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기술과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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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들

1.1. nonfiction의 생각


  • 과학 : 학문이다. 자연계에 있는 사실을 인간의 이성으로 재구성하여 언어와 기호로서 체계화 시켜 놓은 것이다.

  • 기술 : 일종의 skill이라고 본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술자란 어떤것을 잘 만드는 사람, 즉 장인을 뜻했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수공업품을 만드는 사람을 장인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 과학기술 : 뭐라고 해야하나.. 일단은 과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술이라고 하자. 도자기를 잘 만드는 도공을 보고 엔지니어라고 하지 않듯이 타일공장에서 타일에 들어가는 재료를 연구하고 공정을 관리하고 타일을 만들어 내는 엔지니어를 보고 도공이라고 하지 않는다. 아..맞다..그래 공학..공학이다... 공학이 대표적인 과학기술의 학문이다.

현재에는 거의 과학의 발전이라고 함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뜻하는것이 되어버렸다. 순수학문인 과학에 경제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부터다. 그리고 장인이라고 하는 말을 꼭 전통적인 것에만 쓰이는 것도 아니다. 편의상 위에서는 저렇게 나누었지만... 현재의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도 한 분야에 오래되어서 이성적인 지식뿐만이 아니라 경험적 지식이 상당히 쌓였을 때 장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경우는 거의 현장 기술직이지 연구직은 아니다.

현재의 상태를 보면 인간이 수천년을 쌓아왔던 기술이란 부분을 과학이 인간에 가깝게 만들어갈려는거 같다. 얼마나 비슷해 질지 앞으로 정말 궁금하다...

1.2. 잡종의 생각


과학이라는 말처럼 해석하기 힘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여태까지 들어온 짧은 지식으로서 판단해본다면 과학은 일단 서양에서 들어온것으로 판단해야 된다고 볼수 있습니다. nature 라고 부르는 대상을 보는 관점,이것을 자연과학이라고 부르도록 하지요 그리고 그 관점을 가능하게 하는 인식체계를 과학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적 인식체계가 반드시 기계론적 환원론적 인식 체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서양과학에 끼친 이슬람 과학의 영향 또 중세적 과학의 영향등을 고려해야 될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학 이라는 인식체계로서 사회를 바라본 것을 사회과학 이라고 하는것으로 잡종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은 기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이지요 기술은 기술이고 과학은 과학입니다.

기술은 원리가 아니고 경험의 축적으로 봐야 한다는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그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를 탐구하는 과학과는 차이가 있다고 봐야겠지요 야구선수가 공을 잘던지는 기술을 몸에 축적하고 있지만 그 원리는 몰라도 관계없다는 거친 비유를 하면 좀 더 이해가 쉬울지도..

그런데 이 차이는 좀 생각을 해봐야 알 수있는 문제입니다 왜냐면 요새는 과학과 기술이 너무나도 밀접하게 같이 움직이면서 우리의 인식을 헷갈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죠 nature의 원리를 이용하여 기술을 만들고 그 기술이 다시 새로운 자연과학을 만들어내는것이 다반사가 되다보니...

잡종은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기술과 과학적 연구 방법의 밀접한 상관 가능성에 대하여 보다 깊은 연구가 수행 되어야 하는것이 아닌지 하는점이다. 컴퓨터가 포탄 계산용으로 만들어진 것은 널리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현재의 인터넷도 강력한 네트워크를 수행하려고 만들어지기 시작한것이고... 이것과는 반대로 XML 처럼 장애인에게 웹을 제공하기위해 생겨난 언어도 있다. 이것은 비단 현대의 일은 아니다. 연금술과 근대화학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으니까 말이다. 결국 이런 사례들은 잡종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게 한다. 순수한 호기심이 과학의 한 원천인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과학자 개인 정신세계와 당대의 기술적 요구등등의 복합적 결과물로서 과학을 바라 보아야 하것이 아닐까? 과학자 스스로가 과연 이것이 어떤 맥락에서 이런 과학적 주제가 의미가 있는것인지 ,이런것에 대하여 본질적인 탐구없이 어떤 연구를 한다는것은 (비록 뚜렷한 문제의식이 과학을 망치고 어떤 독단을 증명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과학을 떨어뜨린다 할지라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든다. 혼란 스럽다. --잡종




1.3. 이정호의 생각

  1. 과학은 수학에 뿌리를 둔 논리적 구조체이다. 현대물리학에서 물리적 현상을 이론내에 두드려 맞추기 위하여 슈퍼스트링이론(흠 십수년전에 사이언스지에서 읽은 내용이라 지금은 어떤 이론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략 수십차원으로 미세물질이 운동하는 것 같다는 내용입니다.)과 같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그 자체로 논리일 뿐이다고 생각한다.
  2. 기술은 자연내 생물체의 필요에 의해 숙련,발전되는 경험의 축적이다.
  3. 과학기술은 과학이라는 기법으로 해석되고 발전해온 기술을 통칭하는 의미이다. 한의학은 과학적 기법으로 해석되지는 못하지만(눈에 보이지도 않고 감지되지도 않는다.), 과학적 기법을 많이 도입하고 있다. 중국에서 수술시에 마취제 대신에 침을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침은 전기적 펄스신호를 혈에다 연속적으로 보내는 방법을 사용한다.
  4. 과학기술은 만능이 아니다. 굳이 상대성 이론과 불확정성의 원리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과학기술의 능력을 대단하게 여기는 것은 조금 의문이 있다. 의학을 전공한 사람에게 '사람의 생명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보세요!'라고 물어보거나, 물리학을 전송한 사람들에게 '1초 뒤의 내 몸의 물리적 상태를 알 수 있는가'라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오히려 과학기술자들은 일자무식 할머니의 집으로를 선호하는게 아닌가 싶다. 과학기술이 돈과 결합하여 비인간적인 측면으로 많이 치우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본다.
  5. 과학기술보다 인간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니요 인간적인 것도 아니다.(무위자연?) 과학기술과 돈이 함께 모여 있는 미국에 전쟁과학기술이 최고로 발전해 있음은 돈과 결합한 과학기술의 비인간성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리라. 과학적 사고방식을 알아야 하고, 기술을 터득해야 하나, 과학기술을 어디다 사용할 것인가를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인터넷이 좋아서 프로그래머가 된 이정호란 작자는 아직도 인터넷을 온라인 고스톱치는데 주로 이용하고 있다. 돈과 적게 결합된 노스모크는 비교적 인간적인 주제를 토론하기가 좋다.


1.4. 라이온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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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인류사를 특정지우는 희대의 사건은 20세기를 통하여 기술(테크놀로지)과 과학(사이언스)의 본격적인 랑데뷰를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기술과 과학을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고 "기술과학"이니 "과학기술"이니 하고 무분별하게 말응 뭉뚱거려 사용하지만, 과학과 기술은 개념점으로 확연한 구분이 있는 것이다.

기술이란 본시 삶의 예술(the art of living)의 모든것을 지칭한다. 즉 기술이란 살아가는 방편으로서 필요한 모든 예술 즉 기예(테크닉)를 말하는 것이다. 까치가 휘엉청거리는 나뭇가지끝에 태풍에도 견디는 견고한 집을 짓는 것은 분명 까치의 "기술"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까치의 "과학"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과학이란, 인간의 지식을 특정지우는 어떠한 측면이다. 과학이란 본시 기술과는 무관한 인간의 사변 이성(Speculative Reason)의 산물인 것이다. 과학의 특징은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를 법칙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때, "법칙적"이라는 것은 대강 희랍인들에 의하여 "연역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는데, 이 연역적인 인간의 사유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수학"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깊게 얘기하지는 않겠는데, 이 과학이라는 것은 기술의 전제 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은 인간의 사변이 고도화되면서 생겨난 하나의 철학체계요, 지식체계와도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원시인들이 토기를 굽는 것은 "기술"이다. 그러나 그들이 토기를 구울때 과학이라는 연역적 전제를 꼭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흙과 불에댈한 과학적인 일반론을 전혀 몰랐을지라도, 놀랍게 훌륭한 토기를 구워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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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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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조선조의 목공예품을 보아도 그것은 디자인적으로나 크래프트맨쉽의 정밀성으로나 가히 세계 최고의 가품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명백히 세계최고의 기술의 대국인 조선의 후손들의 나라인 대한민국은 왜 이다지도 기술의 시대에 뒤진 모습을 하고 있는가? 왜 테크놀로지에 있어서 조차 일본의 꽁무니도 따라가기 어려운 수준에 머물고 있는가? 바로 여기에 대답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열쇠가, "과학과 기술의 랑데뷰"라는 이 한마디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부하던 과거의 찬란한 기술은 곧 과학의 전제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삶의 방편으로 개발된 것이다. 그것은 삶의 예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소위 개화를 통하여 경험해야만 했던 서양 콤플렉스는 바로, 과학과 기술이 본격적인 랑데뷰를 시작하여 구성한 새로운 문명에 대한 콤플렉스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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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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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기술의 랑데뷰! 이것은 순식간에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의 모습을 뻥튀겨 놓았다. 이미 예전의 쌀토락의 아니고 예전의 누룽지가 아니다. 이것은 천혀 다른 차원의 노름인것이다. 과학의 성과는 놀라운 기술의 진보를 가져왔다. 기술의 진보는 놀라웁게 우리의 과학적 사유의 영역을 넓혀갔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고, 개발의 영역이 아니었던 것이 마구 개발될 수 있게 되고, 인간사유의 대상조차 아니었던 것들이 마구 인간 사유의 영역속으로 들어왔다. 공상이 마구 현실로 변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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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노자와 21세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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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비슷한 주제의 내용을 발견하여 올려봅니다. 원론적으로 과학과 기술은 서로 무관하다는것이 그 특징이군요. 그런데 무관하던 이 두가지의 영역이 서로 만나는곳에서, 즉 기술속으로 과학이 들어오거나 혹은 과학속으로 기술이 들어가는 현상속에서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속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점이 생기는군요. 전쟁무기의 발달,유전공학의 발달,기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생태계 파괴등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문제점들이 파생되서 아주 복잡해집니다. 차라리 불편하더라도 단순하던 예전 기술의 시대가 그리워질 정도로 말이죠..----
See Also 과학기술과생명의괴리



2. 두 가지 생각

2.1. 과학자와 공학자의 창작활동 (gerecter의 생각)

nonfiction을 따라서...

  • 기술 : 사람이 동물과 구분되는 사회화 요소로서 창작하는 것 들 중에서, 주로 경제적 목적, 생산적 목적에 치우친 것. 예를 들면, 그림 그리는 것은 예술이고, 씨뿌리는 일은 기술이다. 그러나, 결코 절대적이지는 않다. "그림을 잘 그리는 기술"이 존재할 수 있고, 씨를 뿌려 식물을 재배하는 원예, 분재 예술이 존재할 수 있다. 다만, 그 원천을 따져볼 때 그러하다는 것이다. 예컨데 기술이란 사회화와 지능적 연마의 고도화에 의해 갖게된 인간의 독특한 술수, 수법을 총칭한다.


  • 과학 (자연과학에 한정) : 기술 중에서 자연현상의 양상에 대한 논리적 분석과 예측을 위한 것으로 전문화된 것. 나아가 그 기술이 자연철학적 방법론을 도입하여 자체로서 예술성을 갖고 있는 것. 예를 들면 뉴턴역학은 천체의 움직임을 비롯한 만물의 관성 운동을 수학을 사용해 표현하기 위한 기술 이다. 그 자체로 미학적인 가치와 인간 논리의 기교에 대한 감탄을 불러 올 수 있다.

    단, 예술에 대한 평가가 순수한 독창성과 미학적 가치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반면, 과학은 경제성의 논리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기 힘들다. 티코 브라헤가 기록한 수천개의 표로 행성의 움직임을 알 수 있고, 허블의 설명으로도 행성의 움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허블의 설명을 따르는 것이 경제적이며, 다른 곳에 활용할 수 있는 활용도면에서도 이득이 크기 때문에 티코 브라헤의 표와는 다른 과학적 가치를 갖는다.

    과학은 독창적이고 신기하며 재미있어 보인다고 해도, 실제로 자연을 설명하는 효율이 떨어지거나, 의심스러우면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SeeAlso 물은답을알고있다

    다른 예로, 사바나 초원에서 뛰어노는 영양 무리들을 보는 것은, 문학적 기록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영화 촬영이 될 수도 있고, 그냥 휴가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무리의 행태를 표로 만들거나 복식부기( :-> ) 로 기록하거나, 특정행동을 원칙을 정해 촬영하여 어떤 사실을 분석하는 기술이 합쳐지면, 동물생태학이라는 과학의 영역이 된다.


  • 과학기술 : 과학의 경제적 활용과, 기술로서의 과학이라는 위상을 강조한 표현. 현대 과학에서 과학기술 이라는 어휘는 과학 이라는 어휘와 지칭하는 바가 많은 부분 겹친다.


과학적 발견 은 보이지 않던 것을 보고 단지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창조의 연속이며, 기술을 가다듬는 과정이다. 이상기체방정식 은 과학적 발견의 영역이지만, 결코 공기중에 PV=nRT 라는 데카르트적이고 뉴턴적인 표현이 떠다닌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당장 지금부터 4분26초가 지나면, 온 우주의 모든 기체들이 PV=nR/T 에 맞춰 움직일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우리가 과학 법칙의 영원불변함을 믿을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인간이 보기에 예전부터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추정되는 것을, 가장 다루기 간편한 방식으로 쓰기 좋게 만드는 기술 이 과학인 것일 뿐이다. SeeAlso 기회원인론

과학적 발견은 수학을 사용하건,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건 사실에 대한 분석 기술과 이해 기술을 제시하는 과정이다. 양자역학 이전에도, 흑체복사는 충분히 묘사되고 실험되었지만, 양자역학은 그에 대한 창조적인 새로운 설명과, 그에 걸맞는 새로운 사실 묘사 기술로부터 성립되었다.

gerecter는 과학자, 공학자, 기술자, 사이언티스트, 엔지니어, 테크니션과 같은 인간의 범주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작업에 대해 순수과학적인면과 응용공학적인 면이 있고, 기술적인 면이 있을 뿐이지 이 영역들은 분절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공학자이면서 기술자들이고, 많은 기술자들은 공학자이면서 과학자의 태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자동차를 정비할 때 고장난 원인과 좋은 수리방법을 판단하는 기술이 어떻게 전혀 공학적인면과 과학적인면이 없다고 할 것인가?

많은 초보 프로그래머들은 프로그래머와 코더, 알고리즘 설계자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업에서 어떠한 코딩 작업하는 사람이 자기는 "절대적으로 코더일 뿐"이라고 생각할까. 추상적인 분류는 추상적인 한 극단일 뿐, 현실을 자르는 칼이 되어서는 안된다.

뉴턴 이후 어떠한 과학적 진보도 기술을 배제하고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골의 낡은 책상에 앉아 머리속으로 궁리한 뜬금없는 사고 실험만으로 근대 과학에 족적을 남긴 사람은 AlbertEinstein 이라는, 1차대전 이후의 언론선정주의가 만들어낸 과학의 우상 한 명 뿐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조차도, 자기 논문의 제목을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 동력학"이라고 붙였다. 19세기말 20세기초의 기술적인 전기 유행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다고 할 것인가.


2.2. 그러나, 최소한 물리학자는 창작자가 아님 (musiki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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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물리학자는 창작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발견을 하는 사람에 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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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학자와 공학자를 동등하게 보는 시각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당연히 엔지니어는 어느정도 과학자여야 한다. 그러나 과학을 대하는 자세가 전혀 다르다. 엔지니어는 수단으로서의 과학을 연구하고 과학자는 목적으로서의 과학을 연구한다.

  2. 과학자는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창작을 하는 사람을 지향해야 한다고본다. 그러나 최소한 물리학은 다른 학문들과 다른 성격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들은 가능한 발견을 하는 사람들에 한정된다. 전적으로 수학적 엄밀성에 의한 자동기술에 의존하는 이들의 연구나 이론은 창작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자연 본연의 특성을 발견해내는 것이 물리학이다. 이론물리학은 심지어 기술을 선도해 나가기도 한다. 과학적 실험이나 연구중에는 기술종속적인 것이 많이 있다. 그중에도 최소한 이론물리학은 기술에 종속되지 않는다.

  3. 그러나 마치 일련의 이론물리학 법칙들은 수학을 일종의 기술(Technique)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gerecter님의 지적대로 이런 것을 어떠한 의미에서 보면 마치 기술종속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수학 역시 자연속에 내재된 원리가 자동기술을 통해 발견된 것일 뿐이지 역시 창작물은 아니다. 수학도 발견이고 이러한 수학에서 파생된 물리학법칙 역시 발견일망정 창조는 아니다. 수학식발견->수식을 기술화->물리학발견에 응용 이런 과정이 이뤄졌다고 해서 물리학이 기술종속이라 주장할수는 없을 것이다.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 동력학"은 기술적인 전기 유행과는 전혀 동떨어진 채, 맥스웰 방정식의 단순한 가정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아인슈타인이 아닌 이론물리학자들은 실험과 전혀 별개의 사고실험만으로 근대 과학에 족적을 늘려왔다. 맥스웰, 볼츠만, 빈, 플랑크, AlbertEinstein , 보어, 하이젠베르크 특히 파울리 (SeeAlso 파울리효과) 등은 하나같이 실험과는 담을 쌓은 사람들이다. 과학에는 당대의 유행이라는 것이 있겠지만 그것이 당대의 기술적 관점이나 능력을 뛰어넘었던 것은 어느때고 항시 있어왔다.

    실제로 볼츠만의 통계역학은 그로부터 수십년 후에야 컴퓨터의 개발로 어느정도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졌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결과물 역시 당대의 발견들을 일찌기 뛰어넘는 것이었다. 볼츠만과 아인슈타인의 통계적 수단이 일찌기 도입된 후에야 양자역학이라는 것과 그 현상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양자역학은 기술적인 실험결과들을 뛰어넘어 보다 많은 것들을 예측했고, 우리는 STM 등의 기술개발이 이를 뒤따른 후에야 이에 대한 실증작업을 마치기에 이르렀다.

  4. 과학기술은 이러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응용, 파생시킨 기술들을 말한다. 수학적, 과학적 발견들을 기술로 승화시키는 것은 분명 창조적 행위이며 물리학자들도 이러한 창조적 행위를 통해 수학적 발견을 기술로 응용해 물리학 법칙을 만든다. 그러나 결국 목적하는 바는 창조가 아니라 자연 본연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창조적 행위를 수반할 망정 그자체가 창조행위는 아닌 것이다. 애초부터 수학 자체가 자연에 내재된, 발견된 것이지 창조물은 아니다. 수학, 이론물리학은 기술선도적인 것이지 기술종속적인 것이 아니다. 기술에서 물리학이 파생된 것이 아니라 물리학에서 기술이 파생된 것이다.

See Also 사이비과학

2.3. 하지만, 공학과 과학은 연결됨 (gerecter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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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공학은 고전적인 과학의 다른 두 방향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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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분으로 나눠서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과학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 대한 부분과, 사실 관계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하의 내용은 musiki님이, 앞에 하신 말씀의 내용을 고쳐쓰시기 이전의 내용에 대해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원래 musiki님의 애초 문제제기는 [http]이 링크의 마지막 부분 에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원래는 최소한 이론물리학 이라는 한정 없이, 과학 전반에 대한 서술이었습니다. musiki님은 이후의, 정리 과정에서 앞의 내용을 수정하셨습니다. 따라서 이하의 내용은 바로 위의 내용과는 직접 연결이 껄끄러운 면이 있습니다.

2.3.1. 관점에 대한 견해차

첫째로, 과학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만, 노스모키안의 의사소통을 위해서 최대한 쉬운 말만 사용하고자 합니다. 토론최소주의에 약간 어긋나는 면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2.3.2. 과학은 창작

우선 musiki님은 창작발견 과 대비 시키시면서, 과학자와 공학자를 분명히 구분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거듭, 과학 자체에 창작의 속성이 강함 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질량에 비례하는 중력이 존재함을 뉴턴이 발견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중력이 존재한다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다만, 행성의 움직임일 뿐입니다. 행성의 움직임은, 복잡한 궤도 도표로 오차의 한계 내에서 설명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중력 이론 대신 궤도 도표가 행성의 움직임을 표현하는데 충분합니다. 다만 중력 이론은 더 간편하고 사용하기 좋으며, 보기에 아름답다는 장점이 있을 뿐입니다.

똑같은 것을 표현하는데, 더 효율적이고 멋있는 방법을 뉴턴이 창작 한 것 뿐입니다.

아시다시피, 뉴턴 시대 이후에 천문학과 정밀 계측이 발전하면서 행성의 움직임 이외에도 중력 이론이 적용되는 대상은 더 넓어 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력 이론이 "정말로 절대 불변 지고 순수의 진리이며, 우주의 심연에 숨겨졌던 공식을 뉴턴이 단지 엿본 것 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주의 저편 어딘가에 거리의 161.72 승에 반비례하는 정도로 서로 밀어내는 작은 덩어리 한 두 개가 있을지 모릅니다. musiki식으로 말씀드리자면, 다만, 우리가 보기에 중력 이론은 충분히 모든 곳에 사용할 수 있는 근사라고 믿고 있을 뿐입니다. 그정도로, 과학적 이론, 과학적 사실로 충분히 가치를 갖습니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귀납적 입니다. 우주 전체에 대해 모든 경우에 이론이 성립하는지 검증할 방법도 없고, 또한 지금 검증이 되었다고 해서, 크리스마스가 지날 때까지 계속 성립하고 있을지 장담할 근거도 없습니다. 굉장히 많은 경우에 그런 것처럼 보이니까, 항상 그렇다고 믿자, 라는 정도 입니다.

역학과 전자기학을 지탱하는 모든 사실들은 옛날부터 우리가 보기에 항상 그랬던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그러한 관찰의 절대적인 보편성과 불변성이 법전이나 선생님에 의해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은, 다만 그러한 경험의 위에서 그런 경험들을 가장 유용하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창작된 도구 일 뿐이라고 봅니다.

당연히 우리가 고민할 문제는 귀납적인 사실들을 과학적인 사실로 인정할만한 경계선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일 겁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천동설은 틀렸습니다.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것은 태양을 설명하기에는 단순하고 편리합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부족합다고 봅니다. 화성과 금성을 설명하기에도 부적합하고, 연주시차를 설명하기에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화성과 금성, 연주시차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에 비해 중성 원자에 궤도 전자가 있다는 이론은 옳습니다.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원자를 다 살펴 보지도 않았고, 태양계 밖에 있는 원자는 하나도 살펴 보지 않았지만 그런 것에 상관 없이 전자이론을 옳다고 봅니다. 그것은 원자에 전자가 있다는 이론으로 충분히 유용하고 재미있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고, 현대 인류의 관심사를 다루는 다른 많은 주제에 적용해도 쓸만하기 때문입니다.

즉, 의심스런 사실이 과학적 사실로 인정되는 것은 지극히 기술적이고 예술적인 (art) 과정입니다.

2.3.3. 실험 없는 이론

다른 각도에서 살펴 보겠습니다. musiki님께서는 실험적 근거 없이 실험에 앞서 성장한 바 있는 몇몇 과학적 사건들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과학적 발견들은 그야말로, 순수한 창작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실험 근거도 없이 그냥 과학자가 상상한 이론이 과학적 의견으로 토론되고 연구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아인슈타인 분포에 해당하는 현상이 정확히 관측되기도 전에 아인슈타인 분포가 이론화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과학적 발견의 창작적 속성을 대표합니다.

"아인슈타인 분포"와 같은 개념은 논리와 이야기하는 현상이 재미있고 신기합니다. 따라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창작된 예술품을 평가하는 기준과 같습니다.

혹은 지금까지 이야기된 많은 이론들을 종합하고 정리해서 간단히 하고 연역한 결과 필연적인 귀결로 얻은 것일 수 있습니다. 말을 바꾸면, 복잡한 원리를 연결하여 간단히 사용할 수 있는 계산식이나 좋은 직관을 줄 수 있는 표현식을 쓴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강판 대신에 사용할 수 있는 믹서를 만든 것이며, 이것은 공학자나 발명가들이 하는 일과 같습니다.

2.3.4. 과학, 공학, 기술

과학과 공학은 고전적인 과학의 다른 두 방향일 뿐입니다. 공학은 주로 경제적 유용성에 염두를 두고 연구분야를 찾고, 과학은 과학자들이 갖고 있는 미적 감각에 염두를 두고 주로 연구 분야를 찾는다는데서 차이가 벌어질 뿐이지, 두 분야에서 사용하는 방법과 연구자료에 대한 태도는 같습니다. 게다가 CERN에서 공학자들이 더 좋은 기계를 만들어서 쿼크를 찾고, 삼성에서는 물리학자들이 최신이론으로 반도체를 만듭니다.

보편적으로 말하는 기술이란, 공학과 과학에서 목표로 하는 경지를 인간 노동에 대한 입장에서 본 것이며, 여기에 기술-과학-공학-과학기술의 연관관계가 있습니다.

musiki님이 생각하고 계신, 기술이 만들어낸 실험결과를 설명하는 이론물리학자가 아닌, 기술력과 실험자체를 선도해온 이론물리학자 라는 제한적인 사람들은 기술-과학-공학-과학기술의 연관 관계가 위에서 언급한 극단적인 예와 다소 달라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위에서 언급했듯이 창작 과정으로서 과학을 하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동시에 과학자 중에 몇몇이 구분되어서 "그런 사람"인 것이 아니라, 과학의 요소 중에 그런 면이 있으며 모든 과학자들이 그럴 때가 있을 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평생 동안, 플랑크는 초기에 스스로 그런 것 하는 과학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감히 그것을 중세의 잔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그런 생각이 꽤 많이 퍼져 있는 것은 아인슈타인에 대한 저널리즘이 박스 오피스 흥행성적이 좋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2.3.5. 사실에 대한 견해차

둘째로, 사실 확인에 관한 문제인데, 우선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 동력학"이라는 제목으로 하필 아인슈타인이 연구하고 논문을 발표한 것이, 19세기말 20세기초의 기술적 관심사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하는 것이 제 요점이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기술적 유행에 영향을 받은 직접적 결과라고 봅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냥 우연히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은 학술지에 나온 맥스웰 방정식들이 "멋져 보여서" 시작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과학자라는 사람은 사회적인 기술의 향방에 영향을 받지 않기 어렵다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야기해 본 제 추측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문말에 의문문의 형식으로 쓴 것입니다.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실험과 담을 쌓은 과학자"로 언급한 사람들 중에, 볼츠만, 빈, 플랑크, 보어 등등은 스스로 실험을 열심히 하지 않았을 지라도 실험 결과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입니다. 보어 같은 사람은 실력이 부족했을 뿐이지 실제로 전자기 실험을 꽤 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인명사전에 오르게한 연구들은 그들이 실험에 가진 관심과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맥스웰은 자기 자신의 연구는 실험과 거리를 두는 편이었지만, 항상 실험을 중요하게 여겨 왔고, 하이젠베르크가 2차대전중의 독일의 원자폭탄 계획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다 못해, musiki님이 말씀하시는 과학자들도 미적분학, 텐서해석학을 비롯한 많은 수학연구의 결과를 기술로서 사용하고 있음은 자명합니다. 이러한 기술없이, 자연철학적 추론만으로 그들의 핵심적인 연구결과를 얻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론물리는 대표적인 과학의 한 분야로서, 역시나 기술과 강한 상관관계가 있으며, 종속적이라고도 할 수 있고, 가끔 종속적이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충분히 과학기술이라는 말의 어감에 포함될 범위에 있다고 봅니다.


2.4. 그렇다면, 과학법칙의 제일성은? (musiki의 답변)

{{|
물리학법칙의 경우 공학자의 발명품과는 달리 다른 사람이 발견했어도 완전히 똑같은 형태 의 공식이 나올 수 밖에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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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법칙의 경우 공학자의 발명품과는 달리 다른 사람이 발견했어도 완전히 똑같은 형태 의 공식이 나올 수 밖에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이러한 뉴턴의 중력법칙이나 역학적 법칙들은 하나같이 라플라시안의 방식으로 나온 방정식들과 손톱만큼도 차이가 없는 결과를 나타냅니다. 로렌츠와 아인슈타인과 민코프스키는 전혀 다른 가정에서 시작했음에도 똑같은 로렌츠 변환식을 유도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정확하고 엄밀히 다룬 방정식이라면 누가 개발했어도 똑같은 형태가 나와야만 옳습니다. 창작이라면 발견자에 따라 그 방정식이 달라야만 옳습니다.

  2. 양자역학의 이론으로 잘알려진 슈레딩거 방정식의 경우 슈레딩거와 전혀 다른 사람 (하이젠베르크)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개발했음에도 두 방정식은 완전히 똑같은 결과물임이 증명된 바 있습니다. 파동방정식을 사용한 슈레딩거와 행렬역학을 사용한 하이젠베르크는 전혀 다른 모양새를 가진 방정식을 창조했지만 결국 이 둘은 완벽히 같은 방법이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결국 과학자들의 창조물은 자연의 법칙을 엿본것에 불과할 뿐,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은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3. 가장 최근에도 디랙방정식을 파인만과 슈윙어 도모나가 박사가 모두 전혀 다른 방법을 통해 해를 발견했음에도 그 방식은 완전히 똑같은 방식임이 알려졌으며, 완전히 똑같은 해를 보여준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4. 그밖에 "이 식을 신이 썼는가?"라는 소리를 듣는 맥스웰 방정식도, 볼츠만 팩터도, 광학에 대한 이론이나 파동방정식도, 완전히 똑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 밖에 없음이 자명합니다.

  5. 심지어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일반상대성이론의 해와 실제 관측내용이 틀리다면 "그것은 신이 틀린 것"이라 단언할 정도였습니다. 수학적으로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논리정연한 법칙은 자연과 일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창조가 아니라 누가 발견해도 마찬가지인 자연 그 자체에 내재된 법칙의 발견에 불과합니다.

결국 정확한 법칙이라면, 창작일 수 없고 발견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다소 주관적인 소프트 사이언스, 사회과학, 생물학 등에서의 법칙의 경우 "필요한 곳에 필요한 이론을" 삽입하는 창작물일 수 있겠지만 진정한 우주 본연의 법칙을 다루는 학문의 경우 이는 전적으로 "수학적"인 "자동기술"에 의해 서술 될 수 밖에 없으며, 이는 누군가의 창작이 아니라 우주의 창조와 동시에 내재된 수학적 법칙의 발견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를 에어디쉬는 {{|"신의 책에 쓰여진 바로 그것"|}}이라 표현했습니다.

같은 미분을 d/dx 로 쓰던 x닷으로 쓰건 이러한 기호적 측면이나 수식의 구성 정도는 창조라 할 수 있겠지만 이 내재된 법칙 자체는 뉴턴의 발견과 라이프니츠의 발견히 완전히 같은 형태였던 것처럼 누가 발견했건 똑같은 것 이 나올 수 밖에 없고 다른 것이 나왔다면 그것은 어떠한 과학자의 창조물일 뿐이지 틀린 것 이 분명합니다. 맞는 물리 법칙이라면 지구의 어느 누가 계산해도 똑같아야만 합니다. 수식과 실험이 일치한다면 어느 누구도 여기에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는 점을 감안해주셔야 할 겁니다.

수학적 기술은 처음에는 단순히 문제를 푸는 잡기술 정도로 치부되어 사용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플랑크가 일단 수학적 테크닉을 이용해 야바위로 방정식을 세운 후에는 이 방정식 속에서 오히려 자연의 원리를 찾아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됩니다. 수학적 논증은 테크닉 따위가 아니라 이 역시 자연원리의 발견이며 역시 누가 계산해도 완전히 같은 결과물을 낳아야 옳습니다. 수학적 서술은 역시 창조물이 아닌 발견품이며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라 자연 그자체를 내재하고 있습니다. 신의 책에 쓰여진 바로 그것 말입니다.

이론물리학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자가 아닙니다. 내재하는 기본 원리를 탐구하는 탐구자이며 발견자일 뿐입니다. 콜롬버스는 실존하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발견자이지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창조한 창조자가 아닙니다. 다른과학은 gerecter님의 표현과 틀릴바없더라도 최소한 이론물리에는 다른 관점을 견지하심이 옳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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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한편, 표현의 다양성을 주목함 (답변에 대해서, gerecter가)

{{|
과학법칙의 경우 공학자의 발명품처럼 똑같은 사실을 두고도 완전히 다른 형태의 방식을 사용할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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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용 역시, musiki님이 토론 후 내용을 고쳐쓰시기 이전의 것에 대한 생각으로 썼던 것입니다. [http]원래 musiki님이 쓰신글은 이 링크의 마지막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원래의 내용은 과학법칙의 경우 공학자의 발명품처럼 똑같은 사실을 두고도 완전히 다른 형태의 방식을 사용할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로 시작하는 것으로, 다소 보편적인 과학자체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musiki님의 이야기에 운율을 맞춰보자면,

과학법칙의 경우 공학자의 발명품처럼 똑같은 사실을 두고도 완전히 다른 형태의 방식을 사용할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같은 결과와 같은 내용을 두고도 뉴턴의 중력법칙과 역학법칙들과는 사용 용도와 활용 가치, 유추하고 연역하기 용이한 과학적 대상의 범위가 상당히 다른 라플라시안의 방식이 개발되었습니다. 과학이 기술, 공학과 전혀 다른 절대불변 진리의 묘사일 뿐이라면, 이미 발견된 법칙을 다른 활용을 할 수 있는 수단을 추가하는 것은 의미가 희박해 집니다. 라플라시안의 방식이 과학적으로 큰 가치를 갖는 것은 과학법칙의 기술적 가치가 존중받는 다는 증거입니다.

  2. 양자역학의 이론으로 잘 알려진 슈레딩거 방정식의 경우, 같은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다른 사람이 전혀 다른 방법을 사용했으며, 두 방정식의 과학적 가치는 동시에 어느 하나 무시하기 어려울만큼 중요합니다. 결국 이 둘을 여러가지 수학의 기교와 도구를 사용하여 하나로 통합해서 이해하는 기법 역시 후에 제시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의 창조물이 자연의 위대한 순수법칙을 엿본 어마어마한 것이라면, 통합적이고 단순한 형태가 먼저 제시되고, 그 활용방식으로 두 가지 방식이 후에 연구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은 반증가능성을 갖고 있는 귀납적인 것이며, 두 학자의 귀납적인 추측을 더 보편적인 수준의 다른 귀납적인 추측으로 발전하는 형태로 실제 연구는 진행되었습니다.

  3. 말씀하신대로 최근의 디랙방정식의 풀이에 관한 연구 역시, 같은 사실을 두고 연구자 마다 서로 다른 여러가지 창작이 가능합니다.

  4. 맥스웰 방정식, 볼츠만 팩터, 광학이론, 파동 방정식 역시 절대적이고 가장 순수한 형태의 법칙이 아니라, 언제든지 반증될 우려가 있지만, 특정 제약이내에서 믿을 수 있고 쓸만하다고 생각되는 도구입니다.

  5.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논리 정연한 법칙이란, 자연 중에서 어느 부분을 어떠한 방식으로 묘사할 것이냐에 따라, 묘사하는 사람의 예술적인 창작 작업과 기술적인 솜씨에 따라 나타낸 결과물입니다. musiki님의 표현대로, 수학적으로 자연을 묘사한다면, 묘사할 대상과 그 성격을 한정하고, 사용할 수학적 도구를 무엇으로 하느냐에 대한 그 창작 행위의 결과로서 우리는 참신한 과학 법칙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musiki님은 우선 우주에는 법전의 조항 처럼 몇가지 법칙이 있고, 그 법칙을 우주의 모든 요소들이 착실히 준수하면서 째깍째깍 돌아간다는 우주관을 갖고 계신 듯 합니다. 또한 수학은 자명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수학을 인간이 생각한 여러가지 추상적인 개념들을 유용하고 큰 모순 없이 다루는 방법을 개발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의견에는 어느 정도 문제점을 느끼시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우주관, 수학관의 차이는 다른 페이지에서 논의 될만한 것이며, 또한 양립할만한 철학적인 문제이기에 사실 한 쪽으로 결론이 날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또 기술과 과학, 공학의 위상에 대해서 다루는 이 페이지에서 과학은 창작인가 라는 주제에 대해서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빠진 논의 역시 추후에 ExtractPage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저는 musiki님의 우주관과 수학관을 인정한다고 해도, 과학은 본질적으로 창작의 과정이며, 이러한 속성 때문에 가장 원형적인 순수과학조차 기술 개발과정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설령, 우주의 시계장치 라든가, 우주의 소스 코드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과학적 발견은 그러한 우주의 궁극 법칙, 그 자체가 아닙니다.

musiki님께서는, 고전역학, 상대론, 양자론, 통일장이론의 여러 발전 과정에서 무수히 우주를 이해하는 시각이 달라지고 개량되어 왔음을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어느 과학 법칙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논리와 지적인 관심사 내에서 창작된 것이며 절대적인 불변성을 담보할 수는 없습니다.

항상 과학 법칙은 더 좋은 과학 법칙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설령 저 어디엔가에 절대적 진리가 있다고 해도, 과학의 연구과정은 항상 그 절대적 진리를 추측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과학자는 기존에 존재하는 난잡한 법칙들을 더 보기 좋고 이해하기 편하며 활용하기 좋도록 통합하고 정리해 나가며, 이는 결국 공학적이고 기술적인 과정입니다. 언급하신 뉴턴 역학과 라플라시안의 방식의 관계라든가, 상대론에 대한 민코프스키의 전개는 그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한편, 미처 기존의 과학법칙이 다루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 관심을 얻고 새로운 추측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실험과 그 관찰이 필요하고, 이는 역시나 공학적이고 기술적인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전자를 비롯한 소립자 실험과 언급하신 슈레딩거 방정식 이 나오기 까지 필요했던 관찰결과들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만 합니다.

제시해 주신 예를 사용한다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플랑크는 새로운 실험식을 임의로 만들 수 있었으며, 이 실험식을 쉽게 이해하고 간편하게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양자라는 새로운 설명 도구를 창안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 전까지 수립되었던 고전적 운동과 에너지에 대한 기술은 부분적으로 부정되고 제약을 갖게 되었으며, 작용양자를 그 때까지 이해하고 있던 여러 현상들과 아울러 설명하기 위해 많은 양자역학적 설명들이 제안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새로운 계산 기법이나 교묘한 타 분야의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보다 성능이 좋은 기계를 설계하는 과정과 생각하고 고민하는 방법에 있어서 차이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musiki님은 이 페이지의 이전 글에서 과학자와 과학기술자를 구분하여 후자를 실생활에 과학을 활용하는 사람으로 창작하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musiki님이 한정하신 과학자 역시, 인간의 축적된 이해력을 바탕으로 그 안에서 활용과 개선에 대해 궁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분법 구분은 경제적인 직접적인 연계관계를 잣대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방법론을 따져서는 성립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더군다나 경제적인 연계관계로 과학자과학기술자를 구분하려고 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과학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 보면, 기술과 과학의 모호함은 더더욱 확대 될 뿐입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musiki님처럼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상태에서, 현실을 무시하고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구분 그 자체만을 시도한다고 해도, 기술과 과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은 자명합니다. 기술의 발전과 과학의 발전은 실험과 이론의 관계, 과학과 수학의 관계, 수학과 논리의 관계처럼 유기적이고 점이적인 것입니다. 여러번 강조해 왔듯이, 그것은 서로 대립하고 서로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팀, 한 기관에서 다루는 과학적이고도 기술적인 대상의 두 가지 양상일 뿐입니다.

저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과학자상과 과학연구의 방법에 비해, 책을 쓰는 사람들이 고매하고 숭고한 과학의 속성을 필요 이상으로 호도하고 '괴상하고 신기한 어떤것'으로 왜곡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맥스웰 방정식은 신이 쓴 것이 아니라 맥스웰이 쓴 것이고, 일식 관측이 틀렸다면 신의 계산이 틀린 것이 아니라 관측기술이 부족했거나 아인슈타인이 틀린 것일 겁니다. 에어디쉬는 좋은 증명에게 "신의 책에 쓰여진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는 아이에게는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십니다.

2.6. 결국, 창조의 본질을 따져봄 (musiki의 두번째 답변)

{{|과학법칙이 같은 사실을 두고 완전히 다른 형태의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착오입니다. 1/2mv^2을 p=mv니까 p^2/2m 으로 표시한다고 새로운 창조물이 되지는 않습니다. 단지 보이는 겉모습이 다르다고 새로운 창조물은 아닙니다.|}}

아직도 오해하고 계시거나 아전인수적 해석하시는 점이 많습니다.

  1. 라플라시안과 뉴터니안 역학의 껍데기가 다른 것은 기술적 관점이지만 알맹이가 똑같은 것은 결국 기술적으로 다른 방법을 쓰더라도 똑같은 알맹이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한것입니다. 두방식은 같은 문제를 풀때 서로 기호하나 안틀린 방정식을 똑같이 생성해냅니다. 완전히 똑같은 방식이란 말입니다. 만약 뉴턴이 1/2mv^2 이라는 방정식을 만들었을때 저는 1/2질(량)속(도)^2 혹은 질속속/2 혹은 mv^2/2 라고 약간 기술적으로 새로이 표기하면 제가 이 법칙을 창조한게 되나요? 그건 아니겠죠? 겉모양만 다르다고 창조라니요. 그리고 더 엄밀히 말해 라플라시안은 기술적 관점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태생 자체가 신앙적 관점에서 나온겁니다. 신기술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방법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적 관점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입니다. 그럼에도 결국 둘다 똑같은 결과물을 낳습니다. 과학법칙의 기술적 가치가 존중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과학법칙은 기술 그자체가 아니라는 것 뿐입니다. 기술로 과학법칙을 표현한다고 해서 과학법칙=기술 인건 아닙니다. 마치 과학과 공학간의 계층을 나눈다는 듯이 자꾸 몰아세우시는데 위계질서나 중세시대 계서제 같은 상하계층이 있는건 아니라도하는일이 다른건 다른겁니다. 과학법칙은 이미 우주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고 기술(Technic)은 이를 말그대로 기술(Subscribe)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기술하기 위한 기술은 각기 다를 수 있지만 내재된 알맹이는 불변이라는 것이고 누가 어떠한 기술을 통해 발견하건간에 궁극적으로 완전히 일치할 수 밖에 없습니다.

  2. 둘을 여러가지 수학의 기교와 도구를 사용하여 하나로 통합해서 이해하는 기법 이 연구된게 아니라 두 방정식이 수학적으로 완전히 같다는 결과물이 나온겁니다. 두루뭉실하게 말을 바꿔서 유리하게 해석하지 말아주십시오. 둘이 서로 다른 기술(Technic)을 썼지만 완전히 같은 법칙을 발견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자연이 애초부터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 이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슈레딩거 방정식이 애초부터 틀려먹은 방정식, 혹은 자연계의 어디냐에 따라 반증될 수 있는 방정식일 가능성은 0입니다. 내일모레 반증될 수 있다는 것은 "반증이 나왔는데도 이를 계속 주장하면 나쁜과학자다" "울면 나쁜아이라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안준다" 하는 것이지 실제로 반증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어느날 갑자기 반증이 나온다는 것은 신이 며칠전쯤 법칙을 바꿨다는 얘기밖에 안됩니다. 그자체가 미신인겁니다. 내일모레 갑자기 전세계 모든 양자역학적 현상으로 만들어진 반도체소자들이 한꺼번에 동작을 멈춘다거나... 원적외선 난로 쬐던 사람이 그자리에서 순식간에 타죽거나 그땐 좀 심각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

  3. 디랙방정식의 풀이에 관한 연구 역시, 같은 사실을 두고 연구자 마다 서로 다른 여러가지 기술(Technic)로 기술(Subscribe) 했지만 슈레딩거 파동방정식과 하이젠베르크의 행렬방정식이 완전히 같은 것이듯이, 세명의 이론 모두 수학적으로 완전히 같은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1/2mv^2과 mv^2/2 가 완전히 똑같듯이 슈레딩거 방정식과 하이젠베르크 방정식은 완전히 똑같은 것입니다. 두루뭉실하게 역시 다른 기술이다.. 다른 방법이다 라는 것만을 강조하지는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세명은 완전히 다른 가정에서 다른 기술적 방법을 썼지만 결과물은 결국 완전히 같은 것이 나왔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그 해는 맨하탄 다리의 길이를 쟀을때 머리카락 한올 두께정도의 오차입니다.

  4. 맥스웰 방정식, 볼츠만 팩터, 파동 방정식 등은 가장 절대적이고 가장 순수한 해이고 절대 반증될 수 없습니다. 반증거리라고 할만한 끽해야 자기단극자 정도가 발견되면 맥스웰 방정식은 수정되어야 하지만 그 경우에조차 어떻게 수정되어야 하는지마저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볼츠만 팩터는 어떤 통계자료의 경우에도 틀릴 수가 없습니다. 이건 모든 통계적 기법에 맞을 수밖에 없게 되어있습니다. 광학은 하도 고전역학이라 뭐라 말하기 뭐하지만 파동방정식 역시 반증될 수가 없습니다. 수학적으로 엄밀한 식이 실험치까지 맞아버린다면 반증할래야 반증될 방법이 없습니다. 좀 더 후비면 더 작은 범위의 무엇인가가 있을뿐이지 틀린 법칙이 되어버리는건 아닙니다. 역학을 후비면 양자역학이 있는것이고 양자를 후비면 끈이론이 있는겁니다. 역학을 좀더 거대한 범위로 확장하면 일반 상대성이론이 되는겁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중력과 속력을 우리가 사는 일상속도 중력 정도를 대입하면 역학과 똑같은 방정식이 나옵니다. 양자역학 방정식에 양자 크기에다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크기를 대입해도 역시 역학과 똑같은 방정식으로 변합니다. 거기서 입자갯수를 무지하게 늘리면 늘 볼츠만 팩터가 나옵니다. 대량의 무작위 입자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보면 항상 볼츠만 팩터에 맞는 값이 나옵니다. 과학 이론들은 서로 완전히 호환된단말입니다. 학자들끼리 호환되도록 짜고 만들어서 그런것이 아니라 이론이 맞다면 호환될수 밖에 없습니다. 고전역학이 완전히 반증된 구세대 이론이라는 듯이 일종의 신화처럼 설명하는 책자들이 너무 많아서 말이죠... ( SeeAlso [http]상보성)

  5. 결국 gerecter님께서는 어떠한 수식이나 어떠한 수학적 스킬을 써서 묘사하느냐 하는 것을 창조라 주장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단지 어떠한 표현방법을 쓸것이냐 하는 선택(Choice)의 문제이지 무엇을 창작해내는 행위는 아닌겁니다. 많고많은 수학적 표현법중에 한가지를 고른 것 뿐입니다. 이런 것을 창조라 주장하신다면 ...창조겠죠. -_-;;; 뭐라 대답하겠습니까. 그런 gerecter님의 개념 또한 gerecter님이 애써 창조해내신것이니까 창조라 치죠. 내재된 창조는 아니지만 창조된 창조라 하겠습니다. 창조라는 단어 자체를 gerecter님과 musiki는 전혀 다르게 쓰고있는듯합니다. gerecter님이 창조한 창조라는 단어에는 그 개념이 맞나봅니다. 패러디가 창조이듯이 이것도 창조다 해버리시면 제가 할말이 없어집니다.

물리학적 발견은 그러한 우주의 궁극 법칙, 그 자체가 아니지만 그 자체를 지향합니다. 그렇지 않고 근사 묘사에 그친다고 해서 이를 창조라 하겠습니까? A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를 완벽히 베껴 그림 B를 그렸는데 미술가가 조금 미숙해서 약간 어설프게 그려졌습니다. 그렇다면 A는 우주 근본의 원리고 B는 창조물인가요? 어설픈 표절에 불과한 것 아닌가요? 그 어설픔 때문에 이게 창작물이 된다고요? 저는 도저히 인정할수가 없습니다.

공학자의 발명품은 자기 자산입니다. 특허를 내고 재산권을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물리학 법칙은 그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만약 과학자가 창조자라면 법칙들을 스스로 소유해야 옳지만 창조가 아닌 발견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물리학 법칙은 재산이라 보지 않고 모두가 공유하는 것에 합의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자연이라는 소스에서 일부 측면을 뽑아내는 작업이어야지 소스속에 내재되지도 않은 법칙을 창조적으로 개발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것은 공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사회학자도 사회과학자라 불리다보니 과학이 창조라는 말도 말이 되나봅니다.- gerecter님의 공학자적인 측면이 그런 것인지 한국인 특유의 현실주의가 영향을 끼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순수과학을 "실용적"인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왜곡하고 편집하는 행위는 옳지 않습니다. 이론물리학은 "수학"이거나 "철학"이지 기술이 아닙니다. - musiki

2.7. 과학기술과 창작성도 따져봄 (두번째 답변에 대해, gerecter가)

{{|
과학 법칙이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입니다.
|}}

2.7.1. 논점의 분리

우선 musiki님께서는 첫째로 우주에 불변 진리의 법칙이 몇 가지 내재되어 있고, 둘째로 이러한 법칙이 인간의 논리로 구축하는 과학의 형태로 표현 가능하다는 우주관을 갖고 있으신 듯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두 단계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모두 고래로 많은 철학적 논의가 있어 왔으며, 여러 의견에 의해 부정되거나 혹은 긍정되어 왔습니다.

또한 musiki님께서는 수학적 증명과 정리를 통한 개념의 연결은 본질적인 확장이 없는 자동기술적인 지식이며, 동시에 수학에서 다루는 개념들이 현실 대상을 직접 지칭하는데 무리가 없는 실체로서 생각하고 계신 듯 보입니다. 이러한 생각들 역시, 두 단계가 개별적으로 모두 많은 수학관에 대한 논의에서 부정되기도 하고 긍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http]첫번째절에서 밝혔던 것 처럼, 저는 우선 이러한 근본적인 우주관과 수학관에 있어서 musiki님과 생각이 다릅니다. 저 역시 내일도 세상의 반도체들이 잘 작동하리라 생각합니다만, 이러한 이유로 그 추측의 근거에 대해서는 musiki님과 다른 관점을 갖고 있고, 이론과 반증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느냐에 대해서도 musiki님과 생각이 다릅니다.

저 또한 과학을 단지 상업적 가치로만 평가하려는 태도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과학을 "실용적"인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왜곡하고 편집하는 행위로 제 관점을 바라보셨습니다. 아마도 musiki님의 시각이 플라톤적인데 비해, 제 생각이 영국 경험론에 가깝다는 차이에서 빚어진 오해라고 생각 됩니다.

만약 이처럼 다른 방향에서 바라 본다면, 과학, 기술, 공학, 과학기술에 대한 차이와 관계를 생각하는 이 논의에서 musiki님과 다른 방향의 몇 가지 생각들도 좀 더 쉽게 용인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만, [http]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이러한 수준에서 차이를 의논하는 것은 ExtractPage되어, 수학관과 우주관에 대한 차이를 의논하는 다른 주제의 서술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지금까지의 진행에서, 이상과 같은 수학관과 우주관은 musiki님과 동일선상에 둔다 하더라도, musiki님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할만한 요점들을 중심으로 문제를 이야기 해왔습니다.

2.7.2. 정합성 문제

그러한 맥락에서 살펴 볼 때, 먼저 따져볼 부분은 과학 이론들은 서로 완전히 호환된다는 점입니다.

musiki님께서는, 과학 법칙 형태의 필연성 때문에, 바로 호환되는 이론이 등장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론이 호환되는 것은 필연성의 유력한 증거입니다. 반드시 과학 법칙은 그런 형태로 발견 될 것임이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치 대서양 서쪽에 아메리카 대륙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서쪽으로 가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수 밖에 없었던 과정과 같아 보입니다. 그러므로, musiki님께서는 과학 법칙 발견이 갖는 창작물로서의 가치를 빈약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나, 저는 과학 법칙의 연구가 애초부터 정합성을 목적에 두고 이루어짐을 밝히고 싶습니다. musiki님의 표현에 대구를 맞춘다면, 학자들끼리 호환되도록 짜고 만들어서 호환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이 맞다면 호환될 수 밖에 없다는 표현은, 학자들끼리 호환되도록 짜고 만들어나가는 편이 좋기 때문에 이론체계가 쉽게 맞는 것으로 인정 받는다로 수정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만 그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일 뿐 아니라, 다른 과학적 이론들과 정합성을 갖는 이론을 의도적으로 추구합니다.

물은답을알고있다에서, 지은이의 설명에 따르면, 아마 마음의 긍정과 부정으로 물의 결정구조가 달라지는 연관관계가 50%는 넘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정확도가 머리카락 한 올 보다 작은 결정의 모양 문제에 있어서, 오차가 날지언정 쓸모가 있는 이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과학이론으로 쉽사리 수용하지 않는 것은, 기존의 과학 이론과 정합성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러한 이론으로 기존의 과학이론을 설명할 수도 없고, 기존의 과학 이론과의 연결선상에서 물은답을알고있다 이론이 가치를 갖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물은답을알고있다의 정확성과 효율성은 부인됩니다.

마찬가지로 혈액형별성격토론에서 면역이나 신호전달에 대한 상상이 제안되는 것은 혈액형별성격이라는 가설을 과학 이론의 형태로 끌고 오기 위해 기존의 이론들과 정합성을 갖도록 이론을 구체화하고 연결해나가는 과정입니다. musiki님은 이러한 쉬운 예 뿐만 아니라, 고전적 파동의 성질들과 양자의 속성과 운동의 본질, 상대론적 공간 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소위 호환성 향상을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노력해 왔음을 아실 것입니다. 심지어 이러한 호환성 향상을 위한 과정에서 제안된 이론이 수정되고 추가된 선례들 또한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2.7.3. 창작성 문제

이같은 정합성을 위한 노력은, 제안된 과학적 법칙이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형태로 제안한 창조물 혹은 인위적인 형태로 가공한 창작물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물론, musiki님은, 호환성을 맞추었기 때문에 과학 법칙이 된 것이 아니라, 절대적 진리란 호환성을 갖고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법칙을 찾기 위해호환성을 갖는 모양을 찾아다닌 것 뿐이라고 받아들이실 듯 합니다.

그러한 생각을 옳다고 인정한다해도, 우리는 과학 법칙을 찾는 과정에서 그 정합성을 이루는 이론을 구축하기 위해 과학자가 기울였던 다양한 창의성을 여전히 무시할 수 없습니다. 리만 기하학을 이용해서 일반상대론적 공간을 고전적 중력과 운동으로 연결시켰던 아인슈타인의 창의성과, 초월함수라는 새로운 수학적 개념을 창안해 가면서 양자 현상을 정합성있게 이해하려고 했던 디랙의 창조적인 생각들은, 과학 법칙을 찾는 다는 입장에서 본다고 해도 훌륭하고 창의적인 제안입니다.

그리고 그 찾은 결과물로서의 과학법칙과 이론 역시, 창작물로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과정의 결과물은, 자연에 내재된 법칙 그 자체가 아니며, 찾은 법칙과 자연에 내재되어 있다는 절대 법칙과의 관계가 어떤 선험성에 의해 담보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 입니다. 과학 법칙은 정합성을 갖추고 있고, 미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에 가치를 갖곤 합니다. 다른 시각에서 표현하면, 과학법칙은 내재된 진리의 특성이라고 꼽을 만한 것을 훌륭히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과학 법칙입니다.

정합성이라는 요소가 기술적으로 극적인 유용함을 가진다는 점은 자명하다는 점을 강조하면, 여기에서 심지어 (상업적/비상업적) 기술로 유용하기 때문에 과학 법칙은 가치를 더한다는 다소 편향된 시각도 공존할 수 있습니다.

즉, 과학이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입니다. ([http]다시 한 번, 참조) 풍경이란, 그림 그 자체와 같지 않을 것입니다. musiki님은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이 풍경의 진리라는 요소, 즉 정답으로 정해져 있는 아름다움의 절대적인 요소들을 정확히 모두 옮긴 것이 과학의 지향점이라고 여기고 계십니다.

설령 그렇다할지라도, 이렇게 완성한 그림은 화가의 창작물로서 인정할 수 있습니다. 인왕산은 물론 누가 봐도 아름다운 산이지만, 정선은 인왕산을 우리가 종이 위에서 감상할 수 있는 그림으로 그렸으며, 그 그림은 인왕산 자체나 인왕산이 아름다운 요소, 그 이데아 자체와는 또 다른 창작물로서의 위상을 지닙니다.

더군다나, 많은 과학자들이 하는 일은 다른 그림을 보고 베껴 그리는 것이나, 혹은 풍경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정도의 일이 아니라, 어릴 때 겪었던 일의 희미한 기억을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음악을 듣고 그 특성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을 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저는 패러디 또한 창작이라고 생각하고, musiki님은 생각이 다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에서 과학 법칙을 만들어나가는 태도와 그에 따른 이상의 특성들을 생각해 본다면, 과학 법칙을 세우는 일은, 패러디와 같은 제한된 의미 뿐만 아니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창작이나 창조의 속성을 분명히 갖고 있습니다. musiki님이 다만 자연을 표현하는 데 어떠한 수학적 스킬을 쓸 것이냐 하는 선택(choice)의 문제라고 말씀하신 부분을, 창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습니다.

2.7.4. 과학, 공학, 과학기술, 기술

다음으로, 이상과 같은 과학, 공학, 기술과 창작에 대한 이야기와는 구분지어 이 페이지에서 정리할 만한 사항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musiki님 역시 부분적으로 인정하셨듯이, 과학과 공학은 불가분의 관계며 또한 하는 일과 일을 수행하는 과정이 서로 겹칩니다. 두 분야의 결정적인 차이는 그러한 과정에서 추구하는 목적입니다. 과학이라면 지적 호기심이나 미적 가치에 큰 목적을 둘 것이고, 공학은 많은 부분 경제적 효율성에 목적을 둘 것입니다. 이를테면, 과학과 공학은 무지개에서 붉은색 부분과 보라색 부분입니다.

따라서 제가 애초에 제기한 내용을 다시 한번 부언하면, 바로 이러한 과학과 공학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인간의 노력과 능력이 과학기술이라는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누차 이야기 되었던 것처럼, 학자의 입장에서 더 좋은 과학과 공학을 위해, 이러한 과학기술의 맥락에서 두 분야를 비교적 자유롭게 오가며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쓴 바 있습니다.

제가 과학이 갖는 창작물로서의 속성을 강조한 것은 바로 왜 과학과 공학과 기술이 서로 연계되어 있는가에 대한 기저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함이었음을 파악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학자는 철학자이지 공학자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저는 좋은 학자일 수록 과학과 공학 양쪽 분야의 태도를 동시에 갖고 있으며, 그 창작물이 갖는 가치와 위상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물이 이학적인 것이 되고, 공학적인 것이 되는 것으로 볼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과학기술로서 과학과 공학 그리고 기술에 대한 이해를 갖지 않는 것은, 과학자와 공학자라는 집단을 분절적으로 구분하고, 결과적으로 연구방법이나 태도, 세계관, 가치관, 성향에 이르기까지, 지나친 범주화의 오류를 범할지 모릅니다. 또한 과학의 발전 방식에 대해서도 놓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고 우려해 봅니다.

2.7.5. 덧붙이는 말

끝으로 두 가지를 첨언합니다.

현실의 발견과 발명은 퀴즈 문제처럼 흑백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발견과 발명은 토성의 위성을 찾는 일과, 연필 뒤에 지우개를 붙인 것을 만드는 일 사이의 어디엔가에 놓여 있습니다.

공학자의 기술 역시 그 지식을 공유하며, 다만 공학 원리나 과학 원리를 이용한 제품의 실제 생산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경우가 다수 있을 뿐입니다. 반면에 핵물리에 관한 여러 구체적인 지식들은 지금까지도 제한적으로 소유됨을 아실 겁니다. 새롭게 발견한 약초, 새로 발견한 섬이나 금광은 그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를 인정 받기도 하고, GNU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중요한 발명품에 대해서는 공유를 강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배타성이나 소유권에 대한 차이는 사회적 유용성과 관습의 차이에서 온 것이지, 창의성의 잣대와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여러 시각 차이 때문에, 그래서 대한민국이 순수과학이 발전이 없는겁니다. 이론물리는 없고 돈되고 실용적인 실험물리에나 목숨거는겁니다.라는 musiki님의 정책이나 문화에 대한 고찰과 비평 또한 저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점에 대해서는, 이 점에만 집중하여 다른 토론을 하는 것이 토론최소주의에 그나마 부합하리라 생각합니다.


2.8. 그러므로, 정리될 토론에 관해서...

(!) 이론물리학 페이지에서 과학 제반 분야와 구분된다고 musiki님이 지적하신, 이론물리학의 비창작성, 비창조성 등등의 특징에 대해서 논의는 계속됩니다. (!)

창조적이라는것 페이지와 나뉘고 통합되어 정리되면 좋겠습니다. --아무개

musiki님이 옛 토론 내용에 사용된 단어와 표현들을, 거슬러 올라가서 추후에, 삭제하고 다시 쓰신 부분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여쭙고 싶은 내용들이 있습니다.

  1. 지금까지 마지막, (musiki의 두번째 답변)과 거기에 대한 (gerecter의 생각)에 이르기 전에는 애초에, musiki님께서는 과학 전체를 두고, 과학, 공학, 기술, 과학기술을 비교해 말씀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론물리학은 과학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로만 제시해 오셨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론물리학과 다른 과학의 공통된 요소를 주로 문제로 다루어 왔습니다.

  2. 그런데, 예전에 과학자는- 이라고 쓰셨던 부분들을, 최소한 이론물리학자는- 으로 고쳐 쓰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애초에, 과학 전체로 시작해서, 논의를 전개해 왔던 요점이 흐려지지는 않을지요. 또, 과학 제반과 다른, 이론물리학의 특수성이라고 여기신 부분들을 확정하고 분명히 해온 과정 역시 의미가 약해 집니다.

  3. 또한 애초에 이 페이지는 과학 제반에 관한 논의 였고, 처음에는 musiki님 역시, 과학 전체를 주로 언급하며 이야기해 오셨던 점을 생각해 보면, 예전에 과학이라고 말씀 하셨던 부분을, 나중에 최소한 이론물리학으로 고치신 것은 토론의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이 musiki님이 생각하시는 일반 과학과 이론물리학의 차이를 분명히 해 온 성과가 있다면, 그런 결과가 선명히 드러나도록, 예전에 사용하신 표현을 그대로 두시는 것이 더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마찬가지로, (musiki의 답변)에 사용된, 과학법칙은 .. 똑같은 형태의 공식이 나온다 라는 표현을, 물리학법칙은 .. 똑같은 형태의 공식이 나온다로 되돌아가 다시 쓰신 부분 역시, 이 페이지가 과학과기술과과학기술에 대해 다루는 페이지였으며, 그러한 추후에 고쳐 쓰신 표현은 토론의 결과로 인하여 논의 전개 이후에 필요해진 만큼, 예전에 쓰신 표현을 그대로 복원하시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5. 또한 응용기술과 과학발전의 과정이 유사함을 (musiki의 두번째 답변)에서 언급하고 지나가신 부분이 있었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당연히 불가분의 관계이죠. 그리고 둘이 하는 짓은 비슷한 짓같죠. 과정은 더더욱 비슷하죠. 맞죠. 그런데? 그런이유로 거기서 갑자기 둘이 같은것이 되나요? 마치 그런양 두루뭉실하게 은근슬쩍 갖다붙이려는 시도는 배제해주기를 바랍니다. 상업화때문에 과학자들이 돈받고 산학 협력 등의 이유로 공학을 해주기 때문에 공학과 과학의 차이가 안느껴지는 것이지 공학과 과학이 어떻게 같습니까. 라고 하셨는데, 지금에 와서는 삭제하셨습니다. 이론물리학에 완전히 한정한 것은 결과적인 이야기이고, 이 때는 과학 제반에 대한 어휘를 이용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과학기술과 기술, 과학, 공학의 제반관계를 따지는 면에서 볼 때, 중간과정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6. 그래서 대한민국이 순수과학이 발전이 없는겁니다. 이론물리는 없고 돈되고 실용적인 실험물리에나 목숨거는겁니다.라는 부분을 삭제하셨는데, 여기에 관한 부분은 지금 두 생각에 관한 대조적인 이야기와는 약간 논점이 벗어나긴 합니다. 하지만, 순수과학과 기술, 공학 발전에 대해 이 페이지의 다른 부분에서 지속적으로 토론될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그냥 없던 말로 하시기 보다는, 토론 뒤쪽으로 빼내서 옮겨 놓으시면 어떤가 생각합니다.

기왕지사, 이상은 다큐먼트모드쓰레드모드의 중간 형태로 가면서 정리되고 있는 과정입니다. 논의 과정에서 분명히 강조해야할 점이 드러난 부분은, 이전의 내용을 거슬러 수정하기 보다는, 예전에 하셨던 말씀은 다시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항은 이어지고 추가시킬 결론 내용에서 깔끔하게 강조해서 밝혀 쓰는 것이 좋지 않을지요. 그것이, " 그러므로그러나 "의 모양과 뜻에 어울리는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더군다나 과학과기술과과학기술이라는 페이지 표제어와의 관련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고 생각합다. -- gerecter

gerecter님의 오해는 물리학 분야에 한정된 것이라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에 의견을 수정한 것입니다. 후에 생각해보니 다른 과학분야에 있어서는 gerecter님의 지적이 전부 맞았거든요. 오히려 제가 물리학 분야에 한정된 주장을 한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논의는 이 페이지의 논외의 것이 되어버린것이죠. --mus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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