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현 : 그럼 죽어야 하는가?
dotory :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고 그런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대게 사회에서 강요하는 성공, 전문가 되기 등이 자아실현으로 치장되어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여겨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무개 : 뭘 하며 살아야할 지를 고민하면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를 자신조차 모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가? 치열하게 고민하고도 그런 자기 소임을 알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이렇게 다시 묻는 게 낫지 않을까? 도대체 (주어진)그것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dotory : 뭘하며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포함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의문은 죽을 때까지 고민해야 할 문제이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갖고 있다고 해서 무엇을 할 지 몰라 항상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라도 그것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더 깊이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김우재 : 고민만 하다가 아무것도 못하지 않을까?
dotory : 고민을 한다는 것이 행동의 부재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김우재 : 탐그루의 명언이 해답의 실마리가 아닐까? 하고싶은 일보다 해야할 일이 먼저이다. 해야할 일을 하다보면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행동하면서 고민하는 것이 더낫지 않을까?
dotory : 행동하면서 고민하고 있고 그런 고민을 나누고 싶어서 질문을 했는데 질문이 너무 공허해 보이는 것일까?
아무개 : 뭘하며 살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속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까지 포함되는 걸로 봐서 이 질문은 매우 포괄적이기 때문에 논의하기가 힘이 들다는 차원에서 공허하게 느껴질 가능성도 있지는 않을까? 뭘 하든간에 나와 타인에게 고루 도움이 되고 기쁨이 되는 삶은 어떠할까?
dotory : 나와 타인에게 고루 도움이 되고 기쁨이 되는 삶은 어떤 삶일까?
아무개 : 그것은 개별적으로 판단할수 있는 일이 아닐까? 물고기는 헤엄치는 선수이고,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이지만 달리기 경주로 이들의 능력을 판가름하러 드는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 아닌가. 각기 타고난 품성속에서 나와 남에게 고루 이로운일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dotory :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가령 많은 사람들은 자연을 파괴해가며 그다지 쓸데없는 물건을 만들고 광고하고 파느라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 않는가? 남에게 고루 이로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산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찾는다는 것조차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지 않을까? 그리고 인간이 남에게 고루 이로운 일을 하는 품성을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없지 않을까?
아무개 : 어차피 삶은 각자의 위치에서 개개인이 고민하고 행동하는 만큼 발전해 가는, 결론 없는 과정은 아닐까?
dotory : 결론을 내려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과정을 고민해 보는 것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아무개 : 지금 함께 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김우재 : 하고 싶은 일을 해야할 일로 만드는 것이 잘사는 길이 아닐까?
아말감 : 지금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면 되지 않을까? 언제까지이든간에, 어떤 스케일이든간에,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SkidRow : 행복해 지기 위해서 사는게 아닐까여?? ^^;;
Ryan : 자신에게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Grisys :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느껴본 적 있는가? 선망의 대상은 누구인가? 그를 닮아보려고 노력한 적은 있는가?
그놈 :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이제까지 자신이 던져온 뭘 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선 현재의 일들이 자신에게 적합한가를 따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강철 : 소심한 분께는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정말로 원하는 일을요!" 라고 말해주는것.
인지 : 순간 순간 세상을 바르게 보고, 지금은 "도대체 뭘 하며 살아야 하는가?" 이렇게 고민하며 한번 행한 일은 열심히 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순간 순간 삶의 목적을 보다 바르게 살아가는 데 둘 수 있지 않을까?
Roman : 무엇이라는 대상은, 정말로 사람들의 얼굴만큼이나 다르다. 그렇다면, 어떻게라는 것은 좀 닮을 수 있지 않을까? 화엄경과 미야모토 무사시의 책은 서로 다른 대상을 쫓고 있지만, 그 법칙에 있어서는 닮은바가 있다고 한다. 시경과 바알신의 교리에도 일치하는 바가 있고, 스티븐 호킹의 이론과 정약용의 저서에도 비슷한 바가 있다고 한다. 물론 절대적인 일치점은 아니겠지만, 무얼이라는 것보다 어떻게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생활에도 응용되고, 말도 더 진지하고 흥미롭고 즐겁게 만드는 바가 있지 않을까?
맹이 : 꼭 목적이 있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 궁극적인 목적없이 바로바로 닥치는 상황에 대처하며 사는 삶은 어떠한가...
붉은바람 : 어떻게 죽을 것인가.
tsimshatsui : 꿈꾸며..
Roman : 일단 방아쇠를 당기고 나서 천천히 그 의미를 찾고, 변명거리를 찾는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는 도대체 뭘이라는 질문이 없는 것일까?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를테면, 내가 잡아당긴 방아쇠도 아니지만 난 세상에 발사되었다. 그담에 뭘하며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이 이미 답변하고 있는 중은 아닐까?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또한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고도 다른 질문이 되는 것인가?
kcjun 위에 어떤 분이 나와 타인에게 고루 도움이 되고 기쁨이 되는 삶은 어떤 삶일까?라고 쓰신 것을 보았습니다. 매우 좋은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을 둘로 나누어 1차적으로는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나를 만들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게 우선일 것입니다. (2차적으로) 그것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지역, 기업, 단체 등), 국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흔히들 거창하게 1류 국가, 1등 국가가 되어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고 인류를 보살펴야 한다는 식의 구호가 많습니다. 좀 웃기는 얘기라고 생각됩니다. 다른 나라에 피해만 주지 않아도 그 나라는 성공한 나라입니다. 개인도 그와 똑같지 않을까요?
맑은 :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나를 만들었을 때 타인을 생각한다면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anarch 테레사 수녀와 마돈나가 같은 여성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건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즉 자기목적성이 있는 삶이라면 현대처럼 다양한 삶이 가능한(혹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면서 잘 살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를 합니다. 어떤 순간에서도 자신이 판단를 내리고 그 판단에 대한 결과가 나쁘더라도 자신를 희생양이라고 생각 하지 않을 수 있는 삶.
bab2 : 밥먹고 살면 됩니다. 밥은 생활의 활력소입니다.
Frotw : 깨어있는 이 순간 순간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 두번도 세번도 아닌 인생. 즐기자!
휘랑 : 즐기지 못할 순간도 있는 법이 아닐까? 생을 즐기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살아가는 것 자체가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
클스 : 이런 엄청난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우선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한번 살아봐도 깨닫기 힘든 진리가 아닐까? 사는 목적은 그 목적자체를 알기 위한 것이 아닐까?
naya : 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인간이 산다는 것이 자연을 거스르는 것인데,(인간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체내의 엔트로피 증가를 억제해야한다.) 사는 것이 어떻게 쉬울 수가 있을까. 나는 그러한 어려운 내 삶을 살기 위해, 꿈꾸고, 행동한다. -- See Also 생명이란
코너리 : 고민하고, 행동하고, 즐기면서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뭘하면서 살아야할지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한 것 같은데... 문제는 '왜?'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육체적 문제, 외부적인 충격이 있을때만.. 허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말이 떠오르는건 왜그럴까? -- 허태완 2005-12-07
산다라는건 단순히 존재한다는 의미에 나만의 의미를 붙이는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전.. 항상.. 찾고 있는 상태이지만요 =) -- Weawen 2005-12-09 13:22:24
전.. 항상.. 찾고 있는 상태이지만요 =) -- Weawen 2005-12-09 13: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