도 있다. 그리고 싫어서 가기 길을 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튐'을 넘어서 학교의 교육에 방해를 주는. 항거가 아닌 훼방을 놓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벌점제라는것에 휘랑은 절대로 동의하기 힘들다. 순간의 실수는 학생기록에 남아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함부로 벌점제라는것을 쓰지 않는 학교가 많다고 알고있다. 설사 쓴다고 하더라도 대학에 관심이 없는 학생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을 교사 자신의 힘으로 계도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에 대한 체크. 그리고 그에 대한 벌점의 체크가 들어간다면 그건 네가 잘못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라. 라고 가르치는 의미보다는 잘못에 대한 체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교사가 아닌. 교육자가 아닌 학생 관리자의 느낌이 굉장히 강해지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학생을 계도하는 데에 '회초리' 이상의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밥주걱이나 마대, 혹은 하키채, 각목, 쇠파이프 등은 제하더라도.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체벌을 받고 억울해하지 않을수 있을정도의 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휘랑은 교사는 인간이 아닌 정말로 신성한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위대해야 한다. 최소한 인격을 가르칠려면 말이다.) -휘랑

irenchel은 중학교 시절, "정의봉"이라 새겨진 얄팍한 매를 치켜들고서 "이 회초리는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회초리다"라고 말씀하시던 은사님을 만나뵐 수 있었다. 그분께서는 잘못을 저지른 학생을 불러 세우고는 긴 시간을 들여 타이르고 꾸짖고 다독여 주셨다. 그리고는 학생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즈음에야 "엎드려라" 하시고는 온 힘을 다해 매질하셨다. 그분께 사회과목을 배우던 1년 동안 누구도 그분의 가르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에서 이미 언급된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 아래에서, 이러한 "모범 교사"의 "양산"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너무나 낭만적이다. 공무원의 월급은 턱없이 적다. 가르쳐야 할 학생은 많다. 아무리 사명감을 갖고 시작한 젊은 교사라도 대부분 몇 년 사이에 그저 그렇게 부패해 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교사는 위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학생이 교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교사가 학생의 신임을 얻지 못하는 것은 닭과 달걀의 문제처럼 꼬여 있다. 섣불리 어떤 것을 좀더 근본적인 문제로 간주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지난 긴 세월 동안 이미 모르모트가 되어 있었다.

교사의 폭력이 정당한 방법으로 - 즉, irenchel의 은사님의 경우와 같이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는 방법으로 - 행해진다면 irenchel은 반대하지 않겠다. 그러나 모든 - 아니, 많은 - 교사들이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몇%나 되는가? 좋은 선생님을 만날 극도로 낮은 "확률"에 기대를 거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이 이러하므로 교사의 폭력을 용인하자는 것은 자칫 편의주의로 비칠 수 있다. 교권이라는 이름으로 암묵적으로 동의된 그 권력의 남용이 수많은 학생들의 뇌리에 어떤 트라우마로 남게 될지 두렵다. 효율적인 교육의 대량생산보다는 정당한 인격 대우가 먼저라고 생각된다. 과연 정규교육 12년 동안 육체적/정신적으로 모욕당하는 것이 대학 합격과 사회적 성공에 반드시 치루어야 할 가격인가? --irenchel

교사는 단지 자기 기준에 입각하여 상황에 합당하게 행동하고 있을 뿐이고, 평균적으로 제대로 해낼 수 없다면 문제는 그 시스템에 있는 것이 자명하다. 이러한 것도 정치적인 문제이고, 정치가 훌륭해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일 것이다. 교사도 때리고 싶을까? 물론 사디스트도 있을 것이고 그러한 혐의의 교사도 목격한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제반 여건들은 사디스트들에게 자제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것은 중, 고교 교육 전반에 나타난 시스템적인 문제이고 체벌만을 문제삼아 어떻게 해 봤자 결국 다른 방식(벌점 등)으로 무리하게 제동을 걸 수 밖에 없다. 가장 필요한 것은 1. 예산. 2. 교과서 개편 이라고 생각한다. 예산은 학급 인원을 줄이고 교육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힐것이다. 교과서에 유머감각이 결여되어 있는것은 커다란 실책이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유머감각을 갖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것은 꼭 필요하다. 철학은 겉핥기로만 해서도 않되고 암기 위주로 교육해보았자 큰 의미가 없다. 나중에 기억나는 것들은 전체적인 컨셉이다. 각 과목의 지식들의 종합, 비판적 사고는 그다지 고려되어있지 않다. 교과서는 보다 전문화되고 유머화 되어야 한다. 교육에서 권위는 보다 적절한 곳에 유효하게 쓰여야 할 것이다. 물론 나는 실무자가 아니므로 이 가설에는 상당히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아무튼, 우리 모두 투표합시다. --Skullkid


고등학교 때 담임은 애를 때리고 나서 꼭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너희들이 훗날에 생각하면 내가 왜 때렸는가 그리고 고맙다는 것을 알꺼야.", 그러나 rururara는 지금까지도 한번도 고마움을 느낀 적 없다. 학교폭력조직도 있었던 우리학교 학생들은 졸업할 때 그 선생님을 반정도 죽여버릴까 계획도 했다. 하지만 막상 졸업 느낌에 빠져서 다 잊어 버리더군. 잊었다해서 용서했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적시에 가하는 회초리는 어떤 순간에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교사가 그것을 잘 판단할 수 있을까? 그리고 판단할 수 없다면 그런 효과를 주기 위해 폭력의 이름을 빌린 계도를 가할수 있을까? 또 폭력 측면에서도 반정도 죽을 정도로 때리지 않는 톡닥거림이 효과가 있을까? 그리고 회초리는 그것을 맞는 사람이 그 회초리를 인정할때만 회초리인 것이다. 자신이 왜 맞는지에 대한 이해도 없는 한 그 학생은 단지 속으로 분노를 사그라뜨리고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rururara는 맞았던 모든 기억들에 대한 분노를 다 품고 있다. --rururara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벌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교사들이 진정으로 학생들을 사랑하고, 그래서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매를 드는 것이라면, 백번 매를 들어도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으면서 'rule이 그런 것이다'라는 이유로 매를 든다면 그것은 폭력배들이나 할 짓이다.

다들 중학교 때든 고등학교 때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말 그대로 죽도록 맞아본 적이 (혹은 직접 맞지 않아도 죽도록 맞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남자학교에만 해당되는 지는 몰라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폭력을 휘두르던 선생님들은 끽해야 지금 내나이 또래다. 내 정도 나이 되는 친구들이 수염도 제대로 나지 않은 중학생들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짓밟는다고 생각해보라. 그게 인간이냐? 짐승이지. 그들이 과연 학생들을 선도할 생각으로 때렸을까?

--Pion


중고등학교 선생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자(교사)는 분명 배우는 자(학생)에 비해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다. 특히나 지식 또는 가르침이 완전히 일방적인 경로로 전달되는 경우, 교사의 폭력은 종종 필연적이고 필수적이며, 어떻든 감내해야 할 부분으로 강조되기 마련이다. 교사에게 잠재해 있는 폭력적 요소를 최소화하려면, 댓가를 주고 그를 고용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되겠다. 이 경우, 애초에 교사에게 주어져 있던 권력이 그의 노동의 가치를 평가하며 그에 대한 댓가를 지급하는 학생에게로 일정 정도 옮겨간다(즉,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양자의 관계는 동등한 자격을 갖춘 거래당사자의 관계로 전환된다). 그렇게 보면, 촌지란 건 폭력적인 교사를 가능하게 하는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균형을 가져오려는 나름의 시도로 (효과가 없거나 있을 경우라도 부작용이 더 많아 그렇지)달리 생각될 수도 있을 듯 하다.


99명의 착한 교사가 있어도 1명의 벌레같은 교사가 있으면 학생들에게 그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지요. 학생들에게는 불행히도 '졸업'과 '자퇴' 외에는 1명의 벌레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덕분에 일주일에 딱 한시간 있었던 한국 지리 시간이 그렇게 끔찍할 수가 없었죠. -_-; 벌레도 현 교육 제도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벌레들은 탈출구가 없는 학생들을 괴롭히는 새디스트에 지나지 않습니다. --asiawide


Jamie는 고 2때까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처음 미국학교에 다니면서 느꼈던 감정이 '정말 마음이 편안하구나' 였다. 한국에서 학교를 10년 이상 다니면서도 학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번도 한적이 없는 범생이 스타일이였기 때문에 선생님한테 매를 맞아본적은 별로 없었지만, 미국학교에서 느꼈던 편안한 감정은 '무슨 짓을 해도 나를 때리지 않겠구나' 라는 안도감에서 나온것 같다. 맞아서 아픈거야 둘째 치고 많은 아이들 앞에서 그야말로 '쪽팔림'을 당한다는것 자체가 큰 두려움이었나 보다. 어쨋든, 이런 편안한 마음으로 학교를 다니니까 주눅도 들지 않고 좋았던 기억이 난다 (반 아이중 누가 선생님 한테 맞는걸 보는것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니까). 어떤 형태로든 누군가에게 억압받는것 자체가 정말 큰 스트레스요인이 되지 싶다.


기린의 엄마와 외삼촌과 외숙모는 교사이다. 즉 교사집안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의 전화통화 사이사이 교장이 교과서 채택 촌지로 얼마를 받았네, 누가 승진하기 위해 어떻게 로비를 했네, 누가 학부모들에게 강요해서 뭘 받아냈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자라서 그런지, 너무 어릴 때부터 교사도 인간이란 것을 알아버렸다. 게다가 언제나 혼자노는 아니였던 나는 수업시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혼자 멍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곤 했다. 게다가 '난 교사의 실체를 알아' 뭐 이런 생각으로 교사들을 종종 무시하곤 했고(무시래봤자 혼날 때 뚱한 표정을 짓는 정도지만 그들에게 그런 무시는 치욕에 가까운 듯 했다) 그래서 모든 교사들이 날 싫어했다.

그중의 최악은 고등학교 때의 수학선생이었는데, 1학년 때 내가 하도 개기자 2학년 때는 자신의 반에 날 넣어버렸다. 어느 날의 조회시간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가 교실 앞에서 '개년'이라고 욕을 들으며 주먹으로 얻어맞았다. 난 그를 절대 용서하지 않았고 고3때 또 담임이 되면 어떻게 하나 공포에 떨었다. 어찌된 일인지 고2겨울방학 때 그는 백혈병에 걸렸고 1년뒤 죽었다. 많은 아이들이 그를 동정했지만 나는 그가 살아서 내 고3담임이 되는 것보다 그가 죽어버리는 걸 바랬던 걸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가 밉다.

어떻게, 한 인간에게 다른 인간을 때릴 수 있는 권리를 줄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랑의 매'란 헛소리로 미화시키는 것을 보면 더더욱 황당하다. 교사는 학생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때리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학생이 그들의 통제하에 들지 않는다는 분노로 학생들을 '패주고' 싶은 것이다.(기린 엄마의 심리이니 그나마 온건한 편이 이런 것이다) 하지만 교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누군가를 '패주고'싶어한다. 타인을 지배하고 싶다는 욕망은 그 얼마나 음습한가. 체벌허가란 '절대반지'의 권능을 약간이나마 교사에게 허락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이 그런 절대권력을 한정된 공간에서나마 갖게 되면 망가지는 것 같다.

그러고보면 꽤 괜찮은 교사도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의 어느 국어교사는 백일장 때 내가 '학교폭력'이라는 제목으로 교사의 폭력을 씹은 글에 은상을 줬던 적도 있었다.

교사의폭력이라니..너무 심한 표현 같습니다..사랑의 매를 왜 다들 그렇게 비판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선생님은 다 학생 잘되라고 때리신 건데..
안타깝게도 열린 교육인지 수요자 중심 교육인지 그딴거 때문에 요즘 학교에는 체벌과 기합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초등학교 같은 경우는 거의 노는 분위기고..그래서 요즘 청소년들은 그토록 제멋대로에 엉망인가 봅니다..이대로 가다간 우리 교육 무너집니다.학생들 학력 저하됩니다.인성도 망가집니다..결국 쓰레기 인간만 양산하게 될 것입니다..교육은 아이들 즐거우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국가가 필요한 인력을 생산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모든 학교가 대안학교처럼 놀자판이 되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두울 것입니다--늘이



교사는 체벌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감정적인 게 아닌 사랑의 매 라면 가능합니다. 옛말에 미운놈 떡 하나 더주고 고운놈 매 한대 더때린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매 끝에 효자 난다는 말도 있고요. 자고로 옛말 틀린거 하나도 없다던데. 사실 교사의 권위를 바로세우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주입시키는 데 있어 체벌만큼 유용한 도구가 있을까요? 그리고 적당한 기합은 질서를 잡는데 유용합니다. --늘이
옛말이라는 것은 같다 붙이기 나름입니다. :) 아는 것이 힘이면서도 모르는 게 약이지 않습니까? :) -- RedPain

누구도 맞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늘이님이 말씀하시는 그 올바른 가치관이라는 것이 ChatMate는 사실 무용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파스칼은 위도가 세번 바뀌면 모든 법률이 뒤집힌다. 자오선이 진리를 결정한다라고 했었지요. 어떠한 가치관이, 특정한 사회범주를 넘어 다른 문화권으로 가면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문화인류학적으로 보면 지극히 타당한 말입니다. 개고기를 먹는 것은 악(惡)이다라는 가치관이 프랑스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 나라에 오면 통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어느 것이 올바르다라는 개념 자체가 가치중립적인 것이 아닌데 올바른 가치관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할까요? ChatMate의 생각에으로는, 세상에 올바른 가치관이라는 것은 없고, 단지 서로 다른 가치와 가치관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사의 권위를 세운다는 점 또한 그렇습니다. 인간은 원시채집/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이전하면서 끊임없이 인간을 억압하는 것들과 싸워왔습니다. 그 인간의 오랜 적들중 하나가 바로 그 '권위'라는 놈이지요. ChatMate는 권위라는 것이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를 짓누르는 수단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권위'로써 인간을 연령에 따라 수직적인 상하관계로 나누는 우리 나라의 인간관계 시스템 또한 그리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오륜에 있는 장유유서는, 단지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일뿐 상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고, 군신유의는 '상호간에' 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일 뿐 일방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유별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지 결코 상하관계가 아니며, 부자유친으로 부자간에는 친함이 있을 뿐 권위와 복종의 억압이 있지 아니합니다. '선생님'이라는 위치는 단순한 직업 이상의 것으로,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점에 이의는 없습니다. 그러나 존중과 존경이 있을 뿐 권위로써 학생을 억압해도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ChatMate는 억압과 통제에서 벗어난 사고,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사고를 꿈꾸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역시 십년가량 전부터 초등교육의 테마가 '열린교육'으로 바뀐 것도 이런 의미일거라고 생각합니다. --ChatMate

ChatMate님.올바른 가치관이란 한국인이 가진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사고를 말합니다..국민의 다수가 가진 가치관.보수적인 성향의 교과서적인 사고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근면성실,애국애족,경로효친 등이 있습니다..요즘 이공계기피현상이 심각한데 과학기술의 중요성도 부각시켜야 하지 않을까요--늘이

근면성실은 구시대 농경사회의 유물입니다.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에 이르른 현대에 있어서는 합리적인 가치관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가령 어느 회사에 일주일 내내 열심히 일하는데 1의 성과를 내는 사람과, 일주일에 한 시간 일하면서 10의 성과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10의 성과를 내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급여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근면은 여전히 미덕입니다만, 현실적인 덕목은 아닙니다. 미래를 열어가는 원동력은 보편적인 사고 보다는 자유로운 사고, 열린 사고에 있다고 ChatMate는 생각합니다. 보편적인 사고가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보편적이지 않은 사고는 그르다, 틀리다는 생각으로 빠지귀 쉽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잘못된 사람,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60억의 인간이 있으면 60억의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see also 다르다와틀리다

"내가 얘기하거나 질문하면 대답부터 해라, '예~' 이렇게." 중학교에 입학해 첫번째 주에 어떤 과목 수업시간에 들은 예기죠. 강요반 권유반의 목소리로. 그 후에 그게 습관이 되서 누가 뭐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예~"라고 대답하게 되었죠. 그게 온당하든 부당하든 명령이든 조언이든. 일단 대답을 하고 난 다음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그런 습관이 있다는걸 안건 최근의 일. 그걸 안 다음부턴 일부러 대답을 천천히 하려고 하죠. 실수아닌 실수를 하지 않기위해. 대화에 걸림돌을 끼워넣지 않기위해. --전진호

'교사'의 폭력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교사의 '폭력'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폭력'이라는 것이 인간 사회에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고(물론 필요하다는 쪽으로 결론이 날 것은 분명하다.), 결론이 나왔다면, 그 폭력이 가르치고 배우는 현장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를 그 때가서 이야기 해야 하지 않을까? 신체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심각한 충격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간과하기 쉽다. 역으로 학생들이 교사에게 주는 정신적인 폭력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권력을 가진 자가 정말 교사인가? --Crooner

ChatMate는 교사의 '폭력'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행위의 주체와 그의 사회적 지위가 문제시 된다기 보다는, '수단'으로서의 폭력이 정당한가에 대한 부정인 것일 테지요. ChatMateCrooner님의 "폭력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폭력", 그리고 "권력을 가진 자가 정말 교사인가"라는 물음은 진지하게 생각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ChatMate

교사의 '폭력'이 문제이기 때문에 '교사'의 폭력도 문제인 것이 아닌가요? --irenchel

폭력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ChatMate

초등학교때에는 쇠파이프로 맞고.. 중학교때에는 100대 맞고.. 고등학교때는 몽둥이 부러질 때까지 맞고... 맞으면 맞을수록 확실해지는 건 많이 맞는다고 성적이 올라가는건 아니라는 거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 아이들은 대부분 맷집이 좋았다. :) -휘랑
맷집이 좋았다는 말에 공감이 생겨 웃음이 나는군요. :) 저도 학교다닐 때는 참 맷집이 좋았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맷집이 좋아지더군요. 중학교때는 앉았다 일어나기라는 벌을 많이 주었는 데 일학년때는 백개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렸는 데 졸업할 때가 되니까 천개도 하더군요. -_-;; -- RedPain

RedPain은 학교에서 참는 법을 배웠다. 불의를 보고도 참는 법을 배웠다. 슬프다. RedPain은 잊어간다. 그 때 그 분노들을 잊어간다. -- RedPain

Lazylife는 현재 고3 입니다. 많은 분들에게 과거형인 교사의폭력이 저에게는 현재형인셈이지요:) 저 역시 재미있는 경험이 하나있지요. 중학교때였는데, 시를 써오라길래, 시를 쓰다가 운율을 맞춘답시고, 그 고귀하신 선생님이란 단어를 선생으로 줄였다는 이유로 그 시가 쓰여진 종이를 들고 교무실을 순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첫 사건이 발생한 국어수업후 국어선생님과 면담, 3학년부장이셨던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거쳐 고명하신 교감선생님과 면담도 했지요.
사실 저에게 폭력보다 더 적응하기 힘든것은 교사 개개인마다 너무 스타일이 틀리고, 학생은 수동적으로 맞춰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교사도 인간인 만큼 개인차가 있기 마련이지만, 다른 교사야 어떻게하든 내가 알바없고 내 수업에선 내가 하라는대로 해라! 이렇게 강요한다는 점입니다. 결국 학생들은 폭력교사에겐 슬슬 눈치보고, 만만한 경우는 버릇없이 대하도록 적응됩니다.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교육부의 지침역시 억울하면 신고해 새끼들아 식으로 무대뽀로 나가는 분들은 절대 언론에서 말하는 극히 소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학생들이 사회나가서 겪게될 일들을 미리 알려주시려는 깊은뜻이 있으신가봅니다. 학생들에게 어이구 맞았으니 경찰서에 신고하지 그러냐? 이딴 소리나 해대는 냉소적 인간에게 누가 학생들을 이렇게 되도록 만들었는지 되묻고 싶을때가 많습니다. (물론 교사들만의 책임은 아니겠지요.) -- 잘 아는 분야-_-가 나와서 약간 흥분한 Lazylife

학교 - 교도소보다 더 무서운 인권의 사각지대.
군대를 제외하고 남녀불문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

근데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을 줄은 처음 느꼈다. 그런데 왜 사회에서는 별로 문제화되고 있지 않은건지... 심히 궁금... --사니

다행히 Ruciel은 교사의 폭력에서 벗어났지만, 자식 낳아 학교에 보낼 생각을 하면 가슴이 무거워진다. 포기하고 살던가, 일일이 싸우면서 살던가... 벽은 높고 갈 길은 멀다. 에효~ --Ruciel

daybreak이 필사적으로 외국으로 도망가고자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교육현장에서 폭력문제이다. 학생과 학생 사이의 폭력, 학생과 교사 사이의 폭력은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이미 오래 전에 도를 지나쳤다. 이렇게 폭력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군대에서 또 2년 동안 일상화된 폭력을 접하고 사회로 나가면 과연 그들의 머리속에는 무엇이 있겠는가? 안되면 매로 다스려라 라는 말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세상에는 나처럼 죽을때까지 맞아도 꿈쩍도 안하는 인간도 드물지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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