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어느 인상 좋은 할아버지를 만나면 걸죽한 막걸리와 파전을 대접하며 "할아버지, 20살땐 어떤 일을 하셨나요?"라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1. 0대 ¶
- picxenk는 공상을 굉장히 좋아했다. 외부에서 들려주는 공상이 아닌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공상을 더 즐겼다. 물론 그 나이땐 공상이 많겠지만, 묘사력이 뛰어났던지 친구들을 불러 설명을 해주며 혼자 연극(?)을 했다고한다. 낙서도 즐겼다.
- 대. 9살인가? 10살인가? 데카르트의 책을 읽고 고민에 빠지다. -- ChangAya
- 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지 알아냈다고, 외할아버지에게 편지 쓴 적이 있다. -.-; 한번 집안 경제를 온통 거덜낼 정도로 아파본 적이 있다. 병원 대기실을 전전하면서, 수많은 황색잡지들을 섭렵했다. 아직도 '녹족부인'의 일화가 나오는 만화가 기억난다. 아말감
- 신동소리 들으며 공부만 했다.(평생공부를 그때 다 한듯..ㅡ,.ㅡ;; (시간적인 개념에서...^^))--Bohemian
- 레이옷은 개망나니였다. 아침에 나가서 점심때 밥먹으로 들어올때 무릎까져 들어오고, 오후에 나가서 밤에 들어올때 머리에 피흘리며 들어왔다. 개한테 물리고 떨어지고 넘어지고.. 어찌나 심했던지 점을 보러 갔는데.. 이름이 안좋다면서 이름을 바꾸라고 했다. 그래서 지어진 이름이 **였다. 집에 있는 전자제품은 일단 고장나면 내 손을 거친 다음 버려졌다. 완전분해되어서.. 나의 보물상자안에는 여러 가지 쓸데없는 전자부품들이 가득했고.. 온갖 곤충과 벌레들을 즐겨잡고.. 에구에구.. 이런 자식은 나도 키우기 싫군. ^^;;
- Pion은 꽤 공부를 잘했다. 국민학교 (그렇다 그때는 초등학교가 아니고 궁민학꾜였다) 3학년 때까지 거의 모든 시험에서 100점을 못 받은 적이 별로 없었다. 주위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재*이, 종*이, 두*이라는 꼬치친구가 있었고, 승*이라는 학교친구와는 언제나 철봉을 하고 놀았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팔이 남들보다 긴 편이고 (유비도 길었다더라^^), 키가 작은 편이다. (어렸을 때 상체운동을 너무 많이 하면 키가 안 큰다더라..)
- 라이온은 공부두 잘하고 쌈도 잘하고..정의로운 아이로 컸다. 헤헤..
- Kwon은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저 멍하게 지냈던 것 같다.
-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시장을 누비며 살았다. 친구들과 매일 새로운 곳을 탐험하며 다녔다. 집웅, 옥상, 다락방, 지하실, 공원, 개울, 다리밑, 초등학교 운동장.... 개구리 잡고 산으로 칡 캐러 다니고 개울에서 물고기 잡고 남생이 잡고, 산딸기 찾아서 , 밤, 잦 나무타고..난 요즘 아이들도 나처럼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 자연과 동물과 곤충들이 좋은 친구가 될것이다. 손으로 토닥거릴줄 알게되면 사마귀가 싫다고 라이터로 불러 태워 죽이는 끔찍한 짓은 하지 않을거다. 벌은 자신을 위협하지 않는 사람은 쏘지 않는다. 전진호
- 3살때까지 할머니가 키우셨다. 할머니는 재래식 부엌에서 날 업고 저녁을 지으셨는데, 부뚜막 위의 찬장에 계속 내 머리가 부딧쳤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내 머리가 나빠진거 같다.) 주말마다 엄마가 찾아오셨는데, 2살때까지는 기억이 없고, 3살이 되었을때 엄마와 헤어질때마다 울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4살때부터 엄마,아빠, 여동생이랑 같이 살수 있었다. 나보다 한살많은 강아지(이름은 '킹')가 이때부터 같이 살았다. 내가 10대로 들어섰을때 그 강아지는 집을 나갔다. 한번도 그런적이 없었는데.. 엄마는 죽을때가 되어서 일부러 나간거라고 했다. 이현호
- 서울 변두리에 살았다. 그 때는 주택가 주위는 죄다 논밭이었고 논과 논사이에 또랑도 있었다. 7살때 친구랑 논두렁에서 놀다가 그 친구가 또랑에 빠졌다. 시커먼 흙을 머리부터 뒤집어 쓰고 울고 있는 친구가 무서워 집으로 도망쳤다. 1학년 때 내옆에 있던 얼굴 하얀 친구... 그 아인 결핵이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나 결핵 걸렸어"했더랬다. 또 산동네 살던 지지리 공부도 못하고 머리에 부스럼났던 2학년 때 남자짝궁. 담임 선생님이 시험시간에 내 것보고 시험보라고 했는데 끝까지 팔로 가리고 안보여 줘 나중에 그 친구는 담임선생님께 또 머리를 맞고 혼났다. 보고 쓰라는데도 그것도 못쓰냐... 그 때는 정말 어려웠던 60년대 말이었다.노루귀
- 글자를 읽을수 있게 되면서부터 책을 읽었다. 어딜 가든지 책을 읽었다. 친척집에 가던.. 학원에 가던.. 학교에 가던... 교회 수련회를 가던... 초등학교 3학년때 무협지를 접했다. 최초로 성에 대한 의문을 품다. (어디에도 애가 어디로 나오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던 것이다! 시작은 부모님의 '애는 배꼽에서 나온다 부터 시작해서 백과사전에 있던 단 하나의 나체 그림. 보티첼리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맞나 모르겠지만 맞을 것이다)에는 여성의 성기가 없다! 이 의문은 10대에 들어와서야 해결되었다.) 이 시절의 후반기에는 친구들과 노는것 자체를 안 좋아했던것 같다. 친구들과 노는것보다는 책이 더 재미있었다. 책을 보지 않을때는 공상을 했다. 공상을 하지 않을 때는 잠을 잤다. -휘랑
- 관찰하며 살았다. --bullsajo
- 지칠때까지 뛰어놀았던 날도 많았다. 해질녁 아름답게 물든 하늘을 바라볼 때까지 자전거를 타기도 했고 걸어서 이곳 저곳을 탐방(?)했었다. 전반적으로 호기심이 왕성하여 동네 도서관을 가까이하고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많은 책을 읽었으며 활기차고 적극적이었다. 그림작품 감상, 그림그리기를 좋아했고 화가를 꿈꿨다. 학교를 가지 않는 방학을 싫어했다. 지어낸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것도 좋아했었던 것 같다. 연재 소설-_-; 마냥..매 하교길마다 친구에게 지어낸 이야기를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 4명과 함께 매일 편지 4통씩을 써와서 교환하기를 했던 적도 있다. 토론(?)하기를 좋아했었던 듯..흐름
- 한개 1원짜리 붕어빵을 10원어치 사면 11마리 주었다. 붕어빵 먹으며 보냈다. -zetapai
- 어릴때는 생각이 매우 느린 둔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1학녀 때 까지만해도, 바보라는 타이틀이 달려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찌된 일인지 초등학교2학년때 환골탈태하여 미친듯이 읽어댔고, 언변이 엄청나게 늘었섰다. 그 전까지는 멍하니 있기만 했는데, 가만히 있을때도 뭔가 읽거나 생각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버스를 타고 갈때 창 밖의 간판들을 외우고, 내리면서 스스로 흡족해 하고, 만화를 봐도 뒷얘기를 공상하고 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떤계기였는지 지금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디선가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물쭈물대고 멍하니 있기만 하던 상태에서 벗어났던게 아닌가 싶다. 할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서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던 사람. 혹은 사건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고 싶다. --붉은눈의시체
- 언니의 그림책을 보며 혼자 글을 배웠다. 엄마에게 절대 뭐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다섯 살때 캠프를 가서 촛불의식중 오줌을 싸버리고, 그랬다는 게 분해서 너무도 서럽게 울었다. 지금도 그때 우는 모습-카메라를 외면하고-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엄마손을 잡고 안경을 맞추러 갔다. 나와 동갑이었던 아파트 아래층의 쌍둥이 남자애들과 같이 놀았다. 그림일기를 쓰던 유치원 시절부터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kuroko
- 6살때에, 미워도 다시한번 이라는 영화를 보고 울었다. 그게 아마 처음으로 영화보고 울었는 듯 싶다.
오빠(6살 차이)와 엄청나게(피터지게?) 싸웠다. 내가 말을 잘 못해서 몸으로 싸웠는 듯 싶다-ㅅ-;; -- 홍지미
- 전 기억하지 못하지만, 절 못 찾으면, 항상 우리동네에서 밑에 쪽( 약 300미터 )에 있는 파출소에 가면 거기서 놀고 있었다는, ....
이불을 깔고 자던 시절, 밑에 깔던 것은 이불이고, 위에 덮는 것은 무엇인지 몰라서 ( 뚜껑 )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fallskya
-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님의 말씀으로는 몸은 약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참을 줄 몰랐다고 한다 -- RedPain
- 2살때 저녁노을에 비친 내 그림자가 굉장히 길어서 무척이나 신기하다고 느꼈다. 한글을 배우고 싶어서 어머니를 졸라 가르쳐달라고 했으나 가르쳐주시지 않았다.(형이 일찍 한글을 깨우쳐 책만보고 친구를 못사귀자 친구를 사귀라고 그랬다고 하셨다.) 결국 혼자 한글을 깨쳤다. 어느순간 한글을 읽을수있게되니 세상이 달라보였다. 처음으로 읽은 책이 '미운오리새끼'였다. 그다음에 읽은 책이 '왕중왕' 왕중왕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닥치는데로 그림을 그렸다. 초등학교때는 미술로 상을 여러번 탔다. 일본의 유명조각가로부터(미친놈이라 불리운다. 츠쿠바 과학박람회 기념탑을 그사람이 만들었다. 근데 이름이 생각안난다) 미술에 관한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전공은 경제학이었다.) 몸이 허약해서 나가서 노는게 싫었다. 초등학교 일학년때 학교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게 했다. 난 그게 싫어서 거부했다. --nyxity
- 여름날 친구와 함께 수영장을 만들겠다고 온 방안을 물로 채웠다. (다행-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집은 아니었다) 항상 책을 읽어달라고 졸라 부모님을 귀찮게 했으나 어느날 스스로 터득하고 어딜 가도 책을 끼고 살았다. 놀이터에서 나를 얄밉게 여겼던 아줌마에게 그네를 뺏어 탔다. 남들 다 공부할때 안하다가 재미로 다니던 영어학원에서 사전찾는 법을 모른다고 망신당했으나 그 다음부턴 사전을 제일 빨리 다루는 아이가 되었다. 데미안을 보고 절망했다-지금은 헤르만 헤세에 대한 인상은 별로 깊지 않으나 왜 그시절엔 그다지도 충격적이었다- Ludwing
- 바퀴쥐는 스스로 천재라고 믿었었다. 절대로 지지 않으려 했었고 다른사람들이 인정하는 정도의 노력을 꾸준히 했었다. 호기심도 상당했고 스스로 엉뚱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진실이라 굳게 믿었었다. 특히 잘하지 못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나서서 꼭 내가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었다.
- 한 살때 부엌 뒤문 근처에서 뜨거운 젖병을 엎질렀다. 아직도 그때 아픔이 가시지 않는다. 허벅지에는 그일로 지도가 그려져있있다. 내 기억에는 젖병과 아픔밖에 없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살아난게 다행이라고 한다. 아침구름
- 개미를 쫓아다니며 돌았다. 식빵과 과자 부스러기만 있으면 일렬로 늘어선 개미들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시멘트뿐이라 그때 보던 그 개미들을 볼 수가 없다.- 지아
- 사실 열살이전은 뚜렷하게 기억은 안난다. 거의 전적으로 엄마의 진술에만 의존한다. 말과 글을 빨리 배웠고 음식을 빠는 습관이 심해서 젖니는 성한게 없었다고 한다. 재우기 전에 입안 구석구석 확인해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돌덩이 같은 밥이 입안에서 나오곤 했다고 한다.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던 적이 없으며, 동네 골목대장을 했는데 남자애들이 맞고 집에 들어가서 아줌마가 혼내러 오시면 눈 똑바로 뜨고 항상 맞짱 떴다고 한다. (쪼그만게 통제불능) -.-a 장난감이 집에 많은 편이었는데 다 들고 나가서 애들 퍼주는게 일이었다고 한다... (아님 다 부시던가... -.ㅡa) 애 찾아가라고 동사무소에서 방송하는 일이 부지기수여서 등뒤 옷에 항상 집주소랑 연락처를 적어 내보냈다고 한다. by 열혈여아
- 순하디 순한 순둥이였다. `바보'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심한 욕인 줄 알았다. --마리아
- hyoki는 알러지가 심해 하루종일 병원에 누워있었다. 볼 것이라곤 책과 TV밖에 없었는데 왠지 (그림)책 본 기억은 나도 TV본 기억은 안난다. 100일때부터 국민학교 2학년 때까지.
- 육교위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구경을 했었다. 가끔 난간사이에 머리가 끼어 도움을 요청할 때도 있었다. shineforever
- 친구네있던 만원짜리 비싼 블루마블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 잘 나가다 서울에 걸리면... 약도 없다... 덤으로 친구네 가면... 셋방사는 이쁜 누가를 볼 수 있었다는.... --happycoat
- Gravi는 당대 최고의 프로그램 '뽀뽀뽀'에 중독되었다. 덕분에 부모님은 신형 칼라TV를 하나 사버렸고, 덕분에 Gravi는 말하는 법은 물론읽고 쓰는 법을 모두 뽀뽀뽀에서 배웠다. 기억이 다 나는 것은 아니지만 듬성듬성 4살쯤까지 남아있는 기억은 아직도 기분이 새롭다. --Gravi
- 가영 어느날 눈을 뜨니(3살경)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나의 아버지라고 한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 인식하게 되었다. 머리는 잘 돌아가고 말문도 글자도 빨리 터진거 같았는데. 공상속에서 살았다. 4-5살 사이부터 동화책을 베껴쓰는 연습을 한거 같다. 외가집에서 자라 공부를 안하면. 말을 안들으면 무지하게 맞았다. -_-; 1학년 학교 시험에서 집에서 기를수 있는 동물에 호랑이를 썼다. 나는 호랑이를 기를수 있다고 믿었다. 산수같은건 잘했다. 암기는 못했다. 구구단도 남들보다 늦게 외웠다 (3+3+3이 9가 된다는걸 알려줬으면 더 빨리 배웠을거다. -_-) 배우는건 조금 빨랐는데. 방금전 일도 잊어버릴 정도로 흥미없는 일은 기억 못했다. 그때 경험때문에 어른도 억압도 싫어하게 되었다. --가영
2. 10대 ¶
- picxenk는 낙서와 음악을 즐겼다.
- ChangAya의 전성기는 10대였으리라. 창아야는 10대에 수많은 방황과 수많은 경험을 했다. "살아야겠다"라는 생각도 했었고.. 돈도 많이 벌었다(그 나이치고는). 매일 영화와 비디오에 빠져 살았고 매일 매일 새로운 음악을 들었고 새로운 책을 읽었다. 내가 아는 건 다 그때 쌓아진 것들이리라.
헤드뱅중독자 역시 이때쯤에 가장 열정적으로 살았던거 같다. 매일매일 새로운것에 목말라했고, 터무니없는 꿈을 가슴속에 품고 그것을 매일매일 머릿속으로 그리며... 미소지으며...
- ChangAya도 한번 죽을려고 한 적이 있죠.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수면제를 가득 먹고 자 버렸는데 정확하게 20시간이 지나서 깨어났습니다. 수면제를 많이 먹고 일어나면 머리도 아프고 아직 약 기운이 남아서 어질어질한게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여기가 어딘지도 분별할 수 없더군요. 그런데 그때 든 생각이 "지금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죽은 거보다 살아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거였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든 시험에서 결국 삶을 선택한 이후 지금까지는 죽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죠
- 그냥 공부 열심히 하고 살았다. -.-; 가슴 속에 고민이 많긴 했지만. 영화 <아마데우스> 보고는 난 천재가 아니야...ㅜ.ㅜ; 그러다가 미술 그만둔 다음에는 국어학자의 꿈을 키웠다. --아말감
- 친구를 사랑했다.--Bohemian
- 자의식이 강해졌고, 게으르고 둔감한 인물이 되었다. 가족들을 사랑했지만 가난으로 생긴 문제들은 언제나 우리의 사이를 갈라 놓았다. 몸이 약했고 그림을 그렸고 글을 썼다.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었고 책도 읽었다.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에리히 프롬과 TheCatcherInTheRye와, 레오스 까락스였다. 10대가 끝날 때 쯤에 까뮈를 읽고 조이 디비전을 들었다. 아직도 그 잔영 속에 살고 있다. 모르겠다.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었는가는.--Heather
- 공부 열심히 했다. 칭찬받으면 우쭐해서 더 열심히 했다. 운동 약간과 축구. 게임(오락실) 조금. 친구는 별로 없다. 만화책 또는 소설책과 생라면 2봉지만 있으면 행복했다. 여드름 때문에 슬펐다. 고등학교때 레이옷은 SF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가, 친구가 쓰고 있는 환타지 소설을 읽고 환타지의 세계로 뛰어들었다.--레이옷
- 친구들이랑 놀았다. 여기저씨 싸돌아 다니고. 낙서도 많이 했고. 이때만 해도 그림도 꽤 잘 그렸다. 근데 십대 후반부터 왜 인지 낙서도 안되고... 대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십대 초반까지만 해도 난 음악이란 걸 정말 싫어했다.--응주
- 초반에는 방안에서 계림문고 250권을 읽었다. 중반에는 애플컴퓨터와 게임에 빠졌다. 후반에는 Vocabulary 2200과 ManToMan을 잡고 살았다. 수학은 찍었다.--CyberLaw
- Pion은 국3 때 전학을 가면서, 갑자기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대신 플라모델 만들기, 전자키트 사서 납뗌하기, 종이로 뭔가 만들기 등을 하고 놀았다. 거의 밖에 나가놀지않고 집에서 책을 봤다. 그래서인지 체력이 약한 편이었고, 중학교 2학년 때는 1년 내도록 왕따를 당했다(나의 가장 힘든 시절이었다). 중1부터 컴퓨터를 했고, 중3때는 부산시 컴퓨터 경진대회에서 입상하는 쾌거도 이루었다. 왠만한 컴퓨터 (애플) 게임은 모두 해봤다. 버뜨, 고등학교 때는 공부다 뭐다 해서 그 때의 소질과 꿈에서 멀어져갔다. 고2 때 크리스챤이 되었다. 꼬치친구들은 학교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달라 점점 멀어졌고, 대신 현*, 봉*이 등의 교회친구들을 얻었다. 어중간한 대학교의 무난한 과에 들어갔다.--Pion
- sharkman 은 유치원에 들어가서 한글을 배운 이후로 평생의 업이 된 만화에 몰두했다.
- 라이온은 중딩때부터 학군 좋은 강남으로 유학(?)갔다. 형아랑 나랑 자취생활을 하다보니 통제가 안되어서리 공부는 안하구 허구헌날 놀구..운동만 했다. 공부에선 두각을 못나타냈다. 여전히 쌈질은 잘해서리...헤헤..참, 좋은 학군에 간다고 공부 잘해지는건 아니다. 나와 같이 놀던 초딩 친구들은 울나라에서 소위 일류대라 불리는곳에 들어갔다. 에구, 역시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하는것이 정석인듯..
- Kwon이 지나간지 얼마 안된 10대를 되돌아 보면 그리 좋지않은 기억들이 많다. 중학교때까지는 정말 거의 살아 있는지 죽어있는지도 몰랐던것 같다. 그래도 허울없이 지낼수 있는 친구를 얻은 시기가 중학교때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별로 공부도 안하고(하는 척만 했다.) 쓸 때 없는(?) 공상들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 친구들과 단체로 자율학습 도망친후 줄곧 오락실을 녔다. 많은 게임들을 섭렵한 기간이었다. 눈으로 말하는 벙어리 사랑을 1년이 넘도록... 그 친구도 나도 모두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가 숯덩이가 됐다. 참 좋은 시간이었고 참 아픈 기간이었다. 참 바보같았고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 음악을 듣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나를 발견한 기간. 학교, 집, 도서관....다른사람들 처럼 이것 저것 해보지 못한게 아쉽기도 한 때다. 전진호
- 중1때 처음 사랑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가깝고도 먼 존재였다. 중2때 MSX라는 8BIT컴퓨터를 장만했다. 그리고는 거의 매일 오락을 했다. 바로 안경도 쓰게 되었다. 중2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중3때는 우리반에 소설쓰기가 유행했다. 서로 읽어주고, 감상문써주고.. 고등학교때는 일본만화에 빠졌다. 야자때 공부는 안하고 만화만 그렸다. 그러다보니 대학입시에 실패해서, 후기로 엉뚱하게 한의대를 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 이현호
- 별로 빛이 보이지 않았다. 가정형편도 어려웠고 학교환경도 그닥 좋지 않았다.특별한 기억도 없다. 그냥 학교를 다녔다. 무엇이고 되고 싶었던 것도 딱히 없었고 흘러 가다보면 무엇이 되어 있으리 생각했다. 다만 걱정스러웠던 것은 1999년의 지구의 멸망, 그것이 걱정스러웠다. 다 쓸데없는 일들을 하는 것만 같았다. 1999년 내 나이는 정확히 38세가 되는군... 일기장에 썼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앞으로 20년 후엔 난 어떤 모습일까 하고...노루귀
- 귀기울이며 살았다. --bullsajo
- 모범생이란 명패를 달게 된 이후부터 별다른 일탈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머릿 속엔 현실에 대한 불만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으나 그것을 겉으로 특히 당시의 지배세력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겐 표현하지 않고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살았다. 내가 속한 사회와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생각이 극에 달았던 때로 많은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한 흥미를 발견한 것도 이 시기.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무얼하며 살 것인지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고민했던...의식적, 정서적으로 깨어있던 시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들이 내가 원했던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일들 또한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긍정적인-적어도 부정적이지는 않은-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흐름
- 어여쁜 소녀를 구하기위해 13명의 불량배와 맞서 싸우는 꿈을 꾸었다. 비상을 하기엔 너무 여렸다. -zetapai
-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 읽는것과 공상한다는 것에 점차 흥미를 잃었다. 대신 감정적으로 흥분되는 경험을 좋아하게 되었다. 음악이 그랬고, 영화, 애니메이션, 그림과 사진등.. 어떤 대상을 판단하는 일에 있어서, 이전처럼 생각하지 않고, 마음에 와 닿는가? 라는 한가지 기준만으로 판단하던 때 였던 것 같다. 그리고.. 바보로 돌아간 기분을 자주 느꼇었다 ^^; --붉은눈의시체
- 자의식의 기하급수적 강화. 그와 보조를 같이 하여, 한 인간에 대한 집착의 감정을 체득했다. 중2때 음악에 빠지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은 현실도피적 낮잠들로 충만했다. 친구들은 크리스마스 카드에 잠 좀 그만 자라고 써주곤 했다. kuroko
- 하고 싶은 일이 많았으나, 할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 책을 많이 읽어 둔 것이 그래도 가장 남는다. --이정호
- 처음으로 담배를 피워보았다. 중고등학교생활은 끔찍하다. 이름보다는 번호로 불리우던 시절이다. --yoonseok
- 위키를 했다. -- 홍지미
- 친구와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학교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를 했다. 수학과 과학에 애착을 가졌다. -- RedPain
- 학교가 싫었다. --nyxity
- 형편없을 만큼 아는게 없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수학에 질려 성적은 형편없었다. 영화를 인식하고 밤새도록 보는일이 허다했다. 쉽게 타오르고 쉽게 질렸다. 많은것을 포기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포기할 수 없어 매우 당황했다. Ludwing
- 방황과 열정의 교차점에서 헤매었다. -- qubee
- 스스로에게 절망했다. 무능력함을 한탄했었고 부족한 끈기를 채우려 노력하기도 했지만 결국 포기했었다. 공부라면 질색을 했었고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는 부모님들의 말씀을 애써 외면했었다. 이시절 평균 수면시간이 항상 10시간이 넘었고 무협에 심취하기도 했었다. 다른 아이들이 찾지 못한 길을 걸으려 애썼지만 결국 이시절 등불이라 할수 있는 컴퓨터라는 매개체를 선택 하게 됐었다. 하지만 결국 다시 좌절했었다. -- 바퀴쥐
- 10살에 막내가 태어났다. 10대의 반을 아이와 보낸 듯.. 덕분에 어머니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Beatrice
- 학교가 싫었다. 이때 추리소설과 과학동아,컴퓨터 오락에 빠졌다. 아침구름
- 어떤 책에선가 "자신의 일을 위해 죽음도 각오한다." 뭐 이런류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고민했다. 컴퓨터를 하다가 목숨의 위협을 느낄만한 일이 과연 일어날까? --;; - 지아
- 국민학교 시절은 아(我)와 남(男)과의 투쟁시기였다. 항상 온몸으로 싸웠다. 싸움에서 져서 우는 것은 일생일대의 치욕이라고 생각했던 듯 하다. 그렇지만 나보다 덩치가 크거나 나이가 많은 남자애들하고는 한번만 빼곤 말로 싸웠다.. (약은 나... -.ㅡa) 재능이 많은 편이었다. 미술분야를 제외하고는 각종 대회에 학교대표로 많이 참여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 여지껏 살아오면서 가장 강한 라이벌 의식을 느낀 친구를 만났다. 그 학교서 전학하지 않았다면 나의 인생은 그 경쟁을 통해 매우 다른 길로 이어졌을 것이란 확신이 들 정도이다. 전학온 학교에서 친구문제로 중3때 어려웠다. 중3시절과 국민학교 시절을 반면교사로 삼아 고등학교 때에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특히 공을 들였다. 덕분에 멋진 친구들과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으나, 공부는 대학에 턱걸이 할 정도로만 유지했다. 그러나 사람관계라는 것이 깊어지면 깊을수록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조절하기엔 사춘기는 너무 감성적이라는 난제가 있었다. 시험이 수능으로 바뀌지 않았으면 분명 재수했어야 했다. by 열혈여아
- hyoki는 어느 날 갑자기 사춘기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여자를 만나보려 노력도 하고 이유 없는 반항도 해보았다. 반등수 25등이 떨어진 것이 그 당시 주위 사람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또한 어느날 형이 1200kcps모뎀을 들고 왔다. kitel은 이미 유료화되어렸었고 kepco에서 놀았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컴퓨터를 다루나 보다.
- 음악을 들으며 동시에 티브이를 봤다. shineforever
- 정확한 제목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선영의 영화 음악실을 참 많이 들었다. 시간대가 몇번 바뀌어서 9시에 할때와 12시에 할 때가 있었는데 둘다 참 열심히 듣고 엽서보낸게 소개 (XX동 XX씨 하고 간단하게...)된 적도 있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면서 들으면 조용히 말하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참 좋았다. 덕분에 한동안 영화음악좀 안다고 으쓱하고 다녔다는... 그 때 그분 지금은 뭐하고 계시는지... --happycoat
-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는 몰랐다. Mokdori
- 특정한 계기는 모르겠지만 10대 초반에 성격에 크게 변했다. 외향적이 되고 성적도 오르고 친구도 많아졌다. 우리와남을위해 쓸만한 이야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공부도 게임도 컴퓨터도 남들 하는 만큼 했던 것 같다.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혹은 고스트스테이션)을 참 많이 들었다. 항상 옳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모범적인 삶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세상을 색다르게(다소 조금은 삐딱하게) 보는 눈을 가져다 준 것 같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남들과 다른 나만의 가치관과 성격을 형성하는 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라디오 였다. Doodoori2
- 난 나의 가능성을 몰랐다.: 막연히 그냥 학교 수업을 듣는 것인 줄만 알았고, 참고서는 다 푸는 사람이 존재하는지 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내가 대학에 갈 수 있는 지조차 막연하기만 했다. 이 시기에 자신감이란 스스로 생긴다기 보다는 80% 이상, 부모에 의해 형성되는 것 같다. 아마 20대가 넘어서게 되면,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것들에 의해 자신감이 생기겠지만 말이다. 만약 10대인 학생들이 내 글을 본다면, 정말 진심어린 한마디를 던지고 싶다. 당신의 능력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입니다. 이제부터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의 생각을 키우고 상상력을 키우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절대 포기하지만 않으면, 당신은 처음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니 수천 수만배 더 대단한 사람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꼭 바라는 것을 성취하고 노력하는 삶을 사세요. 무엇이든 할 수 있답니다. daebarkee
3. 20대 ¶
- 사춘기때 못한 늦북반항하느라 힘들었다..-.-; 뭐 지금은 실속있게 살려고 노력중..뒤늦게 음악도 시작하고..뭐든지 남보다 늦었지만..좋은 20대다. 아말감
- 친구를 사랑했다.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살았다. Bohemian
- 컴퓨터. 프로그래밍. 학교. (온라인) 게임. 환타지. 책. 딴건 암것도 못했다. 갑자기 왜 마법사들의 체력이 약한지에 대한 깨달았다. 바보같은 레이옷
- 친구, 잠, 술, 프로그래밍 그리고 음악 말고는 암 것도 엄따. 아직까지는 무미건조로 표현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난 수면제 안 먹어도 24시간이상 잘 수 있다. 한때 별명이 만성피로였다. 암것도 안하는 것 보다는 되든 안되든 일단 해보는게 좋다는 걸 알았다. 뭘하든지. 공부도 왜 해야 되는지 알았다. --응주
- 친구를 스쳐보내고, 사랑이라 생각했으나 소유욕이었음을 임을 인정하고 그녀를 떠나 보내고, 잡종적 책읽기로 머리를 환기시키는 와중에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났다. --CyberLaw
- 교회에 가기가 너무나도 싫었다. --임병준
- 남들은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교 때 노는데, Pion은 반대였다. 고등학교 때 논 것을 후회+반성하느라 대학교 때 꽤 열심히 공부했다. 18개월 방위를 마쳤고, 방위 말년에 지금의 마누라와 애인이 되었다. (소위 말하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을 내가 해낸거다. 마누라는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을.. 쿨럭) 3년간 열애끝에 결혼했고, 미국에 유학을 왔다. 울티마온라인에 빠져들었고, 울티마온라인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이랑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고, 전공보다는 게임을 만드는게 점점 좋아졌다. 딸이 생겼다.
- 대학을 가려면 수능을 봐야 하는 게 싫었고, 대학을 갈 수 없는 형편이 싫었고, 대학을 가야 하는 세상이 싫었다. 대학으로 얼룩지게될 인생이 싫었다. 오만과 위선에 젖은 쓰레기 같은 연장자들에게 머리 조아리는 게 싫었고, 그런 인간들을 때려눕힐 힘이 없는 내가 싫었다. 도망칠 곳 없는 이 사회가 싫었다........... 써놓고 보니 난 20세기에 태어날 인간이 아니었나보다. 황새가 배달을 잘못했겠지. 아니 별을 잘못 찾았나...--zephid
- 라이온의 대딩시절은 자유롭고 아름다웠다. 눈반짝이며 밤새 얘기하던 그많은 날들...같이 공부하던 순수한 학우들..최고의 나날들이었다..허나, 호사다마랄까..쓰레기 논문을 하나 쓰고, 겨우겨우 석사 졸업해선 5년동안의 병역특례 생활이 시작된다. 여기서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시기를 잘 넘겨야 멋진 삶이 가능해질듯한데..조심하세요..어쩜 이시기에 형성된 성격 회복(?)이 안됩니다.
- 지리멸렬. 전차 살벌해지고 신자유주의화되어가는 국립대학. 아직도 (과거형 제외)대학시절의 낭만 운운 하는 사람들은, 안됐지만, 꿈꾸고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이제 낭만은 대학 들어간다고 상처럼 굴러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알아서 찾아갈 수 밖에. 상당히 힘들것이지만. -kuroko
-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기간이다. 멋진 사람들을 사귀는 기간이다. 좀 더 방황해야 하는 시기. 그러면서 열정을 키워나가는 시기. 힘도 기르고 가치관도 세우고.... 나의 꿈을 향하여. Go for it! Never End. 전진호
- 사람들은 희망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거짓말한다. 나는 폐인이 되고 싶다. 나는 완성하고 싶다.
희망의 대답은 대개 둘 중의 하나다, 즉 길흉 중의 하나이다. 이 사람을 다시 살고 싶다고 후회할 때, 그때는 이미 삶을 상당히 살아버린 뒤이 다. 거짓말은 끊을 수 없는 유혹이어서 세상에서 가장 후진 골목 끝에는 대개 점치는 집이 있다. 나는 철학자를 경멸한다. 그러나 어떤 유행가 가 수에 대해서는 질투를 느낀다.
그대 몸 속 한가운데에 내부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입에서 항문까지 그 꾸불꾸불한 길은 외부이다. 그러니까 삶은 거듭되는, 커다란 ‘빵꾸’이 다. 구린내도 자주 맡으면 향기롭지 않는가, 된장처럼. 혼자 엎드려 토할 때의 그 많은 회환 : 다리 난간을 부수고 강물에 꼴아박은, 종이처럼 구 겨진 버스를 기중기가 들어올린다. 물을 줄줄 흘리며 검은 개가 하늘에 매달려 있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나는 허수아비의 허수아비까지 보고 싶어한다. 쇼 윈도 속의 캐피탈, 허공꽃. 유리창의 허공꽃을 보고 찾아온 호박벌, 투명한 한계에 날개를 때 리며 잉잉 운다. 여기가 바로 바깥인데 왜 안 나가지냐.
나는 이 무질서를 택했다.
나는 허수아비의 허수아비까지 보고 싶어한다. 쇼 윈도 속의 캐피탈, 허공꽃. 유리창의 허공꽃을 보고 찾아온 호박벌, 투명한 한계에 날개를 때 리며 잉잉 운다. 여기가 바로 바깥인데 왜 안 나가지냐.
- 황지우. 게눈 속의 연꽃 중에서
이 글..뒤통수로 내려치는 줄 알았습니다. 심장이 벌렁벌렁 거렸었지요. '알 수 있을 꺼 같다'는 시건방짐.
바로 어제지만 얌체공처럼 이리튀고 저리튀던..너무나 가벼웠던 시절이었군요.
생각해보니..
참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tsimshatsui
|}}그대 몸 속 한가운데에 내부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입에서 항문까지 그 꾸불꾸불한 길은 외부이다. 그러니까 삶은 거듭되는, 커다란 ‘빵꾸’이 다. 구린내도 자주 맡으면 향기롭지 않는가, 된장처럼. 혼자 엎드려 토할 때의 그 많은 회환 : 다리 난간을 부수고 강물에 꼴아박은, 종이처럼 구 겨진 버스를 기중기가 들어올린다. 물을 줄줄 흘리며 검은 개가 하늘에 매달려 있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나는 허수아비의 허수아비까지 보고 싶어한다. 쇼 윈도 속의 캐피탈, 허공꽃. 유리창의 허공꽃을 보고 찾아온 호박벌, 투명한 한계에 날개를 때 리며 잉잉 운다. 여기가 바로 바깥인데 왜 안 나가지냐.
나는 이 무질서를 택했다.
나는 허수아비의 허수아비까지 보고 싶어한다. 쇼 윈도 속의 캐피탈, 허공꽃. 유리창의 허공꽃을 보고 찾아온 호박벌, 투명한 한계에 날개를 때 리며 잉잉 운다. 여기가 바로 바깥인데 왜 안 나가지냐.
- 황지우. 게눈 속의 연꽃 중에서
이 글..뒤통수로 내려치는 줄 알았습니다. 심장이 벌렁벌렁 거렸었지요. '알 수 있을 꺼 같다'는 시건방짐.
바로 어제지만 얌체공처럼 이리튀고 저리튀던..너무나 가벼웠던 시절이었군요.
생각해보니..
참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tsimshatsui
- 방황의 나날이었다. 대학들어가면서 처음 경험한 것은 술과 포르노.. 20대 내내 나의 간은 정상인 적이 없었다. 중1때부터 좋아했던 친구에게 고백하고 첫사랑을 했지만, 1년만에 실패.. 한약분쟁으로 파행수업.. 모든게 꼬여가는 상황에서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한국에서 그냥 한의사를 하다가는 아무런 생각없이 늙어버릴꺼 같아 두려웠다. 졸업하자마자 캐나다로 와서 다시 대학에 들어갔다. 중학교때부터 하고 싶었던 CS를 전공했다. 결국 20대 내내 대학만 다닌 것이다. 이현호
- 대학 생할은 정말 잠깐이었다. 4년은 다니면서도 짧았다. 대학 생할은 고등학교의 연장과 같았다. 단지 남자애들을 여기저기서 본다는 것 빼놓고는...그리고 그런 환경은 나와는 무관했다. 사회성발달의 기회를 전혀 가지지 못했다. 대학졸업과 동시에 시작된 직장생활은 아직까지도 진행중이다. 진짜 질기다. 노루귀
- 고집스럽게 살았다. --bullsajo
- movement를 했다. 열정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많이 타락도 했었다. 한 달 내내 술을 마셔댄 적도 있다. 그리고 사랑을 했다.-zetapai
- 처음으로 친구를 만들었다. 다른사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상처 받았고, 폐쇄 되었다. 데쓰메탈에 뼛속까지 절어서, 이상적인 악마를 생각해 내느라 애썼다. 곧 그 모두에 싫증이났고 다시 읽기 시작하고, 간판을 외우기 시작하고, 아프간에서 전쟁이 나는 것 보다, 내 씨디 플레이어가 고장 났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져 버렸다. 2년이 지나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20대는 인생의 위기 라는 표현을 조금 이해했다. 지금은 BillEvans를 사랑하게 되었고, 세상을 보는 눈을 따듯하게 하려고 억지로 노력하고 있다. 아직도 20대는 7년이나 남았는데.., 또 어떤 일이 생길지 기대된다는 거짓말을 계속해서 되뇌여 본다. --붉은눈의시체
- 하고 싶은 일을 하였다. 데모하다가 감옥살이도 하고, 보고 싶은 책도 실컷 읽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았다. 지금 후회는 없다. 30대인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 심지어 환경론자가 되기도 무섭다. 후과가 두렵고 가족 사회에 대한 책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30대의 나는 노스모크가 유일한 자유의 장이다.--이정호
- 거의 10년 동안 학교에 다녔다. 무엇인가를 배우면서 정리되기 보다는 혼란스러움만 증폭되어갔다. 사귀던 애인에게 처음으로 "이 여자와 결혼이란 것을 하고싶다."라고 느꼈다. --yoonseok
- 친구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길을 갔다. 나는 친구들의 무관심 속에 죽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우정은 변했다. 우정을 믿지 않는다. 사춘기가 와서 반항을 시작했다. 부모의 은혜라는 이름 아래 아버지의 틀에 맞춰 살아야 함을 괴로워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 수록 아버지를 존경했다. 수학과 과학을 손에 잡으려 했으나 이미 너무 먼 곳에 와 있었다. 사랑을 몰랐다. 여자를, 로맨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 RedPain
- 5년 전의 악연같았던 친구가 그렇게 좋아질 수가 없다. 아르바이트를 약간 하면서, 그리고 대학을 다니면서 세상의 처세술을 다 배운 것 같다. 철도 들어서 부모님께 떼쓰지 않았다. 맘만 굳게 먹으면 과정이 어떻든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열심히만 하면 남들에게 적당히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Nainu
- 학교가 싫었다. 군대갔다오다. --nyxity
- 지금인데 괴롭다. 10대의 내 모토는 하기 싫은 일은 꼭 하자였는데... 역시나 그것은 말에 지나지 않았다. 상황도, 나도 나의 적이 되어버린 셈이다. 앞으로 30이 얼마 안 남았는데 앞으로도 나와는 화해를 하지 않을 것 같다. 30대란에도 글쓰기를 조금 바랄 뿐이다. 아침구름
- 이십대.. 꿈과 같은 시간이었다. 열정.. 이 단어를 빼면 나의 이십대는 표현될 수 없다. 동아리와 사람들과의 경험에 나의 모든 것을 걸고 뛰어들었다. 대학교 3학년이 지나고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물론 항상 공부는 그런대로 쫓아오는 시늉 정도는 냈지만 진지하게 탐구열을 올린 시점이 이 시기이다.) 대학 4학년 때 지도교수를 만났다. 그 이후는 그 이전의 모든 부분으로 흩어졌던 열정이 연구, 학문으로 불붙어 옮겨왔다. 스물넷.. 그 이후로는 지금 연구에 나의 마음을 홀라당 빼앗겨 버렸다. by 열혈여아
- 아무런 생각없이 산다. 아니 사는것 같다. shineforever
- 개인적인 생각으로 진정한 질풍노도의 시기는 20대다... --happycoat 동의한표 -- lyolin
- 10대에 원한대로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하지만 1년 반만에 그만 두고 컴퓨터 영업을 시작했다. Mokdori
4. 30대 ¶
- 웹과 신문과 책에 이름이 나올 때마다 조심스러워지고 움츠려 진다. 마치 럴커가 옵저버에 들켜 허둥대며 땅위로 기어나와 도망치듯이. 땅위로 나오는 것보다는 사정거리를 늘리고픈 마음이 더 크다.--CyberLaw
- 왜 30대에 글이 없는거지 --; 설마 이렇게 30대가 적은 건 아니겠지. 현재 졸업을 바라보고 땀을 흘리고 있으며 (그렇다 Pion은 삼D직종에서 일한다), 졸업 후 진로는 게임계를 가려고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중에 후자를 선택하려는 거다.
- 우리나라 나이로 딱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모든 걸 때려치우고 유학을 왔다. 관심만 있었지 한 번도 깊게 공부해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언어학이란 학문을 하려고. 결혼도 했고, 6개월 된 딸까지 있었는데 일단 저지르고 본 일이었다. 지금도 살다가 어려운일이 생기면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를 탔던 그 때를 생각한다. --임병준
- 라이온 30넘어가던해 겨울..어떻게 살아야하는지..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생의 그림을 새롭게 그리기 시작했다...이하생략^^;
- 뭔가 아작아작 씹히는 茶가 좋아졌습니다. --tsimshatsui
- 20대 내내 대학만 다닌 내가 30대라고 못 다니겠는가? 대학원에 들어가서 계속 공부하고 있다.. 아들도 생기고.. 앞으로 어떤 삶이 될까.. 이현호
- 30세 끝에 결혼을 했고 결혼에 대한 회의와 갈등을 지나가는 세월로 덮어 버렸다. 30대는 너무나 피곤했으므로 다시 돌아 가래도 절대 반복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과 직장생활의 병행은 나를 폭삭 늙게 만들었다. 그래도 울 엄마옆에 있어 크나 큰 도움을 받았지만... 결국 엄마의 희생으로 버티고 살았다. 지금도 여전히...노루귀
- 장미꽃처럼 살고 있다. --bullsajo
- 결혼을 했다. 잡은 고기 떡밥주는 법 없다고하지만 아내에게 너무나 신경을 못쓰고 있다. 덜컥 애들도 생겼다. 어머님이 몸져 누우셨다. 내 어깨에 커다란 멍에, 내 발목엔 족쇄. 책을 읽을 때 간지를 넣어두지 않으면 어딜 읽고 있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완전히 맛이 갔다. -zetapai
-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다. 서로를 존중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도와줄 수 있는 여자를 만날려고 노력한다. --이정호
- 10년 간 배운것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고전중이다.(현재 30대) 결혼할 뻔 한 여자와 헤어졌다. 다시는 결혼할 결심이 서지 않을 것 같아서 혼자 살아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yoonseok
- 학교가 그립다. 하지만 지금상태가 제일 좋다. -nyxity
- 페밀리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스테이크나 립을 소화시키지 못한다.
- 장에 기름이 끼는 느낌을 알게된다.
-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금전적으로 상당히 여유롭게 된다.
- 결혼을 준비한다. 치과에 7년만에 다녀왔다. Mokdori
5. 40대 ¶
- 40대는 아무도 없나요? 그런가 보군요. 작년 딱 불혹의 나이에 대학원을 시작했다. 자꾸 TV드라마에 눈길이 가고 시간나면 방송국 드라마 미리보기 대본이나 보려고 들락날락하는 꼴이 싫어져서...그러면서 매일 혼자 자책했다. 미쳤군 하고...그래 나라는 인간은 틈을 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거다. 매일 피곤해서 편두통이 오고 입에서 단내가 나야 제대로 사는건가? 어째든 나이를 먹을 수록 산다는 것은 정말로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돈? 돈도 30대엔 내가 이 나이엔 풍족하게 쓰려니 생각했는데 저금통장은 여전히 비어 있고... 중년의 우아함? 그것이 어디서 오겠는가... 지금은 그저 열심히 산다는 것이다. how to live? 노루귀
- 국화꽃처럼 살고 싶다. --bullsajo
-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기존에 갖고 있는 것만 움켜쥐고 있기에도 힘이 부친다. 푸르게푸르게 나아가고 싶다. -zetapai
- 언제가 되면 무언가를 시작해도 좋은 나이가 될 것인가? 난 노년을 꿈꾸며 노년을 준비하고 있다. 꿈꾸고 준비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닐지 몰라도 강철같은 의지를 단련하고자 한다. 현실의 무게를 견디면서 시지프의 신화를 다시 쓰려 한다. 지금 바위를 위로 밀고 올라가는 정점에 서 있다. 힘에 부친다. 꿈을 다시 기억하려 한다. 내가 꾸었던 꿈. 그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난 다시 빛바랜 일기장을 꺼낸다. 통속적이 되어버린 사랑. 우정, 야망 그런 힘이 서린 단어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소박한 위대함을 만들어 가려 한다. 아침에 만나는 햇살과 저녁에 만나는 바람을 새롭게 느끼려 한다. 쉽고 어렵고를 내가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NO라고 말하고 OK라고 말할 수 있는 판단과 행동의 힘을 가졌다. 싸워야 될 경우는 싸우고 도망쳐야 할 경우는 이제 도망치련다. 그것이 내가 사십대에 찾은 자유의 실체다. --바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