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공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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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지식과 견문을 넓히는 것으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그는 자기가 제기하는 과제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 앙드레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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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공책(Carnet de Question)은 하나의 질문과 그에 대한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진행되는 프랑스 교육의 한 기법이다. 모태는 산파술(소크라테스대화법)로 짐작된다.



1. 진행 방법

단답식의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 하나의 질문을 한 사람이 먼저 제기하고 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차례로 질문의 형식으로 이 물음을 이어나가면서 최초의 질문자가 스스로 답을 구해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진행은 최초의 질문자가 스스로 답을 얻었다고 여기고 맺음글로 마무리하기 전까지 계속된다. 질문 이외의 어떠한 주장이나 답안 제시도 금물이며 다만 짧막한 질문의 형식으로서 다른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

가령, 최초의 질문을 박경림이 던졌다고 해보자. (모의채팅모드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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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교육적 배려를 벗어난 사고의 자유를 허용해도 좋을까? --박경림
타조알: 자유의 허용 역시 또 다른 교육적 배려가 되지는 않는가?
이무기: 사고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을 수 있는가?
양동근: 자유는 누가 허용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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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양동근의 질문이 최초 질문자 박경림이 보기에 자신의 의도를 다르게 파악하고 있다고 여겨지면 처음의 질문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 뒤에 부연하여 얼마든지 개입할 수 있다. 물론 질문의 형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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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질문들에 이어)
박경림: 자기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배움과 자유가 충돌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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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애초의 질문이 뒤에 이어지는 질문들을 통해 다른 방향으로 옮겨갈 수 있으므로 굳이 조정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이때 역시 최초 질문자는 자신이 옮겨가게 된 프레임을 제시한 질문 아래 다시 질문을 제시함으로써 보다 상세한 전개를 유도할 수도 있고, 혹은 전혀 개입하지 않고 질문들의 흐름을 지켜 보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다.

최초의 질문자가 어느 정도 의문이 해결되었을 때는 간략한 질문의 배경과 자신의 정리된 생각을 제시하면서 맺음글을 올리면 끝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새로운 질문을 제시하면서 다시 시작된다. 이 경우 과거의 질문을 하나의 페이지로 독립시키고 From 질문의공책이라는 링크를 달아준다. 물론 질문의공책과거의 질문들에도 독립된 페이지의 링크를 걸어줘야 한다.

2. 유의 사항

지나치게 추상적인 질문은 공허한 개념만 난무하는 말장난으로 그칠 수도 있다. 가령 'OO는 무엇인가?'같은 식의 질문은 (그러한 질문 자체의 무용함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선문답처럼 피상적 수준에 머물고 말지도 모른다.

적절히 질문의 내용을 조율하면서 생각을 담는 단어의 선택에도 신중을 기한다면 다양한 프레임으로 다각도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제한된 형식 속에 압축적으로 사고를 표현하는 훈련의 효과가 덤으로 따라오기도 한다.

질문의공책은 내용상으로는 질문없이묻기(사실상 "물음"이 아니면서 질문하므로), 형식상으로는 질문지우기와 정확하게 반대되는 공간이다. 물음을 이어가는 과정 자체에 의의를 두므로 다큐먼트모드로 바꾸지 않고 또 바꿀 수 없음에 유의하자.

갑자기 등장하는 평서문은 질문의공책을 이어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하니 자신의 질문을 최대한 압축해서 표현하는 것이 좋다. 질문의공책은 자신의 생각을 풀어 이야기하는 구조라기보다는 압축요약해서 질문으로 끝내는 과정이다. 마지막 문장만 질문으로 끝내는 것은 좋은 질문법이 아니다.

3. 현재 진행중인 질문

질문 13 :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한밤중이라 생각해 보자) 무단횡단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잘못된 행위인가? --꾸는자

잡종 : 잘못된 행위가 아니지 않을까?
PuzzletChung : 만약 그 상황에서 서로(보행자와 자동차)가 서로의 존재를 미처 확인하지 못한 차가 운행중이었다고 가정한다면?
김우재 : 로빈슨크루소에게 자신이 만든 법 이외에 어떤 법이 필요할까?
PuzzletChung :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객관적인 "잘못된 행위"의 기준이란 어떤 것일까?
아무개 : 위법성 여부로 잘못된 행위의 기준을 정한다면, 그것은 합리적일까?
씨엔 : 법 적용이 없다면 너무나 "잘못된 행위"가 주관적이지 않을까?
잡종 : 법적용이 객관적인 것의 척도는 아니지 않은가? 예를 들면 도덕이란것도 있다.
씨엔 : 도덕의 경우 사람마다 달리 받아들일수 있지 않을까?
잡종 : 법은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받아 들이나?
NovaKim: 합리적 선택이지만 도로교통법의 범위에서는 잘못이라고 하면 궤변일까?
황원정 : 편이성, 안전성을 위해 "무단횡단을 하지 않기"로 차 운전자와 보행자가 서로 약속한 것이 아닐까?
: 한번 어긴 법을 다음에 다른 상황에선 지킬 것인가. 편의성과 자제심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을까?
휘랑 : 그것은 준법정신이 어느정도 있기 때문에 무단횡단을 했을때 양심에 걸릴 만한 사람만이 할만한 질문이 아닐까?:)
남용운 :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 때문에 무단횡단을 했다면 자제심이 무너질 수 있겠지만, 차가 거의 다니지 않기 때문에 무단횡단을 했다면 나름대로의 양심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CafeNoir : 횡단보도와 신호등의 존재 자체가, 보행자와 운전자 양측의 안전과 편익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애초에 운전자가 존재하지도 상황에서 이런 법은 의미 없는 게 아닐까.
굴돌 : 아무도 없다고 확신하나? 억측이긴 하지만 그것을 본 아이가 단순히 무단횡단이 문제 없다고 판단하고 차가 돌아다닐때 무단횡단하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법적으로는 무단횡단자가 아이의 사고에 대해 책임을 물을 필요는없지만 말이다.

질문 14 :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휘랑

dftgs : 하기 싫어도 해야 만하는 그런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CafeNoir :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리라.
Zer0 : 잘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삶을 꾸려나가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삶을 꾸려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굴돌 : 어느쪽이든 자신이 그 결과를 받아들인다면 문제 없지 않을까? 즉, 좋아는 하지만 먹고살기 힘들더라도 그 자체로써 만족한다면 문제 없지 않나? 더이상 재미있지 않을 때에 대한 걱정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반적으로 효율이 좋은 잘 할 수 있는 일을 택하는 것 아닐까?

질문 15 : 利로써 사귀는 친구와 義로써 사귀는 친구를 분리할수 있는가? --잡종

최종욱 : 누가 이로써 사귀는 친구이고, 누가 의로써 사귀는 친구인가?
Ruciel : 이와 의는 무엇인가? 이로운 의와 의로운 이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눠도 되는걸까?

질문 16:인간에게 금지된 모든것(부연한다면...... 모든 도덕적, 법적, 관습적 금기......그리고 더 있겠지만 아무튼 모든)이 허용된다면 ? --Pouch

CafeNoir : 한동안은 즐겁다가.. 익숙해질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면 살인같은 것도 마음껏 허용된다는 이야기일까?
dftgs : 금기를 만든 주체가 인간이고, 금기를 푸는 주체도 인간인 이상 그에 대한 대가도 받아들어여 하지 않나?
열혈여아 : 인간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각종 금기들은 그것의 이유가 존재한다고 보인다. 만약 하루아침에 이런 금기들이 사라진다면 다시 인류사는 그 금기들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을까 생각된다. 동의한표 -- ilzamusik, 친과학자, 세브
naya : 금지된 것을 허용하는 사람은 누군가?

질문 17: 이병헌과 옥동자가 있다. 둘 사이에 몸은 그대로인데 정신이 바뀌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둘사이에 정신은 그대로 인데 몸이 바뀌었다. 누가 이병헌이고 누가 옥동자인가? --dftgs

아무개 : 이병헌 얼굴에 옥동자 말투, 옥동자 얼굴에 이병헌 폼이 나온다면 우리가 알던 이병헌과 옥동자는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naya : 이병헌이 옥동자를 흉내내고, 옥동자가 이병헌을 따라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잡종 : 몸은 그대로인데 정신이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PuzzletChung : 만약 서로 연관성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두 동물의 몸과 정신이 서로 바뀐다면,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조차도 모르고 살다 죽게 되지 않을까? 이병헌과 옥동자의 경우라고 해도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
류기정 : 성립하지 않는 질문이다. '까만 하얀색은 무슨 색일까?'와 같은 질문이다.
musiki : 두 영혼/육체간에 호환은 될까?

질문 18: 삶이 나를 속이는 때는 언제일까? --naya

dftgs : 나의 행동이 나의 마음을 몰라줄 때가 아닐까?
이기 : 삶이라는 것이 주변 상황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심리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adnoctum : 속인다는 것은 '행위'이므로, 행위자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사는 삶은 누구의 삶일까? 결국 삶이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삶을 속이는 것이 아닐까?

질문 19: 광고와 사기의 차이는 무엇인가? --잡종

PuzzletChung : 하나는 공개적이지만 하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닐까?
맑은 : 과대 광고하면 사기 수준을 말하는 것 같은데 과대 사기라고 하면 무슨 뜻이 될까? 적당 광고하면 선택의 범위를 넓혀 주는 "이런 것도 있다" 라는 알림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적당 사기라고 하면 무슨 뜻이 될까?

질문 20:성은 왜 터부시 되어 왔던 것일까? --lyolin

Zer0 : 순결과 정절을 지켜야 할 만한 실질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Magicboy : 종교의 영향이 아닐까?


질문 21: 노스모크만의 주제 방향이나 한계를 정하면 좋치않을까요?이색적인 혹은 독특한 견해 페이지를 형성? --howlog

Magicboy : 노스모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방향을 정했을 때 장점이 있을까요?


질문 22: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아무개

아무개 : 아기가 잠자고 있거나 개가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행복할 것이라며 부러워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우리의 현재 상황과 비교하여 그들이 비록 행복을 자각하지 못해도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러한 생각이 드는 까닭은 우리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과연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란 가능한 것일까?

Nairrti : 행복이라는 단어의 관념에 빠져버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행복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이미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충분히 심정적으로 편안하다면 그게 행복이 아닐까요. 행복이라는 막연한 단어를 사용해서 그게 뭔지 일부러 찾아야하는 것에서 오는 문제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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